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서리 칼날’ 부족 (2)
전사의 대결.
긍지 높은 부족의 전사가 호언한 이상, 다른 부족원들은 끼어들 수 없다.
그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진혁은 상대의 유일한 약점을 파고들었다.
“모두들 제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공격도 방어도.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타이밍도.
명령을 내리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
진혁이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단군 길드와는 단 한 번도 호흡을 맞춰 본 적 없었지만, 마치 10년을 함께해 온 파트너처럼 연계는 완벽했다.
이미 모든 플레이어들의 포지션과 성향, 고유 능력과 스킬들을 모조리 파악해 둔 덕분이었다.
“가겠습니다!”
“오오오!”
플레이어들이 신호에 맞춰 각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구현했다.
바람과 번개가 카라칼의 정면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콰!
그렇게, 몰아치는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가자.
[Lv10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이번엔 얼음줄기가 카라칼의 전신을 집어 삼켰다.
허공을 따라 수십 개의 눈꽃이 흐드러졌다.
“크윽!”
피부를 따라 퍼지는 냉기에, 카라칼이 신음을 내뱉었다.
설마 이 정도로 뻔뻔한 종족이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덕분에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카라칼이 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카카칵!
카득!
빙하조형으로 만든 눈송이들이 모조리 박살났다.
다른 건 몰라도 툰드라지대에 있으면서 냉기 속성에 대한 저항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틈 따위는 없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자리를 박찼으니까.
퍼퍼퍽!
콰아아아앙!
각종 스킬이 일제히 쏟아졌다.
여러 가지 속성들이 가미된 마법 무구들이 카라칼의 전신을 향해 쇄도했다.
“강 플레이어님을 서포트하는 식으로 움직여라.”
“거의 다 왔어.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돼!”
정상급 길드의 플레이어들답게, 막상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미친 듯이 몰아쳤다.
정석적인 진형과 정석적인 공략.
거기에 최강의 고인물인 진혁이 추가되었기에, 싸움은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건 장은석이었다.
‘이래선 안 돼.’
승기가 굳어지는 와중에도 장은석의 얼굴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레이드는 사실상 진혁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상황.
만에 하나 이대로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자신의 입지는 추락할 게 틀림없었다.
승리에 대한 미주를 마신 뒤에는 분명 질타와 추궁이 뒤따를 것이다.
어째서 그 역할을 공대장인 자신이 맡지 못했는지.
어째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저 인간에게 돌렸는지.
그 모든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향하리라.
무엇보다 저 괴물 같은 고인물이 더 이상 이미지를 올리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애초에 그 미친 듯한 독주를 막기 위해서 이번 레이드의 최초 공략을 노리지 않았던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쪽은 빠지십쇼! 이번 레이드의 책임자는 저란 말입니다!”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장은석이 선을 그은 것이다.
이곳의 대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장은석!”
이태호가 다급히 만류했으나, 이미 장은석의 결심은 확고했다.
“부공대장. 넌 끼어들지 마라.”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불렀다는 건. 곧 공과 사를 분명히 하겠다는 뜻.
이태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 했다.
“……알겠습니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시죠.”
진혁은 별달리 항변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금 장은석이 보인 이 행동마저도…….
이미 계산되어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래. 역시 네가 이렇게 나와야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무능한 공대장과 구르고 구르는 공대원들. 그리고 움직이는 민심과 그걸 통한 큰 그림까지.
벌써부터 체스 말들이 체스판 위에서 춤을 추는 게 훤히 보였다.
***
잠시 뒤, 명령 체계가 바뀌었다.
장은석이 지휘봉을 되찾은 것이다.
연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당장은 움직여야 한다.
지휘관이 누구든 그 사람을 믿고 따라야지만,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이 어금니를 깨문 채 더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
다른 사람들이 죽어라고 싸우는 동안, 진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든 장면을 직관했다.
‘역시…… 저 트롤 녀석. 쓸 만해.’
전투력 측정기로 단군 길드를 데리고 온 건 신의 한수였다.
카라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제물들이랄까?
특히 가장 선두에 있던 장은석은 벌써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똥줄이 타겠지.
이번에는 길드의 명예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달려 있었으니까.
물론, 도와 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저런 건방진 녀석은 생명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좀 더 구르고 굴러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5개의 화(火) 속성 마법이 술식을 갖췄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Lv13 ‘이레이저(Eraser)’가 발동됩니다!]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폭발음이 이어지며,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뒤쪽에서 줄곧 마력을 모으던 마법 계열 플레이어가 마침내 화염 마법을 방출한 것이다.
무려 6서클에 해당하는 고위 마법.
4명의 플레이어들 5분이 넘게 캐스팅을 한 덕분에,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좋아!”
장은석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 한 방을 위해서 지금껏 참고 견뎠다.
화르르륵!
눈이 녹자, 흙바닥이 드러났다.
치솟는 연기 사이로는 아직까지 검붉은 화염이 넘실거리며 타올랐다.
물론, 근접에서 카라칼을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의 몸엔 화염 내성을 올려 주는 보조 마법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상태였다.
그마저도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 최대한 거리를 벌렸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다간 함께 휩쓸려 버릴 뻔했지만.
“……허억. 허억.”
“돼, 됐어. 드디어 먹혔다!”
