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각성 테스트 (1)
다음 날, 세 사람은 각성자 협회가 위치한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50층짜리 초고층 빌딩이었다.
진혁이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건물의 끝이 구름에 닿아 있는 게 보였다.
“이게 건축계열 고유 능력으로 시공했다는 그건가?”
말로 듣긴 했지만, 진짜 엄청나네. 이걸 한 달 만에 완공했다 이거잖아?
“각성자 협회가 있는 본사예요. 테스트도 주관하고 시련의 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이곳에서 처리하고 있죠.”
“와.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3주나 됐네. 나도 시험 치를 때 엄청 심장 떨렸는데.”
“에에, 농담이겠지? 킹콩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거면서 무슨. 그 왜. 시험관도 누나 보고 쫄았었잖아?”
“어머나. 그거 나한테 한 말이니 태민아?”
유연화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 꼬리는 그대로다.
그 순간.
오싹하고.
진혁과 이태민의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건…….
미노타우르스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압박감이다.
아마 착각이겠지.
……아마도.
“…….”
이태민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맞다. 형도 이번에 등급 나오면 저희 셋이 같은 길드에 들어가는 게 어때요?”
“길드?”
갑자기 웬 길드?
“‘단군’이나 ‘싸울아비’가 신입들 잘 안 받기는 하는데, 형이나 저희 정도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거예요. 솔직히 15층부터는 힐러나 버프, 디버프 계열 없으면 공략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아, 그런 의미였나.
하긴, 예전에도 소수로 미궁이나 유적을 들어갔다 전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위로 갈수록 숫자상의 한계에 부딪힐 터.
두 사람은 강한 조력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쯧쯧.’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니까 탑을 오르는 데 실패한 거 아니야.’
경험치. 아이템. 히든 피스.
솔플로 다 해먹기도 바쁜데, 동료들과 함께한다면 그걸 다 나눠먹어야 하잖아?
굳이 함께한다면 이용하다가 버려도 되는 타인들이면 족했다.
“이쯤에서 확실히 해 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어느 길드에 소속될 생각이 없어.”
얽매이는 것 따윈 딱 질색이다.
특히나 상위 길드에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경우라면 더욱더.
“그럼. 형이랑 저랑 연화 누나, 이렇게 셋이서 가는 건가요?”
“아니, 그렇게 해도 효율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야.”
셋이서 나누는 것도 아깝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 따로 움직이는 걸 원칙으로 하되, 특정 구간에서만 함께 하자. 너희 둘이야 호흡 맞춰 온 게 있을 테니 그것까지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혼자가 더 편해.”
그래, 이게 베스트다.
“세, 셋도 힘든데, 그마저도 따로 간다고?”
“형.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태민과 유연화는 시련의 탑을 20층까지 올라가 본 고인물들이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저층이라도 솔플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걸.
하지만 그런 두 사람조차 모르는 게 있었다.
고인물 사이에서도 급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떠나 버린 망겜을 홀로 떠돌다, 결국엔 끝을 봐 버린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일단 테스트부터 치르자. 사람 더 많아지기 전에 슬슬 가봐야지.”
진혁은 피식 웃으며 건물로 향했다.
“어……? 어어.”
“그……래야죠.”
그 뒤를 벙 찐 표정의 두 사람이 따라왔다.
***
“자자, 오신 분들은 번호표 뽑고 차례를 기다려 주세요!”
“D-09 그룹 테스트가 곧 있을 예정이오니 해당하시는 분들은 시험장으로 이동해 주십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테스트를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탑이 지닌 유혹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킨 걸 보면 말이다.
“제발, 제발 좋은 등급 좀 떠라. D급 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E급이라도 제발.”
“10위권 길드만 들어갈 수 있어도 인생이 피는 건데…….”
“난 각성자 협회랑 직계약 맺고 싶어. 좋잖아? 공무원증 딱 목에 달고 당당하게.”
F급 이하의 판정을 받으면, 상위 길드의 눈도장은커녕 2층으로 갈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그렇기에 모두들 로또 당첨을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은.
자신만은 남들과 다르기를.
물론.
그들을 바라보는 진혁의 시선은 싸늘했다.
‘저런 놈들은 탑에 들어가도 한 달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기껏해야 현실과 타협한 채 그 층에 머무는 낙오자가 될 게 뻔했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분수를 깨닫고 얌전히 있으면 다행이다.
괜히 어설프게 나서다가 발목이나 잡으면 그게 더 골치 아팠으니까.
시선을 돌린 진혁이 번호표를 뽑았다.
[E-01 그룹]‘일찍 온 보람이 있군.’
현재 D그룹이 절반 정도 진행됐으니.
대충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다.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기자들이 평소보다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이태민이 주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림잡아도 수십 명에 이르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온몸을 달싹거리는 모습이 뭐 마려운 강아지들 같았다.
“그러게. 좀 이상하긴 하네.”
유연화도 긍정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기껏해야 네다섯 명이면 모를까.
대형 길드의 유망주가 오지 않은 한 이 정도 규모의 기자단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뭔가 알려지지 않은 이벤트라도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웅성웅성!
갑자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박하나다! 검은 까마귀 길드의 박하나야!”
박하나.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명예의 전당을 통해 매스컴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루키를.
“와. 저 여자가 박하나야? 첫날에 미궁 들어가서 살아 나온?”
“……지린다. 뷰튜브 연속으로 돌려 봤는데, 설마 오늘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 옆엔 박하진이야. 얼마 전에 중국 쪽하고도 거래를 했다던데.”
하나같이 쟁쟁한 안면들.
