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고인물이 축제에서 우승하는 법 (1)
‘암혼일체’가 효력을 다하고 나서야 시야가 돌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혁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넝마로 변한 텐챠오는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으니까.
욱씬! 욱씬! 욱씬!
진혁이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역시 8식까지 쓰는 건 아직 무리인가.’
마지막 공대장이라는 생각에, 모처럼 높은 식(式)의 검까지 사용해 봤다.
위력 자체는 터무니없을 정도지만, 레벨과 숙련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경지였다.
이래서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아무리 내부가 뛰어나도 외부가 빈약하다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질 테니.
‘근육통이 장난 아니겠네. 심법으로 꼭 회복한 다음에 자야겠어.’
진혁이 몸을 추스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스킬 ‘천라지망(天羅地網)(BB)’을 획득하셨습니다!] [천라지망(天羅地網)]내용: 하늘과 땅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포위망을 일컫습니다. 천라지망은 지정한 목표의 위치를 10km까지 표시해 주며, 대상이 앞으로 나아갈 동선과 가능한 변수들을 통합해 최적의 루트를 예측해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 이 스킬은 함께하는 동료가 많을수록 효율이 올라갑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복사 조건의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천라지망.
추격에도 쓸 만하고 미행에도 톡톡히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스킬까지 손에 넣었다.
‘리커창의 능력까지 손에 넣지 못한 건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뽑아먹을 만큼 모았어.’
엘리스가 간 이상 시체조차 찾지 못할 테니 그쪽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진혁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실비아는 테슬론 쪽으로 합류시켜 뒀으니, 크게 문제없을 테고…….
나머지 레인저들도 익숙한 숲의 지형지물을 활용한다면, 중화 길드의 잔당들을 추격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래. 누가 뭐래도 이곳은 엘프들의 땅이었으니까.
공대장이 모두 쓰러진 현 시점에서 변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걸로 이 싸움은 끝났다.
***
중국 상하이.
중화 길드의 지부 중 하나가 있는 이곳엔, 현재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인해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소집 이유는 하나.
6층 엘프의 숲으로 갔던 공격대가 모조리 박살났기 때문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 열댓 명의 남녀가 테이블을 둘러싼 채 회의를 진행했다.
“S급 세 명과 500명으로 구성된 공격대가 전멸……했습니다. 소수의 살아남은 척후조가 정보를 보내오고 있긴 한데……. 아마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남자 한 명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에어컨의 온도를 잔뜩 낮춰 놨음에도 온몸에서 열이 올라오는 건 상황이 주는 압박감 때문일 거다.
“1계급 레인저라고 해 봤자 마력 수치 5천 이하의 수준이야. A급으로도 충분하다는 소리지. 헌데 대체 그놈들이 무슨 수로 세 명의 공대장들을 제압한 건데?”
이번엔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녀 역시 S급 판정을 받은 중화 길드의 주력 랭커 중 하나였지만.
동급의 플레이어들이 엘프 따위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척후조의 말을 들어보면, 강진혁이란 놈이 벌인 일이라더군. 그 왜, 한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랭커 말이야.”
“하…… 또 그놈이 문제였나.”
“젠장. 그래. 나도 그 녀석이 나오는 영상 봤어. 완전히 괴물이더라고. 이러니 실패를 하지.”
“대체 그 망할 자식은 왜 우리가 하는 일에 초를 치는 거야? 분명히 거기 갔던 놈들이 중화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했을 텐데, 그래도 계속 덤빈 거였어?”
강진혁이란 말에,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평소에 쌓여 있던 불평과 불만 그리고 시기심이 한 자리에 뒤섞였다.
바로 그때.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말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테이블의 중앙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인상.
190cm에 이르는 건장한 체구.
바로, 중화 길드의 2인자이자 길드 부마스터인 ‘랴오위’였다.
처음 브리핑을 하던 남자가 즉각 대답했다.
“텐챠오와 리커창, 쉬에화는 측정치 1만 초반대였습니다. 강하긴 했지만, 저희 길드 내에서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랭커들이죠.”
S급이라고 해서 다 같은 S급이 아니다.
아직 랭크의 체계화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마력과 그 외에 능력치들을 종합해 1만 이상이 된다면 모두 S급으로 뭉뚱그려 표기했다.
그렇다면…….
“저희 쪽에서도 상대와 비슷한 수준의 랭커들을 보내면 됩니다. 마력 측정치 2만 이상급. 다시 말해 메인 공격대의 공대장이나 집행부에 소속된 암살자들이라면, 제아무리 건방을 떠는 반도의 랭커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중화 길드가 괜히 세계 7대 길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게 아니다.
엄청난 인재를 보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엘프들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선에서 공격대를 꾸려 보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그에 걸맞은 실력자들을 재편성하면 그뿐이다.
다행이 남궁천이 지시한 일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정도 선이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랴오위가 재차 물었다.
“예. 마침, 제2 공격대가 미궁 레이드를 끝내고 복귀했으니 허락만 해 주시면 당장이라도 강진혁의 목을 따 올 수 있습니다.”
“2공격대라…….”
랴오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히 중화 길드 내에서도 합이 잘 맞기로 손꼽히는 2공격대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엘프들의 숲을 치기 위해 어중간하게 급조한 것과 달리, 이쪽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간판급 공격대였으니까.
‘제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설령 상대가 보스 몬스터에 육박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놈을 잡고 이 치욕을 씻을 차례였다.
그런데.