“열 명이서 덤벼도 막상막하라니. 뭐 이렇게 더럽게 강한 트롤이 다 있어. 아예 규격 외잖아 이건!”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없어서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갔…… 크흠.”
“입 좀 다물어라 좀. 가뜩이나 공대장님 심기 안 좋으신 거 보면, 모르냐?”
“그것보다 설마, 다른 놈들이 떼로 덤벼들진 않겠지?”
혹시나 지켜보던 트롤들이 족장의 죽음에 분노하며 어떡하나 고민했지만, 이상하게도 트롤들이 움직이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겁을 먹었다고 보기엔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고 단념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트롤들이 가만히 구경만 하던 이유가 밝혀졌다.
부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연기 속에서 창이 폭사되었다.
빠르다.
그러나 충분히 방패를 들어 막을 수 있다.
가장 먼저 판단을 내린 이태호가 플레이어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거대한 방패로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가로막았다고 생각했다.
푸욱!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핏줄기.
“커억?”
이태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방패는 깨지지 않았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외형으로 여전히 이태호의 몸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허나, 창은 방패를 통과해 살을 꿰뚫는 데 성공했다.
그런 모순이 발생된 이유는 하나.
‘……방어 무시.’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카라칼이 들고 있는 저 창.
조금 전과는 모습이 달랐다.
투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던. 단순히 나무와 날붙이를 엮어 만든 것에 불과했던 창이.
어느새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푸른색 창으로 변해 있었다.
‘전투 능력뿐 아니라, 무기까지 사기적인 걸 갖고 있었군.’
대상의 방어구를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슬레이프’라 불리는 저 마창(魔槍)이 갖고 있는 고유 능력이었다.
‘이거 일이 점점 더 재밌게 흘러가네.’
싸움은 곧 끝날 것이다.
일방적이지도 못해 허무할 정도로.
물론, 장은석이나 이태호를 비롯한 단군 길드의 공대원들이 약하다는 게 아니다.
그저, 상대가 터무니없이 강할 뿐이지.
***
덜덜덜!
플레이어들이 몸이 가늘게 떨렸다.
모두의 본능이 경고를 보냈다.
결코 저 창과 정면으로 맞서선 안 된다고.
“제, 젠장.”
“저걸 무슨 수로 버텨…….”
1열을 맡고 있는 탱커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부공대장인 이태호가 당했는데, 어느 누가 당당하게 저 앞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기세 좋게 덤비더니. 벌써 끝난 것이냐? 여전히 남은 수는 너에게 유리하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계속해서 덤벼라.”
“…….”
“그런가. 그쪽에서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다.”
꼬리를 말아 버린 적은 존중해 줘야 할 가치가 없다.
카라칼이 자세를 잡았다.
무게중심을 잔뜩 낮춘 곳에서부터.
콰앙!
카라칼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빠르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푸른빛을 머금은 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창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플레이어 하나가 눈 위에 쓰러졌다.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허벅지에 바람구멍이 난 여성 플레이어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마, 막아라!”
“젠장, 딜러들 보호해! 어떻게든 버티라고!”
“우와아아악!”
딜러들이 무너지면, 반격의 기회조차 없다.
그걸 알았기에, 장은석은 어떻게든 딜러진을 지키려 했다.
허나 소용없다.
일격(一擊).
더 이상의 미사여구 따윈 필요 없는, 오롯이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찌르기가 반복되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푹!
푸욱!
“컥?”
“크아아악!”
한 번. 두 번.
창이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의 몸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막을 수도 대처할 수도 없는 공격에, 싸움은 너무나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나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장은석을 제외하곤, 모조리 큰 부상을 입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1:1로는 승산이 없다.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장은석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순순히 패배를 승복할 생각 따윈 없었다.
“이…… 이 빌어먹을 짐승 놈이! 감히…… 감히 이 따위 짓을 해!”
욕설을 내뱉은 장은석이 옆쪽으로 도약했다.
향한 곳은 카라칼도. 다른 트롤 전사들도 아닌…….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 트롤들이 있는 곳이었다.
단숨에 어린 트롤의 목을 낚아 챈 장은석이 단검을 뽑아들었다.
“모두 꼼짝 마! 아주 시발.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이 애새끼 멱을 따 버릴 테니까!”
“끄윽!”
칼날이 목으로 향했다.
검신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졌다.
“비겁한……!”
“역시 인간들은…… 전부 다 이런 건가.”
트롤들이 분노에 찬 음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장은석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하? 비겁하긴. 죽고 사는 데 비겁한 게 어딨어? 그리고 거기.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이제 그만 도와주십쇼. 젠장. 우리가 맡겠다곤 했지만, 정말로 팔짱만 끼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같은 편끼리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장은석이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야.
진짜로.
놀랍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놀랍다.
이거 알고 보면 저 머리통은 붕어대가리와 닭대가리를 융합해 만든 게 아닐지 의심스럽다.
아……!
혹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융합 조합을 발견한 거면 존경스러울 지경인데, 이건?
아무튼 간만에 듣는 개소리라 제법 신선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난 누구의 편도 아니야.”
그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쪽의 편이지.
실제로 상황에 따라서 천사와도 싸울 수 있고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탑을 오르기 위해선 승리와 생존이 대전제였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쓰레기랑 편을 먹는 취미는 없어.”
항상 강조하듯.
선을 넘는 놈은 그 모든 것에서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