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고인물이 전황을 흔드는 법 (2)
서리 칼날 부족과 임시 동맹을 맺은 뒤, 약 3시간이 지났다.
정찰을 떠났던 유연화와 이태민은 조금 전 합류했고.
진혁 역시 카라칼과 헤어져 일행들 쪽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태민이 대군요새(對軍要塞) ‘세데스’를 발동합니다.]소환수를 일괄 통솔할 수 있는 능력.
수백 기의 기계화 병력들이 숲속에 배치되었다.
우우우웅!
가득 충전된 마력 포탄이 기괴한 공명음을 내뱉었다.
“후우우우…….”
유연화도 너클을 점검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태청화랑심법’을 통해 정제된 마력이 전신을 따라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과연, 둘 다 성장 폭이 굉장하긴 하네.’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동안 따로 행동하느라 몰랐는데, 스킬이나 마력을 운용하는 폼을 보니 과연 고인물은 고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 사람에 비하면 얼마 전에 만났던 장은석은 ‘늅늅’거리는 고라니 정도로 보인달까?
이래서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긴 한가 보다.
그렇게 만반의 대비를 한 채 놈들이 오길 기다렸지만…….
밤이 깊을 때까지 상대 진형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너무 조용한 게.”
[기계 군주]를 통해 숲을 살피던 이태민이 입을 열었다.지금 하늘에 떠 있는 드론들의 수는 무려 30.
가동 범위를 최대화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에게 들키지 않게끔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중이었다.
이 일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편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이태민은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찜찜한 건 유연화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두 명의 혈족 외에도 더 성가신 놈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카라칼은 데카서스가에서 베르티온과 오필리아보다 더 강한 혈족이 왔다고 했다. 카라칼마저 두려워 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 전력상 밀릴 이유는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쿠쿠쿠쿠쿠!
갑자기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다.
지축이 흔들리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혀, 형!”
이태민이 고함을 질렀다.
드론들이 빠른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이건 설마…….
“트롤들! 아이스 트롤들이 있는 방향이야!”
유연화가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동시에.
검붉은 스파크가 만들어낸 마력 폭풍이 하늘에서 낙하했다. 정확히 담수호가 있는 곳으로.
콰쾅!
콰콰콰카카캉!
마치 유성우가 내리는 것처럼, 번개가 지면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대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이태민과 유연화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수가 읽혔다.
상대는 이쪽이 서리 칼날 부족과 손을 잡을 거란 걸 간파했고.
오히려 허를 찔러 이쪽의 보유한 히든 카드를 무력화시켰다.
완벽하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진혁이 예측했던 대로였다.
***
호수의 진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움푹 파인 크레이터로 장식된 호수는 조금 전의 폭격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이걸로 체크 메이트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오필리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완전히 쑥대밭으로 변해 버린 현장.
이 폭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 따윈 없으리라.
그만큼 완벽하게 준비한 공격이었고.
그만큼 완벽하게 허를 찌른 기습이었다.
그런데.
“이, 이럴 수가……! 없습니다. 한 마리도…… 한 마리도 보이질 않습니다.”
잔해를 뒤적이던 마인 하나가 기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숯덩이가 되어 있어야 할 트롤들의 흔적이 단 하나도 보이질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헛소리냐? 분명, 이곳이 서리 칼날 놈들의 본거지이거늘.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당장 꼼꼼하게 살펴봐라! 당장!”
오필리아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도요!”
“젠장, 아예 텅텅 비어 있습니다.”
아무리 화력이 막강했어도 그렇지, 시체 파편마저 모조리 증발해 버렸을 리는 없다.
하지만 부정해 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서리 칼날 부족은 지금 이곳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설마…… 애초부터 비어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 기습을 예측했다는 것 외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도 잠시, 오필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고작 인간 따위를 상대로 수 싸움에서 밀렸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으득!
송곳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력을 애먼 데 퍼부으며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놈들이 있다는 뜻이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예. 그 타이밍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대답했다.
[3성급 결계 ‘차원 단절’이 해체됩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 균열이 일어났다.
풍경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저벅.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백색의 갑주로 무장한 성녀.
테레사였다.
그 뒤로 보이는 다수의 성기사들 또한 전신을 갑옷과 방패로 감싼 채 진형을 갖췄다.
전원이 프리스트나 성기사로 전직을 끝마친, ‘시온 길드’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전부, 진혁 씨가 말해 주신대로네요.”
이태민의 드론을 고의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미하엘의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부터.
그걸 통해 상대가 아이스 트롤의 배신을 눈치채게 만드는 것까지.
모두 진혁이 언질해 준 내용이었다.
‘역시, 진혁 씨를 뛰어넘는 플레이어는 없어.’
솔직히 말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세세한 상황들을 설계하고 변수들을 고려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으니까.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며 콧대만 높은 대형 길드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
그렇기에 테레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더욱 확신했다.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스릉!
철컹!
마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더러운 팔라딘들이……!”
“빌어먹을! 완전히 포위됐어!”
“오필리아님! 어서 지시를!”
주위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마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였던 진형은 어느새 시온 길드의 포위를 용이하게 만드는 패착으로 변질되었다.
[테레사가 고유 능력 ‘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화르르륵!
검을 타고 눈부신 광휘가 타올랐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목숨까지 빼앗진 않겠습니다.”
