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고인물 코퍼레이션 주주총회 (2)
“말을 거창하게 하긴 했는데, 주주총회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동안 탑에 있으면서 알고 있는 정보. 각자가 소속된 곳의 동향 등을 저에게 보고하면 됩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충성을 맹세하거나 ‘염혼의 낙인’을 통해 강제로 복종된 상태였으나. 면담은 개별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서로 간에 정보의 벽을 쌓아 두는 게 앞으로도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뭣보다 사원들끼리 너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지.’
배와 등이 따시면 딴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의 복지가 어떻다든가.
옆에 있는 직원들의 연봉이 어떻다든가.
기타 등등.
아주 괘씸하고 고약한 뒷이야기들이 오고갈 위험성이 있었다.
그 모든 걸 예방하기 위해서는 각자를 철저하게 고립시켜 버리면 된다.
네가 가장 유능하다고. 너희 중에서 가장 쓸모 있다고 믿게 만든다면,
그리고 상대를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완벽하게 통제된 밀고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후후.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그걸 우려서 13번 정도 더 먹은 뒤, 뼈는 고구마 간식으로 넘겨줘야지.’
숨을 쉬는 한 아주 철저하게 굴릴 생각이었다.
세종대왕이 황희정승을 부려먹듯이.
***
진혁이 바위 아래로 가서 적당한 자리를 만들었다.
의자 대신 쓸 넓적한 돌 두 개.
주위에 있는 풀을 대충 뜯어 우려낸 차 두 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암, 이 정도면 오성전자 주주총회 부럽지 않을 호화로운 접대지.
[2성급 결계 ‘차원단절(次元斷絶)’이 발동됩니다!]시야는 물론, 소리까지 차단하여 격리된 세계가 펼쳐졌다.
잠시 후, 첫 번째 타자인 호태식이 들어왔다.
면접을 보러 온 듯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시시콜콜한 가십거리는 관심 없으니까 굵직한 것만 말해 보세요. 각성자 협회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죠?”
“어, 얼마 전에 한상진 협회장님이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진혁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 아저씨가 생일인 게 뭐 어쩌라는 걸까? 뭐 생일빵이라도 시원하게 해 드리라고?
“끝이에요?”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이건 최근에 나온 알짜 정보인데…… 사실 이번에 시련의 탑이 등장한 것으로 인해 강남 서초 일대 집값이 대폭 상승할 전망입니다. 전국의 플레이어들이 몰리는 터라 부동산 수요가 폭발적인 수준이거든요. 원하신다면, 재건축이 풀리는 지역을 미리…… 헤헤.”
얼씨구.
이건 갈수록 가관이다.
이젠 하다하다가 공직자란 놈이 부동산 투기를 하라고 내부 정보를 푸네?
조만간 세무 조사 한번 시원하게 받아 보라 이런 뜻인가?
“으음. 별로 양질의 정보는 없네요. 아무래도 우리 태식 대리님. 조만간 퇴사하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회사가 휘청거려서 말이지.
쓸데없는 인원은 대폭 감축할 생각이다.
그러자 호태식의 목소리 톤이 대번에 달라졌다.
“자, 잠깐만요! 7층!”
“7층이요?”
“예……예! 이번에 단군 길드 제2 공격대를 이끄는 장은석 플레이어가 7층을 공략 중인데, 워낙 강한 추위 때문에 진전이 더디다고 했습니다. 그 뭐냐? 무슨 깃털을 얻으면, 추위에 저항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깃털이라면…… 설마?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오.
이제야 좀 쓸 만한 정보가 튀어 나왔다.
‘불사조의 깃털을 얻어 7층의 추위에 대비할 생각인 거군.’
화염의 가호로 인해 체온을 올려 주는 깃털이라면, 혹한에서도 공격대가 원활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을 터.
단군 길드는 그걸 노리고 7층의 북단으로 향한 것이다.
‘한국 최강이라는 길드답게 7층 공략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있나 보네.’
게다가 장은석이라면…… 한 번 봤던 적이 있다.
한창 4층에 관해서 아나운서와 토론을 하던 플레이어.
‘내가 갑작스럽게 좀비 웨이브를 발동시켜 놀라게 했던 그놈이지.’
많은 랭커 중에 하필 그 녀석을 공대장으로 골랐다는 건…….
‘그래, 노리는 게 그거였나.’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단군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밥상이 차려져 있으면 숟가락을 드는 게 예의리라.
진혁은 7층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며, 단군 길드의 현 수준과 불사조의 깃털을 얻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 모든 걸 하나의 도화지에 그리는 것까지.
그야말로 모든 변수를 고려한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
다음 차례는 타케시였다.
이 녀석도 오랜만에 만나니 꽤나 반갑…….
“오오오……! 탑에 있는 가장 고귀한 존재께서 이토록 미천한 인간을 불러 주시니 그야말로 무한한 영광……!”
젠장, 방금 한 말 취소다.
“거, 그 입 좀 그만 다물면 참 좋겠는데.”
낯 뜨거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이상한 미사여구 좀 그만 갖다 붙여라.
“크, 크흠! 죄송합니다.”
“됐고. 신전에서 내가 부탁했던 건 당연히 구해 뒀겠지?”
“물론입니다. 감히 어느 분의 부탁인데, 제가 실수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타케시가 조심스럽게 아공간 인벤토리를 활성화 시켰다.
찬란한 운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기묘한 기운을 머금은 검이었다.
양쪽의 날이 하얗게 물든 외형.
철로 만든 검은 유구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그 예리함까지 퇴색된 건 아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천총운검(天叢雲劍)이라 불리는 이 검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성유물 중 하나였으니까.
