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세력 선택 (4)
[‘무림’ 쪽 대화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진혁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근엄하게 생긴 백발의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림인도 간만에 보는군.’
진혁이 흥미롭다는 듯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 역시 온갖 감정이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갈무리한 채 본론을 꺼냈다.
“나는 모용세가의 장문인, 모용수라고 한다.”
이야 모용세가.
거기 좋지.
그래도 오대 세가 중 하나잖아?
“무림을 대표하여 그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마. 우리와 함께한다면 특별히 그대가 지금까지 했던 멍청한 일을 모두 잊어…….”
[대화를 중단하셨습니다.]아무래도 이쪽 친구는 아직까지도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여전히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영 띠껍다고 해야 하나?
[‘무림’ 쪽에서 재차 대화 요청을 시도합니다.] [거절합니다.] [‘무림’ 쪽……] [차단합니다.]깔끔하게 해결됐다.
좋아.
이제 다음은…….
진혁이 ‘제국’에서 온 대화 요청을 수락했다.
“허허. 처음 뵙겠습니다. 본인은 제국에 소속된 ‘칼라디움 왕국’의 펜하이머라고 합니다.”
지긋해 보이는 나이.
허나 음성에서 흘러나와는 마력은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과연…….
제국이 자랑하는 100인의 소드 마스터 중 하나라는 건가.
과거에도 이 영감님하고는 붙어 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니 기분이 묘해졌다.
“지금까지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인상적인 모습 잘 봤습니다. 이미 많은 세력들이 말해서 식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감탄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펜하이머의 너털웃음이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그래도 이 영감님은 계약을 하는 법을 안다.
어떻게 해야 상대가 호감을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가 편안하게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지, 전부.
당연히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아까와는 달리 부드러워졌다.
“강진혁입니다. 제국에 관한 명성에 대해선 저도 관리자님들을 통해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하하! 별 말씀을…….”
펜하이머의 안색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상대가 호감을 보이니 덩달아 신이 날 수밖에.
“혹시, 강진혁 플레이어님께서는 염두에 두고 계신 세력이 있으십니까?”
염두에 두고 있는 세력이라…….
물론 있지.
단, 함부로 이쪽의 패를 깔 생각은 없지만.
“그거야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저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택해야죠.”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예? 부탁이라면 어떤?”
“저야 25층이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요. 그러니 한 가지 대비책을 교섭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섭이라면 설마, 관리자에게 제가 직접 부탁을 하란 말씀입니까?”
“바로 그런 말이죠.”
“……!”
진혁의 말에, 펜하이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직 계약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당돌하게 요구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쪽은 탑의 중층부를 휘어잡고 있는 거대 세력.
말이 좋아 유망한 플레이어지. 자신들에 비해선 쓸 만한 장기 말에 불과한 게 플레이어들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저 능청스러움은?
마치, 모든 주도권과 상황을 쥐고 흔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무모한 걸까? 아니면 자신이 있는 걸까?’
그 답은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펜하이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종류의 교섭을 원하십니까?”
“음…… ‘생존 보장권’ 정도면 괜찮겠네요.”
생존 보장권은 함정에 당해도 죽지 않고 탈락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게 해 줄 수 있는 권한으로, 최소 중급 관리자의 승인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 권한은 시스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코인이 소모되는 건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패널티가 부과되게 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해 거대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권한이라는 뜻이다.
펜하이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하면 이 제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는 게 훤히 보였다.
“중급…… 관리자라면 진혁 님께서도 친분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죠.”
“허면, 직접 부탁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러면 제가 릭 씨에게 빚을 하나 지게 되거든요.”
눈앞에 대신 해 줄 사람이 있는데 굳이 왜 사용 가능한 패를 버려야 하지?
릭에게 부탁하는 건 이보다 더 간절하고 중요할 때 할 생각이다.
“……과연, 절대 손해는 안 보겠다는 말씀이군요.”
“탑에서 살아남으려면 콩 한쪽도 뺏겨선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푸하하하! 그런 이기적인 마음. 위로 가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암 그러고말고요.”
펜하이머가 광소를 터뜨렸다.
가식 없이 솔직담백한 진혁의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제 부탁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요?”
“예. 성사됐다고 보셔도 무방할 겁니다. 물론, 강진혁 님도 저희도 저희가 베풀어드린 호의에 대해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요. 당연히 기억해 드려야죠.”
기억은 잘할 자신이 있다.
단, 기억만 잘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이걸로 나머지 플레이어들에 대한 방비도 끝났다.
적어도 레이드가 끝날 시점에서 귀중한 유망주들이 떼죽음 당하는 건 면하게 되겠지.
아니, 어디 그뿐이랴?
이런 방비책을 세워 준 게 누구인지 밝혀진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가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병 주고 약 주고.
이게 은근히 잘 먹힌다니까?
***
[모든 플레이어는 미궁에 있는 함정과 몬스터들에 의해 사망 시 무도회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단, 공격에 스치기라도 할 경우 지금까지 모아 둔 공적치가 모두 소멸합니다.] [단, 플레이어 간의 전투나 그 외의 전투로 인한 사망은 복구되지 않습니다.] [이 권한은 플레이어 강진혁 님에 의해 발동되었습니다.]모든 플레이어들 앞에 상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건…….”
마리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사망 시 무도회장으로 이동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조금 늦게 상태 메시지가 주는 의미에 대해 깨달았다.
