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귀혈대주, ‘염호(炎虎)’ (2)
“그럭저럭 늦진 않았네.”
진혁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전력으로 달려왔더니 하얀 코트가 완전히 바래 버렸다.
이거 나름대로 동대문 시장에서 3만 원이나 주고 산 건데…….
“강……진혁.”
염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긴장감이 잔뜩 배어 있는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보여 준 속도는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까.
‘내가…… 놓칠 정도라니.’
염호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모용수에게서 들었던 것보다 적어도 두 단계는 위라고 봐야 한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위일지도…….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상대는 방어력이 모두 너프당한 상황 아닌가?
스치기라도 하면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기에,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이쪽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천유성이란 놈도 그 족쇄를 끊지 못해 무릎 꿇었으니.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염호가 옆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귀혈대가 일제히 싸울 준비를 했다.
검과 도는 물론, 조(爪)와 도끼, 낫 따위의 병기들에 푸른빛이 덧씌워졌다.
실용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게 과연 마교다운 선택지다.
***
“조심……해라. 만만치 않을 테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천유성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은 참……. 저런 꼴을 하고서도 똥 폼은 못 잃는구나.
“넌 검성이라는 놈이 허구한 날 여기서 털리고 저기서 털리고 있냐?”
“뭐, 뭐라고!”
“발끈하지 말고. 실제로 네가 이기고 있는 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거든? 진지하게 탑 등반은 포기하고 공부에 전념하는 게 낫지 않아?”
그러고 보니 의대는 본과 수업이 겁나 빡세다고 들었는데.
학점이 F로 도배 중일지도 모르겠다.
“남은 기껏 생각해서 걱정해 줬더니. 네놈은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남의 신경을 긁는 거냐!”
천유성이 어금니를 갈았다.
으음.
너무 자존심을 건드린 건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걸 어떡하나? 동네북마냥 얻어터지고 있는데?
그래도.
“화내는 거 보니까. 아직 성장할 여지는 있네.”
피식 웃은 진혁이 송곳니를 가볍게 고쳐 잡았다.
“진혁 씨. 저 사람들…… 강해요.”
테레사도 한 마디 덧붙였다.
암스테르담의 아웃브레이크를 막은 건 물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성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어지간히 치열하긴 했던 모양이다.
하긴, 천유성까지 걸레짝이 다 됐으니까.
마지막으로 엘리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한테는 뭐라고 하지 마. 너랑 떨어져 있느라고 마력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어.”
“아무렴 고귀하신 진조께서 마력만 아니었으면 아주 길길이 날뛰셨겠죠. 저런 녀석들이 상대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비아냥거리지 마. 진짜라고!”
“누가 뭐라 했습니까? 저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
엘리스가 잡아먹을 듯이 진혁을 노려봤다.
그러나 진혁은 그 시선을 가볍게 넘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대충 마흔 정도라…….’
복장과 행색을 보건대 귀혈대에서 온 게 틀림없었다.
마교의 정예들로 무림에서도 꽤나 강한 축에 속했는데…… 놈들을 이끌던 게 아마 귀혈대주 염호였지, 아마?
진혁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네놈의 묫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명을 재촉하지 않아도 곧 처리해 줄 테니, 지금은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염호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모용수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정확히는 랴오위나 남궁천을 통해 ‘세력의 비호’를 사용하려는 타이밍을 재는 거겠지만.”
“……너.”
“아. 놀란 표정 짓지 말고. 솔직히 너무 뻔해서 우리 고구마도 알고 있더라. 그치?”
어느새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나온 고구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기?”
“크흠. 이거 알고 있다는 뜻이야. 고대종의 언어가 워낙 비슷비슷해서 그래.”
같은 ‘모기’라도 억양과 추임새에 따라 뜻이 수만 가지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주인뿐이고.
“눈치가 빠른 건 인정하지. 덕분에 계획은 좀 틀어지게 됐지만, 이렇게 된 이상 모용수 대신 이쪽에서 널 처리하도록 하마.”
“나도 너랑 놀아주고 싶긴 한데, ‘선릉(先陵)’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려면 좀 빡빡해서 말이야.”
진혁의 말에, 염호의 눈동자가 왕방울만 하게 변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듯 입까지 쩍 벌어졌다.
“서, 선릉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25층에 위치한 이 미궁은 본래 정상적으로 공략할 경우 최소 40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제대로 된 공격대와 보급을 갖췄을 경우에 한해서.
하지만 언제나 편법은 존재하는 법.
왕들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선릉은 특정 시간대에 특정한 방법으로만 진입이 가능했는데, 이 루트를 통한다면 미궁을 최단 시간 내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플레이어들이 유일하게 미궁을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20층을 주름잡는 마교의 정보부도 간신히 알아낸 걸…….
10층도 올라보지 못한 일개 플레이어 따위가 알고 있느냔 말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명칭까지 정확하게 언급한 부분이 말이 되질 않았다.
“말했을 텐데? 잡담이나 하며 놀아 주기엔 시간이 없다고.”
진혁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동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검을 들이민 놈들하고 길게 끌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러니, 여기선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쓸 생각이다.
바로.
우우우웅!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현현(顯顯)합니다!]이런 식으로.
“불!”
“물!”
“바…… 꺄악!”
운디네가 자세를 잡으려다가 진혁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상황 좀 봐 가면서 해라. 지금 그럴 때냐?”
하여간 꼭 눈치 없는 것들이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몰라서 매를 번단 말이야.
