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고인물 코퍼레이션 주주총회 (1)
“하아암…….”
“젠장. 더럽게 졸립군.”
성당 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마인들이 길게 하품을 했다.
따분한 것이다.
이곳은 워낙 함정이 많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보니, 플레이어들의 출입이 전무했으니까.
무엇보다 탑의 상층부가 연이어 개방되자, 대형 길드들은 4층이나 5층에 있는 미확인 던전과 미궁들을 탐험하는 데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츠츠…….
어둠 속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일어났다.
누군가 온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보통이라면 그 많은 함정들을 아무런 소음 없이 모조리 돌파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했다.
하지만, 몇 주째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경비들은 그 사실을 간과해버리고 말았다.
“호오. 모처럼 손님이 왔군.”
“당장 튀어나와라. 어설프게 마력 숨겨 봤자 다 찾아낼 수 있으니까!”
스릉!
철컹!
마인들이 즉각 병장기를 뽑았다.
예리한 검이 앞으로 향했다.
“후후. 충실한 병졸들이네.”
“멍청한 거겠지. 주제도 모르고 이빨을 드러냈으니.”
긴 은발과 붉은 눈동자를 지닌 여자와 남자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견의 두 사람이었지만, 풍기는 기운은 냉랭하다 못해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남자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자신들에게 검을 겨눈 게 꽤나 심기를 거스른 듯싶었다.
“대화는 건너뛰게?”
“밑에 것들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차가운 말과 함께 허리에 찬 레이피어가 뽑혔다.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검신으로부터 검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하긴. 적당히 죽이다 보면 책임자가 튀어나오겠지 뭐.”
여자도 어깨를 으쓱할 뿐 말리지 않았다.
“이 망할 잡것들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숫자 차이 안 보여?”
“당장 팔 하나씩 자른 다음에, 돼지처럼 우리 안에 가둬 주마!”
“실수로라도 죽이진 마. 저 두 녀석, 살려 달라고 질질 짜는 꼴을 반드시 보고 말 테니까.”
스물에 이르는 마인들이 욕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허나.
허공을 가른 궤적 중 그 어느 것도 은발의 남자에게 닿지 못했다.
오히려 한 박자 늦게 번뜩인 검광에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졌다.
푹! 푸욱! 퍼억!
들린 거라곤 섬뜩한 파육음뿐.
단순히 ‘찌른다’는 행위만으로도 마인들의 심장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바람구멍이 생겼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끄……으으…….”
“이럴…….”
“쿨럭!”
반응하기는커녕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빠르고 정확한 공격이었다.
스무 명의 마인들이 하나둘 제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남자가 검에 묻은 피를 혀끝으로 살짝 핥았다. 그 향과 맛을 음미하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퉤!
“천박한 인간들답게 피도 싸구려군.”
“이런 녀석들이라도 가축보단 낫지만, 진짜 맛있는 피를 가진 인간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니까?”
두 사람이 요리 품평회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이런 실례를…….”
스르륵…….
“변변찮은 식사를 대접하게 돼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호센벨트가 나타났다.
“호오. 그림자 전이라……?”
“제법 쓸 만하군. 보아하니 네가 이곳의 책임자인가 보구나.”
살짝 놀랐다는 듯 붉은 동공이 흔들렸다.
이토록 기척 없이 전이 스킬을 사용하는 자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뭐, 그런 셈이라고 할 수 있죠. 한데, 밤의 귀족들이 이런 낮은 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고작 두 분이서 저희에게 싸움을 거시려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만…….”
호센벨트가 싱긋 웃었다.
상대가 탑에 있는 최강의 종족 중 하나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다.
여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오만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들은 호센벨트의 태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끌어올렸던 살기를 흩어 버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대처.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여기 있는 두 명의 혈족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애완견들이 아닌, 실력 있는 사냥개를 원했던 거였으니까.
“싸울 의사는 없는 걸로 받아들이죠.”
호센벨트 또한 은연중에 모았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팽팽했던 분위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러자 혈족들이 입을 열었다.
“우린 아뮬람 님을 모시는 데카서스 가(家)의 혈족들이다.”
“이 아래까지 내려온 건 1층 유적에 갇혀 있던 죄수가 탈옥했기 때문이지.”
이곳에 온 목적을 언급한다.
그리고.
“……얼핏 듣기론 성물을 모은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11층에 있는 성물을 말이야.”
“아. 너무 경계하진 마. 너희 교단의 성물 같은 거에 관심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를 돕는다면, 너희가 원하는 걸 얻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러 온 거야.”
두 혈족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약속했다.
호센벨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거 재밌는 말씀이로군요.”
***
6층이 개방된 후 90일이 흘렀고, 마침내 7층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주)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오니 해당되시는 사원분들은 모두 14:00까지 시련의 탑 1층 ‘달의 호수’ 뒤편에 있는 ‘거북 바위’ 밑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못 본 척할 경우 직접 찾아갈 예정이며, 감히 읽씹을 할 경우엔…… 글쎄요. 오늘부터 밤길을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후후.]정중하고 예의 넘치는 안내 메시지가 전송됐다.
대상은 ‘염혼의 낙인’이 찍힌 채 노예가 되었거나 혹은 진혁에게 크게 도움을 얻는 자들이다.
그렇게 6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공지되었던 오후 2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달의 호수 뒤편에 있는 거북 바위엔 여러 명의 남녀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진혁이 손을 넓게 벌려 환영했다.
“다들, 늦지 않게 와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일이 찾아가는 수고는 덜었네요!”
