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데카서스 가(家)의 사냥개들 (2)
공간을 장악하는 이질적인 마력.
“이, 이건?”
“헉!”
두 혈족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운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갖고 있다니.”
“……실력을 감추고 있던 거였나?”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저 엘리스의 꼭두각시로.
회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판 정도로 사용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이건 결코 탑의 아래층에서 느낄 만한 수준의 마력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인간이 발악해 봐야 밤의 귀족인 자신들에겐 안 될 테지만.
방심 따윈 해선 안 된다. 그것이 두 혈족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베르티온과 오필리아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진혁은 뒤쪽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곽 플레이어님은 지금 당장 동료들 데리고 이곳에서 벗어나세요.”
“예?”
곽대호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들었다시피 단군 길드 역시 마인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일 겁니다.”
눈보라와 폭설로 얼룩진 숲 속.
장은석이 마인들의 기습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을 확률은 없다.
그저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리는 데 정신이 팔렸겠지.
간단히 말해 완전히 외통수에 몰려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숲에서 벗어난 뒤, 곧바로 다른 길드의 지원을 요청해 주세요. 아마 숲 내부에선 마인들이 외부와 통신을 하지 못하도록 뭔가 장난질을 해 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그럼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혼자서 어쩌시려고요?”
“설마, 혼자서 저것들을 전부 상대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무리예요! 차라리…… 차라리 저희와 함께 도망가요. 마법으로 시선을 끌면 어떻게든 외각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 된다며 만류했다.
수준이 낮았기에,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으니 더 체감이 안 될 수밖에.’
뱀파이어들조차도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돼서 도망가고 있지 않고 있는데, 하물며 그보다 훨씬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피식 웃은 진혁이 ‘송곳니’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쯤해서 슬슬 첫 번째 대사를 날려 줄 타이밍이다.
“전 괜찮습니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러니 먼저 가세요. 저도 반드시 뒤따라가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전신에 죽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복사 조건 ‘사망 플래그 대사’ 중 첫 번째 대사가 카운팅되었습니다.]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가 랜덤으로 봉인됩니다.] [고유 능력 ‘천독(千毒)’이 봉인됩니다.]역시…….
미래를 약속하는 대사는 언제나 사망 플래그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 중 하나다.
카운팅이 되면서 봉인된 능력은 ‘천독’.
즐겨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입니다! 뛰세요!”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다들 뭐 해!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말씀하신 거 못 들었어? 뛰어! 무조건 달리라고!”
“크윽.”
“죄, 죄송합니다.”
“……뒤를 부탁드릴게요.”
곽대호와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왔던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감히 누구 앞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우리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우우우웅!
베르티온과 오필리아의 몸 주위로 붉은색 핏방울들이 나타났다.
약 1m 크기의 구체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목표는 당연히 등을 훤히 돌린 채 도망가고 있는 다섯 명의 플레이어다.
하지만.
“너넨 나하고 놀아야지. 왜 다른 녀석들한테 신경을 쓰냐?”
마법이 발동되기 바로 직전, 진혁이 끼어들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녹색 빛을 머금은 단검이 횡으로 가로질렀다.
카카카칵!
베르티온이 재빨리 쉴드를 펼쳤지만, 검기가 발현된 단검을 받아낼 순 없었다.
쉴드가 유리창처럼 박살났다.
그나마 빠르게 몸을 뒤로 피한 터라 손이 통째로 잘라나가진 않으나, 단검은 베르티온의 손바닥에 깊숙한 상처를 냈다.
후두둑…….
새하얀 눈 위에 붉은색 점들이 나타났다.
베르티온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고귀한 이 몸에 날붙이를 들이댄 것이냐!”
와…….
“너희는 어떻게 된 게 말끝마다 ‘고귀하다’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냐?”
뱀파이어 유치원에서 주입식 교육이라도 받는 건가?
이쯤 되면 조기 교육과 사상 교육의 위대함에 대해 논문이라도 내고 싶을 지경이다.
발표할 때 엘리스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을 죄다 모으면 올해의 뱀파이어벨 문학상은 떼놓은 당상이겠잖아? 완전히.
“과연, 그 노인네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네. 입이 살아있어서 짜증이 많이 날 거라고 하더니. 하마터면 피를 빨아먹어야 한다는 것도 까먹고 죽여 버릴 뻔했어.”
“동감이다.”
오필리아의 말에, 베르티온이 동의했다.
워낙 능글맞게 도발하는 저 모습에, 그만 목적을 망각할 뻔했다.
두 혈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엘리스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
회랑에서 나온 테레사와 언노운으로 알려진 가장 유력한 용의자 천유성. 그리고 그 둘 모두와 접점이 있는 진혁이 도마에 올랐다.
‘테레사와 천유성에겐 뱀파이어의 특유의 잔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엘리스와 함께 있다면 분명, 그 특유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할 터.
결국, 마지막 후보는 진혁이었다.
‘본인 스스로가 뱀파이어와 만난 적 있다고 했으니, 사실 더 이상의 증거 따위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오히려 저 인간이 대체 어디에 엘리스를 숨겨 놨냐는 거겠지.
만약 엘리스가 탑 밖에 있다면 일이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그 정보를.
지금부터 알아내야 한다.
“명심해라, 오필리아.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그런 건 알고 있어.”
스릉!
스릉!
얇고 긴 레이피어 한 쌍이 눈부신 검광을 토해냈다.