“서, 설마. 이것까지 안배해 두고 이곳을 고른 걸까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희는 욕만 하기 바빴는데.”
“조금 전에 사라진 것도 도망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러 간 거였어. 거 참. 나도 엄한 사람만 원망했구만.”
“진짜 다르긴 다르네요. 우리랑은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동시에, 모두가 비난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랭커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류를 위해 탑을 등반한다는 게 어떤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지를 말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닙니다! 모르시겠습니까? 모두 저놈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걸?”
랴오위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속여 넘겼을지 모르지만, 자신은 아니다.
이건 모두 진혁이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설계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랴오위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랴오위 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리아가 두 눈을 치켜떴다.
“냉정하게 보십쇼. 저 문구! 공적치가 공격에 스치기라도 할 경우 모조리 없어진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본래는 죽어야만 없어질 공적치다.
그런데 진혁의 개입으로 인해 부상을 입더라도 지금까지 모았던 공적치가 전부 사라지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공적치를 모아 유리한 세력들과 연을 닿는 게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소리다.
“랴오위 님. 저희는 지금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됐어요. 공적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희 목숨만큼 중요한 걸까요?”
“마리아 씨 말이 맞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것도 아니고.”
“사람이 고마워 할 줄을 알아야 하는 거 아뇨.”
“중국은…… 감사할 줄을 모르나 보네요.”
싸늘한 반응이 이어졌다.
결국, 랴오위가 꼬리를 말았다.
‘빌어먹을.’
대체 어째서. 저토록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인물이 모든 찬사를 독차지한단 말인가?
애초에 25층을 고르지 않았다면 목숨이 위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다!
그러나 한 번만 더 입을 뻥긋했다간 그대로 매장당할 분위였기에, 랴오위는 속으로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일이 틀어졌다. 강진혁을 제거한다.]랴오위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무림 세력의 모용수였다.
“제가……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랴오위가 자신 없은 얼굴로 되물었다.
진혁과의 1:1 승부가 어렵다는 건 그 누구보다 랴오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역할은 전투가 아니니까.]세력에게서 받을 수 있는 한 번뿐인 비호.
‘현현(顯顯)’.
랴오위가 진혁과 만나는 순간.
[놈의 숨통은 내가 끊겠다.]무도회장에 있던 모용수가 직접 진혁을 제거하기 위해 미궁 속으로 나타날 것이다.
***
미궁에 들어온 지 약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플레이어들 중 절반 이상이 탈락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랭커들이라고 한들, 25층의 함정들을 전부 피해내긴 역부족이었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탈락자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진혁은 초고속으로 미궁 속을 주파하는 중이었다.
패턴을 모두 외워 버린 고인물이기 때문에 이런 미친 스피드 런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쓴 덕분이었다.
“내 몸에 화살 하나라도 닿게 했다간 오늘 밤 고구마 아래. 벽에 붙어 있는 이끼 위로 모두 집합이다.”
진혁이 으름장을 놓았다.
“히익!”
“알았으니까 그만 협박해.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수, 숨이 터질 것 같아.”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정말로 나는 살고 싶은 걸까? 차라리 죽여 줘!”
“다들 너무 시끄러워. 그런데 나도 힘든 것 같긴 해.”
당연히 정령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각자의 원소 마법을 펼쳤다.
퍼어엉!
콰아앙!
얼음과 불로 된 벽들이 각종 함정들과 부딪치자 형형색색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여기서 왼쪽.’
모퉁이를 돈 진혁이 더욱 속도를 올렸다.
‘검마제왕보’로 인해 강화된 몸이 바람처럼 지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탓! 탓!
빠른 속도로 바뀌는 시야.
자잘한 공격들은 정령수들이 모두 막아 줬기에 마력을 온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체력과 마력을 아끼는 이유는 단 하나.
‘아마, 무림과 중화 쪽에서 움직이겠지.’
그렇다.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일부로 모용수와 랴오위를 자극해 뒀으니, 아주 약이 바짝 올라 있을 거다.
‘랴오위 수준에선 안 될 테니 나를 죽이려면 [비호]를 사용해서 모용수가 직접 현현할 테지.’
상대가 대충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는 이미 모두 머릿속에 모두 구상해 둔 상태였다.
남은 건 얼마나 완벽한 각본을 짜서 등장인물들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게 하느냐는 것 뿐.
이제 멀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퍼퍽!
카카캉!
진혁을 보호하기 위해 3시간 가까이 스킬을 난사했던 정령수들은 이미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허나,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 멀리서 통로가 끝나는 지점이 보였으니까.
그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발밑에서 밝은 빛이 뿜어졌다.
동시에 수십 개의 가시 넝쿨들이 진혁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시간차를 이용해 발동되는 이중 트랩이었다.
그러나 넝쿨들이 진혁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송곳니’에서 검은 강기가 치솟았다.
콰콰콰콰콰!
수십 조각으로 잘린 넝쿨들로부터 초록빛 체액이 뿜어졌다.
이중 트랩이든 허를 찌르는 기습이든 통하지 않는다.
이미 각종 함정들은 진혁의 관심 밖에 벗어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몇 분을 달렸을까?
마침내 통로를 벗어난 진혁이 자리에 우뚝 멈췄다.
미궁에서 몇 안 되게 존재하는 100m 크기의 넓은 동굴.
놈들이 매복하고 있다면 이곳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중화 길드의 플레이어들이나 무림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킥킥!”
“헤헤. 드디어 왔다.”
그곳엔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인물들이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