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고인물이 축제에서 우승하는 법 (2)
울긋불긋한 문양이 돋보이는 버섯.
6층, ‘엘프의 숲’에서만 볼 수 있는 [산성 버섯]이었다.
‘호오. 하긴, 그러고 보니 이것도 여기 있었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산성 버섯은 이름 그대로 강산성의 독을 갖고 있는 버섯이다.
먹으면 그 즉시 입안부터 식도까지 통째로 녹아 버리는 죽음의 식재료란 뜻이다.
하지만 독이 있는 복어가 진미인 법.
산성 버섯도 제대로 조리할 경우 미식가들조차 눈물을 흘릴 정도의 식재료로 재탄생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손질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긴 해.’
아주 미세한 칼놀림 한 번으로도 버섯 전체가 상해 버리기 때문에 요리사가 갖고 있는 극한의 솜씨를 요구했다.
재밌네.
모처럼 도전 욕구가 타오를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진혁이 아주 천천히 버섯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반대쪽 숲에서 나온 실비아가 진혁을 찾았다.
“진혁 님! 저, 장로님께서 잠시 부르시는데…… 어라?”
진혁이 버섯을 채취하는 걸 본 실비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거, 혹시 드시려는 건가요?”
“예. 한번 먹어 볼까 해서요.”
“아. 잘 모르셔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거 산성 버섯이라고 못 먹는 거나 마찬가지인 버섯이에요. 조리법이 몇 백 년 전에 소실된 상태라 저희들도 이 버섯만큼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고요.”
실비아가 생긋 웃었다.
처음으로 진혁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알려 줬다는 사실이 꽤나 기쁘게 다가온 모양이다.
그 기대감을 처참하게 밟아 줘야 하는 입장에선 살짝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말을 들은 이상 물러설 순 없다.
“그럼, 제가 한번 도전해 봐야겠네요.”
“네? 서, 설마…….”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고인물의 특제 버섯 요리.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증거 따윈 없죠.”
안 그래도 오늘 밤 미뤄 왔던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펜하임 장로가 자신을 찾는 것도 그것과 연관된 이유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번 축제에 사용할 요리의 테마가 지금 정해졌다.
***
별이 가득 수놓아진 밤하늘.
동료를 잃고 마을이 불타 버린 애도의 시간을 넘어.
마침내 엘프의 축제가 개최되었다.
‘진짜 끝내주긴 하네.’
진혁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숲을 거닐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유성우와 풀숲을 사이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환상적인 광경을 자아냈다.
물론, 그 중에서 화룡점정은 신비로운 정령들과 한껏 멋을 낸 엘프들이었다.
[불의 정령 ‘살라맨더’가 작은 불을 뿜습니다.] [물의 정령 ‘운디네’가 깜짝 놀라 물로 진화에 나섭니다.]탑의 저층에선 볼 수 없는 물과 불의 정령들이 무화과 열매를 두 손에 꼭 쥔 채 뛰어놀았고.
엘프들도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향기로운 음료를 마시며, 축제를 한껏 즐겼다.
때마침.
띠링!
진혁의 앞에도 푸른색 상태창이 점멸했다.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였습니다.] [시련의 탑 HOT 이슈 영상에 올릴 경우 최상위 배너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시스템도 인정한 것이다.
이 장면이라면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하긴, 이곳이 아니면 이런 장관을 대체 어디서 볼 수 있단 말인가?
모두의 안구 정화를 위해서라도 이 영상은 길이길이 보존해 둬야 한다.
“그래. 지금부터 영상 촬영 들어갈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시스템을 활성화하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저장되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이 영상이 올라간다면, 시련의 탑의 이색 장소를 소개하며 조회 수를 올리는 플레이어들을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게 될 거다.
“진혁 님! 여기예요!”
“크흠! 큼! 우리 왔어.”
“모기!”
다양한 목소리가 진혁을 불렀다.