1초라도 늦었다간, 그에 걸맞은 벌을 주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모두가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정말로 아쉽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무진 벌칙들을 생각해 뒀건만, 사용하지 못 하게 되었으니까.
“무슨 노예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동안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가장 앞에 있던 멜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악명 높은 마인 중 하나였지만, 진혁에게 당한 플레이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짠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남녀노소.
참 다양하게도 모였다.
“아. 여러분은 서로를 잘 모르시겠네요. 간단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테니, 이참에 친해지는 기회를 좀 갖도록 하죠.”
진혁이 눈앞에 상태창을 띄웠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주주들의 프로필이 하나둘씩 허공에 나타났다.
초기 사원인 박하나는 검은 까마귀 길드의 몰락 이후, 탑의 등반을 포기했으니 논외.
각성 테스트 결과를 속이는 데 일조했던 각성자 협회의 말단 직원 호태식이 노예 2호…… 아니, 주주 2호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각성자 협회 인사과에 있는 호태식 대리라고 합니다.”
호태식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그 옆에 있는 한 쌍의 남녀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부터 인연이 있던 민정우와 이유리는 낙인을 새기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협조해 주기로 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식은땀을 흘렸지만, 협박을 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본인들이 원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이곳에 오고 싶어 했으니까.
‘참…… 고마운 사람들이지.’
요즘 같이 삭막한 시대에 어디 가서 보기 힘든 인재들이었다.
그동안 착실하게 성장도 해 뒀으니, 적당한 곳에 써먹을 데가 있을 거다.
“후우. 그놈의 대동여지도가 뭔지. 자네한텐 아주 단단히 걸렸군.”
“투탕카멘 가면에다 체스말까지 밤새 가며 만들어 줬는데, 제발 이제 그만 우리 좀 놔주면 안 돼?”
두 사람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물론이죠. 저희 사내 정책상 원한다면 퇴사도 가능합니다.”
“저, 정말인가?”
“할래! 퇴사할래! 퇴사하게 해 줘, 제발……!”
음.
그렇게 간절하게 말한다면야.
“사망 시 약간의 위로금과 함께 가능한데, 어떻게. 지금 처리해 드릴까요?”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새로 얻은 송곳니를 꺼냈다.
검신이 초록빛으로 물든 단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아닐세. 요즘 재취업도 힘든데, 정년을 늘려 준다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나, 나도. 애사심을 갖고 열심히 일할게!”
“감사합니다. 더 이상 퇴직 희망자가 없으면 소개를 이어갈까 하는데요. 혹시나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부담 갖지 마시고 지금 편하게 말씀 부탁드려요.”
바쁘니까 질질 끌지 말고.
불만 있으면 어서 말해라.
“…….”
“…….”
당연한 말이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
“세 번째 주주는 이 친구입니다. 현재 검은 까마귀 길드의 마스터 직을 맡고 있죠.”
“김희웅이라고 합니다. 대표님 덕분에 과분하게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됐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수하게 진혁을 따르고 싶었기에, 김희웅으로선 이 자리가 꽤나 반가웠다.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라는 유대감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네 번째 주주의 소개가 이어지자…….
앞선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네 번째는 마인 협회에서 활약 중이신 멜레나 씨입니다.”
마인 협회.
인류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마……인 협회라고요?”
“저 여자가 그 일원이란 말인가.”
“대, 대표님?”
모두가 긴장한 것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멜레나는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번엔 제 차례인 것 같군요. 저는 일본…… 사무라이 길드에 속해 있는 타케시라고 합니다. 진혁 님과…… 후우. 죄송합니다. 지, 진혁 님과 함께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혁을 신격 중 하나로 알고 있던 타케시 역시 이 자리가 황송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에 겨웠는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회색 신전에서 뻥을 너무 세게 치긴 했나보다.
나중에 평범한 인간이라고 했다간, 실성할지도 모르겠는데 저 친구는?
‘내가 너무 심했나?’
진혁이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사 주든가 하면 되지 뭐.’
그래.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쓰디쓴 소주 한 잔 털어 마시고 잊어버리며 사는 거다.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조금 좌절한다고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자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주주를 소개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진혁의 말에, 단발머리 소녀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5층을 맡고 있는 안드리아라고 해요.”
무언가 소개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천천히 단어를 곱씹던 멜레나가 즉각 되물었다.
“5층을 맡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이긴.
“5층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란 거지. 정신병동 관리하느라 바쁘긴 했을 텐데, 어렵게 먼 길을 오게 했어.”
진혁이 안드리아에 관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태연한 말투였으나, 그에 대한 반응은 격렬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허…… 허헉!”
“보, 보스 몬스터가 여기 왜 있어요!”
“마, 말도 안 돼.”
이번엔 다들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거리를 크게 벌렸다.
심지어 무기를 붙잡은 채 숨을 헐떡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쩐지 뭔가 마력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 현기증 나. 정우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
“허허. 미안하네. 나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구만.”
마인 협회라는 말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놀라긴 했지만 허용 범위 이내였다.
워낙에 진혁이 제정신이 아닌 고인물이다 보니 어지간해선 그러려니 한 것이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라니.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말이지 않은가?
조금씩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 가지 생각만은 공통됐다.
대체 세상에 뭐 이딴 회사가 다 있어?……라고.
“이걸로 간단하게 소개는 끝난 것 같군요.”
진혁이 짝 하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사외 이사인 엘리스와 고구마 그리고 천유성과 유연화와 이태민 등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지금부터 대망의 주주총회를 시작해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