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고인물이 활을 쏘는 법 (2)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할게.”
진혁이 입을 열었다.
“화살을 쏘는 건 번갈아가며 쏘되 둘 다 실패할 경우 거리가 더 가까운 쪽이 승부에서 이긴다. 그리고 이 외에는 그 어떤 규칙도 없고. 맞지?”
“그래. 맞으니까 그만 물어보고 얼른 쏘기나 해라.”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설마, 집중력을 방해하는 치졸한 짓을 할 생각은 아닐 거 아냐?”
“빌어먹을 감히 엘프를 뭘로 보고. 조용히 있어 줄 테니 그 망할 놈의 집중이나 실컷 하란 말이다!”
뭐,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다.
진혁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후웁……!”
호흡을 짧고 빠르게 들이마셔 복압을 만들자, 몸이 탄탄하게 고정됐다.
바로 그 순간.
부우우웅!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바람의 방향과 거리를 제법 잘 가늠한 첫발이었다. 활을 거의 다뤄 본 적 없는 것치곤 거의 목표인 무화과 나무에 맞힐 뻔 했으니까.
하지만, 화살은 결국 중앙에 있는 작은 섬 인근에 꽂혔다.
실패였다.
“풉! 푸하하하! 어이가 없군.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나에게 도전한 것이냐? 농담이라도 이 정도면 불쌍할 지경이구나!”
테슬론이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다행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도 조금 전 ‘검마제왕보’를 시연하는 것을 보며,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을 테니까.
“으음.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안 좋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진혁이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라…… 끝까지 구차한 변명만 할 생각인가?”
“아니, 진짜로. 응원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낯선 환경인 데다 주위엔 엘프들만 잔뜩 있으니 영 제 실력을 못 내겠다고. 나도 내 편을 하나 정도는 불러와야겠어.”
관중들이 지르는 함성만 하더라도 선수들에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괜히 홈 어드벤티지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젠장. 헛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주는 것도 피곤하군. 좋다. 어디, 네놈의 편이라는 놈을 데려와서 다시 쏴 봐라.”
테슬론이 짜증에 찬 말투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어차피 조금 전 보여 준 실력으론, 한 번이 아닌 천 번을 다시 쏘게 하더라도 결과는 매한가지일 테니까.
“사양하지 않을게.”
생긋 웃은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곳에서 나온 건 흑요석처럼 새카만 피부를 지닌 고대종, 고구마였다.
“하양 모기! 노랑 모기! 질기고 맛없는 모기!”
고구마가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보는 엘프들이 꽤나 시선을 끌었는지 짧은 혀를 연신 날름거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착한 모기!”
고구마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 진혁의 품으로 쏙 파고들었다.
“그래그래. 이리 오렴. 내 새끼.”
역시, 고대종이 충성심이 높다는 말은 틀린 게 없다.
진혁이 뿌듯한 얼굴로 고구마의 턱밑을 부드럽게 긁어 주었다.
가르릉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는 고구마를 보자, 재수 없는 귀쟁이 녀석한테 받은 스트레스가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독특한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구나.”
테슬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긴, 6층에 있는 녀석들이 고대종을 본 적 있을 리 없겠지.
기껏해야 좀 희귀한 파충류 정도로 생각하는 게 고작일 거다.
하지만 녀석은 알까?
그렇게 혈통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엘프조차도 고대종 앞에선 한낱 잡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진혁이 다시 한번 화살을 쐈다.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화살은 아까보다 조금 더 목표물과의 거리를 좁혔으나, 명중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변명 따위는 없는 걸로 하지.”
테슬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동시에 어깨에 메고 있던 화려한 장궁을 뽑았다.
약 2m에 이르는 은빛.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아이템이다.
여기에 고유 능력인 ‘백발백중’까지 더해진다면…….
이 승부의 결과는 정해진 거라 봐도 무방하리라.
그래.
그게 맞긴 한데…….
진혁은 웃고 있었다.
마치, 이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처럼.
‘뭐지? 저 기분 나쁜 미소는……?’
테슬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찜찜한 느낌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테슬론은 이내 상념을 떨쳐냈다.
이제 화살의 시위만 놓게 된다면 그걸로 끝.
변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실수를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꾸우우욱!
테슬론이 화살을 쏘려고 하던 바로 그때였다.
“모오오오기이이이!”
[고구마가 Lv1 ‘피어’를 사용합니다!]엄청난 괴성과 함께, 고대종의 피어가 늪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콰콰콰콰콰콰!
물결이 요동치고 늪지 악어들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구름마저 갈라질 정도의 압도적인 위용 앞에 시간마저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당연히.
풍덩!
테슬론이 쏜 화살도 빗나갈 수밖에.
“어이쿠. 이렇게 미안할 데가 있나? 우리 고구마가 밥 때가 지나서 그런가 소리가 아주 우렁차네?”
진혁이 미안한 표정을 만면에 가득 띄운 채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고구마를 향해 검지를 세웠다.
“조심해야지. 지금 중요한 승부인데. 그러면 어떡하니? 너 때문에 지금 저기 기생오래비처럼 재수 없게 생긴 엘프가 이쪽을 노려보잖아?”
“모기…….”