게다가 박하나와 박하진 외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다.
“세상에나, 싸울아비 길드의 김기태도 있어!”
촤촤촤촤촤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세계 7대 길드 중 하나이자 국내 2위 길드인 싸울아비.
그리고 그곳의 간부급인 랭커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마!”
“정면 샷으로. 세 사람 같이 있는 구도로 찍어!”
기자들이 열광할 만했다.
아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특종은 1면을 장식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
“후우.”
190cm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
김기태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뭐 이리 사람들이 이렇게 바글바글해? 이젠 개나 소나 다 테스트를 받는 거야 뭐야?”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 왜, 요즘 세상에선 탑이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기회라고 믿는 놈들이 부쩍 늘었지 않습니까?”
박하진이 즉각 대답했다.
“하여간 벌레들이 꿀은 또 빨아 보고 싶어가지고. 백날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다는 걸 모르나?”
하긴, 알았으면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았겠지.
분수를 알고 찌그러져 살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잘해라. 일부러 여기까지 와 준 것도 다 너희 남매 때문인데, 실수했다간…… 알지?”
“무, 물론입니다.”
“걱정…… 마세요. 잘할게요.”
박하진과 박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잡은 황금 동아줄이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흥행에 성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미 계획은 완벽하게 세워 둔 상태였다.
“시간 없으니까 줄 서 있는 사람들 대충 치워. 기자들도 기다리고 있는데 몇 시간이나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순 없지.”
박하진이 옆에 있는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길 좀 틉시다.”
“어이, 사람 지나가는 거 안 보여? 좌우로 밀착해. 좌우로!”
“빨리빨리 움직여라. 뭉그적거리다가 얻어터지지 말고.”
검은 까마귀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줄을 헤집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길이 갈라졌다.
거기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큼!”
“인적 사항 정리해 둔 서류를 어디에 뒀더라…….”
심지어 각성자 협회 관계자들조차도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외면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상위 길드의 간판이 법이나 규칙보다 위에 있다는.
그런데.
덩치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세 사람이 비키지 않고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정확히는 만류하는 두 사람과 버티고 있는 한 사람이.
특히나 버티고 있는 놈은 느긋하게 생수병에 든 얼음물을 꼴깍이고 있었다.
“넌 뭐야? 비키라는 말 못 들었어?”
“비키라고? 내가 왜?”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진심으로.
번호표 뽑아서 순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비키라는 걸까?
방금 왔으면 F그룹에 배정 받았을 텐데?
‘아, 설마…….’
무언가 생각난 듯 진혁이 번호표를 덩치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게 미국에서 쓰는 알파벳이라고 하는 거야…… A로 시작해서 B, C, D. 다음엔 E야. 그다음엔 F고. 모르면 이참에 외워 둬.”
그래, 순서를 모를 수도 있지.
보통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데.
가슴이 뭉클해진다.
‘안쓰럽네.’
힘겨운 가정사라도 있는 건가?
“누,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덩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풉!”
“이건 뭐, 눈높이 교육인가.”
여지없는 농락에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지켜보던 김기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서진 않았다.
마치 이 정도 일쯤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처럼.
결국.
“쳇, 병신 같은 새끼들. 저리 비켜!”
뒤에 있던 박하진이 직접 나섰다.
“뭐 하는 놈인진 모르겠다만, 지금 실수하는 거야.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얌전히 꺼져라. 아주 갈아 마셔 버리기 전에.”
협박 한번 살벌하게 한다.
‘이게 박하나가 말했던 그 오빠란 놈이란 말이지?’
눈빛을 보니 실제로 사람 하나 죽이는 데 망설임도 없을 것 같고.
재밌네.
어떻게 된 게 남매가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건 어쩜 그리 똑같을까.
“다 좋은데 조금 떨어져서 말하면 안 될까? 입 냄새 때문에 눈이 다 따갑거든.”
진혁이 손으로 코를 잡은 채 얼굴을 찌푸렸다.
“혀, 형?”
이태민이 깜짝 놀라 진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빠! 왜 그래?”
놀란 건 유연화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내가 제대로 들은 것 맞지? 지금 저 사람. 박하진한테…….”
“죽으려고 작정을 했네. 제정신인가?”
지켜보던 사람들조차도 입을 쩍 벌렸다.
물론.
가장 기가 막힌 건 당사자인 박하진이었다.
“너…… 지금 뭐……라고?”
박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목 위에 달린 건 머리가 아니라 만두냐? 숨 쉬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오염되는 것 같으니까, 이빨을 위아래로 꼬옥 포개 달란 뜻이야.”
진혁이 생긋 웃으며 했던 말을 조금 더 예쁘게 포장했다.
똥 위에 리본까지 달아 준 건 덤이다.
“이 새끼가. 야. 이거 감당할 수 있어? 지금 보는 눈이 많다고 손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면…….”
“에이, 설마. 싸울아비 길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뭐가 무서워서?”
“싸, 싸울아비 길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맞잖아? 한국에서 잘 나가는 게 싸울아비지. 너희들이냐? 그리고.”
어깨를 으쓱한 진혁이 말을 이었다.
“이름이 검은 까마귀가 뭐냐? 검은 까마귀가?”
흰 까마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어디 모자란 거냐?”
아니면 시인이나 문학소년 같은 건가?
거기선 중의적 표현 같은 거 허용하던데.
뭐가 됐든, 작명 센스 한번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이 벌레 같은 새끼가! 아주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박하진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손을 검으로 뻗었다.
분명…….
“니가 먼저 시작했다?”
순간, 공기가 급변했다.
전신에 소름이 끼치도록 차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