‘암흑 투기’로 인해 검신이 눈 깜짝할 사이에 검붉게 달아올랐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심지어 서 있는 자세까지도.
“호오…….”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완성도가 제법이야. 벨루스보다 더 안정적이랄까? 그래도 뾰족한 치아를 갖고 있는 값은 하네.”
마력을 운용하는 거나 강기를 적절하게 흘려보내는 거나 크게 나무랄 데는 없다.
이 정도면 100점 만점에 82.5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거다.
사심 없이. 정말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내린 평가였다.
“네 녀석이 인간 중에서 제법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건방지게 지껄이지 마라. 우리는 네놈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영위해 온 존재들이다.”
“기껏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 따위가 어디서 평가질이야! 그것도 하필이면 아타락시아가의 버러지랑!”
자존심이 세게 긁힌 걸까?
목소리에 날이 섰다.
“내 평가가 불만족스러운 모양인가 보네. 나름 사심 없이. 정말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측정해 준 건데.”
“불만족하고 말 것도 없다. 그저 내 앞에서 인간 따위가 말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할 뿐.”
“그래? 그럼, 그만 나불대고 덤벼 봐. 내 평가가 얼마나 정확한지 직접 알려 줄 테니까.”
진혁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그 중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쓴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넌…… 나서지 마라. 오필리아.”
“죽이면 안 돼. 알고 있지?”
“그래. 하지만, 심문을 하는 데 양쪽 팔이 모두 있을 필요는 없겠지.”
베르티온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죽이진 않는다.
대신, 어디 하나 정도는 잘라내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
베르티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스스슥…….
쌓인 눈 위로 바람이 일어났다.
눈가루들이 자욱하게 흩날렸다.
“이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기대하마.”
싸늘한 말과 함께.
[베르티온이 Lv16 ‘혈옥(血獄)’을 발동합니다!]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렌즈에 핏방울이 흐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단색(丹色)으로 변했다.
“……3류 공포 영화 같네.”
진혁이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런 식으로 시야에 직접 개입하는 능력은 꽤나 희귀한 스킬이다.
“드디어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군. 하지만, 정말로 당황스러운 건 지금부터일 거다.”
저 말은 허언이 아니다.
실제로 베르티온이 쥐고 있는 레이피어의 검신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마 이것도 ‘혈옥’이 갖고 있는 효과 중 하나인 거겠지.
“사정거리를 숨길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 전투에 있어 상대의 ‘거리’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핵심. 허나, 여기서는 그 모든 것들이 퇴색된다.”
붉은 눈송이에 보이지 않는 검.
모든 게 시야를 가로막는 최악의 조건들이었다. 게다가 베르티온이 보유한 실력 또한 터무니없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무려, 3자릿수의 레벨을 지닌 혈족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진혁은 웃고 있었다.
“핸디캡치곤 나쁘지 않아. 적당히 즐길 순 있겠어.”
“뭐……라고?”
“재능 있는 학생을 가르치게 돼서 심심할 틈은 없을 것 같다고.”
조금 전에 평가의 객관성에 대해 직접 알려 주기로 약속했었다.
진혁은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개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지치는군. 몸에 바람구멍이 생기는 걸 그 두 눈으로 똑똑히 감상하거라.”
순간, 검이 폭사되었다.
인지하는 것도 힘든 신속.
그러나.
카아앙!
베르티온이 날린 찌르기가 무위로 돌아갔다.
작은 불꽃과 함께 칼끝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찌르기가 나쁘진 않아. 근데, 페이크를 주는 타이밍이 너무 빨랐어. 무게 중심이 제대로 실리지 않으니까 이처럼 가볍게 튕겨 나가는 거야.”
“건방진!”
한 마디 들은 베르티온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검을 움직였다.
레이피어의 묘미는 베기가 아닌 찌르기.
작은 틈을 파고드는 능력이야말로 이 무기를 사용하는 이유였다.
캉! 카앙! 카카캉!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격이 이어졌다.
성당을 지키는 마인들을 몰살시킨 바로 그 공격이었다.
“어허. 아래. 아래를 노려, 아래를. 발이 쉬고 있잖아 지금. 스탭은 계속해서 밟아 주고. 넌 속도는 빠른데, 거기에 너무 휘둘리더라.”
“……크윽!”
고속으로 이동하는 베르티온으로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하지만, 모든 기습을 모조리 받아치는 진혁 때문에, 욕설을 내뱉을 여유마저 잃어버렸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켜보던 오필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것쯤은 처음 마력이 해방했을 때 인지했지만.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대인전에 특화된 베르티온이 ‘혈옥’까지 사용했단 건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뜻.
승부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
이토록 일방적인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승부가 일방적이어야 하는 건 맞아.’
문제는 찍어 누르는 대상과 쩔쩔매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완전히 베르티온을 농락하며, 친절하게 눈높이 맞춤 교육을 해 주고 있는 진혁.
그리고 아무리 발악해도 상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베르티온.
그 언밸런스한 광경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오필리아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저토록 강한 인간이 누군가에게 종속되었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대상이 설령, 아타락시아의 가주라 할지라도 말이다.
‘설마, 엘리스가 인간을 꼭두각시로 부린 게 아니라면…….’
반대로. 저 인간이 엘리스를 가둔 거라면……?
오필리아의 머릿속엔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조금 떨어진 숲 쪽으로.
쿠쿠쿠쿠쿠!
하늘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낙하했다.
모두의 얼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저 빛줄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