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데카서스 가(家)의 사냥개들 (3)
별자리의 기운을 담은 광휘.
바로 ‘별의 가호’였다.
이 고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진혁 외에 단 한 명뿐.
암스테르담의 성녀, 테레사가 이곳에 왔다.
‘이건 또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
진혁이 흥미로운 얼굴로 빛이 낙하하는 지점을 바라봤다.
엄청난 마력이 범람하는 걸 보아, 테레사가 전력을 쏟아 붓는 게 틀림없었다.
상대하는 마인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기습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시점에서 저 싸움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계속된 지원 요청으로 인해 플레이어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날 테니까. 반면, 마인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신성력……이라고?”
“큭! 저 저주받은 힘을 사용하는 놈이 있다니.”
베르티온과 오필리아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신성력.
뱀파이어들을 상대로도 상극이었지만, 현재 단군 길드를 막고 있는 마인들에게도 치명적인 능력이다.
게다가 저토록 순도 높은 힘이라면…….
마인들만으로는 힘들다.
자칫하다간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었다.
엘리스를 회수하고 이후에 ‘그 목적’까지 이뤄야 하는 모든 과정이.
“베르티온!”
“빌어먹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오필리아의 외침에, 베르티온이 거리를 크게 벌렸다.
어느새 펼쳐 뒀던 ‘혈옥’까지 모두 해체된 상태.
전투를 포기하고 마인들 쪽으로 합류하려는 생각이리라.
바로 그때.
[Lv7 ‘데이 라이트’가 발동됩니다!]백색 섬광이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상태라고 해도 소용없다.
애초에 ‘데이라이트’ 역시 수백 미터의 유효 범위를 갖고 있는 광역 기술이었으니까.
5초가 넘게 이어진 폭풍에 숲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영원 같았던 빛이 잦아들었다.
치이익!
눈이 녹아내린 자리에서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좋아. 슬슬 말해 볼까.’
진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 타이밍에 말해야 한다. 오직 이 타이밍에 말해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해치웠나?”
기대를 담은 듯 다소 들뜬 목소리.
적당히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과 상기된 얼굴.
틀림없다.
이건 완벽하다.
그 확신을 뒷받침하듯.
진혁의 눈앞에 여러 개의 상태창이 동시에 나타났다.
[복사 조건 ‘사망 플래그 대사’ 중 두 번째 대사가 카운팅되었습니다.]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가 랜덤으로 봉인됩니다.] [스킬 ‘불의 원소’가 봉인되었습니다.]역시…….
상대의 죽음을 확신하는 대사 또한 전형적인 ‘사망 플래그 대사’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수증기 너머에서 두 혈족들이 살아 있는 게 느껴졌으니까.
정상적이라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상대에게 박살나는 게 수순이었겠지.
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반대다.
베르티온과 오필리아는 수증기가 자욱이 일어난 틈을 타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회를 만들어 줬으니 어서 꽁무니 빠지게 사라져라.’
진혁이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처음의 계획과는 완전히 어그러진 상황.
연속된 변수로 인해 두 녀석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도주뿐.
물러선 뒤,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물론.
진혁은 그 뒤를 쫓지 않았다.
복사 조건을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마인 협회와 뱀파이어를 통해 조금 더 재밌는 판을 짤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아. 난 왜 이렇게 안 좋은 쪽으론 머리가 잘 돌아갈까?’
진혁이 스스로에게 감탄한 듯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았으나, 문제 될 건 없다.
애초에 고인물이 왜 고인물이라고 불리겠는가?
***
30분 뒤, 진혁은 단군 길드가 있는 곳에 합류했다.
완전히 탈진한 장은석과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아직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빌어먹게 지독한 놈들 같으니라고…….”
“젠장. 호연이와 수호는 글렀어. 엘릭서라도 있지 않는 한, 저 상처론 살 수 없을 거야.”
“후우. 후우. 후우. 괜찮아…… 괜찮지 않아. 괜찮아. 괜찮지…… 않아.”
피로 얼룩진 현장.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접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 줬다.
‘처참하군.’
진혁이 혀를 찼다.
그나마 제 시간에 테레사와 다른 길드의 지원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전멸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새하얀 눈 위로 몇 명인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건 의외네.
이곳에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녀석까지 끼어 있을 줄이야.
“다들 오래간만이네.”
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혀…… 형!”
“어, 어라? 오빠가 여긴 어떻게?”
이태민과 유연화가 토끼눈을 뜬 채 소리쳤다.
“진혁 씨!”
환자들을 돌보던 테레사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6층이 개방된 후 꽤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다들 반가운 기색이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하여간, 어딜 가나 네놈을 만나게 되는군.”
마지막으로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야 뭐.
완전히 정모라도 하는 기분이다.
몇 달 전 4층에서 좀비 웨이브를 막으며 한꺼번에 모인 뒤론, 각자 흩어져서 활동했으니까.
따로따로 본 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다 같이 모이게 된 건 꽤나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나야 불사조의 깃털을 좀 얻으려고 왔지. 중간에 꽤 재밌는 일에 휘말리게 됐지만.”
“예? 불사조의 깃털이요? 하지만 형은…….”
