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4)
14화 탑의 고인물들 (1)
[이름: 리바린토스(클리어)종류: 미궁
난이도: B
내용: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크레타의 미궁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미로와 다양한 종류의 함정들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최초로 1층에 있는 미궁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이 일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플레이어 강진혁, 플레이어 박하나에게 각각 5,000코인이 지급됩니다!]
눈이 부실 정도의 태양빛과.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한 공기.
“후우우…….”
진혁은 눈을 감은 채 그 맛과 감촉을 음미했다.
“사, 살았다. 살았어요! 우리!”
박하나의 두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얼마나 지옥 같았던 한 달이었던가.
하루 종일 미노타우르스에게 쫓기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구역질나는 이끼와 버섯으로 끼니를 연명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그래,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기쁨을 누릴 시간도 잠시.
옆에 있던 진혁이 어깨를 꾹꾹 찔렀다.
“네?”
“코인.”
“코, 코인이라면?”
박하나가 슬슬 눈치를 봤다.
‘모르는 척하는 것 봐라?’
하긴, 토해내고 싶지 않은 양이긴 했다.
5,000코인이면 D급 수준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맞고 줄래? 그냥 줄래?”
진혁이 손바닥을 쫙 폈다.
계약상 공동 작업으로 인한 수익은 모두 사장의 몫이다.
“……주면 되잖아요.”
박하나가 시무룩한 얼굴로 코인을 넘겼다.
‘좋아.’
이걸로 1만 코인이 넘었다.
한결 두둑해진 잔고에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최초 보상 혜택이 확실히 쏠쏠하긴 하네.’
이 정도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모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나보다 많은 코인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는 없었으니까.
“브라함의 반지는 3일 안에 구해서 가져와.”
“그런! 3일은 너무 짧은……!”
“2일 줄게.”
한 번만 더 입을 뻥끗하면 하루가 된다.
그 이상이면 지금 당장 가져와야 하고.
“……어떻게든 구해 볼게요.”
박하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궁에서 탈출해 새 생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
몬스터에게서 벗어났지만, 노예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특히나 진혁처럼 살벌한 상사와 함께라면 앞날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울 게 뻔했다.
“너무 죽을 것 같은 표정 짓지 마. 명예의 전당엔 너 혼자 올라가도록 해 줄 테니까.”
진혁의 말에 박하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가능해요?”
“2인 이상의 경우엔 대표 플레이어만 업로드가 가능해.”
“…….”
박하나가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직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한 미궁.
그것을 홀로 돌파한 게 알려진다면 엄청난 관심을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동료를 잃은 것도.
한 달 동안 레벨업을 못한 것도.
이거라면 모두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디 그뿐이랴?
매스컴과 인터넷에선 유망주가 나타났다며 난리가 날 것이다.
관심 받는 걸 광적으로 좋아하는 박하나로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보상이었다.
진혁 입장에선 귀찮은 관심과 견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고.
“대표님에 대해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요?”
“왜? 그 녀석들이 마음에 걸려?”
“혹시 모르잖아요.”
놈들의 마지막 채팅을 보면, 몸이 성하지 않을 확률이 꽤 높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박하나 말대로 ‘혹시’라는 게 있으니.
“그럼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만들면 되지.”
“그 말은 설마……?”
“키보드 워리어 몇 명 없어진다고 해서 경찰이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어디까지나 사견일 뿐이지만.”
당장 탑과 관련해서 온 신경을 쏟기에도 인력이 부족할 터.
살인도 아닌 실종이라면 우선순위에서 한참이나 뒤로 밀릴 것이다.
“방법이야 알아서 생각하고.”
그런 것까진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쪽 방면은 박하나의 전문 분야였으니까.
***
박하나와 헤어진 진혁은 곧장 스타팅 포인트로 향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아.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네.
게이트 바로 앞에 거대한 전광판이 생겼으니까.
[아, 혹시 들으셨나요? 일주일 뒤, 3층 보스 몬스터 공략에는 한국을 대표로 ‘단군’ 길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오! 단군이라면, 한국 1위 길드 말씀이군요.] [예. 아무래도 미국에 이어 유럽과 일본까지 실패한 터라, 한국에 대한 기대가 쏠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쪽에서도 같이 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쪽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협력보단 각 나라별로 움직이는 실정이니까요.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나라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단 저희 힘만으로 돌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단군 길드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전광판에선 탑에 관한 일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3층 보스몬스터를 공략한다라…….
한 달 사이 많이도 올랐다.
‘와. 벌써 3층의 보스만을 남겨뒀다고? 인류는 역시!’ 이런 좋은 의미가 아니다.
조건은 90일 안에 다음 층에 도달하는 것.
다시 말해 지금 시점에서 3층은커녕 2층도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벌써 4층으로 가려고 하고 있지.’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원들이 탐나기에.
레벨을 올리고 차근차근 성장하기 보단 빠른 등반을 택한 것이다.
‘것 참……. 실력도 없으면서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럴까?’
지금이야 빠른 등반이 가능하지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간이 촉박해질 터였다.
기초는 부실한데 난이도는 올라간다?
90일이란 압박이 점점 더 거세게 다가올 것이다.
이건 게임처럼 재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최초 클리어는 모조리 내가 차지하게 될 테니. 속도 조절이야 내 입맛에 맞게 하면 되겠지.’
진혁의 시선이 다시 전광판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저기에 온통 박하나에게 관한 이야기로 도배될 터.
