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짧은 쉼표 (3)
바빴던 손놀림이 조금 뜸해졌다.
대부분 배를 채웠기에, 추가적인 음식 주문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으드득!
진혁이 기지개를 켜며 굳었던 몸을 풀었다.
“이 정도 했으면 더 이상 만들 필요는 없겠지.”
이제는 슬슬 허기를 달랠 시간이다.
겸사겸사 고생한 동료들에게 말도 좀 걸어야 했고.
트롤들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형!”
“오빠!”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이태민과 유연화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 이쪽으로 오세요.”
테레사도 몸을 움직여 자리 한켠을 마련해 줬다.
다들 무사한 걸 보니 다행이다.
딱 하나.
“…….”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찰거머리 녀석을 제외한다면.
“야. 나 왔어. 응? 나 왔다니까?”
“…….”
여전히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이건 뭐, 유령도 아니고.
녀석의 머릿속에선 아예 이쪽의 존재감 자체를 지워 버린 듯싶었다.
“중화 쪽 애들한테 가서 쌩고생하게 시켜서 그런 거야? 아니면 놈들한테 내가 적어 둔 대사를 읊게 만들어서 그런 거야?”
“……이 망할……!”
천유성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이제야 반응이 온다.
“사내자식이 그런 거 가지고 삐지고 그러냐? 덕분에 일이 순탄하게 잘 풀렸으니 된 거지.”
“내가 얼마나 쪽팔림을 무릅쓰고 그 짓거리를 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두 번 다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대사를 한 게 어떤 건지 알기는 하냔 말이다!”
천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슴이 위아래로 격하게 들썩였다.
몇몇 트롤들이 깜짝 놀라 돌아볼 정도였으니, 꽤나 흥분을 하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말이다.
“응. 잘 알고 있지.”
진혁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대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쪽팔림? 부끄러움? 수치플?
그런 거야 네이버 클라우드 공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채워 둔 게 바로 나다.
‘석양이 진다’와 티모 대령을 시작으로 수도 없이 많은 흑역사를 장식한 게 바로 나란 말이다.
막말로 바바리코트 하나와 시가를 입에 문 채 탑을 누볐던 적도 있는데, 대체 그 무엇이 두려울까?
‘젠장.’
어쩐지 말하고 나니 슬퍼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진혁은 애써 그 감정을 접어 뒀다.
“……그래. 널 상대로 자존심이나 명예를 언급한 내가 잘못이다. 내가 멍청했지.”
“엣헴.”
“칭찬……하는 거 아니다!”
천유성이 어금니를 갈았다.
매번 당하기만 하니 속에 쌓이는 게 많을 수밖에.
역시. 가끔은 좀 풀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내 복지는 가급적 지양할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쓸 땐 써야겠지.’
명색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사외이사 중 하나인데, 회사에 적대심을 품게 만들어선 곤란했으니까.
“후우. 알겠어. 그동안 고생했으니 네가 원하는 거 하나 정돈 들어줄게. 말해 봐. 뭘 원하는데?”
“원하는 거라고?”
“그래.”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유성이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이 어느새 앞으로 뻗어 있었다.
칼끝이 시리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당연한 걸 뭘 묻는 거냐? 지금 당장 무기를 뽑아라.”
“야 이 무식한 놈아. 조금 전까지 치고받고 싸우느라 죽을 뻔했는데, 싸우긴 뭘 또 싸워? 게다가 네가 원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날 이기는 거 아니었어?”
주위를 좀 둘러봐라.
여기 많은 ‘사람’이 어디 있나?
죄다 트롤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누가 이기든 상처뿐인 싸움밖에 되질 않는다.
영상으로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천유성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거다.
‘예전 무도회에서 싸웠던 것처럼. 그런 적절한 무대와 관중들이 갖춰지는 게 가장 선호하는 거겠지.’
진혁은 천유성의 그런 심리를 파고들었다.
천유성이 검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럼, 뭘 제안하는 거냐?”
