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세력 선택 (3)
“끄응. 간만에 거주지에서 벗어나 보네. 너무 지루했어, 정말로.”
“침입자 덕분에 몸을 풀게 됐으니 다행이군.”
“으음. 이게 얼마만의 바깥 공기지?”
“다들…… 너무 시끄러워. 좀 조용히 좀 해.”
순진무구한 소녀의 모습을 한 바람의 정령수, ‘실피드’.
작은 골렘의 형태를 한 흙의 정령수, ‘노움’.
성숙한 여인의 형태를 한 물의 정령수, ‘운디네’.
만사가 귀찮은 소년의 형태를 한 빛의 정령수, ‘위스프’.
네 속성의 정령수들이 각각의 문을 통해 나타났다.
모두들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모처럼의 나들이에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물론, 여기서 신이 났다는 건 침입자를 잔혹하게 처리하며 놀기 위함이었지만.
그런데.
“응?”
두 번째로 나타난 바람의 정령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의 눈앞에 붉은색 도마뱀이 머리를 땅에 박은 자세로 뒷짐을 지고 있지 않은가?
“끄으으응…….”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채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
사납기로 유명한 살라맨더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네가 그러고 있어?”
흙의 정령수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가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더니 얘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정신 차려 살라맨더! 정령수의 긍지는 어디다 팔아먹고 그런 한심한 자세를 하고 있어!”
“다들. 조용히 좀 해.”
나머지 정령수들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
“모오오기!”
고구마가 피어를 발동했다.
통로를 따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굉음.
용언(龍言)에 버금가는 마력이 공간을 장악했다.
“꺄아악!”
“헉!”
“이, 이건……!”
오싹하고.
정령수들의 낯빛이 삽시간에 흙색으로 변했다.
동시에 왜 살라맨더가 저토록 겁을 먹고 꼬리를 말아버렸는지 이해가 됐다.
완전히 성체가 된 환수들과 정령수들조차도 감히 고대종의 영역엔 접근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고대종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고대룡’ 앞에서 어느 누가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자신들은 아직 성체가 되지도 못한 중급 정령수에 불과한 상황.
싸움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해? 저기 불도마뱀 옆에 자리 비어 있는데? 선착순으로 가서 박지 않고?”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진혁이 고개를 까딱였다.
어째서 인간 따위가 고대종을 부리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게 아니었다.
달려야 한다.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머리를 박아야 한다.
그래야만 저 무지막지한 고대종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쿵! 쿵! 쿵! 쿵!
곧이어 다섯 마리의 정령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5대 원소를 상징하는 중급 정령수.
그런 자존심 높은 놈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걸 보게 되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하지만, 이건 꿈이나 상상이 아닌 빌어먹을 현실이었다.
“잘했어. 우리 고구마.”
진혁이 고구마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긁어 주었다.
“모기!”
고구마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손길을 즐겼다.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드는 게 꽤나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그럼 다음은…….
저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문제겠군.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고구마는 우리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사외이사 중 하나야.”
정확히는 영업이사의 포지션을 맡고 있지.
“마침, 우리 회사가 하반기 공채 시즌이라 인턴을 뽑고 있는데, 어떻게. 관심들 좀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거절은 죽음이다.
불합격을 해도 죽음이고.
“꼬, 꼭 들어가고 싶어요!”
“나도 나도!”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주어진 임무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수행해!”
“고대종 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야죠. 헤헤.”
“조용히 좀 말해 주면 좋겠어. 하지만 나도 할래.”
정령수들이 앞다퉈 목소리를 높였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리는 존재들답게 생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음. 모두가 우리 회사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갖는 걸 보니 뿌듯하지만, 사실 내가 입만 번드르르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다들 이해 좀 해 줬으면 좋겠어.”
화르륵!
진혁의 손가락 끝에 밝은 불꽃이 일렁였다.
강제적인 맹세를 강요하는 힘.
바로 ‘염혼의 낙인’이었다.
염혼의 낙인이 각인되자, 정령수들의 몸이 가늘게 움찔거렸다.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굴종을 맹세합니다.]‘완전히 길에 떨어진 황금을 줍는 기분이네.’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고동쳤다.
과거에는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중급 정령수 길들이기였다. 워낙에 강한 데다 다루기 까다로운 놈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고대종인 고구마의 존재로 인해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탑의 정상을 보기 위한 길.
비록, 인물이란 변수들로 인해 난이도가 올라갔지만, 이런 식의 좋은 변수들은 그 부분을 상쇄시켜 버렸다.
아무리 까다로워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지.’
지금의 페이스대로라면, 과거의 기록을 뛰어넘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것도 예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띠링!
다수의 상태창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공적치 5,000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공적치 순위]1위: 강진혁(5,100P)
2위: 남궁천(450P)
3위: 천유성(190P)
4위: 마리아(150P)
5위: 패트릭(130P)
6위: 요시오(125P)
…….
2위와의 격차가 아예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긴, 다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상황일 테니까.
진혁이 천천히 순위를 훑었다.
