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고대종(古代種) (2)
시련의 탑에 있는 정령수와 환수 등은 본신이 아닌, 분신으로서만 이 세계에 존재한다.
본신은 다른 차원에 종속된 채 일부만이 탑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을 탑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계약자가 공급해 주는 마력이다.
보통의 계약을 마친 정령과 환수들은 에너지원이 끊길 경우 탑에 현현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이 경우에도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주인과의 신뢰 관계가 깊어 본신의 마력을 소모하면서까지 현계를 원한 경우.
이럴 경우엔 제약을 거부하면서까지 탑에 현현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고대종 ‘???’이 현현합니다!]더 이상의 미사여구 따윈 필요 없다.
쿠쿠쿠쿠쿠쿠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과율에 과부하가 걸리는 경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색 비늘을 지닌 작고 아장아장했던 파충류가 아니다.
20m 가까이 개방된 게이트로도 머리와 상체 일부만이 간신히 나올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본신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 미터에 이를 것이리라.
촤르륵!
전신을 속박하고 있는 황금빛 쇠사슬로 인해 반쯤 나온 고구마의 머리가 우뚝 멈췄다.
“크오오오오!”
호박처럼 노란 눈빛이 네임리스에게 향했다.
“고, 고대종이 어떻게…….”
네임리스의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단순히 고대종이었다면 이토록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가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고대종이 계약자의 죽음에 분노해 본신의 마력을 소모했다는 점이다.
고대종은 영겁의 삶을 약속받은 존재였기에 인간과 계약하는 것은 한낱 유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이 죽는다면 언제든지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찾을 터.
그런데도 이렇게 행동한다는 건…….
‘그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여기서 날뛰면, 네놈의 수명을 갉아먹는 행위일 텐데?”
네임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협박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우우우웅!
고구마의 입으로 눈부신 빛이 모였다.
드래곤만이 보유한 최강의 스킬.
브레스.
그리고 그걸 뛰어넘은 고대종의 ‘고유성창(固有聖唱)’이 발현되었다.
[고대종 ???가 ‘단죄의 검’을 소환합니다.]화르륵!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공기 중에 수분이 모조리 증발하기 시작했다.
지면을 따라 번지는 아지랑이는 잠시 뒤,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해 주는 것만 같았다.
“크윽!”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네임리스가 검은색 방패를 꺼냈다.
가시로 겹겹이 싸인 방패는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았다.
왕가의 무덤을 수호하는 절대 판정의 효과가 부여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쏴아아아…….
한 줄기 열풍이 빌딩 사이를 가로질렀다.
진혁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민간인들은 전부 대피한 상황.
남은 거라곤 테레사와 샤오팅 단 두 명뿐이었다.
거리낌 없이 날뛰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파츠츠츠!
일점으로 모인 화염이 더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붉은색 불덩이가 곧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이내 검붉은 흑염(黑炎)으로 변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백색.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순백의 겁화.
이것이 현존하는 최강의 불 중 하나이다.
“빌어먹을. 수명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거냐!”
네임리스가 고함을 질렀다.
이해할 수 없다.
대체 그깟 인간이 뭐라고.
이미 죽어 버린 인간 따위가 대체 뭐라고!
그런데 바로 그때.
시체가 있는 방향을 보던 네임리스의 입이 급속도로 벌어졌다.
검은색 표면에 붉은색 입이 쩍하고 나타났다.
‘저, 저건…… 설마?’
틀림없이 봤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는 와중에도.
별빛을 받으며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이 있는 것을.
“자, 잠깐!”
네임리스가 손가락으로 진혁이 있는 곳을 다급하게 가리켰다.
기다려 봐라!
저기서 양식장에서 갓 잡아 올린 광어마냥 팔딱이고 있는 인간이 팝콘을 먹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콰콰콰콰콰!
극한까지 압축된 불줄기가 지면을 가로질렀으니까.
“끄아아아!”
네임리스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하얀 불꽃이 네임리스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
철근과 콘크리트가 모조리 증발해 버렸고.
지면에는 맹수가 할퀸 듯한 상처가 남았다.
“커……으윽.”
검은색 방패는 사라진 지 오래.
상반신만 남은 네임리스가 묵직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저벅.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다가왔다.
“통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사람의 형태를 갖춘 뒤론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됐나 봐?”
진혁이었다.
언제 당했냐고 말하는 것처럼. 얼굴은 완전히 멀쩡한 상태였다.
“이, 일부러…… 당해 줬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3대 절망이 강하다고 한들, 고작 탑의 중층부에 위치한 놈들에게 당해 줄까?
조금 성가시긴 했지만, 제대로 싸웠다면 변수 없이 승부를 지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테레사가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는 없었겠지.
‘타락’의 기본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이다.
“그래도 너 정도면 꽤 강한 거 맞아. 고대종의 고유성창에 맞고도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놈은 그리 많지 않거든.”
진심으로.
공격력과 방어력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플레이어 중에서도 이 녀석과 정면 승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지.
“그, 그딴 걸 위안이라고…….”
네임리스가 쓸려버린 반신을 내려다봤다.
부스러진 입자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재생이 안 되는 걸 보니, 확실히 고구마가 강하긴 한 모양이다.
“내……가 이, 이렇게 허무하게…….”
