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 (3)
오대세가의 일축을 담당하는 모용세가.
모용수는 그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난 인재였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받아 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토록 단단하던 모용수조차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이런 미친놈이!”
쿠쿠쿠쿠쿠!
이번엔 지면이 격하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다.
산처럼 쌓여 있던 보물들이 무너져 내렸고 갈라진 지면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들의 넝쿨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절망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좋아. 좋아.’
진혁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두어 번 정도 더 불면 어떤 게 튀어나오려나?
지옥에서 고대 악마라도 소환되려나?
“뿔나팔에서 당장 손을 떼라! 제발 그만 좀 하란 말이다 이 정신 나간 놈아!”
모용수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물론.
“젠장! 강진혁! 우릴 다 죽일 셈이냐!”
“인간! 나 지금 마력 부족한 말이야! 야! 저리 가! 고귀한 이 몸에게 어디서 식물 따위가!”
“지, 진혁 씨! 제발 그만……!”
같은 팀원들도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이거야말로 완전히 충격과 공포의 현장이다.
그래.
명색이 시련의 탑이면 이런 지옥도 정도는 연출해 줘야지.
그동안 너무 스무스하게 탑을 오르느라 다들 잊은 모양인데, 이게 제대로 된 시련의 탑의 진면모다.
“키에에에에!”
콰콰콰콰콰!
블랙 스콜피온이 황금 더미를 헤치며 다시 한번 날뛰었다.
집게발에 걸리는 건 뭐든지 토막이 났고.
꼬리에 찔리는 순간 방어 스킬이 중첩된 탱커라고 하더라도 여지없이 녹아 버렸다.
“으아아악!”
“도, 도망쳐!”
터무니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정예 공격대가 제대로 된 발악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전멸하고 있었으니까.
“크윽!”
심지어 모용수조차도 블랙 스콜피온과 간신히 동수를 이루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아예 상대가 되질 않을 수밖에.
거기에 이제는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식인 식물들이 넝쿨을 이용해 플레이어들을 하나둘씩 사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재앙 ‘진흙 속의 포식자’.
단숨에 넝쿨로 발목을 붙잡은 식물들이 플레이어를 높게 던졌다.
“어…… 어어어?”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중력에 저항하며 전신을 허우적거리는 것도 잠시.
쩌억하고.
식물의 중심부에서 무수히 많은 이빨이 돋아난 입이 벌어졌다.
체액과 정체 모를 액체가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그걸로 끝이다.
콰득!
콰드득!
짙은 피분수가 뿜어졌다.
단숨에 먹잇감을 집어삼킨 식인 식물은 또 다른 먹잇감을 탐닉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이대론 안 된다.’
모용수가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두 번째까지는 몰라도 세 번째 절망이 깨어난다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나라도 세 번째만큼은 감당할 수 없어.’
총 3개의 절망을 불러올 수 있는 성유물,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
하나하나가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3번째 절망부터는 아예 그 수준이 다르게 변한다.
세가의 정예들을 전부 데리고 오더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확 뛰어 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날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몸을 날리며, 뿔나팔을 입에 댔다 뗐다 하고 있는 놈을 보자니…….
틀림없이 또 다시 뿔나팔을 불 게 틀림없었다.
‘저런 미친놈이 여기서 멈출 리가 없지.’
지금까지의 행보로 볼 때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그렇다면.
모용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선이 향한 곳은 제단의 위.
정확히는 단상 위에 놓인 검은색 종이었다.
‘경종을 손에 넣어 이곳에서 탈출한다.’
경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이트는 최대 3명밖에 탈출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3명 안에 들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자신과 랴오위……. 필요한 인원은 두 명뿐.
이걸로 탈출 루트는 확보했다.
그러나 모용수의 사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본전치기만 할 수는 없지.’
사실, 저 뿔나팔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앙을 부르는 뿔피리는 3개의 재앙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3번째 재앙으로부터 5분간 생존할 경우 마지막 4번째엔 재앙 대신 행운이 뒤따른다. 4번의 재앙을 모두 뛰어넘을 만한 행운이.]아직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었지만, 비밀 서고에서 발견한 고문서에는 분명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놈이 3번째 재앙을 불러온다면 그 즉시 뿔나팔을 뺏는다.’
그렇게 해서 4번째 행운을 손에 넣은 뒤, 경종을 통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모든 게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이다.
계획에 허점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건 이곳에서 오직 자신 하나뿐이었으니까.
“랴오위!”
“예……? 예!”
“따라와라!”
탓!
모용수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저건 함정이다.
경종을 노릴 거라는 페이크 동작을 취한 뒤, 당황한 이쪽이 반응하면…….
‘곧장 나에게서 뿔나팔을 빼앗으려 하겠지.’
어떤 식으로 판을 짜고 있는지 훤히 보이는데, 거기에 일부러 걸려 주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이건 나름대로 연기력을 요구하는 영역이었으니까.
진혁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뿔나팔을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고 모용수가 제단의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뿌우우우!
세 번째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작이다.
치이이익!
갑자기 제단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절망이 깨어납니다!]블랙 스콜피온과 식인 식물도 절망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건 그 궤를 아예 달리하는 존재였다.
우우우웅!
약 직경 1m.
검은색 구체가 묘한 소리를 냈다.
겉보기엔 그저 타원에 불과하지만, 그건 이 녀석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세 번째 절망, ‘사념체(邪念體)’.
오롯이 침입자를 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관념에 가까운 존재다.
진혁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살짝 맺혔다.
