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미궁 리바린토스 (7)
콰아앙!
검과 도끼.
두 개의 흉기가 격돌했다.
불꽃이 일어나며 눈부신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크르르르…!”
미노타우르스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힘에 부쳤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인간 따위.
단검과 함께 토막 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기와 무기가 맞닿는 순간.
카가가각!
상대는 무게중심을 교묘하게 틀어 버리며 공격을 흘려버렸다.
패링.
그것도 고이다 못해 썩어 버린 수준이었다.
***
“이럴……수가.”
지켜보던 박하나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일방적으로 끝날 거라 의심치 않았다.
무려 레벨 10이 넘는 스킬을 발동한 보스급 몬스터.
설령, 검은 까마귀 길드의 전원이 다 오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틈을 봐서 도망칠 생각만 했었다.
이곳에서 함께 죽을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그 괴물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었다.
쾅! 콰아앙!
작은 칼날이 육중한 쇳덩이를 압도하는 모순.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공방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인간이 저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박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꼬옥 쥐었다.
게다가.
‘웃고 있어.’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진혁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이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잡고 몸을 크게 한 바퀴 회전했다.
가볍게 머리 위에 착지했을 땐. 이미 손에서 단검이 사라진 뒤였다.
콰득!
어느새 세로로 세워진 단검이 미노타우르스의 입천장을 파고들었다.
“……!”
입을 다물 수 없다.
단검이 버팀목처럼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5분, 다 지났네.”
진혁이 싸늘한 시선으로 미노타우르스를 내려다 봤다.
동시에.
화르륵!
발현된 ‘불의 원소’를 녀석의 아가리로 향했다.
목구멍 너머 선홍빛 속살이 보였다.
아무리 외피가 단단해도 속은 연약할 수밖에.
콰콰콰콰콰콰!
화염이 식도를 타고 내장까지 모조리 태워 버렸다.
“크오오오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유 능력 ‘광폭화’의 사용 시간이 끝났습니다.] [미궁의 가디언이 24시간 동안 ‘가사 상태’에 빠집니다!]미노타우르스가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이 정도면 깔끔하게 끝냈어.’
진혁은 입 속에 박혀 있는 단검을 회수했다.
광폭화를 발현한 상태라 위험부담은 높았지만.
덕분에 포인트 하나는 확실하게 긁어모았다.
[지금까지 획득한 간극 스탯 포인트: 57]무려 57포인트!
레벨로 따지면 19레벨의 격차를 좁혀 줄 수 있는 수치였다.
‘목표인 100포인트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남은 시간은 20일.
이 페이스면 충분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진혁의 시선이 힐끗 뒤쪽으로 향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박하나가 보였다.
격을 확실히 보여 준 이상, 검은 까마귀 길드 전체가 와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진혁이 박하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뭐해?”
“네?
“안 와?”
“네!”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박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하아. 하아. 부르……셨어요?”
“지금부터 고인물 컴퍼니의 인턴 사원을 모집할 거야.”
“이, 인턴이요?”
“별로 의욕적이지가 않네. 왜? 관심 없어?”
관심이 없다면, 글쎄……. 살아서 햇빛을 보기 어려울 텐데?
진혁이 가볍게 단검을 두어 바퀴 돌렸다.
핏빛을 머금은 칼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과, 관심 있어요! 제발 들어가게 해 주세요! 예전부터 꼭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습니다!”
박하나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세가 마음에 든다.
아주 열정적인 지원자야.
“그럼, 질문. 앞으로 본인이 회사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어필해 봐.”
갑작스러운 질문에 박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는…….”
“저는?”
“친화력! 네! 제 고유 능력이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거예요. 적보다 친구를 만들 수 있죠.”
교감 능력.
확실히 나쁜 능력은 아니지만.
이미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리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게요.”
그건 싫어도 그렇게 될 거다.
낙인을 새기면, 배신하고 싶어도 배신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게 끝이야? 뭔가 더 없어?”
저벅.
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손가락 끝으로 단검을 어루만지면서.
“아뇨. 그게……. 으으……. 자, 잠깐만요. 생각할 시간을 좀!”
박하나가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뭐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뭔가 쓸모 있는.
상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
“발표하겠습니다. 제1회 고인물 컴퍼니 인턴 합격자는 없는 걸로…….”
진혁이 단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브라함의 반지!”
박하나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
진혁이 멈칫했다.
브라함의 반지라면 설마?
“그걸 얻었다고? 검은 까마귀 길드 쪽에서?”
“아직은 아니지만, 곧 구할 거예요.”
“인간 불신은 아니지만, 어째 믿기 힘든데.”
브라함의 반지는 1층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동속도 증가와 마법저항력 게다가 몬스터의 마력을 억제시켜주는 능력까지.
쓸 만한 옵션이 세 개나 붙어있으니까.
문제는 그 아이템을 확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던전으로 가는 열쇠는 한국 측 스타팅 포인트 지점에서 구할 수 있었고.
브라함의 반지가 있는 던전은 중국 측 스타팅 포인트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탑이 막 생겨난 극 초반부.
그것도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손에 쥐고 있는 사탕을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찍어 누르고 빼앗으면 몰라도.
박하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빠가 중국…… 측과 거래한다고 했어요. 저희 측에선 ‘고려인삼’을 제공 하는 대신 반지를 받기로요.”
체력과 마력 회복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식용 아이템, ‘고려인삼’.
호오. 이렇다면 말이 달라지지.
설마, 박하진이 중국과도 연이 닿아 있을 줄이야.
“고려인삼도 좋긴 하지만, 브라함의 반지를 포기할 정도는 아닐 텐데? 뭔가, 뒷거래가 더 있는 건가.”