네임리스가 붉은 입을 쩍쩍 벌리며 몸부림을 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놈이 처한 운명을 바꿀 순 없었다.
[세 번째 절망이 소멸하였습니다.]마지막 절망마저 무로 돌아갔다.
소환수가 죽인 대상의 경험치는 주인 또한 같이 먹게 되기 때문에.
두 번째 절망과는 달리, 이번엔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시나.
곧바로, 진혁의 눈앞에 다수의 상태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놀랄 만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3대 절망을 모두 사냥한 일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겁니다.]무려 8레벨!
조금 전 블랙 스콜피온을 사냥한 뒤 4레벨까지 올랐으니. 이 한 번의 레이드로 12레벨이 오른 셈이다.
플레이어들 중에선 당연히 견줄 수 있는 자가 없었고.
거주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레벨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가장 기대되는 건 레벨업이 아니었다.
바로 지긋지긋한 절망을 해치운 것에 대한 보상이었지.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이 정도 고생을 했으니 당연히 눈이 돌아갈 정도의 보상이 주어져야 할 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확인할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띠링!
[3번째 절망 ‘네임리스’를 쓰러뜨린 대가로 플레이어가 보유한 고유 능력에 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복사 프리패스권’이 주어졌습니다.] [복사 프리패스권]입수 난이도: 알려지지 않음(아직까지 이 아이템을 획득한 전례가 없습니다. 즉, 당신이 이 아이템의 최초 사용자가 될 것입니다.)
내용: 지금까지 탑에서 만났던 모든 존재의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대상의 스킬을 직접 견식한 적이 있을 경우에 한하여 제한합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까다로운 복사 조건 따윈 없다.
그저 한 번이라도 보기만 했으면 그로써 조건이 충족된다.
진혁의 목을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건…….
대박이다.
과거, 시련의 탑을 플레이했을 때부터 현실이 된 지금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기연들을 접해 봤다고 확신했었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처럼 압도적인 보상을 경험했던 적은 없었다.
***
무림과 중화 길드의 부정 개입이 밝혀지며, 세력 선택이 끝났다.
우우우웅!
여기저기서 밝은 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무도회장에 나타났다.
“크으으…….”
“사, 살았다.”
“두 번 다시는 못할 짓이야. 빌어먹을. 10년을 한꺼번에 먹은 것 같네.”
다들 피로에 찌든 모습이다.
기껏해야 탑의 10층대를 올라가 봤던 게 전부였는데, 난데없이 25층의 미궁에 갔다 왔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리 미궁 내의 몬스터와 함정으로부터 생존이 보장되었다고 한들 모두가 느낀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반면.
‘간만에 보람찬 하루를 보냈네.’
진혁은 늘어져라 기지개를 켰다.
중화 길드를 한 방에 정리하고 5대 원소의 정령수들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번 세력 선택전의 진정한 승자는 정해진 셈이다.
특히, 중국에서 3대 절망을 쓰러뜨리고 난 뒤 올린 레벨과 각종 보상들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띠링!
[공적치 업데이트가 이뤄집니다.] [현재 공적치 순위]1위: 강진혁(7,565,100P)
2위: 랴오위(4,450P)
3위: 남궁천(3,190P)
4위: 테레사(2,250P)
5위: 천유성(2,130P)
6위: 요시오(1,125P)
…….
무려 750만 포인트.
절망을 부르는 뿔나팔의 숨겨진 능력을 모조리 꿰뚫어본 것은 물론, 그걸 이용해 전체적인 판을 짜는 능력까지 증명했으니…….
공적치가 천장을 뚫어버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중화 길드 전체를 쓸어버린 3대 절망들로부터 중국을 구원한 장면은, 닳고 닳은 탑의 거주자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이는 게 보이려고 하네.’
진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흥분한 마력들이 길길이 날뛰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고 해야 하나?
2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력들이 안달이 난 게 훤히 보였다.
관리자들이 막고 있어 망정이지. 만약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납치라도 하려고 1층으로 뛰어내려 왔을 게 틀림없었다.
그때.
“음?”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이번엔 2층이 아닌 1층이다.
눈길이 향한 곳엔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의 플레이어 한 명이 있었다.
사무라이 길드의 마스터이자 일본 제일검이라 불리는 랭커. 요시오였다.
‘아…… 맞다. 아직 이 녀석의 능력을 복사하지 못했지.’
워낙 숨 고를 틈도 없이 움직여서 만날 틈도 없었다.
이미, 프리패스권을 얻긴 했으나, 능력이야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랭커의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진혁이 요시오의 복사 조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1. 본인이 아닌 타인을 이용하여 요시오를 제압하십시오. 단 여기서 말하는 타인이란 플레이어를 뜻합니다.
2. 실패할 경우 당신이 직접 나서도 되지만, 그 경우엔 소유하고 있는 무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포크, 젓가락, 숟가락, 연필 중 하나를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해야 합니다.
잠시 뒤 간택이 시작될 예정이기에 직접 치고받고 할 시간은 없다.
무엇보다 갑자기 시비를 걸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어디 보자…….
어떤 식으로 해야 복사조건을 가장 손쉽고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으려나.
오!
마침 좋은 게 떠올랐다.
악마적이라 할 수 있는 계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