이태민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이곳에 있는 네 사람이야 진혁과 언노운의 정체에 관해 알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단군 길드에서 소속된 사람이 엿들었다간 곤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해도 돼.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결계를 펼쳐 뒀으니까.”
“형은 11층으로 바로 갈 수 있잖아요. 어째서 거기로 안 가고 굳이 아래로 내려온 거예요?”
‘불사조의 깃털’이 중요한 아이템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7층을 공략할 때로 한정된 이야기.
11층에 입장할 수 있는 진혁으로선 반드시 ‘불사조의 깃털’을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이태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태민이는 20층까지밖에 오르지 못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탑의 상층부에는 이곳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인 혹한 지대가 있다.
게다가 7층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단순히 ‘불사조의 깃털’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이유에 대해 굳이 일일이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친하게 생각하는 동료라도 모든 걸 알려 줘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어.”
둘러대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선을 그으면 더 이상 캐물을 성격도 아니었고.
어깨를 으쓱한 진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희는 여기 어쩐 일이야?”
“아. 저랑 연화 누나는 바다에 있는 어룡 때문에 왔어요. 형도 알잖아요? 그 어룡의 심장으로 무기 만드는 거.”
“그걸로 연화가 쓸 건틀릿을 만들려고?”
“맞아요. 저는 누나 도와줄 겸 겸사겸사 왔죠. 그 와중에 단군 길드의 도움 요청을 듣고 이쪽으로 합류했고요.”
그렇게 된 거였군.
어룡을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제 와선 어룡보다 더 큰 사냥을 하게 되었지만.
“저는 이 근처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말에, 혹시라도 도울 게 있나 싶어 왔어요.”
역시나 테레사다운 말이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한 몸 정도는 불사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 뭐. 암스테르담의 성녀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애초에 성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혁의 시선이 바로 옆으로 향했다.
얼음 조각 같은 검성은 여전히 모든 게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차도남이 대세라지만, 저 정도면 혈관에 얼음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넌 여기 왜 왔냐? 설마 의학도의 혼이 불타오른 건 아니겠고.”
“나는 이 여자에게 빚을 진 게 하나 있어서 따라왔다.”
“와. 진심으로? 아니, 테레사 씨. 대체 뭘 했길래 저 거머리가 순순히 따라오게 만든 거예요?”
어지간해선 이 녀석이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을 텐데.
마치 순한 양처럼 따라오게 만들다니. 그 방법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 그게요…….”
테레사가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바로 그때, 천유성이 끼어들었다.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해라.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고는 있는 거냐?”
“대충은 알고 있지. 마인들이 와서 깽판 좀 치고 송곳니가 뾰족한 모기들도 합류한 상황이잖아? 겸사겸사 아이스크림 트롤들까지 움직이고 있고.”
“그걸 알고 있는 놈이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는 거냐? 놈들이 노리는 게 뭔지는 몰라도 느낌이 좋지 않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거란 말이다.”
“알고 있어.”
“뭐?”
“놈들이 노리는 게 뭔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전부 다 알고 있다고.”
아니, 단순히 아는 정도 수준이 아니지.
마인들과 뱀파이어들을 물 먹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골칫거리 하나까지 물 먹일 수 있는 방법.
거기에 이곳에 있는 이득이란 이득을 모조리 쓸어올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잘 들어 봐.”
진혁의 설명이 이어짐에 따라, 모두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검정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천유성은 세상에 무슨 이런 악마가 다 있을까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대화가 끝났을 무렵.
주위엔 바람이 부는 소리 외엔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어지간히들 놀란 모양이다.
입을 쩍 벌린 게 파리가 들어가도 모르겠네.
“어때. 이 정도면 흥미가 좀 생겼어?”
진혁이 생긋 웃었다.
***
“젠장…… 젠장, 젠장할!”
걸레짝으로 변해 버린 공격대를 보며, 장은석이 욕설을 내뱉었다.
방금 전 기습으로 인해 전체 공격대의 20%에 해당하는 플레이어가 전투 불능이 되었다.
사망한 수도 제법 됐고, 무엇보다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힐러진과 딜러진의 마력 고갈된 게 뼈아팠다.
‘생각보다 타격이 너무 커.’
적어도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피해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하지만, 그건 곧 전체 레이드의 성패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뜻.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다.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결단이.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장은석의 눈에 진혁과 나머지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장은석이 재빨리 진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 눈에 봐도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모습이다.
그것도 조금 전 기습을 막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테레사와 천유성 그리고 이태민과 유연화를 모두 데린 채.
저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아니, 최소한 어디로 가는지 혹은 가능하면 자기들도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잠시, 잠시만요!”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진혁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놈과 대화를 나누게 됐으니, 말투가 뾰족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은석은 안면에 철판을 깐 채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게……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건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하여간, 대단한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놈이다.
뭐, 그 정도로 알고 싶다면 알려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숲의 중앙 ‘담수호’로 갑니다.”
“다, 담수호라면……?”
진혁의 말에, 장은석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7층에 관한 정보가 그다지 많이 풀려 있진 않았으나, 저 지명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다.
7층에 있는 마력이 하나로 모이는 장소.
다시 말해.
이 층계의 가장 강력한 몬스터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