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 (1)
부우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창이 앞으로 뻗었다.
발끈한 건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감정을 실어 창을 놀린 건 아니었다.
속도와 궤도.
모두 일격에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절초였다.
그러나.
카가가각!
진혁은 그 일격을 너무나 가볍게 받아냈다.
마치,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 올지 알았다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에 군더더기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의 공방전에 불과했으나 이 한 번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염호가 부르르 떨리는 손바닥을 바라봤다.
‘내가…… 창술에서 밀린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은 마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창술을 보유한 강자 아니던가?
귀혈대주라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배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 압박감은…….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이 긴장감.
이 공기.
절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빌어먹을.’
고작 플레이어 따위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침착하자…….’
상대는 이제 막 탑에 들어온 애송이다.
스치기만이라도 하면 치명타를 입는 너프가 걸린 족쇄를 차고 있단 말이다!
이런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상대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마교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가 될 것이다.
스윽.
염호가 재차 자세를 잡았다.
양손으로 창을 단단히 움켜잡은 채 거리를 가늠했다.
이번에야 말로 끝을 보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먼저 움직이면 당할 수밖에 없다. 인내심을 갖고 상대의 집중력이 무너지길 기다려야 한다.’
분명, 놈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으리라.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진혁이 무방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허점이 하도 많아서 순간, 이게 현실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멍청하긴! 감히 내 간격 안으로 들어오다니!”
염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귀혈대주 염호가 ‘사독창(蛇毒槍)’을 사용합니다!]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창이 기묘한 궤적을 그렸다.
반 박자 느리게 진혁 또한 창을 휘둘렀다.
그런데.
퍼퍽!
살점이 헤집어지는 소리가 들린 건 상대 쪽이 아니었다.
“어……?”
염호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술과 동공이 격렬하게 떨렸다.
분명…… 무방비한 상태로 접근한 건 저놈이었다.
하지만, 심장에 바람구멍이 뚫린 채 비틀대는 건 어째서 자신이어야 한단 말인가?
바로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공격이 오는 타이밍과 궤도를 전부 읽었다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반 박자 느린 속도로도 역공을 가한 게 말이 됐다.
그러나 그게 말이 되는 일일까? 처음 만나는 상대가 자신의 창을 모조리 읽는다는 게?
‘……실력 차가 한 수 정도 나는 게 아니었어.’
아예 차원이 다른, 까마득한 높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어야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괴……물 같은 놈.”
염호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
선장을 잃어버린 배는 침몰한다.
때문에 귀혈대의 운명은 염호를 잃은 시점에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충 정리됐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시와 주드로가 적의 방진을 박살냈고 나머지 5대 원소의 정령수들도 도망치는 놈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으니…….
자잘한 마무리 정도야 알아서 잘 매듭지을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넌 또 언제 저런 놈들을 데리고 온 거냐? 설마, 그놈의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니 뭐니 하는 곳이 좋다고 속인 뒤, 노예 계약을 체결한 건 아니겠지?”
천유성이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어허 노예라니! 엄연히 근로 계약서 쓰고 들어온 애들인데.”
주 100시간 근무에 4대 보험이 없고 최저임금이랑 퇴직금 등등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생명은 보장해 줄 생각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그만한 게 없지.
“……됐다. 말을 말자. 그저 너 같은 놈에게 당한 그 녀석들이 불쌍할 뿐이다.”
“그래도 중급 정령수들을 길들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는 진혁 씨가 완전히 다른 곳에 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앞으로는 함께 레이드하는 것도 힘들 것 같네요.”
테레사도 씁쓸한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녀 역시 유럽을 대표하는 랭커 중 하나였으나.
진혁을 볼 때마다 커다란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자신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도 힘들었던 강적을 진혁은 단 일격에 해치우지 않았던가.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모두가 치켜세우는 유망주와 랭커들보다.
심지어 대형 길드의 정점에 위치한 마스터들보다.
진혁이 훨씬 더 위에 있다.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앞으로 함께하기에는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진혁과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진혁이 인류를 위해 탑을 올라 주는 것만으로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든든했으니까.
그때 천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생각인 거냐?”
“응? 뭐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모른 척하지 마라. 젠장. 볼도 부풀리지 말고. 또 한 번 그랬다간 목을 쳐 버리겠다.”
천유성이 검을 움켜잡았다.
정말로 조금만 더 했다간 진심으로 저 검을 휘두를 것이다.
“살벌해라. 이거야 뭔 장난도 못 치겠네. 알았어. 뭐가 궁금한 건데?”
“네가 하고 많은 곳 중에 25층을 고른 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맞아. 그냥 심심해서 여길 고른 건 아니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어.”
“…….”
진혁이 어깨를 으쓱이자, 천유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진혁이 계획을 혼자서만 알고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좋다. 질문을 바꾸마. 그럼, 이 미궁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
그 정도야 알려 줄 수 있지.