명예의 전당을 양보한 건 이것 때문이었다.
과도한 관심.
이건 양날의 검이다.
인정을 받아 자리를 확고히 한다면, 건드리는 놈은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초반 성장에 걸림돌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인류를 위해.
나라를 위해.
타인을 위해.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노력이 퇴색된다면.
그거야말로 다수의 횡포이자 역겨운 가식이다.
허영심 가득한 호구들이나 영웅 놀이에 환장한 머저리들은 낚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일단, 한 달 동안 일어난 정보를 좀 모아 볼까.’
인터넷을 통해서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카더라와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곳에서 양질의 정보를 얻으려면…….
글쎄.
시간과 노력이 몇 배나 들 거다.
그것보단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진혁이 [시련의 탑] 커뮤니티로 접속했다.
수많은 카테고리와 글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중에서 한 명을 찾아야 한다.
미궁에 있었을 때부터 눈여겨본 플레이어 한 명을.
‘어딨냐?’
진혁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찾는 건, ‘월리를 찾아라’와 비슷한 난이도였다.
하지만, 진혁은 가능성이 높은 곳 위주로 선별해 효율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투데이 인기글], [명예의 전당], [꿀팁 게시판]…….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인간대머리남 / 가입일자: 2007. 8. 13 / 세부정보: 비공개]커뮤니티에 가입한 일자를 보면 그 사람이 틀림없다.
인간대머리남.
역시나 있었구나.
진혁은 [시련의 탑]을 플레이할 당시 사용했던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티모대령’.
2007 7. 1에 가입한 아이디였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반가웠다.
반갑긴 한데…….
‘젠장, 대체 11년 전엔 왜 아이디를 이렇게 지었지?
멋진 것도 많잖아?’
청초(淸楚), 검황(劍皇) 무신(武神) 등등.
어디 가서 말하기도 떳떳한 것들이.
하지만 왜일까?
저때는 복슬복슬하고 상대의 속을 박박 긁어 대는 티모에게 꽂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으나.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대머리남.
저 녀석보다는 낫다는 게.
-티모대령: 안녕하세요, 인대남 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
‘과연, 답변이 오려나?’
한때 같이 다녔지만, 어쨌든 그건 과거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다.
아예 까먹었을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인간대머리남: 앜ㅋㅋㅋ 충!성! 캡틴 티모대령 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생각보다 빠르게 답변이 왔다.
‘기억하고 있나 보네.’
마지막을 본 게 7년도 지난 일인데…….
진혁은 왠지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인간대머리남: 와아. 근데 지금까지 왜 귓속말도 쪽지도 답장 안 해 주셨어요? 티모 님 찾으려고 시작의 날 이후로 계속 보냈었는데.
-티모대령: 아, 제가 한 달 동안 좀 바빴어요.
-인간대머리남: ㅋㅋㅋ,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인도에라도 있으셨던 건가?
-티모대령: 뭐, 비슷한 데 있었죠.
미궁이라고.
한 달 동안 죽어라 고생하다 왔다.
당연히 정보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었다.
최신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
인간대머리남이라면 그동안 시련의 탑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을 터.
자세한 건 전부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티모대령: 계속 귓속말로만 대화하기도 그렇고. 직접 만나 뵙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인간대머리남: 아 물론이죠! 근데, 저 불광동핵주먹 님하고도 만나기로 했는데, 셋이서 같이 봐도 되나요?
이건 또 의외의 닉네임이 튀어 나왔다.
불광동핵주먹.
그 사람도 만나기로 했다니.
‘완전히 [시련의 탑] 첫 정모 하는 느낌이겠는데?’
궁금하긴 하다.
게임 속에서만 봤던 고인물들과 실제로 만난다는 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티모대령: 시련의 탑 입구 쪽으로 와 주세요. 적당히 카페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진혁이 짧게 답했다.
***
사람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개인 카페.
진혁은 그중에서도 가장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운 초코라떼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낸 지 30분 정도 흘렀을까?
덜컹.
문이 열리며 두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들이 인간대머리남과 불광동핵주먹이라는 사실을.
상대도 자신을 알아봤는지,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인간대머리남입니다!”
170cm를 갓 넘는 키.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흰 피부를 갖고 있는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꽤나 귀엽게 생겼다. 전형적인 호감상이랄까?
게임에선 대머리 흑인에 호피무늬 팬티와 꿀벌 꼬리 그리고 나비 날개로 룩을 맞췄으면서 진짜…….
‘하. 이 녀석이 벌레 미궁에 불 지른 다음에 세스코 왔다고 뛰뛰빵빵 외치던 그놈 맞지?’
[혈압이 상승하셨습니다.] [상태 이상의 위험이 있습니다.]동의한다.
진짜로 볼이 얼얼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때, 반대편에 있던 여자도 자기소개를 했다.
“불광동핵주먹이에요.”
167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건강미가 느껴지는 가무잡잡한 피부.
긴 생머리에 운동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살집이 푸짐한 백인이 허리와 주먹에 각각 꽃무늬 튜브와 권투 글러브를 끼고 있었는데.
틀림없다.
아직까지 ‘내 주먹에 자비란 없소’를 외치던 불광동핵주먹의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으니까.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당연히 나이 좀 많고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들을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정상인들이라고? 아니. 다른 의미에서 둘 다 너무 눈에 띄잖아?’
진혁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티……모대령입니다.”
깜빡 잊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미쳐 버린 고인물일수록 현실에선 지극히 멀쩡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