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 (2)
“……나름 열심히 기척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눈치챈 거지?”
황금더미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중화 길드의 랴오위였다.
어떻게 눈치채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것도 아니고.
하필이며 허상 결계를 사용했으니 모른 척 넘어가고 싶어도 넘어가 줄 수가 없다.
“내가 결계에 조예가 제법 깊거든. 게다가 특유의 역겨운 냄새를 숨기고 싶으면 샤워는 하루에 한 번은 좀 하고 살아라. 제발 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림에서도 이곳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여기선 이런 식으로 살살 긁어주는 편이 좋을 거다.
특히나 자존심이 높은 놈일수록 이런 유치한 도발이 잘 먹히는 법이었으니까.
“그 주둥이……!”
“어설픈 협박은 지겨우니까 됐고. 그보다 남궁천은 어디가고 너만 여기 왔어?”
당연히 남궁천도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가장 중요한 주연 배우가 보이질 않았다.
“너 하나 상대하는 데 남궁천 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다. 그분은 이곳에서 세력 선택에 필요한 공적치만 획득한 후 떠나셨으니까. 네놈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흐음 그렇게 된 거였나.
하긴, 녀석 입장에선 이런 데서 티격태격하는 것 보다 알맹이만 쏙 빼먹고 무림 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지.
“글쎄. 남궁천까지 와야 그나마 좀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그래…… 어디 계속 이죽거려 봐라. 그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게 해줄 테니.”
랴오위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동시에.
파츠츠츠……!
랴오위의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족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특수 아이템인가.’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은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성유물 ‘곽희의 조춘도(早春圖)’가 발동됩니다!]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졌다.
묵으로 표현된 자연 풍경…….
그러나 짙은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자연 속에 있어서는 안 될 수많은 인물들 때문일 거다.
“그림을 통한 전이(轉移)인가.”
“……어이가 없군. 이건 무림에서 직접 받은 성유물이건만, 이것까지 알고 있다니.”
랴오위가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나 저건 앓는 소리일 뿐이다.
실제로 이 정도 히든카드를 갖고 있는 이상 상황은 여전히 랴오위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니까.
‘과연, 꽤나 준비를 많이 해 두긴 했나 보네.’
중화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그림 속에 감추어 뒀다가 내부로 불러오는 방식은 본래 통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이 정도로 시스템에 깊이 개입했다는 건, 무림에서도 크게 무리를 했다는 뜻이겠지.
실패할 경우 중층부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무림에서 매우 위험한 다리를 건넌 게 틀림없었다.
“그보다 이렇게 막 나가도 괜찮아? 코인이나 성유물은 둘째 치고. 이 사실이 관리자들 귀에 들어갔다간 보통 큰일이 아닐 텐데?”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여기서 증인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이 사실이 밝혀질 일은 없을 테니까.”
가면무도회장에서 미궁의 내부를 샅샅이 볼 수 있었지만, 딱 하나.
이 무덤만큼은 엿볼 수 없었다.
이곳은 25층의 보스 몬스터의 영향력 아래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에, 관리자들조차 함부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던 탓이다.
물론, 진혁 역시 그 점을 노리고 이곳을 고른 거였지만.
그 이점은 랴오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셈이 되었다.
거기에…….
[랴오위가 ‘세력의 비호’를 원합니다.] [거대 세력 ‘무림’이 랴오위의 응답에 부응합니다!]하늘이 열리며, 거대한 빛이 낙하했다.
쿠쿠쿠쿠쿠!
모용세가의 장문인. 모용수가 미궁에 현현했다.
“이번에야 말로 완벽하게 숨통을 끊어 주겠다.”
***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로부터 공간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중화 길드 제5 공격대 모두 투입 완료됐습니다.”
“4공격대 양소평 휘하 특수대 50명도 방금 다 도착했습니다.”
“집행부 6명도 말씀하신 대로 완벽하게 준비시켜 뒀습니다.”
총 127명.
외부에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인원을 긁어모았다.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대형 보스 몬스터보다는 대인전에 특화된 네임드 몬스터를 잡기 위한 특수 병기도 갖춰 둔 상태였으니까.
이 모든 게 진혁을 잡기 위해 준비한 맞춤형 카드들이었다.
무엇보다 잔뼈가 굵은 무림의 모용수까지 합류함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귀혈대주와 귀혈대는 전부 죽은 모양이군.”
그토록 진혁의 주위에 있는 놈들만 제거하라고 했건만.
아무래도 직접 나서다가 목숨을 잃은 듯싶었다.
‘멍청하긴…….’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실력 면에서야 귀혈대주 염호와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으나 이곳엔 실력 외의 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보물들이 있었으니까.
“보아하니 네놈 역시 탑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인데, 얄팍한 지식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 주마.”
모용수가 옆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랴오위가 영롱한 빛을 띤 단약을 건넸다.
무림으로 치면 소림의 대환단(大還丹)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영약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효율적인 측면에선 훨씬 위일지도 모른다.
마력의 핵은 흡수 후 운기조식을 할 필요도 없이 즉각 체내에 흡수되는 특징을 지녔으니까.
“강진혁! 저걸 먹게 해선 안 된다!”
“진혁 씨!”
천유성과 테레사도 단약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즉각 무기를 뽑았다.
가만히 지켜보다간 상황이 훨씬 악화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꿀꺽!
모용수는 이미 단약을 입속으로 털어 넣은 뒤였다.
“늦었…….”
“아……!”
두 사람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탄식 뒤에 이어진 건 뼛속까지 찌르는 살기였으니까.
급변하는 공기.
숨이 턱 막힌다.