‘나에겐 쌍룡검과 송곳니가 있으니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비슷한 등급의 다른 아이템과 교환하는 덴 톡톡히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안 그래도 이 시점에서 꼭 갖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입수가 불가능한 아이템 하나가.
“고맙군. 잘 쓰도록 하지.”
이건 진심이다.
정말로 신전에서 타케시의 목숨을 빼앗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좋아.
이제 다음은…….
타케시를 내보낸 진혁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정우와 이유리를 불렀다.
두 사람은 그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함께 몇 가지 쓸 만한 정보를 건넸다.
그 뒤, 김희웅이 검은 까마귀 길드의 운영에 관한 정기 보고를 했고.
안드리아 역시 5층 ‘정신병동’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콜로세움이나 광산 쪽은 결국 뚫렸지만, 저희는 건재해요. 덕분에 플레이어들도 정신병동으론 진입을 꺼려하고 있고요.”
“그건 다행이네.”
확실히 보스 몬스터답게 안드리아는 이전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엘리스가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준 것도 크게 한 몫을 했겠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튼튼히 방어하며 세력을 키워 나간다면, 언젠간 5층이 아닌 훨씬 더 높은 층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내가 원하는 수준까진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래.
고작 한 자리 수 층계에서 쩔쩔매는 게 아닌 탑의 상층부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 줘야 한다.
그걸 위해 안드리아에게 5층을 맡긴 거였으니까.
“일부로 먼 길 와 줘서 고마워.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아니에요. 제가 두 번째 삶을 살게 해 주신 진혁 님이신데,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와야죠.”
안드리아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참…… 저기 반지 속 셋방살이하는 누군가가 이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다.
같은 탑의 보스급인데 어떻게 달라도 이렇게 다르냐?
[뭐야! 너 지금 뭔가 내 욕했지!]기가 막힌 타이밍에 브라함의 반지가 진동했다.
진혁이 못들은 척 반지를 낀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 녀석은 관심법이라도 쓰는 건가. 어떻게 된 게 갈수록 영악해진다.
몇 분 뒤, 마지막 타자인 멜레나가 들어왔다.
“…….”
잔뜩 긴장한 채 굳어 있는 얼굴.
3층에서 호되게 당한 뒤로 멜레나에게 있어 진혁은 그 어떠한 대상보다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게다가 ‘염혼의 낙인’까지 찍혔으니 아예 꼼짝을 못 할 수밖에.
“하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히 앉으세요. 거기 차도 있으니 좀 드시고요.”
향이 쓰긴 한데,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하더라.
미량의 독이 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고마워.”
멜레나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아픈 기억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진혁을 마주한 순간, 뱀 앞에 선 쥐 마냥 전신이 떨렸다.
한 번 겪은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법이다.
상하관계가 확실히 정립되자,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마인들 쪽에선 최근 특별한 움직임 없습니까?”
요 몇 달간은 중화와 무림 쪽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엘프 마을에서의 접전 이후로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한 가지 말해 둬야 할 게 있어. 사실, 탑 위쪽에 있는 놈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 찾아왔거든.”
“……탑 위쪽이라면?”
“몰라. 정확히 몇 층인지까진. 하지만,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뱀파이어들이었어.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하더라. 나름대로 가려 뽑은 마인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쓸려 나갈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은발.
붉은 눈동자.
뱀파이어.
세 개의 키워드가 하나의 문장에 배치되자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으니까.
부르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머니 속에 있던 엘리스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알겠는데 잠시만 참고 있어.’
여기서는 침착해야 한다. 아직 정보의 모든 걸 들은 게 아니니.
“남자와 여자 두 명으로 구성된 2인조야. 본인들 말로는 데카서스 가에 소속된 혈족들이라고 하더라고.”
데카서스라면…….
진혁의 표정이 한 층 더 딱딱해졌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곧장 우리가 있는 성당으로 들이닥쳐서 한 가지 제안을 했어. 자신들을 돕는다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유물을 넘기겠다나 뭐라나.”
“11층에 있는 ‘변절자의 팔찌’…….”
“응. 바로 그거. 우리 쪽 높으신 분께서 그 팔찌를 반드시 손에 넣고 싶어 하시거든.”
“그렇다면, 혈족들이 원하는 건 뭡니까?”
진혁이 가장 중요한 걸 질문했다.
그러자.
“유적에 가둬 놨던 일족의 죄인이 탈출했다고 했어. 그 녀석을 잡는 데 마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름이 분명, 엘…레스. 아니, 엘리스 였나? 대충 그런 이름이었는데?”
멜레나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런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탑의 위층에 있는 혈족들이 이곳까지 내려올 이유라면, 역시 엘리스일 수밖에 없다.
‘정말로 알짜배기 정보를 들었군.’
오늘 들었던 정보 중에 가장 중요한 정보다.
주주총회를 열어 여러 세력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로 한 건 다시 생각해 봐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7층에 있는 불사조의 깃털과 11층에 있는 변절자의 팔찌.
마지막으로 데카서스에 소속된 혈족들까지.
앞으로의 일정이 지금 막 결정되었다.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자리에서 일어나던 멜레나가 멈칫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주도적인 사원을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선호합니다.”
“주주총회라면…… 우리도 회사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거야? 회사가 성장하면 배당금도 나오고 이상한 길로 가거나 착취하면 주주끼리 모여 목소리도 내고 하던데.”
멜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주주라면 그 회사의 주인.
다시 말해 경영진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는 포지션이다.
“맞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회사의 당당한 일원이죠. 얼마든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진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법이랑 거리가 먼 곳이라서요.”
불만을 갖는 건 좋다.
근데, 그 생각은 속으로만 하는 게 좋을 거다.
입에서 어금니가 보이는 시늉만 하더라도 그 즉시 찍어 눌러 버릴 테니까.
그게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설립 이념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