“대결이라는 게 꼭 1:1로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잖아?”
지금이 로마시대 콜로세움도 아니고.
꼭 무식하게 칼부림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보자는 건가?”
“그래. 예를 들어…… 아! 사냥 대결이 좋겠네. 어차피 내일도 밥을 먹어야 하는데, 더 강하고 덩치가 큰 놈을 잡는 사람이 승리하는 걸로. 어때?”
“……좋다. 이번야말로 내가 더 위에 있다는 걸 증명해 주마.”
천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이 의욕으로 활활 타오르는 게,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유성이 형. 어차피 또 고생만 하다가 질 것 같은데,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요?”
“맞아. 오빠는 진혁 오빠한테 안 돼.”
어느새 말을 놓았는지 이태민과 유연화가 천유성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유성 씨. 힘내세요.”
반면, 테레사는 주먹을 꼭 쥔 채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훈훈한 광경을 보니 마음이 다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진혁은 입꼬리를 위로 올린 채 아빠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7계층에서 먹을 만하면서 강한 사냥감은 주로 바다 속에 있어. 해수종(海水種)들이 잡기는 어렵지만, 맛은 끝내주거든.”
해룡 타이텔로스.
10m가 넘는 크기에, 매우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장어처럼 탱탱하고 쫄깃한 육질로 인해 고인물들 사이에선 꽤나 사랑받는 식재료였다.
“훈수 따윈 필요 없다. 그 정도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아무렴. 위대하신 검성께서 모르시는 게 있으시겠어.”
“그래. 계속 웃어대라. 가장 큰 해룡을 잡는 건 바로 나니까.”
진혁이 쓴웃음을 짓는 사이 천유성이 스킬을 발동했다.
[천유성이 Lv7 ‘호신강기(護身剛氣)’를 발동합니다!]은은한 빛이 전신을 감쌌다.
보통 ‘호신강기’는 보통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천유성이 익힌 호신강기는 특유의 내공으로 인해 수압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거나 소량의 산소를 저장하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그렇게 물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천유성이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파도가 잠시 넘실거렸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천유성은 순식간에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진혁 씨는 안 들어갈 건가요?”
지켜보던 테레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냥 대결에 있어 시간은 생명.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좋은 사냥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지형을 선점할 수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만약…….
대결에 응한다면 말이지.
“음. 그냥 이 대결은 저 녀석이 이길 걸로 하죠.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제가 졌다고요.”
이 추위에 얼어 죽을 일이 있나? 저길 들어가게?
특히나 짠물에서 바다 괴물과 목숨 걸고 싸우는 건 결단코 사양이다.
“서, 설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요? 천유성 씨 혼자 사냥하게 만들려고?”
“마침 바다장어가 먹고 싶었거든요. 원기 회복하는 덴 그것만 한 게 없죠. 겸사겸사 저 녀석도 승부에서 이겼으니 이거야 말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그런…… 찜찜한 승리를 좋아할 리는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 값진 교훈을 얻었으니 오히려 저 녀석이 저에게 감사를 해야죠. 크흠. 그나저나 물이 정말 깊고 시퍼렇네. 보는 것만으로 뼈가 다 얼어붙는 느낌이야.”
진혁이 호수를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그런 진혁을 바라보는 모두의 얼굴은 경악과 충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역시. 형은……. 아니다. 이게 형답지.
-유성 오빠 바보. 그러게 내가 대결 따윈 하지 좀 말라니까. 왜 맨날 박살나면서도 포기를 할 줄 모르는 거야?
-천유성 씨. 힘내세요. 저도 몇 번 당해 봤어요. 그냥…… 포기하면 편해지더라고요.
-인간이란 종족이 불쌍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로군. 저 정도면 뱀파이어도 울고 갈 정도겠어.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딱 한 가지만큼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살아 있는 악마가 현현해 있다면 바로 눈앞에 있을 거라고.
“따끈따끈 장어구이~ 맛있는 장어구이~ 일요일엔 검성이 요리사.”
