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고인물이 활을 쏘는 법 (1)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레인저의 대장, 테슬론은 엘프들 사이에서도 두려운 존재로 악명이 높았다.
단순히 자존심만 부리는 놈들과 달리 탄탄한 실력 또한 뒷받침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다니.
꿀꺽!
꼴깍…….
여기저기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인간. 네놈이 감히 나에게 궁술로 도전을 하는 것이냐? 나에게!?”
“허허. 테슬론, 강진혁 님께선 그저 하는 말이네.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펜하임이 끼어들었다.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갔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아는 거겠지.
하지만, 진혁은 오히려 불난 집에 석유를 부었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s?s이 활 몇 번 쏜 게 전부지만, 이상하게 너한테는 질 것 같지가 않네. 그냥 대충 시위에 걸고 슝 쏴도 이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석유에다가 화약도 좀 섞고 그 위에 폭죽도 끼워 넣었다.
이걸 참으면 성인이거나 현자일걸?
“으아아악! 좋다. 지금 그 발언,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말해라! 어떤 식으로 대결을 원하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테슬론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이건 터졌다.
장로고 나발이고 간에, 말릴 수 있는 수준을 한참이나 넘었으니까.
“허허…… 이것 참.”
펜하임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늪지 무화과를 모아야 하니 그쪽으로 가자고. 거기라면 적당히 겨룰 수 있을 만한 곳이 있을 테니까.”
“좋다. 다시는 엘프에게 활을 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지.”
테슬론이 어금니를 갈았다.
그래.
고작해야 인간 따위.
화살 한 발이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격차를 느끼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마을로부터 10km 떨어진 곳.
여기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확실히. 다들 고생을 할 만하긴 하네.’
진혁이 늪지대 주위를 천천히 훑었다.
바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진창과 군데군데 보이는 늪지 악어들.
그리고 그 모든 장애물을 넘어야만 늪지 중간에 있는 무화과 나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플레이어들의 등장으로 늪지의 상류에 있던 악어들이 하류로 몰리면서 무화과 나무 주위가 더욱 붐비게 됐지.’
워낙에 포악한 늪지 악어들은 코끼리만 한 먹잇감도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먹어치우는 데다, 속도도 상상 이상으로 빨라 엘프들조차 따돌리기 쉽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난이도가 훨씬 올라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엘프들도 평소와는 달리 축제에 쓸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고.
하지만, 아무리 많은 악어들이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의 습성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숫자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펜하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초대한 손님이 악어 밥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내버려 두십쇼. 장로님. 스스로가 자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디, 얼마나 믿는 구석이 있는지 지켜나 보죠.”
테슬론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켜보던 나머지 엘프들도 맞장구를 치며, 뻔한 결말을 예상했다.
죽거나 혹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거나.
둘 중에 하나를 보게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그러나.
모두의 이죽임과 조소 어린 시선은 잠시 뒤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우우우웅!
[Lv6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가 발동됩니다!]사라진 신형.
진혁이 늪지 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촤촤촤촤촤촤!
늪지 위에 떠 있는 나무와 풀잎을 밟으며 순식간에 10m를 이동하자, 떼 지어 있던 늪지 악어들이 반응했다.
“크오오오!”
“카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거대한 아가리가 쩍하고 벌어졌다.
수백 마리가 넘는 늪지 악어들이 먹잇감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허나, 진혁은 조금도 겁먹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이미 어떻게 해야 이곳을 돌파할 수 있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력이 퇴화된 늪지 악어는 물의 파동을 감지해 사냥을 한다.’
각각의 사냥감마다 특유하게 발산하는 파동을 식별해, 그 크기에 따라 적과 동족을 구분하는 방식.
물론, 여기까지는 엘프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나, 검마제왕보를 사용해 그 파동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면…….
‘놈들은 나를 먹잇감이 아닌, 동족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
진혁은 이미 늪지 악어들이 이동할 때 생기는 특유의 파동마저 몸에 익힌 상태였다.
“크르르…….”
“키에…….”
마구 날뛰던 늪지 악어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수면 위엔 오직 진혁이 남긴 잔물결만이 부드럽게 퍼져나갈 뿐이다.
“세, 세상에나…….”
“어떻게 저 포악한 늪지 악어들이 공격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방법을 알고 있나 봐.”
“하지만, 늪지 악어는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몬스터잖아, 외부인이 대체 무슨 수로…….”
“게다가 저 움직임 좀 봐.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아. 저런 건 테슬론 님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바, 바보야. 조용히 해. 테슬론 님 바로 옆에 계시다고.”
엘프들이 입을 쩍하고 벌린 채 한 마디씩 내뱉었다.
경악과 환희로 얼룩진 표정만 봐도 진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훤히 보였다.
물론.
“크윽…….”
진혁의 실패에 목말라 있던 테슬론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
장로가 보고 있으니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지만.
늪지 악어에게 허겁지겁 쫓기다가 목숨을 애걸하는 것쯤은 실컷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잘못했다간 정말로 무화과 열매를 모조리 따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일이 그렇게 돌아갈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수준까지 도달한 상황이었다.
‘제발 실패해라! 제발…… 실수라는 걸 좀 하란 말이다!’
테슬론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대던 바로 그때.