실비아와 엘리스 그리고 고구마였다.
이번 축제를 위해 꽤나 공을 들였는지 모두 복장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실비아는 하늘거리는 반투명한 엘프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금색 단발머리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반면, 엘리스는 어두운 계열의 근사한 드레스 차림을 선택했다.
고고한 품격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화려한 보석까지 치장한 게 아주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한 모양이다.
실제로 둘은 이번 축제를 위해 장장 3시간을 투자해 영혼까지 갈고닦은 상태였다.
그러나.
“쯧쯧. 그런 거 할 시간에 화살을 한 번 더 쏘고 블러드 스피어를 날리는 연습이나 해. 뭣보다 그런 복장으로 상대가 겁을 먹기는 하겠냐?”
진혁의 반응은 냉담했다.
마치, 철벽과 같다.
“아니, 이걸 보고도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이 드레스 이거. 예전에 드워프 놈들 잡아다가 1년간 만들게 시킨 거라고! 보통은 보자마자 칭찬하기 바쁜데!”
엘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뾰족한 말투에 시퍼런 날이 서렸다.
“아니지. 모름지기 복장이라면…….”
재빨리 주위를 훑던 진혁이 누군가를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저 봐! 저기!”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나라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표정을 지닌 테슬론이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뽐내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테슬론은 여전히 내기에서 진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진혁이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얼마나 실용적이고 적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복장이야?”
붉은 콧수염과 핑크 드레스에 마법 방망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고인물의 룩이다.
‘적어도 3배는 강해 보이는군.’
솔직히 저런 녀석과 필드에서 마주친다면,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후우. 진혁 님…….”
“됐다.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가 잘못했어. 기대할 걸 기대했어야지.”
실비아와 엘리스가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 눈치 없는 모기!”
고구마도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진혁은 뿌듯한 얼굴로 테슬론의 복장을 감상했다.
역시.
‘내 눈을 틀리지 않았어.’
저것이야말로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도 유연하게 전투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옷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크흠! 큼!”
장로들 사이에 있던 펜하임이 목을 가다듬었다.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원래라면 바로 음악회를 개최해야 하지만, 그전에 이 늙은이가 주제넘게 한 마디만 하고 넘어가겠네.”
잠시 뜸을 들인 펜하임이 좌중을 내려다봤다.
“다들 알고 있을 걸세. 3주 전, 탑 밖에 있는 인간들이 마을을 침입했고 많은 동료와 소중한 숲의 일부를 잃은 사건을 말이야.”
“……후우.”
“크윽…….”
“…….”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소중한 것들을 잃고 괴로워하던 기억을 쉽사리 떨쳐내기 힘든 탓이었다.
물론, 그 상처를 후벼 파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펜하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바로 여기. 강진혁 님 덕분에 마을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 우리가 이곳에서 먼저 보낸 이들을 애도할 수 있었던 것도. 내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모두 저 은인 덕분이네.”
고마움과 감사. 그리고 그걸 넘어 한 종족의 존폐를 이어가게 해 줬다는 사실에 분위기는 또다시 반전되었다.
모두가 형언할 수 없는 시선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꾸벅!
꾸벅…….
진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한쪽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모습.
수천 명의 엘프들이 동시에 예를 표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진귀한 풍경을 자아냈다.
심지어 정령들마저 엘프들의 숲을 보호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작은 불꽃과 소량의 물방울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드러졌고 바람은 부드럽게 진혁을 감싸 안았다.
“으음. 이건 또 엄청나게 부담스러운데.”
진혁이 과도한 관심과 예절에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부담 가질 필요 없으세요. 모두 진심으로 진혁 님에게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실비아 또한 생긋 웃었다.
“맞아. 당당하게 받아들여. 내 계약자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니까.”
당연하다는 말투와 달리 엘리스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의 계약자가 모두에게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즐거워 보이는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늙은이가. 이 마을이. 그리고 저희 종족이. 앞으로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펜하임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
짧은 연설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자, 여지저기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그때.