“그 이상 자세한 계약 내용은 저도 잘 몰라요. 아! 진, 진짜로요! 시청자들이 알려준 거라서…….”
[Lv1 ‘진실의 눈’이 발동됩니다!] [박하나의 말은 ‘진실’입니다.]아무래도 거짓말을 하거나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 듯싶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됐다.
어쩌면, 브라함의 반지뿐 아니라 고려인삼까지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여러 개의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마음에 걸리는 건 딱 하나.
‘결국, 녀석들과는 이번에도 적대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중국은 한국만큼이나 많은 고인물들이 있었다.
실제로 중국 쪽 고인물들이 만든 거대 길드 ‘중화(中華)’는 세계 최대 길드 중 하나였으니까.
‘이미 길드를 만들어 체계화까지 끝냈다고 봐야겠지.’
최소한 한 달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게임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존재했기에. 적게 잡아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지만 놈들은 그 모든 과정을 극단적으로 압축해 버렸다.
평화로운 합의를 통해서?
아니지.
그런 이상주의로 이런 게 가능할 리 없다.
분명,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의해서 찍어 누른 결과리라.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게 누군지 짐작은 간다.
‘……남궁천.’
본래 무가의 자식으로, 영재 교육을 받은 천재.
[시련의 탑]에서도 온갖 비급과 영약을 독식했던 랭커.그래, 녀석이 틀림없다.
박하나가 상념에 빠져 있던 진혁을 부른 건 바로 그때였다.
“저기…….”
아. 지금은 여기부터 신경 써야지.
박하나는 지금 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있느라 아주 똥줄이 타고 있을 터였다.
“축하드립니다.”
진혁이 활짝 웃었다.
“방금 고인물 컴퍼니의 인턴에 합격하셨습니다! 와! 박수!”
“…….”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박하나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인턴. 박수.”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어디서 사장이 박수를 치는데 인턴이.
“와아아아아아!”
짝! 짝! 짝! 짝! 짝!
박하나가 열과 성을 다해서 물개 박수를 쳤다.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지만, 상관없었다.
BJ 하면서 이미 지겹도록 경험해 봤던 일이었으니까.
“큼―!”
목소리를 가다듬은 진혁이 말을 이었다.
“자, 우리 회사는 인턴한테 월급을 주지 않습니다. 생활비는 따로 알바를 하시든지 해서 충당하시고요. 또 가장 중요한 점. 언제 어디서든 제가 부르면 튀어 와야 합니다. 새벽 3시든, 제주도에 있든. 제 알 바 아니니 명심하세요.”
당연히 지각하거나 무단 불참일 경우 퇴사다.
여기서 퇴사란 몸은 두고 영혼만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알겠어요.”
박하나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계약서 같은 것도 써야 하나요?”
“당연히 써야죠.”
계약했다는 증거가 필요했으니.
단지.
평범한 계약과는 조금 다르다.
우우우웅!
진혁이 융합으로 얻은 새로운 스킬을 발동했다.
검지가 푸른빛을 내며 타올랐다.
“그게 계약…서 라고요?”
“예. 설마, 종이쪼가리에 도장이라도 찍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딴 건 탑 밖에서나 통하는 거지.
여기서는 아니었다.
뭐랄까?
조금 더 확실하고 화끈한 방법이 진혁의 스타일이었다.
진혁이 검지를 박하나의 오른쪽 어깨에 갖다 댔다.
[박하나에게 Lv1 ‘염혼의 낙인’을 새깁니다!]치이이익!
“흡…….”
박하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을 거다.
배신을 할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통스럽겠지만.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를 통해 ‘간극’ 스탯을 올리고 그 외엔 휴식을 취하는 단순한 일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었지만, 진혁은 따분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강해지고 있어.’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지루하거나 따분할 틈 따위는 없을 수밖에.
콰아아앙!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이 진혁의 안면을 노렸다.
그러나 주먹은 닿지 않았다.
얼굴로부터 몇 센티미터 떨어진 거리.
그곳에서.
진혁이 한 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붙잡았다.
“어째, 너는 갈수록 약해지는 것 같냐?”
이죽이며 도발하는 건 덤이다.
“크아아아!”
미노타우르스의 팔 근육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럼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스탯을 너무 올린 나머지 이제는 간격이 좁혀지다 못해 역전되어 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퍽! 퍼어억!
오히려 진혁의 주먹이 옆구리에 꽂히자.
거대한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켁! 케에엑!”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정신을 잃는 데까진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것도 벌써 100번은 넘게 했네.’
한 달 내내 싸우다보니 이제는 미노타우르스의 얼굴만 봐도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다.
기절한 모습을 보는 건 익숙하다 못해 일상이 되어 버렸고.
‘이런 일상이면, 한 달이 아니라 일 년도 살 만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고하셨어요. 대표님!”
박하나가 접시 위에 이끼와 버섯으로 만든 음식을 가져왔다.
아…….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취소다.
이 음식. 이건 아무리 먹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얼큰한 김치찌개.
바삭바삭한 치킨에 살얼음 낀 맥주.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에 소주.
이를 닦지 않아도 닦은 것 같은 베라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이런 게 먹고 싶다.
……미치도록.
“……가자. 밖으로.”
진혁이 이를 악 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
[간극이 0.015포인트만큼 상승했습니다.]공격을 피하는 즉시.
진혁의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미노타우르스의 목이 90도가량 돌아갔다.
이젠 녀석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스탯을 얻는 순간, 기절행이었으니.
그리고 마침내.
[현재 보유한 간극 스탯: 100]100스탯…….
시간 대비 산출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
울컥.
무언가 속에서부터 쌓였던 무언가가 치솟아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저, 저기 빛이 보여요!”
미궁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길고 길었던 여정의 종착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