고구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꼬리를 살포시 말은 모습에서 잘못했다는 감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이건, 용서해 줘야 한다.
암. 이 정도면 무죄고말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턴 조심하면 돼.”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켜보고 있던 테슬론이 고함을 질렀다.
“이, 이…… 빌어먹을 놈이! 이딴 비겁한 짓을 하려고 저 녀석을 꺼낸다는 거였나?”
“응원이라는 게 같은 팀을 북돋아 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상대를 압도하려는 목적도 있거든.”
“그, 그걸 말이라고! 나는 네놈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줬다.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되갚아? 네놈에겐 명예나 정정당당함이란 단어 따윈 없는 것이냐!”
“응 없어.”
“뭐?”
“미안하지만, 고귀한 엘프하고 다르게 난 치졸하고 능글맞은 인간 맞거든.”
사악하다. 얍삽하다. 더럽다. 다시는 같이 못 하겠다. 등등.
그 모든 것들이야 말로 고인물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다.
‘애초에 상대가 열 받아서 소리 지르다가 결국엔 포기하게 만드는 게 고인물이 고인물인 이유일 테니까.’
같은 의미에서 규칙의 허점을 찌르거나. 정정당당함 따위는 갖다 버리는 것 또한 고인물이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다소 억지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 억지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으면, 규칙을 세분화하든가?
“룰루랄라.”
진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어쨌든 승부에서 이겼으니 이제 곧 상태창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스킬 ‘백발백중(百發百中)(AA)’을 획득하셨습니다!] [백발백중(百發百中)]입수 난이도: AA
내용: 화살 및 투척 무기에 대한 이해도가 80%만큼 상승합니다. 특히 활의 경우 정신 집중을 5초간 할 경우 명중률을 10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단, 동(同)랭크 이상의 고유 능력이나 스킬이 개입할 경우 명중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복사 조건의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아무리 테슬론이 아니라고 박박 우겨도 시스템이 그렇다고 인정한 이상 목적은 모두 달성한 셈이다.
‘아니.’
아직은 아니지.
스킬은 손에 넣었지만, 아직 저 엘프 놈이 땅을 치는 장면을 보진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승리를 논하기엔 아직 2%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진혁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네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겠네. 이런 식으로 승부가 끝나서야 어디 밤에 잠이나 잘 수 있겠어?”
“그 말은…… 다시 승부를 해 주겠다는 건가?”
테슬론의 눈에 희망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대신, 이번에도 지면 내가 하는 말에 토씨 하나 달지 말고 무조건 복종해.”
“물론이다. 이번에도 치사한 짓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걱정하지 마. 고구마는 다시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 둘 테니까.”
“그렇다면. 네 말대로 하지.”
좋아.
분명, 네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진혁이 다시 한번 활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테슬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다시 더러운 수작만 부리지 않는다면, 내가 질 이유는 없다.’
궁술에 있어 상대는 초보 중의 초보.
정확한 컨트롤은커녕 그저 앞으로 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애송이다.
그래.
결과는 너무나 뻔히 정해져 있었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뭔가…… 이상한데?’
테슬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혁이 활을 잡는 폼이 변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자연스러운 동작과 호흡에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올 뻔했고.
시위를 당기는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킬 ‘혈마기’와 스킬 ‘백발백중(百發百中)’을 융합합니다.]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스킬 ‘적색마탄(赤色魔彈)(AAA)’을 획득하셨습니다!] [적색마탄(赤色魔彈)]입수 난이도: AAA
내용: 흑염을 이용한 극도의 파괴력과 소름 돋는 명중률을 자랑하는 스킬입니다. 2.5초간 집중 시 명중을 100%까지 올릴 수 있으며, 화살 및 투척 무기에 대한 이해도가 145%만큼 증가합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진혁 외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상태창.
그러나 테슬론은 직감했다.
방금, 눈앞에서 상대의 경지가 또다시 한 단계 상승했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스륵.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사라졌다.
적색 섬광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콰아아아앙!
표적이었던 나무가 송두리째 산산조각 나 버렸다.
***
지켜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늪지 무화과 나무는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나무.
때문에 마력을 잔뜩 실은 날붙이도 표면에 살짝 박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예 파괴해 버리다니.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궁술을 지녔는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화르르륵!
밑둥만 남은 나무 주위로 검붉은 흑염이 솟구쳤다.
“미,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인간이 저런 실력을 지니다니.”
“이 정도면 1계급 하이엘프들도 저 인간의 발끝도 못 따라갈 것 같은데……?”
궁술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고고하던 콧대는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꺾였다.
진혁은 느긋한 걸음으로 테슬론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대결 따위가 의미가 없다는 것쯤이야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터.
이걸로 승부는 정해졌다.
“가능하면 자존심을 좀 지켜 주고 싶었는데, 아득바득 기어올라서 가볍게 실력 좀 보여 줬어.”
“…….”
“너무 좌절하거나 하진 말고. 애초에 비교 대상을 잘못 선정한 것뿐이니까. 네가 아니라 누가 왔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
진혁이 슬슬 긁었다.
원래 가장 아플 때는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물론.
화룡점정은 여기에 벌칙까지 들먹였을 때고.
“아! 그리고 벌칙 말인데.”
진혁이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대망의 벌칙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