“쯧쯧. 여럿이 모여서 멍청한 말만 해 대는구나.”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회의장 중앙에 있는 탁자가 아닌, 조금 떨어진 곳.
그늘이 져 있는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움찔하고.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랴오위 역시 대단한 분위기를 뿜어냈지만, 지금 나타난 이 남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격이 다른 내공.
단순히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회의장 내부가 압도당했다.
“모용수…… 님…….”
[무림]에 소속된 모용세가의 장문인.유구한 세월을 통해 ‘무’와 ‘협’을 쌓아올린 오대세가의 일원 중 하나가 지금 탑 밖에 나타났다.
“그래. 내 원래 너희들의 일엔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가만히 내버려뒀다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서 말이지.”
뼈가 담긴 일갈.
랴오위는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제2 공격대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
부족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랴오위는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모용수가 틀릴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상대는 고작 한 명입니다! 중화 길드의 메인 2 공격대가 전부 가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일인데…… 그게 부족하다니.”
자존심이 다친 걸까?
상처 입은 들개들이 더욱 크게 짖었다.
모용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에 상대의 모습을 담은 기록이 있던 것 같은데, 그걸 보여 주거라. 다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영상이 재생됩니다.]곧바로, 텐챠오와 진혁이 싸우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꽤 먼 거리에서 찍은 거라, 화질이 그리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혈마진과 그걸 파훼하는 진혁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다.
“……제법이긴 하지만, 저건 저희 쪽 플레이어들의 실수 탓이 더욱 큽니다.”
“혈마진은 정교하기 보단 지나치게 패도적이고 무식한 진형에 가까우니까요.”
“쳇. 나도 저 정도쯤은…….”
객관적이기 보단 감정이 끼어 있는 평가가 이어졌다.
‘역시, 이 녀석들의 수준으론 보이지 않는 모양이로군.’
모용수의 눈빛이 이채가 맴돌았다.
강하다.
그저 압도적으로.
무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추혼검을 사용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것보다 모용수의 눈길을 끄는 건, 상대가 시전한 추혼검의 경지였다.
‘추혼검을 8식까지 쓰는 놈이 있을 줄이야.’
완성도와 위력 그리고 검에 대한 이해도까지.
보면서도 몇 번이고 탄성이 터지라는 걸 애써 참아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만약. 강진혁이란 남자가 보여 준 게 전부가 아니라면…….
만약, 추혼검의 9식을…… 아니, 그 이상의 식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모용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나도 힘들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탑 외에서 무림의 이름을 이을 후기지수를 잘못 골랐는지도 모른다.
남궁천이 아니라, 바로 저 남자를 선택해야 했을지도.
그리고 이 선택을 잘못한 걸 후회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모용수는 진심으로 절감하기 시작했다.
“남궁천에게는 내가 직접 말하도록 하지. 너희들은 이번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거라. 안 됐지만,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
시신을 수습하고 마을을 복구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어느새 진혁이 엘프의 숲에 온 지 약 3주가 지났다.
축제는 미뤄졌지만, 그사이 진혁은 꽤나 요긴하게 시간을 보냈다.
[Lv10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3성급 결계 ‘7중 장벽’이 발동됩니다!]스킬과 결계의 깔끔한 연계.
결계로 상대의 예상 퇴로를 봉쇄하면서 빙하조형을 통해 적을 제압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꺄아아악! 내 고귀한 다리와 날개가……! 차가워. 진짜로 얼어 죽을 것 같다고!”
허벅지까지 얼어붙은 엘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스킬을 연습하는 걸 도와주는 대가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고급 와인을 약속받았지만.
그 대가로 엘리스는 극한의 일일 알바를 체험해야만 했다.
으음.
그나저나 계속 시끄러운데 입까지 얼려야 하나?
“차가운 모기! 얼음 모기!”
옆에서 뛰어 놀던 고구마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외쳤다.
노란 눈을 동그랗게 뜬 고구마는 꼬리에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를 매달고도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젠 이것도 제법 익숙해졌어.’
가끔 엘프들을 도와주는 것 외엔 하루 종일 연습에 몰두했다.
조금 더 효과적인 조합을 찾기 위해.
조금 더 효율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덕분에 꽤나 재밌는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얼렁뚱땅 사냥이나 하거나 되도 않는 아이템들을 얻으며 90일을 보낼 테지만.
‘나는 달라.’
하루하루가 충실하게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두근!
그렇기에 기대됐다.
지금의 격차가 이후에 어떤 파급력을 낳게 될지.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보상과 기연들로 연결될지.
그 모든 게 말이다.
그렇게 진혁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으으…… 저…… 혹시 모닥불 같은 거 없을까?”
얼굴이 파랗게 질린 엘리스가 다가왔다.
“왜? 추워?”
“뭐? 하! 그럴 리가! 고귀한 밤의 귀족에게 이 정도쯤이야 선선한 수준에 불과하지! 나는 단지…… 이 군고구마 같이 생긴 파충류가 감기에 걸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그래.”
“흠.”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혹한기 훈련을 받는 이등병의 얼굴인데…….
진혁이 미심쩍은 얼굴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엘리스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더 이상 놀리면서 자존심을 건드렸다간 어떤 대참사가 날지 모른다.
“일단, 믿어줄게. 네 말마따나 우리 고구마. 감기 걸리면 안 되지.”
화르륵!
‘불의 원소’를 발동하자 금세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후우…….”
엘리스가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녹였다.
그런데.
“……저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있던 진혁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