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블러드 웨이포트 (2)
“이게 무슨……?”
갑작스럽게 생긴 이변.
지면을 박차려던 진혁이 그대로 우뚝 멈췄다.
저릿!저릿!저릿!
강력한 마력으로 인해 피부에 압박감이 가해진다는 것 보단 뭐랄까……?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온몸을 기어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블러드 웨이포트가 발동됩니다!]허공에 붉은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파츠츠츠…….
바닥을 따라 붉은색 육망성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안됐지만, 대마법이 발동되는 건 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다.”
미하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 얼굴에선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것 때문에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거였나.’
짜증나긴 하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다.
마력이 술식 전체를 구축하는 속도를 잘못 계산했고.
그 결과 블러드 웨이포트가 가동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모든 게 예상했던 것을 상회해 버렸다.
츠츠츠……!
대마법진의 형상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이제는 지면이 눈이 시릴 정도로 붉게 물었다.
동시에.
섬의 동쪽과 서쪽을 기점으로 엄청난 크기의 게이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넓이는 1km가 훌쩍 넘고 높이는 100m에 이르렀다.
진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굉장하긴 하네.’
목이 뻐근해지려고 한다.
단일 게이트의 규모로는 최대라고 단언할 수 있을 거다.
“크오오오!”
“키이이……!”
곧이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일렁이는 표면 사이로 무언가가 이쪽 세계로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꿀렁! 꿀렁!
표면에 거친 물결이 일어났다.
추잡한 얼굴과 손의 형상이 연신 벽을 두드렸다.
……역시 그 놈들이 오는 건가.
‘아귀(餓鬼)’라 불리는 최악의 먹성을 지닌 마수들이.
이 녀석들이 넘어온다는 건 이제 곧 혈족들도 온다는 뜻일 텐데.
진혁의 시선이 또 다른 곳으로 향했을 때였다.
그그극!
허공에 균일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색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소용돌이 속에서 두 개의 인형이 나타났다.
“후우. 귀찮은 팔라딘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네. 적절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술래잡기를 해 주는 것도 못 할 짓이라니까?”
“동감이다. 멍청한 마인 놈들을 데리고 연기를 하려니 더럽게 피곤하군.”
툴툴거리는 말투와 함께 나타난 건 오필리아와 베르티온이었다.
블러드 웨이포트의 능력으로 인해, 섬 밖에 있던 두 혈족마저 이곳으로 소환했다.
거기에.
[두 개의 세계가 연결됩니다!] [요마계로부터 ‘아귀(餓鬼)’들이 현현합니다!] [남은 시간: 5h:59m:59s]마침내 게이트를 통과해 현계로 나온 아귀들은 하나같이 그 힘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50레벨은 가볍게 넘는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크기는 2m가 안 되는 소형종이지만, 저 녀석들의 손톱은 꽤나 골치 아프겠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톱에 덧씌워진 저주는 한 번만 허용해도 피부가 썩어문드러진 종류였다.
과연, 영토 확장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카드답다.
탑의 어지간한 층은 이 병력을 상대로 하루도 버티기 힘들 테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기울어버린 전세.
아니, 이 정도 격차면 단순히 기울었다는 말로 포장하기도 힘들다.
다가오는 쓰나미 앞에 서 있는 야자나무 정도면 잘 쳐준 거겠지.
“인간 따위가 아무리 발악해 봤자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언제나 이 몸이니까.”
미하엘이 나지막이 싸움의 종언을 고했다.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수단 따위는 없기에, 미리 승리를 예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끝없이 기어 나오는 아귀들과 두 명의 혈족. 그리고 검은 날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미하엘까지 있는데.
무슨 수로 반전을 논한단 말인가?
아무리 대형 길드의 플레이어를 끌어 모아도.
갖고 있는 성유물을 쏟아 부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정확히 진혁이 원했던 그림이었다.
“알고 있었어.”
“뭐라고?”
“놀란 척 연기 좀 해 줬더니. 옳다구나 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제법 귀엽더라고. 그래서 그만 말 할 타이밍을 놓쳤지 뭐야.”
이래봬도 소싯적 유아 연극단의 어린이의 회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주연의 역할을 맡진 못했지만, 어쨌든 무대 위에도 서 봤다.
젠장. 도로에 있는 가로등 역할은 좀 아니었던 것 같긴 한데…….
진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 되도 않는 허세는 부리지 마라.”
“어이가 없네. 지금 이 인간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무 겁에 질려서 정신을 놔 버린 거 아니야 이 정도면?”
베르티온과 오필리아가 실소를 머금었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나라도 믿지 못할 거다.
주둥아리만 나불나불 대면 그 누구라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는 수밖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무리 서둘렀다곤 하더라도 블러드 웨이포트의 대마법진이 지나치게 빨리 발동했다는 게?”
미하엘이 나름대로 속도를 올린 건 인정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술식이 완성되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꼭 미하엘의 지분만이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의 일부가 살짝 빠져 있는 상태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핵심이.
“……그게 무슨 뜻이냐?”