천유성이 열심히 사냥감을 가지고 오는 동안, 진혁은 뜨거운 모닥불 옆에 앉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얼굴로 몸을 녹였다.
***
시련의 탑 커뮤니티는 여느 때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5층 ‘시계태엽 미궁’ 공략 영상.] [브레밍 길드의 꽃미남 랭커와 함께하는 탑의 역사 강의] [#랭킹1위 #올림포스길드 #세계7대길드 #보라색등급_성유물]자극적인 제목.
도발적인 썸네일.
위험한 연관 검색어.
조회수를 올리려고 혈안이 된 듯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공급이 무지막지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극적인 맛이 필수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단군’ 길드의 주력 중 하나인 백진호 역시 이 치열한 세계에서 돋보일 수 있는 비장의 영상을 준비해 뒀다.
바로, 7층에 숨겨진 히든 네임드 몬스터와의 전투를 치른 영상을.
‘아이스 드레이크’ 레이드는 확실히 치가 떨릴 정도로 치열했지만, 그래도 단군 길드의 1공격대는 사냥에 성공했다.
이제 드레이크의 하트를 섭취한다면 냉기 속성에 대한 저항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을 터.
“7층을 최초로 돌파하는 건 바로 우리다. 드디어 무관의 왕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겠군.”
백진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기대와 흥분으로 인해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하하. 죽을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우리니까 성공한 거지. 다른 길드였으면 드레이크 근처도 못 가고 전멸했을걸?”
“당연하지. 애초에 저기가 있는 줄도 모르는 놈들이 99%일 거니까.”
나머지 공대원들도 박수를 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반응은 어때?”
백진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여러 개의 스크린을 띄워 놓은 남자 한 명이 피식 웃었다.
“형도 참 걱정도 많다. 그놈의 노파심은 대체 어디까지 가야 없어지는 거야?”
“잔소리 그만 하고 말이나 해. 좋아, 나빠?”
“두 말하면 입 아프지. 완전히 떡상 중이야.”
단군 길드와 히든 몬스터라는 재료가 만났다.
별다른 어그로를 끌지 않아도 당연히 최상위 랭킹에 올라갈 수밖에.
실제로 커뮤니티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폭발하고 있었다.
-야스오+요네: 와. 7층에 저런 곳이 있었어?
-덮쳐보니 타노스: 나도 처음 봄. 히든 루트인가 본데, 역시 단군은 단군이네.
-Line9985: 공격대 합 맞춘 거 봐라. 수백 명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감탄밖에 안 나온다.
-모찌떡 웰시코기: ㅇㅈ, 진짜. 구독자가 많은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임.
대박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 외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10초에 수십 개씩 달리는 댓글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좋아.”
그 화려한 지표를 보고서야 백진호도 비로소 딱딱했던 표정을 풀었다.
이쯤 나오면 대박이 안 터지래야 안 터질 수가 없겠지.
“그나저나 장은석하고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거냐?”
“몇 시간 전부터 끊겼어. 아마 어디 동굴이나 침엽수림 같은 데 들어가서 그런 걸 거야. 아니면 눈보라가 몰려왔다든가. 형도 알다시피 7층이 워낙 통신이 안 되는 곳이 많잖아?”
“흠…….”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녀석도 어디 가서 쉽게 당할 놈은 아니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백진호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시련의 탑 커뮤니티에 새로운 영상 하나가 올라갔다.
모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업데이트도 아니고 무려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영상 아닌가?
“형!”
“알아! 나도 보고 있다고!”
단숨에 바뀌어 버린 1위의 자리.
시청자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향해 미친 듯이 이동하는 게 체감되었다.
“빌어먹을! 대체! 대체 어떤 놈이 하필 이런 타이밍에 고춧가루를 뿌린 거야!”
백진호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어진 상태창을 보는 순간.
“아…….”
[이 영상의 소유권자는 한국의 플레이어. 강진혁입니다.]백진호는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