마력을 절반 이상 소진한 상황에서 오필리아와 마인들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단 따위는 없다.
“확실히 이번엔 우리가 불리한 것 같네.”
오필리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상대가 그 시간을 줄 리는 없겠지.
다시 말해 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패주를 하며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수밖에.
“도망치는 건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테레사의 검신이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글쎄. 과연, 네 수준으로 날 잡을 수 있을까?”
“그거야 해 봐야 알겠죠.”
“시험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봐. 근데 술래잡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알려 줄게.”
몸을 돌리려던 오필리아가 멈칫했다.
동시에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미하엘 님 또한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예견하셨어.”
이건 패자의 넋두리나 발악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하늘이 검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으니까.
***
[7계층에 ‘기상개변(氣象改變)’이 발동됩니다.]붉은색으로 물든 상태창과 함께, 맑았던 하늘이 검게 일그러졌다.
쿠쿠쿠쿠쿠!
거센 눈보라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다.
당연히 공중에서 모든 것을 살피던 드론들 역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형!”
이태민이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적의 접근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겠지.
물론, 진혁 역시 급변하는 상황을 온 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테레사를 통해 한 방 먹이자마자 곧바로 더 큰 보복이 돌아왔다.
계층 전체의 날씨를 바꿀 수 있는 억제력을 행사했다는 건 어마무시한 양의 코인을 소모해 탑의 시스템에 간섭했다는 뜻.
‘대체 몇 개의 상급 재료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감도 안 오네.’
상위 가문이 부자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되면 돈지랄도 급이 달라진다.
“드론의 반경이 약 15km정도였으니 빠르면 10분 안에 적이 올 거예요.”
“10분이 아니야.”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다수의 마력 반응.
이태민이 예상한 것보다 더 빠르게 이곳에 도달할 게 틀림없었다.
대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3분…… 그리고 1분.
순식간에 사라진 시간과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교차했다.
“온다!”
진혁이 단검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크오오오!”
“카오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다이어 울프.
그것도 야생이 아닌, 길들여진 놈들이다.
회색 갈퀴에 3m에 이르는 덩치를 가진 늑대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탐식의 눈’으로 훑어본 결과 개별 레벨이 40이 넘었다.
허나, 다이어 울프보다 더 성가신 건 녀석들 등 위에 있는 마인들이었다.
정확히는 마인들을 이끄는 놈이 하필이면 원탁을 책임지는 랜슬롯이란 점이지.
“정신병동 이후로 처음이니, 꽤나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구나. 투기장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걸 이번에는 반드시 마무리지어 주겠다.”
“감옥 안에 가둬 놨을 때도 실패했으면서 지금 와서 마무리는 무슨 수로 지으려고?”
‘그때는 방심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뭐 이런 건가?
아니, 무슨 중2병도 아니고.
그때 열심히 하지 왜 지금 와서 기를 쓰고 난린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패시브로 장착된 스킬이 방심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죽거리는 건 여전하구나. 거의 재능의 영역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야.”
“컨셉이 한결같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거든.”
그러니 BJ를 천직으로 삼았지.
아니었으면, 진즉에 다른 일을 찾아봤을 거다.
진혁이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무게 중심을 뒤로 옮겼다.
그러자 이태민과 유연화도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라면 소용없다. 이미 그 거점 또한 파악이 끝났으니까.”
랜슬롯, 아니 호센벨트가 입을 열었다.
“뭐?”
“설마…….”
이태민과 유연화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준비해 둔 비장의 카드.
그것은 바로, 이곳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준비해 둔 매복이었다.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물론, 이태민이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만든 마력 포탑과 크레이모어, 지뢰 등이 잔뜩 배치되어 있는 상태.
때문에 상대를 완벽하게 끌어들인 뒤 화력을 집중한다면 충분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 작전마저 간파당했다.
“……진짜 철저하네. 이것도 그 데카서스 가문의 높은 놈이 생각한 거냐?”
“그런 셈이지.”
“……그것참.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이군.”
진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끄덕.
진혁은 이태민과 유연화와 시선을 주고받은 즉시 몸을 돌려 도주를 선택했다.
“말했을 텐데? 플레이어들 쪽은 이미 우리가 전부 처리했다고?”
거기에 기상개변의 효과마저 잦아들고 있었기에, 눈보라 속으로 숨는다는 선택지 또한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진혁은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
‘다이어 울프를 상대로 도망이라니. 멍청하긴…….’
코웃음을 치던 호센벨트가 이내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도주하는 방향이 다르다.
함정을 파 둔 곳이 아닌,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함정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가능성은 희박했다.
단군 길드가 사라진 이상 놈들에게 남아 있는 카드 따위는 없었으니까.
‘성녀는 오필리아 쪽에서 시간을 벌어 줄 테고 아이스 트롤들은 와 봤자 나나 단군 길드를 전멸시킨 뒤 합류할 베르티온의 선에서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추격한다.”
“예!”
명령이 떨어지자 다이어 울프들이 지면을 박찼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숲이 끝나고 눈으로 덮인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등을 훤히 보인 채 도망가는 세 사람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다 왔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그런데.
언덕 저 너머에서 나타난 무언가를 보는 순간.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어떠한 경우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호센벨트마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