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고인물이 축제에서 우승하는 법 (3)
공기가 변했다.
아니, 바뀐 건 공기만이 아니었다.
“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이럴…… 수가.”
피부에 솜털이 쭈뼛쭈뼛 일어났고.
닫혀 있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타이타닉 – My Heart Will Go On]과거엔 리코더를 입에 물고 음정 박자를 모두 무시한 채 연주했었다.
물론,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스킬 ‘천상의 선율’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기억까지 재현할 수 있었으니까.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모두의 눈앞으로 거대한 대양(大洋)이 펼쳐졌다.
[Every night in my dreams…….]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살기를 원했던 남자가 있었다.
새장 안에 갇혀 스스로의 운명을 한탄하며 죽기를 원했던 여자가 있었다.
이 노래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I see you. I feel you…….]남자는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남자를 만났다.
둘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났다.
[Love was when I loved you…….]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곡이 계속해서 연주되었다.
애절한 운율이 숲을 따라 울려 퍼졌다.
숨소리마저 멈춰 버린 고요함 속에서.
진혁은 노래의 절정을 향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악기에 있는 현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Once more, you open the door……!]이중에서 그 누구도 영화를 본 이는 없다.
당연한 말이다.
이건 탑 밖에 속해 있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이곳에 있는 모든 엘프들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답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기에, 전신은 전율에 잠겼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 따위가…….”
테슬론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데카르탄]은 엘프들조차 다루기 어렵기로 소문이 난 악기다.49가닥의 현은 모두 각기 다른 마력에 반응했고 악기의 기울기에 따라 낼 수 있는 음색 또한 달라졌다.
그런데, 저토록 현란한 연주라니.
보면서도 믿기 힘든 손놀림이었다.
‘아니, 단순히 손만 대단한 게 아니야.’
악기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에 대한 이해도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 지경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색 하나 안 하겠다고 다짐한 테슬론이었지만…….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음악이라는 분야에서조차 격이 다른 괴물이라는 걸 말이다.
동시에.
‘빌어먹을…….’
머릿속에선 고양이 귀와 꼬리 그리고 토끼 신발까지 신은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두 번 다시 저 녀석과 내기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 또한 함께.
***
5분짜리 연주가 끝났지만,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다들 여운에 잠겨 있던 탓이었다.
짝!
“와……아아아!”
첫 번째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진 건 그로부터 몇 분이나 흐른 뒤였다.
“지, 지금 들었어?”
“여태까지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곡은 처음이야.”
“살아 있길 잘한 것 같아…….”
엘프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의 정령 ‘살라맨더’가 작은 불을 쏘아 올립니다.] [물의 정령 ‘운디네’가 물방울을 꿀꺽 삼킵니다.]감탄한 건 정령들도 마찬가지였다.
‘후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지난번에 왔을 땐 모두의 귀를 더럽힌 죄로 영구 추방까지 당했으나.
이번에는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었다.
‘근데 진짜 리코더가 그렇게 심각했나?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았는데…….’
모르겠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도전해 봐야지.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박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뭐, 이대로 엘프들의 갈채와 환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전에 저기서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테슬론을 놀리는 게 우선이다.
“유치원 때 이후로 간만에 한 거라 손이 좀 굳었는데, 그래도 그럭저럭 들을 만하지 않았습니까?”
일부러 존칭까지 섞어 가며 이죽거렸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반말로 깎아내리는 것보단 이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예? 저기…… 대답 좀 해 주시죠? 저기요? 똑똑!”
“…….”
테슬론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욕을 한 바가지라도 내뱉고 싶은 듯, 입술을 꿈틀댔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오히려 말을 해 봤자 손해라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승복한 걸로 알겠습니다. 여기, 추가 코스튬이니 축제 기간 내내 착용 부탁드려요.”
진혁이 생긋 웃은 뒤, 아공간 인벤토리에 고이 간직했던 추가 액세서리를 꺼냈다.
“……내가 잘못했다. 이것만큼은 봐주면 안 되겠나?”
“예? 하하. 설마. 위대한 종족이 한 입 갖고 두 말을 하겠다. 이런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요.”
“……부탁이다. 제발…….”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아니, 보는 눈만 없었다면 이미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진혁이 천천히 테슬론의 귀를 향해 고개를 뻗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네가 나였으면 봐줬을까?”
“……그, 그건!”
“그래. 내 대답이 바로 그거야. 그러니 입어. 그리고 누가 그런 말을 했어. 포기하면 편하다고. 정 힘들면 그 말을 곱씹어 봐.”
죽으면 죽었지, 봐준다는 선택지는 없다.
협상이나 타협 따위도 없고.
애초에 전쟁이란 둘 중에 하나가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까지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다시는 기어오를 생각을 못하거든.
“허허. 이번에도 저희 레인저 대장이 한 방 먹었나 보군요. 좀 살살해 주십시오. 아무리 혈기 있게 나선들 진혁님 상대가 되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펜하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볍게 장난 좀 친 거였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데요. 그렇지?”
“…….”
진혁이 테슬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웃자. 응? 좀 웃어.
“그보다 어쩐 일이신가요?”
“제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진혁 님께서 연주회에서 우승을 하셨으니. 그에 따른 상품을 드릴까 해서입니다.”
“오. 상품이라면 어떤?”
“통상적으로 악기 중에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악기라…….
엘프의 악기는 나름대로 희소성이 있으니 확실히 나쁜 상품은 아니다.