“앞으로 한두 시간 정도면 끝날 거야. 그리고 어디로 갈 필요는 없어. 잠시만 가만히 서 있으면 새로운 길이 나타날 테니까.”
“……뭐?”
“미궁을 그렇게 빨리 주파할 수 있다고요?”
이번에는 천유성과 테레사 모두가 토끼눈을 떴다.
여전히 잠자코 있는 엘리스만은 진혁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하는 듯싶었다.
하긴, 진조는 진조니까.
미궁의 비밀에 관해서도 알고 있겠지.
때마침.
통로에 적혀 있던 룬문자들에 희미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시작되었다.
미궁에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기다리던 그 때가.
-25층에 위치한 미궁, ‘선왕의 계곡’에는 몇 가지 히든 루트들이 숨겨져 있다. 그중에서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은 왕을 기리는 시간인 매일 오후 11시에 특별한 열쇠를 이용해 진입할 수 있다.
진혁이 ‘송곳니’를 꺼내 손바닥을 살짝 그었다.
새빨간 핏방울이 금세 송골송골 맺혔다.
이게 특별한 열쇠다.
왕들의 무덤으로 갈 수 있는.
“꼴깍.”
바로 옆에서 피에 굶주린 흡혈귀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혁은 애써 못들은 척했다.
곧이어 수많은 룬문자들 중 ‘ỽ’라 새겨진 곳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문자로부터 눈부신 광휘가 뿜어졌다.
[‘왕가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 개방됩니다!]황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게이트.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편법으로 미궁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가…… 지금 나타났다.
‘좋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이번 미궁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질 시간이다.
***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암전되었던 시야가 밝아졌다.
나타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황금이었다.
“세상에나…….”
“……굉장하군.”
테레사와 천유성이 입을 크게 벌렸다.
황금의 도시인 엘도라도가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황금으로 만든 대형 신전과 10m에 이르는 황금 동상들부터.
주먹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와 각종 보석들까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아니, 영화보다 더 엄청난 광경에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보물들을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서 나간다면, 재벌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겠어요.”
“그런 수준이 아니야. 이 양이면 아예 나라를 살 수 있어.”
비교적 물욕이 적은 두 사람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곳에 있는 보물의 양은 규격 외였다.
하지만.
“마음은 알겠는데, 함부로 보물에 손댔다간 후회할 거야.”
그 말을 증명하듯.
추가적인 상태창들이 나타났다.
[선왕들이 무덤에 침입한 도굴꾼들에게 경고합니다.] [이곳에서 소유할 수 있는 보물은 한 가지뿐입니다.] [이를 어기고 욕심을 부린 자들에겐 ‘왕들의 저주’가 내립니다.]“알라딘은 다들 봤으리라 믿습니다.”
램프 외에 다른 걸 건드렸다간 기름 속으로 들어가는 후라이드 치킨이 될 거다.
물론, 이 세계의 저주는 단순히 마그마에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테지만.
“과연…….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신중하게 골라야겠네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물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우선 따라와.”
보물을 얻는 건 부수적인 보상일 뿐.
가장 중요한 건 이곳에서 나가기 위한 과제를 해결하는 거다.
진혁이 앞장섰다.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과 보물들을 지나쳐 몇 분이나 걸었을까?
마침내 다른 것과는 분위기부터 다른 건축물이 나타났다.
동서남북. 사방의 긴 계단이 오롯이 위로 향해 지어진…….
“제단…… 같은데요?”
그렇다.
저건 제단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정사각형 모양의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검은색 경종(警鐘)’이었다.
흑철로 만든 경종엔 마찬가지로 고대 룬어가 새겨져 있었는데. 통로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룬어였다.
‘이중 룬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잊혀진 언어’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과거 진혁 역시 이 언어를 통해 잊혀진 언어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이번에는 결계사로 전직해 달의 각인까지 확보해 뒀으니 반드시 모든 언어를 습득해 주지.’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에게 있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법.
때문에 진혁은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저게 목적인 거냐?”
“그래. 저걸 손에 넣어야만 이 미궁에서 나갈 수 있어. 바깥으로 가는 일종의 열쇠 같은 거거든.”
“그렇다면 질질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바로 확보하겠다.”
천유성이 당장이라도 계단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잠깐만 기다려.”
“왜? 저기에도 함정이 있는 건가?”
“그걸 굳이 내가 말해야 알겠냐?”
그래도 명색이 무덤인데, 가장 중요한 보물에 함정이 없을 리가.
미궁 내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성가신 것들이 저 계단에 모래알처럼 깔려 있었다.
“급하게 말리는 걸 보니 너도 잘 모르는 함정인가 보군.”
“아니, 함정을 피하는 방법이야 알고 있어. 단지, 뒤통수가 근질거려서야 함정을 피하는 데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겠어?”
“설마…….”
그래.
이곳에 온 손님은 우리만이 아니다.
“슬슬 나오지 그러냐? 내 앞에서 어설픈 결계 따위 사용해 봤자 소용없는데.”
진혁이 오른쪽에 위치한 황금더미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