남궁천이 상위권인 거야 당연한 거였고.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천유성이 날뛸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엘리스야 만사가 귀찮으니 함정들을 통과하는 덴 관심 없을 거다. 그러니 순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을 수밖에.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방어력 너프로 인한 패널티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겠지.’
스치면 중상이고 적중 시 사망인데,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할지라도 선뜻 함정들 속으로 들어오긴 어려울 거다.
그런 심리적인 틈을 이용해 이런 식으로 꿀을 빨고 있는 거긴 하지만, 이런 교착 상황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기껏해야 몇 십 분 뒤엔 마음을 다잡고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그건 곤란하다.
혹시라도 플레이어들이 대량으로 죽기라도 했다간 모든 비난의 화살이 25층을 고른 자신에게 향할 터.
호승심 넘치는 바보들이 무모한 도전을 하기 전에 어서 ‘이다음 단계의 일’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
진혁이 공적치 창을 닫았다.
‘그나저나 슬슬 관심들을 보일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수의 세력들이 당신에게 큰 관심을 보입니다!] [‘제국’에서 당신의 압도적인 활약에 찬사를 보냅니다.] [‘무림’에서 당신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정령계’에서 ‘고대종 고구마’의 존재를 흥미롭게 여깁니다.] [총 13개의 중소 세력들이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제3 세력’에서 매우 강한 호감을 표현합니다.]각 세력의 간접 메시지가 쏟아졌다.
제국과 무림 그리고 정령계.
예상했던 대로 굵직한 놈들이 다수 들어왔다.
거기에 자잘한 중소 세력들까지 합치면 꽤나 많은 수의 세력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긴 한 모양이다.
‘하긴, 이걸 보고도 관심이 없다면 그게 미친 거지.’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불리한 상황에서도 활로를 찾아내는 능력.
무엇보다 전체적인 판을 짜는 치밀함까지.
그야말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안달이 난 세력들이 원하는 모든 장점들을 전부 다 갖고 있지 않은가?
놈들의 입장에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진혁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무림도 제국도 정령계도 아니었다.
제3 세력.
설마, 이 녀석들까지 접촉을 해 올 줄이야.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의외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설계하는 게 가능해 질지도 모르겠다.
***
“허허…….”
칼라디움 왕국의 소드 마스터, 펜하이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관심 있는 인물이 탑의 25층을 골랐을 때만 해도 연회장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달아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지닌 실력으론 25층에 있는 미궁을 결코 돌파하지 못할 테니까.
특히, 모든 방어력을 무시해 버리는 디버프 효과는 그 대상이 소드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족쇄였다.
그런데.
‘……두렵지 않다는 말인가.’
모두가 당황하는 와중에도 여유 있게 웃는 모습은.
마치, 이 층계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고른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듯했다.
우연이 아닌 확신.
잠시 뒤, 펜하이머의 기대감은 현실이 되었다.
미궁의 입구에 있는 히든 루트를 발견하고 그 뒤에 나타난 5대 원소의 문.
그리고 거기서 어떤 정령수와의 전투를 선택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설마……. 5대 정령들 전부와의 싸움을 선택할 줄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펜하이머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나하나가 네임드급인 정령수들을 동시에 다섯이나 상대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럴 수가…….”
“저, 지독한 정령 놈들이 꼬리를 말다니.”
“그보다 고대종을 길드인 플레이어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봐. 우리 쪽에서도 아직 고대종을 확보한 전례가 없거늘.”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지?
2층에 있던 거주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탑의 중층부에서도 쉽게 구경하기 힘든 최강의 생명체.
그걸 본 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일일진대, 심지어 상대는 그런 고대종을 완전하게 수족처럼 부리고 있었다.
지고지순한 고대종이 주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은, 아예 상상해본 적 없는 장면 그 자체였다.
무림을 대표해 온 모용세가의 장문인. 모용수 또한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이었어.’
진혁에 관해서는 5층 엘프의 숲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에 관한 부분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무력뿐 아니라, 탑에 대한 지식까지 규격 외라는 말인가.’
어쩌면…….
단순히 중층의 세력구도뿐 아니라 탑 전체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충격마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응?”
“뭐, 뭐야 저건?”
“자…… 잠깐만!”
이어지는 장면에…….
모든 거주자들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자. 시작해!”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땅!”
“불!”
“바람!”
“물!”
“빛!”
고함 소리와 함께.
정령수들이 사방에서 몸을 날리며, 한 곳으로 모였다.
공포와 협박으로 철저하게 찍어 눌렀기에, 실수나 어색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크으!’
완벽에 가까운 동작.
가슴이 웅장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다섯 가지 힘이 하나로 모이면!”
정령수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정령 특전대!”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다섯 정령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오오오!”
진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구마도 두 눈을 반짝이며, ‘모기. 모기’를 연발했다.
“바로 그거야. 전원 인턴 합격!”
짝!짝!짝!짝!짝!
진혁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우레와 같은 갈채를 보냈다.
이건 불합격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 누구보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어울리는 등장 신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진혁이 감탄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제국’에서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무림’에서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두 세력의 대표들이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낚인 건 둘.
걸렸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다.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