지금보다 레벨이 2배는 높아도 상대하기 힘든 괴물과 마주하게 됐으니 당연히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물론.
지금의 긴장감은 모두가 아는 것과는 살짝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다.
강한 적과 목숨을 걸고 놀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고양감.
그리고.
그 난적을 넘어 저 멍청한 무림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후우…….”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동시에 전신의 감각을 모두 깨웠다.
검은색 사념체가 움찔 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정면!
인지와 같은 속도로 구체에서 길쭉한 가시가 튀어나왔다.
카가가각!
가까스로 송곳니를 이용해 궤도를 틀었다.
칼날을 스치고 지나간 가시가 진혁의 뒤편에 있는 지면에 박혔다.
속도와 정확성을 모두 갖춘 공격이다.
허나 진정한 문제는 그 두 가지가 아니다.
스스슥…….
어느새 지면에 박혀 있던 가시가 원래대로 돌아가 있다.
장전시간이 필요 없는 탄환이랄까?
공격을 가하고 다시 회수되는 과정이 터무니없이 빠르다.
콱!
콰콱!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7번이 넘는 공격이 쏟아졌다.
흔한 준비 자세마저도 없는 연속성. 그렇기에 진혁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휘유.”
진혁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반사 신경과 인이 박이도록 해 온 경험이 아니었다면, 방금 공격에 당했을 거다.
그나마 뒤쪽에 있던 천유성과 테레사는…….
“다들 괜찮아?”
“그래. 어찌어찌 막긴 했다.”
“저도요.”
뒤쪽에서 천유성과 테레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무사한 모양이다.
엘리스야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러나 모두가 사념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건 아니었다.
“커어억…….”
“으으…….”
가시에 관통당한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검은색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덜덜덜 떨리는 손과 발.
“크아아악!”
“크아아아!”
가시에 당한 플레이어들의 눈에 붉은 핏발이 섰다. 흉하게 튀어나온 핏줄과 부풀어 오르는 근육이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게 바로 세 번째 절망이 무서운 이유다.
공격에 당한 대상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 수 있는 능력.
게다가 수하가 된 놈들도 감염 능력을 지니게 됐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파급력을 낳게 될 것이다.
끼기기긱…….
팔과 다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렇게.
곧바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감염된 플레이어가 바로 옆에 있던 동료를 깨물었다.
“무, 물었어! 이 자식이 날 물었어!”
“이런 미친. 나다! 나라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 상황.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는 싸우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가는 걸 우선시해야 했다.
***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황 속.
수많은 함정을 돌파한 모용수가 마침내 제단 위에 놓인 경종을 손에 넣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은 순간, 진혁이 모용수의 뒤를 따라잡았다.
“이미 늦었다!”
모용수가 경종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우웅!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무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인원은 최대 3인까지이며, 마지막 인원이 게이트를 통과하는 즉시 게이트는 소멸하게 됩니다.] [단, 게이트를 연 플레이어는 반드시 3명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늦었다는 말은 사실이다.
3개뿐인 자리 중 하나는 모용수의 몫이 되었으니까.
‘좋아.’
모용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남은 건…… 뿔나팔을 손에 넣는 것뿐.
이제 거의 다 왔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파츠츠츠…….
모용수의 검으로부터 눈부신 광휘가 뿜어졌다.
검강(劍罡).
최강의 절삭력을 자랑하는 절정 고수들의 트레이드마크다.
“나를 상대로 1:1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의 나라면 블랙 스콜피온도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으니까.”
“이야. 단약으로 뻥튀기를 했으면서 그게 마치 자기 실력인 것처럼 말하네. 진심으로 궁금한데, 그렇게 말하면 안 쪽팔리냐?”
“뭐……라고?”
“뭘 그리 분노한 척을 해? 사실인데. 원래 실력으론 잘해 봐야 귀혈대주랑 비슷한 수준 맞잖아. 아니, 마교와 정파의 특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네 쪽이 더 아래일지도?”
“내가…… 비겁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더럽고 치졸하고 소인배 같다고 말하는 중이긴 하지.”
진혁이 말을 할수록 모용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승부에서 정정당당함을 고집하다가 목숨을 잃은 떨거지보다야…… 이편이 훨씬 낫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고귀하신 정파 입에서 나오니까 좀 웃기다. 그치?”
“…….”
이번엔 완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더 이상 말을 해 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탓!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모용수가 검을 휘둘렀다.
‘마력의 핵’을 복용해 비약적으로 내공을 증가시킨 것다운, 매섭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카앙!
그러나 진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빗겨냈다.
사념체의 공격도 받아냈는데, 고작 이 정도에 당할 리가.
“타이밍은 좋았는데, 영 날카로운 맛이 없네.”
“상관없다. 애초에 내가 노린 건 네놈의 목이 아니었으니까.”
모용수의 미소가 한 층 더 짙어졌다.
어느새 모용수에 손엔 진혁이 가지고 있던 뿔나팔이 쥐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노린 건 이것 하나였다.
모용수가 갖고 있던 뿔나팔을 아래로 던졌다.
“랴오위!”
“예!”
“지금 당장 뿔나팔을 불어라!”
“아, 알겠습니다!”
랴오위가 지체 없이 뿔나팔을 입에 갖다 댔다.
뿌우우우우!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4번째 ‘행운’이 찾아옵니다!]“우리의 승리다!”
모용수가 확신하듯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고마워. 마지막 나팔을 불어 줘서.”
진혁은 작게 웃었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