“어떠냐? 이게 엘프들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예술이지.”
어느새 다가온 테슬론이 잔뜩 거드름을 피웠다.
흠.
“그 복장을 해갖고 무게 잡아 봐야 전혀 공감이 안 가는데.”
핑크빛 게이 왕자가 요술봉을 들고 나타나다니.
어우야. 너무너무 근엄하고 웅장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지경이다.
“크윽! 이 자식이……!”
“즐거운 날에 너무 열 내지 말고. 나도 너희 음악이 훌륭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호오. 그래도 귀가 장식으로 달려 있는 건 아닌가 보구나.”
“뭐, 청각이 좋다는 말, 많이 듣는 편이긴 해. 그리고 이 정도 음악이면 그 누가 온다고 해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거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말은 진심이다.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너도 연주회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만. 그게 사실이냐?”
“참가는 누구나 자유라고 들었거든. 기왕 이곳에 온 거 한 번 체험이나 해 볼까 해서.”
“푸하하! 체험이라…… 거 좋지. 수준 차이에 절망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긴 하니까. 허나, 한 가지는 명심해라. 네 녀석의 전투 실력에 관해선 인정하는 바이나 이쪽은 전혀 다른 세계라는 걸.”
테슬론이 광소를 터뜨렸다.
이 녀석도 성격 한번 이상하다.
다른 거에서 다 지니까 어떻게든 이 분야에서만이라도 이기고 싶다는…… 그런 초등학생의 징징거리는 집념이 느껴진달까?
하여간 비뚤어진 자존심을 갖고 있는 놈이 이래서 비정상적이라는 말을 듣는 거다.
물론.
‘비뚤어진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욱 상대를 나락으로 던져 버리고 싶다.
그래.
핑크드레스에 요술봉은 살짝 약하긴 했지.
그 정도 룩이면 고인물 중에서도 최약체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고. 만약 내가 우승한다면…….”
“우승? 네가 말이냐?”
“말 끊지 말고 들어. 내가 우승하지 못하면 지금 그 옷. 그 즉시 벗게 해 줄 테니까.”
“……좋다. 어디 한번 말해 봐라.”
“실패했을 때의 조건이야 방금 들었을 테고. 대신, 내가 우승하면 네 복장에 고양이 귀랑 꼬리 그리고 폭신폭신한 토끼털 신발을 추가할 거야.”
“지, 지금 그게 무슨 개소리냐! 지금 입고 있는 것도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은데, 그딴 걸 또 왜 입어!”
콰앙!
테슬론이 발로 지면을 내리쳤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응? 설마, 인간 따위한테 질까 봐 그래?”
“그건 아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됐네. 어차피 네 쪽이 이길 텐데, 뭐가 걱정이야?”
“이이익! 그래 좋다! 엘프와 인간의 수준 차이가 어떤지 제대로 느끼도록 해 주지!”
테슬론이 또다시 미끼를 덥석 물었다.
이거야 뭐. 식은 죽 먹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녀석 같으면 사기꾼들이 강남에 빌딩으로 부루마블을 할 텐데…….
“분명 약속한 거다?”
“엘프는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역시, 고귀한 종족답네.”
피식 웃은 진혁이 몸을 돌렸다.
납작한 언덕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여러 가지 악기들이 보였다.
고를 건 하나다.
[데카르탄]엘프 전용 악기로 바이올린과 흡사하게 생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이올린보다는 훨씬 다루기 까다로운 녀석이다.
‘과거에는 여기서 엄청난 실수를 했지.’
리코더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불킥을 3만 번 정도는 더 하고 싶은 흑역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르고말고.’
진혁이 천천히 마력을 끌어 모았다.
그러자 그 순간.
[Lv3 ‘천상의 선율’이 발동됩니다.]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손끝을 타고 악기에까지 이어졌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