무슨 뜻이긴.
“나 역시 이 섬의 마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장난을 좀 쳐 줬다…… 뭐, 이런 뜻이지.”
그 말을 끝으로.
[4성급 결계 ‘현세 구속(現世拘俗)’이 발동됩니다!]시스템의 억제력을 일부나마 완화시켜 주며 동시에 시전자의 마력은 증폭시켜 주는 결계가 펼쳐졌다.
반투명한 파장이 섬 전체를 순식간에 감싸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이럴 수가. 이 정도 대규모 결계를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
세 혈족의 표정이 꽤나 볼 만하게 변했다.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해. 이 카드를 쓸 수 있던 건 순전히 너희들 때문이었으니까.”
블러드 웨이포트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수준.
그 덕에 모두로부터 결계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뒷공작을 펼쳤다간 바로 들통 났을 거다.
“……확실히 우리의 방심을 역이용한 점은 놀랍군. 하지만,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네놈이 조금 더 강해졌다고 해서 이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하엘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하여간, 저 자식이 입을 쩍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는 걸 봐야 하는데.
‘어지간해선 놀라질 않는구만.’
허나 그렇게 여유 있는 가면을 쓸 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내가 아이스 트롤들을 만나 마력을 올리고 이 결계를 사용해 빌드업을 한 게 단순히 나 혼자 강해져서 너희들과 싸우려고 했다고 생각하나?”
가벼운 물음.
허나, 그 물에 대한 대답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건 진혁만이 아니었다.
-탑의 ‘억제력’을 완화시킨다.
이 말은, 단순히 시전자의 마력을 올려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하엘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평정심이 깨졌다.
“설마…….”
“맞아. 사실, 너희들한테 볼일이 있는 게 나만은 아니거든.”
아주 이를 갈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반지 속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분이 말이지.
진혁이 ‘브라함의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
반지에 갇혀 있던 진조가 해방되었다.
***
170cm가 넘는 신장.
허리까지 닿는 은발과 붉은 눈동자는 가장 고고한 피가 흐르는 뱀파이어 가문의 순수 혈통임을 증명했다.
“…….”
엘리스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혈족들을 향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이 공간을 얽매어 왔다.
아무리 억제력이 완화되고 마력을 상승시켰다곤 해도 겨우 본신의 20%를 재현한 수준.
그런데도.
대체 뭐란 말이냐. 이 터무니없는 수준의 힘은?
마치,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말해 주는 것처럼…….
엘리스는 스스로의 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렇게 오랫동안 유적에 있었으면서도 이런 힘을 유지하고 있다니…….”
“미, 믿기지가 않아.”
덜덜덜!
오필리아와 베르티온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현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미하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힘을 해방시켜도…… 계약자를 죽이지 않는다는 건가.”
설마, 진혁이 엘리스의 봉인을 풀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힘을 극단적으로 억제하거나 어딘가 깊숙한 곳에 가둬 놔야 정상이지.
엘리스에게 힘을 실어 줬다간, 그 즉시 계약자를 죽이고 완전한 자유를 되찾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미하엘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뜻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 자존심 높은 아타락시아 가문의 가주가 인간과 신뢰 관계를 쌓다니.
만약 이 사실을 나머지 가문들에게 말했다면, 그 누구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엘리스의 입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엘리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다.”
밤을 지배하는 위대한 6가문.
그리고 그 가문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
가장 높은 곳을 부유하며, 그 아래 모든 것을 멸시하는 자.
그 모든 것이 엘리스를 가리키는 수식언이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 유배되어 보낸 세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걸 잃었다.”
밤하늘을 비추는 별과 달의 아름다움도.
바람의 부드러운 촉감과 풀의 싱그러움도.
모두 너무나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자신은 진혁 덕분에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벨루스와 혈족들은 회랑에 갇혀있었다.
어둠속에서 여전히 자유를 갈망한 채. 자신이 되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기만으로 음해하던 시간은 모두 끝났다.”
그렇다. 이것은 통보다.
자신을 배신한 나머지 다섯 가문과 그들을 따르는 놈들에게 해야만 하는 통보.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이 범한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스가 아주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쿠쿠쿠쿠쿠!
이미 영하 50도가 가볍게 넘었지만 지금 엘리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
그동안 쌓여 있던 분노가 얼마나 무거운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
‘괴로운 거겠지.’
진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설정상으로만 알고 있던 게임 속 데이터 쪼가리와는 다르다.
계약에 의한 감정 공유로 인해 이 순간에도 엘리스로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으니까.
‘기분이 그리 좋진 않네.’
이 말은 진심이다.
언제나 투덜대긴 했으나, 항상 옆에서 있어 줬던 동료.
그렇기에.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진혁은 이 상황이 편치 않았다.
스릉!
척!
한 쌍의 검이 앞으로 뻗었다.
‘별의 가호’와 ‘검의 무덤’이 동시에 개방되며, 각각의 검들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꽤 처절할 것 같다.
둘 중에 한 쪽은 오늘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