쿠쿠쿠쿠쿠쿠!
모용수의 몸 주위로 검은색 운무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유형화된 기를 저토록 선명하게 펼칠 수 있다는 것부터. 조금 전 상대했던 귀혈대주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푸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지!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구나!”
모용수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단숨에 1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추가로 얻었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대환단의 효력이 1시진 남짓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맞설 수 있는 인간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위용을 뽐낼 수 있게 됐다.
“음…….”
진혁이 턱을 긁적였다.
모처럼 최종병기가 돼서 자신감 넘치는 건 참 보기 좋은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때마침, 이쪽도 꽤 재미난 아이템을 찾아 둬서 말이지.
어느새 진혁의 손엔 물소의 뿔로 만든 투박한 뿔나팔이 들려 있었다.
모용수가 단약을 집어삼키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동안 놀고만 있던 게 아니다.
단약에 걸맞은…… 아니, 어쩌면 단약보다 훨씬 더 고인물에 걸맞은 아이템을 확보해 뒀으니.
“그, 그건 설마!”
뿔나팔을 본 모용수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1인당 1개만 고를 수 있는 무덤의 보물.
거기까진 아무래도 좋았다. 이곳에 있는 수만 종류의 보물 중 어떤 걸 고르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걸 고를 줄이야.
모르고 골랐다기엔, 사악하게 웃는 진혁의 얼굴이 너무도 절묘해 보였다.
저건 틀림없이 알고 고른 거다.
“네, 네놈이 대체 그게 뭔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대충 가장 불길하게 생긴 걸 골라봤는데?”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믿으라는 거냐!”
모용수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믿기 싫으면 말고.”
진혁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렇고. 기왕 얻은 걸 열심히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격하게 드네.”
“머, 멈춰라! 그걸 불었다간……!”
모용수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
진혁이 폐활량을 자랑하며, 뿔나팔을 힘차게 불었으니까.
뿌우우우우!
우렁찬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을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 절망이 찾아옵니다!]만약 이게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뿔나팔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말 그대로 부를 때마다 절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지독한.
바로 그때.
“크오오오오!”
거대한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동시에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들이 무너지며, 5m에 이르는 검은색 전갈이 나타났다.
[무덤의 가디언 ‘블랙 스콜피온’이 깨어납니다!]유적이나 미궁에 서식하는 최강의 수문장.
스치기만 해도 몸속의 장기가 모조리 녹아 버리는 극독을 지닌 중형급 몬스터다.
기본 레벨도 세 자리에 육박하는 데다, 강철 같은 외피는 강기를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기로 유명했다.
한 마디로 상대하기 더럽게 어려운 가디언이라는 뜻이다.
“결국, 무덤의…… 가디언이 깨어나다니. 네놈 때문에 정말로 최악의 일이 일어났어.”
“이야. 이게 무덤의 가디언을 깨우는 거였어? 나도 처음 알았네.”
진혁이 정말로 몰랐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남의 일처럼 지껄이지 마라! 너도 몰라도 네놈의 동료는 전부 갈가리 찢겨 죽을 테니까!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가디언은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걸.”
펜하이머가 관리자와 교섭한 덕분에 플레이어들이 사망할 경우 가면무도회장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가디언에게 죽을 경우엔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지론은 강한 놈만 키우자는 주의거든.”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정글에서 살아남는 맹수.
똑같은 병아리여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삼대 500 이상씩은 칠 수 있는 병아리뿐이다.
“키에에엑!”
블랙 스콜피온이 집게발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황금으로 만든 동상이 일격에 반으로 쪼개졌다.
“피, 피해라!”
중화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사색이 된 채 비명을 질렀다.
정신없이 몸을 날리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사냥감을 사냥하기에 최적화된 블랙 스콜피온으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집게발이 단숨에 플레이어 하나를 붙잡았고.
푸욱!
꼬리에 있는 붉은색 독침이 등에 박혔다.
꿀렁꿀렁이며 독액이 주입됐다.
“끄아아악!”
사람 하나가 젤리가 돼 버리는 덴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걸렸다간 그 즉시 사망이다.
“큭!”
모용수가 짧게 혀를 찼다.
아무리 단약을 통해 내공을 끌어올렸다곤 하나, 상대는 미궁의 가디언.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강적이다.
“사, 살려줘!”
“젠장. 탱커들 뭐 하고 있어!? 정면을 맡아 줘야 우리가 딜을 넣든 하지. 이렇다가 전부 다 죽일 셈이냐!”
“미쳤어? 저걸 무슨 수로 막으라는 건데?”
나름대로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곤 하나, 중화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은 무림의 거주자들과는 달랐다.
개개인의 실력에서도. 전투에 임하는 각오에서도.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제로 블랙 스콜피온이 날뛸 때마다 중화 길드의 정예들이 수수깡처럼 박살나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 몇 분만 지난다면 모조리 잡아먹힐 게 틀림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설프게 덤비지 말고 넓게 진형을 펼쳐라!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원호만 해라!”
1:1이라면 어떻게든 호각을 이룰 수 있다.
그 틈에 외피에 있는 미세한 틈에 데미지를 쌓아갈 수 있다면…….
놈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될 것이다.
‘아직 해 볼 만하다.’
충분히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여기까지일 거라고 생각한 게…….
모용수가 한 가장 큰 오산이었다.
뿌우우우!
진혁이 망설임 없이 나팔을 다시 한번 불었다.
“아…… 미안. 이게 또 불어지네. 아니. 노려보지만 말고. 진짜로. 이번엔 순도 100% 실수였어.”
진혁이 미안하다는 듯 양손을 곱게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