운디네가 왜 하필 자기냐며 억울한 눈빛을 보냈지만, 진혁은 단칼에 그 눈빛을 무시해 버렸다.
***
“왕가의 무덤을 지키는 정령수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복종하다니.”
“그, 그럴 수가.”
“믿을…… 수가 없어.”
귀혈대 사이에서 거대한 동요가 일어났다.
아무리 무림에 있는 무림인이라도 정령수들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매우 세며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짐승.
그들이 바로 정령수였다.
하물며, 지금 보이는 5대 원소의 중급 정령수들은 이 미궁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 아닌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염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정령……수들이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거늘.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역정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혁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정령수들의 머리를 툭툭 건드릴 뿐.
“저기 목소리 큰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나머지를 전부 정리해. 고구마가 서포팅해 줄 테니까 별로 어렵진 않을 거야.”
“아, 알겠어!”
“열심히 해 볼게!”
“파이팅!”
정령수들이 혼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시작을 알린 건 살라맨더의 불꽃이었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홍염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휩쓸리기라도 하면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 버릴 것만 같은 위력이었다.
허나, 귀혈대 역시 마교의 정예.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쉽게 무너지진 않았다.
검풍을 이용해 불길을 갈무리하는가 싶더니. 이내 위력을 대폭 축소시켜 버렸다.
‘호오.’
단순히 근접전에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마법 공격에 대한 방비책도 어느 정도 세워둔 거였나.
하지만…….
“아, 그리고 깜빡 말 안 한 게 있는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동시에.
탓!
타앗!
통로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두 개가 귀혈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뭐, 뭐냐 또 이것들은!”
새로운 적의 등장에 염호가 기함했다.
만약, 난입한 적이 그저 그런 놈들이었다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새로운 적은 날파리 따위가 아닌 잔뜩 독이 오른 말벌에 가까웠다.
부우우웅!
콰아앙!
“커억!”
“조심해라! 이 녀석들 말도 안 되게 빨라!”
“빌어먹을!”
작은 체구로부터 나오는 날렵한 동작.
그러면서 양손에 쥔 헬버드는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창날에 독특한 색깔의 살기(殺氣)를 덧씌운 터라, 검기에 비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간신히 따라잡았네. 하마터면 파티를 놓칠 뻔했어.”
“진짜. 오빠는 너무 빠르다니까.”
케이시와 주드로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지고 놀 수 있는 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곧바로 웃음꽃이 만개했다.
“오빠가 사람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팔과 다리만 자르는 걸로 봐주자. 그 정도면 되겠지?”
“응. 생명은 소중한 법이니까.”
두 사람이 터무니없는 논리로 무장한 채 헬버드를 휘둘렀다.
그리고.
조금 뒤에 서 있던 진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령수들을 향해 눈썹을 치켜떴다.
“뭘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어?”
“응?”
“응이 아니라. 밖에 나왔으면 밥값은 해야지. 심지어 너흰 다섯인데 저 둘한테 밀리면……. 오늘 우리 고구마 교관이 주최하는 ‘가짜 정령들 시즌1’ 강제 입소하는 걸로 알아.”
“가, 가짜 정령들이 뭐야?”
아기자기한 골렘의 형태를 한 노움이 되물었다.
미지의 단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지.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건 덤이었다.
“궁금하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봐.”
쓰러뜨린 귀혈대의 숫자가 단 하나라도 적을 경우.
아주 재미난 일이 펼쳐질 것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안 그래도 요즘 뷰튜브를 열심히 보는 중이었으니까.
덜덜덜!
5대 정령수들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가짜 정령들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저기에 가게 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기다리라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저 인간들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처리해야지만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으리라.
“가, 가자!”
“그래그래.”
“전부 쓸어 버려!”
정령수들이 태어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좋아.
다들 적당히 짝을 찾아 싸우기 시작한 것 같으니, 이제 메이저 리그를 개최할 차례다.
보아하니 창을 쓰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쪽도 같은 걸로 상대해주지.
진혁이 죽은 시체 곁에 있는 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파츠츠……!
새하얀 기운이 창 전체를 완전히 뒤덮었다.
“부하들도 죽어라 싸우고 있는데, 우리도 슬슬 시작해야지?”
“이 건방진 애송이가…… 1:1이라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염호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철저하게 실력으로 살아남는 마교에서.
그것도 하나의 집단의 대주를 맡고 있는 자신에게 일기토를 신청한 거니까.
헌데 어쩌냐?
아무리 그렇게 무게를 잡아 봤자 우습게 보이는 걸?
“고작 마교의 중견급 간부 주제에 너무 센 척하지 말고.”
진혁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랑 제대로 싸우고 싶으면 더 위를 데리고 와.”
“더…… 위라고?”
“마교의 교주 있잖아. 폐관 수련인지 뭔지 한다면서 방구석에서 처박혀 있는 놈.”
근데, 벽곡단을 365일 내내 먹으면 근손실 나지 않나? 단백질이나 이런 것도 안 먹고 대체 뭔 놈의 수련을 한다는 건지…….
아니면.
“중2병이 잔뜩 걸려서 또 어딘가에서 구르고 있는 천마라도 찾아내든가.”
요즘은 천마들이 하도 많아서 요리사도 하고 BJ도 하고 대장장이도 하고 심지어 육아까지 하던데.
지금은 뭘 하고 있나 모르겠다.
이번엔 축구선수라도 하려나?
“으아아아악!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염호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약발이 너무 거하게 먹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