툭!
진혁이 늪지 중앙에 있는 작은 섬에 도착했다.
수백 마리의 악어 사이를 모조리 돌파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고.
“흠. 피곤해서 그런가 몸이 살짝 무겁긴 한데…….”
그래도 최고 기록을 7초 정도 경신했다.
과거보다 훨씬 더 탄탄하게 성장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쁘진 않네.’
이제는 기록의 경신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상승폭이 얼마나 될지가 관건인 경지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난 이게 그렇게 맛있는지는 모르겠던데. 쟤네들 입장에선 치킨이나 피자를 먹는 거랑 비슷한 중독성이려나?”
진혁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탐스러운 노란색 과실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늪지 무화과 열매]새콤달콤한 맛뿐만 아니라 마력을 정제시켜 주는 효능도 있어, 엘프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동시에 정령들에게도 사랑받는 열매였고.
진혁이 무화과 나무에 다가가 열매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아공간 이벤토리의 남은 공간이야 넉넉하게 있으니 여기 있는 열매를 모조리 따더라도 문제될 일은 없으리라.
“와아아아!”
“인간이 해냈다! 이제 축제를 열 수 있게 됐어!”
“설마 했는데, 진짜로 해낼 줄이야!”
엘프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낯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는 따뜻한 환대와 칭송으로 채워졌다.
수백 년 동안 이어 온 축제 그리고 처음으로 실패할 뻔한 축제를.
한 인간이 구해 준 것이다.
***
후두두둑!
엄청난 수의 열매가 바닥에 쏟아졌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 저장해 뒀던 무화과 열매들이었다.
“이쯤 되면, 제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 증명이 된 것 같네요.”
여기서 토를 달면 그건 사람…… 아니, 엘프가 아니지.
양심이라는 게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여기선 입 닥치고 고개만 끄덕여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열매를 따 올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네놈이 했던 헛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궁술에 관해 지껄였던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세상엔 상식을 뛰어넘는 바보들이 꼭 존재했다.
이야.
다른 의미로 상상 이상의 낯짝을 소유한 분이었구나.
이쯤 되면 테슬론의 양심엔 아프로 대가리만큼이나 무성한 털이 나 있는 걸로 가정해야 할 듯싶다.
진혁이 감탄 어린 시선으로 테슬론을 바라봤다.
“잊은 건 아닌데…… 대충 돌아가는 상황 보면 감이 오지 않아? 딱 봐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나라면 알 것 같은데?”
“개소리 하지 말거라. 얄팍한 수로 악어들을 속였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다르다. 네놈 따윈 100번 죽었다 깨어나도 날 이길 순 없어.”
테슬론이 확신에 찬 말투로 내뱉었다.
이것 참.
저렇게 강한 척하면…… 그냥 넘기고 싶어도 자연스럽게 고인물의 DNA가 꿈틀거린다.
자신만만한 녀석을 짓밟고 능욕한 뒤 수치심으로 일그러져 다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만들고 싶은.
그런 어두운 욕망이.
“그럼, 너랑 나. 누가 이길지 내기 하나 할까?”
“내기라고?”
“단순히 자존심 대결로만 하면 재미없잖아?”
이기든 지든 정신 승리나 할 수 있는 대결은 하품만 나온다.
정말로 상대를 뼛속까지 짓뭉개고 싶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벌칙이 걸려야지.
“내가 지면 네 신발을 핥든 지금 당장 마을에서 떠나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대신 너도 질 경우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하는 걸로. 어때?”
“재밌군. 좋다. 그렇게 하지. 혹시라도 나중에 가서 말을 바꾸거나 하진 마라.”
“너야말로. 혓바닥만 길게 늘어놓지 말고. 내가 징징 짠다고 봐주는 성격은 아니거든.”
“고귀한 숲의 종족은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진혁이 피식 웃었다.
벌써부터 녀석이 할 벌칙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연신 씰룩였다.
마찬가지로 테슬론 역시 이른 승리에 취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서로가 서로 다른 결말을 예상하며, 두 종족의 자존심을 건 내기가 시작됐다.
“종목은 궁술. 다시 말해 활쏘기다.”
테슬론이 무화과 나무들이 있던 섬을 가리켰다.
약 700m 정도 떨어진 섬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연이어 늘어져 있었다.
“저기 보이는 나무 중에 가장 끝에 있는 나무는 이미 수명이 다한 나무다.”
“활로 쏴도 괜찮다는 거네?”
“그래. 타겟은 저 나무로 하고. 화살이 빗나가는 쪽이 지는 걸로 하지.”
“만약에 둘 다 빗나갈 경우는?”
“만에 하나라도 내가 빗나갈 일은 없겠지만, 그럴 경우엔 더 가까이 화살을 쏜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실비아로부터 적당한 활 하나를 건네받았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테슬론 님은 저희 중에서 가장 활을 잘 쏘시는 분이에요.”
“그거야 뭐, 대충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활을 잘 쏘는 거랑 승부에서 이기는 건 다른 거예요.”
“그게 무슨……?”
실비아가 재차 물었지만, 진혁은 장난스럽게 웃은 뒤 몸을 돌렸다.
이제 저 얼음 같은 귀쟁이의 면상을 거하게 무너뜨려 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