팔아도 좋고, 분위기 있는 자리에서 사용하면 단숨에 호감도가 올라가는 특성이 있었다.
“일단, 한번 보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흠.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죠.”
***
펜하임을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동굴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무기를 갖고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철컹!
쿵!
입구를 지키는 경비들이 들고 있던 창을 교차했다.
그래도 보물 창고라고 어느 정도 경계는 하는 건가.
“이 사람들이! 이분은 마을을 구해 준 은인일세!”
“아뇨, 괜찮습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을 따라야죠.”
어깨를 으쓱한 진혁이 갖고 있던 단검과 쌍룡검을 건넸다.
아무리 형식적인 절차라도 엘프들의 땅에 온 이상 그들의 관습을 존중해 주는 게 예의였다.
괜히 시끄럽게 실랑이를 부리고 싶지도 않았고.
잠시 뒤, 몇 번의 검문을 더 통과하자 동굴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엘프들이 모아 온 온갖 종류의 보물들이 보관된 장소.
그 이름에 걸맞게 내부는 진귀한 아이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기!”
고구마가 호박색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마음에 드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싶었다.
놀란 건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굉장하긴 하네요.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별 말씀을. 아! 이쪽으로 오시죠. 악기는 여기에 보관해 뒀습니다.”
펜하임이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악기들을 가리켰다.
조금 전 연주했던 데카르탄부터 하프와 피아노를 닮은 악기들까지.
장인의 솜씨로 만든 악기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어느 걸 골라도 후회 따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악기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꽂혀 있었다.
‘호오.’
입에서 흘러나온 감탄사엔 진심이 배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고문헌에서 봤던 성유물, ‘펜타그리스의 어금니’와 ‘펜타그리스의 송곳니’.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환수종 펜타그리스는 탑의 모든 층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물이다.
진혁조차 딱 한 번, 먼발치에서 녀석을 본 게 전부였으니…….
이 녀석과 관련된 성유물을 발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설마, 이걸 노리고 중화에서 엘프들의 마을을 노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진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고작 중화나 무림 따위가 알고 있을 확률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화려하긴 하네.’
어금니는 약 1.5m에 이르는 장궁(長弓)으로, 화살 없이도 마력을 구현화해 쏠 수 있게 해 주는 효과를 지녔다.
거기에 사거리와 위력 역시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어, 탑의 중반까진 견줄 적수 또한 없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상급 성유물이라는 뜻이다.
‘송곳니 쪽도 굉장하지.’
진혁의 시선이 조금 더 오른쪽으로 향했다.
약 38cm 길이의 단검.
특이하게도 흑요석처럼 까만 표면을 갖고 있지만, 검신만은 은은한 초록빛을 띤 형태였다.
무게도 가볍고 균형감도 뛰어나 성유물 중에서도 4번째인 [초록색] 등급에 해당했다.
꿀꺽!
목을 타고 군침이 넘어갔다.
……탐난다.
지금 쓰고 있는 10강짜리 단검도 나쁜 건 아니었으나, 슬슬 그 이상의 무기가 필요했다.
위로 갈수록 더 강하고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이 튀어나올 테니까.
“악기 대신 이쪽은 어떻게 안 될까요?”
“흐음. 죄송하지만, 그 무기들은 저희들이 상처 입은 환수를 치료해 드리고 받은 성유물입니다. 마을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것만큼은 함부로 드릴 수 없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이 정도 되는 물건을 상품으로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데카르탄을 받겠습니다. 아까 사용해 보니 저한테 딱 맞더라고요.”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저 역시 진혁 님의 연주를 들은 뒤, 이 악기만큼 진혁 님께 걸맞은 건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펜하임이 활짝 웃으며, 악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장로 ‘펜하임’ 인식 완료.] [봉인이 해제됩니다.]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나 방범용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
‘2성급 정도군.’
찰나의 순간, 결계의 구조와 마력의 흐름까지 모두 파악이 끝났다.
***
30여분이 흐르고.
동굴에서 나온 진혁은 펜하임과 헤어졌다.
펜하임은 축제를 마저 즐기라고 당부한 뒤 떠났고 진혁은 고구마와 함께 오솔길을 따라 숲속을 거닐었다.
바로 그때였다.
“모기!”
“응?”
“베에에.”
고구마가 입 속에 감춰 뒀던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굴 안에 보관되어 있던 성유물, 펜타그리스의 송곳니였다. 게다가 어떻게 숨겨 왔는지 배 아래엔 장궁인 어금니까지 보였다.
“어허! 그걸 막 함부로 가지고 나오면 어떡해?”
진혁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손가락을 고구마의 입가에 갖다 댔다.
절도라니!
아니 진심으로.
남의 것을 허락 없이 갖고 나오는 건 정말로 나쁜 행위다.
“모기…….”
고구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반성한다는 뜻이겠지.
“뭐? 마을을 구해 줬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라고?”
“모기?”
“흐음. 하긴. 동굴 안에서 썩는 것보단 내가 요긴하게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모기!?!?”
고구마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소리쳤지만, 진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후우. 하는 수 없지. 정말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돌려줬다간 우리 귀여운 고구마가 혼날 수도 있으니. 정말로. 그런 생각은 1mg도 없었지만, 이건 둘 만의 비밀로 간직해야겠구나.”
그래.
이건 모두 고구마가 한 잘못을 덮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다.
진혁이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보는 눈은 없었다.
엘프들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활과 단검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