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밤의 피로연 (3)
기하학 무늬가 새겨진 하얀색 가면.
바로, ‘언노운’을 상징하는 가면이었다.
“이건……?”
엘리스가 주위를 살폈다.
다들, 세력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라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펜하이머를 비롯한 제국과 중소 세력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듯 보였지만,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체면 때문인 건지 대놓고 근처에 접근하진 않았다.
“걱정 마. 시야를 방해하는 결계도 펼쳐 뒀으니까.”
“철저하네. 그래서 이걸로 내가 뭘 해 줬으면 하는 건데?”
“그걸 쓰고…… 무림 쪽에 접근해주면 돼.”
진혁이 눈짓으로 무림에서 온 거주자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40대 초반의 나이와 탄탄한 체구.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내공을 지닌 고수다.
“저 남자야?”
“그래. 흑풍회(黑風會) 회주, 양호명이라는 놈이지.”
‘탐식의 눈’을 통해 살펴본 녀석의 상태창과 복사 조건은 그야말로 완벽한 사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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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양호명
성별: 남
나이: 43세
레벨: 65
힘 35 민첩 45 체력 26 마력 11 내공 58
직업: 무투가
고유 능력: 흑천공(黑天功)
스킬: Lv13 ‘흑호신권(黑虎神拳)’, Lv13 ‘흑천보(黑天步)’, Lv13 ‘호신강기’, Lv11 ‘혈사수라장(血蛇修羅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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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양호명은 무공 수준이 준수한 편이지만, 그에 비해 낮은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양호명은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만약, 상대의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을 한 뒤, 상대의 본거지에 초대받는다면 양호명이 가진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흔히 있는 이야기다.
방계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류 세력에서 배제당한 채 멸시받아 온 삶.
열등감에 찌든 양호명은 여러 의미에서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었다.
‘게다가 이번 일에 엘리스를 내세운다면…… 언노운의 활동 반경을 더욱 넓힐 수 있다.’
최근 들어 언노운의 행적을 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마력으로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엘리스라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막말로 가면만 쓰고 연기만 잘한다면, 그 누구라도 언노운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귀찮게 스킬이나 고유 능력을 편집할 필요도 없겠지.’
엘리스의 스킬이 워낙 눈에 튀는 종류였기에, 앞으로는 그 콘셉트로 밀어붙이면 그뿐이다.
겸사겸사 새로운 능력까지 복사할 수 있었으니 이쪽으로서 손해 볼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진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추혼검의 마지막 귀결을 알려 줄 수 있다고 전해. 추혼사영이 직접 쓴 비급을 손에 넣었다고 하면 반응할 거야.”
“추혼사영이라면…… 그 오리지널 검성?”
“맞아. 그 녀석. 용케 무림 쪽 인물을 알고 있네?”
“이름 정도는 들어봤지. 나도 아예 꽉 닫아 놓고 살아온 건 아니라고.”
추혼사영은 추혼검을 창시한 인물로 무림에선 흔히 검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검 하나로 태산을 가르던 사파의 거두.
그런 기인이 남긴 비급이라면, 영호명의 무거운 엉덩이를 꿈틀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으리라.
“근데, 진짜로 갖고 있어? 그 비급이라는 거? 내가 알기로는 오래 전에 사장되었다고 들었는데?”
엘리스가 꽤나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물론.
“그런 걸 갖고 있었으면 내가 천유성을 상대로 써먹었겠지. 가만히 아껴만 두고 있었겠냐?”
안 그래도 천유성은 추혼검을 대성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데.
비급 하나면 말 잘 듣는 제2의 고구마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을 거다.
“결국엔…… 또 사기를 친다는 거네.”
“사기라니. 진짜로 검성이 쓴 책을 들고 가긴 할 거야.”
녀석이 기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이긴 하지만.
어쨌든 검성이 쓴 책이라는 점은 사실이긴 했다.
“일단 들어봐. 이런 식으로 말하면 바로 걸려들 테니.”
진혁이 엘리스의 귓가에 대고 계획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엘리스의 동공이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 무렵.
“후우. 진짜 너랑 계약해서 다행이야.”
엘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너랑 적으로 만나서 다른 녀석들처럼 당한다고 생각하면 화병으로 죽었을 것 같거든.”
나머지 가주들에 대한 복수고 나발이고.
아타락시아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고 뭐고 간에.
당장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게 먼저였을 거다.
***
“빌어먹을.”
무투파의 실력자들만 모였다는 흑풍회를 이끄는 회주.
권법에 있어서만큼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
무림맹이든 신교와 마교든 어딜 가서도 밀리지 않는 강자.
그 모든 수식어구들의 양호명이라는 인물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호명은 그 모든 게 덧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직계가 아닌 방계의 신분으로는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이무리 발악을 한들, 자신의 위치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니 이런 잡일에나 동원되는 거겠지.’
양호명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모용수가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
별 시답잖은 것들 사이에서 그나마 쓸 만해 보이는 햇병아리들을 영입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하게 제국의 떨거지들이랑 한 판 붙어 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
자고로 무인이란 무력으로 세를 정해야 하는 법.
어중간하게 수를 재고 머리싸움을 해대다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승부가 기울어버린 것 아닌가?
“쳇.”
그런 생각까지 들자 더욱더 짜증이 솟구쳤다.
테이블 위에 있는 독주를 한 가득 입안에 털어 넣고 나서도 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는 양호명의 입장에선 당연히 싫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쾅!
술잔이 테이블 위로 세게 부딪쳤다.
“나는 술과 함께해야 하니, 혹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거라면, 저기 곱상하게 생긴 남궁세가의 머저리에게 말을 하면 된다.”
양호명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손사래를 쳤다.
시선은 테이블 위에서 꼴꼴 소리를 내며 채워지고 있는 술잔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허약한 애한테는 관심 없어.”
양호명의 이맛살이 크게 꿈틀거렸다.
“……뭐라고?”
“내가 관심 있는 건 적당히 쓸 만한 실력을 가진 놈이거든.”
“네놈! 지금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는 알고나 있는 것이냐!”
아무리 남궁세가가 머저리들만 모였다고 하나,
그들을 욕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한낱 플레이어들 따위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란 말이다.
가뜩이나 기분도 좋지 않은데 잘 걸렸다.
건방진 인간 따위 내공을 살짝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양호명이 상대를 바라봤다.
“너…… 너는?”
지진이 일어나는 동공.
하도 놀란 나머지 술잔을 엎질렀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현재 중층부의 모든 세력들이 미친 듯이 찾고 있는 플레이어 중 하나를.
“언노운…….”
“맞아.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
하얀 가면을 쓴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를 통해 목소리를 변조해 뒀기 때문에, 양호명은 엘리스가 여성이라는 걸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미궁에서는 보질 못했거늘. 언제 이곳에 온 거지?”
“살짝 지각을 하긴 했어. 시시껄렁한 공적치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어차피 세력을 선택하는 것쯤이야 별로 어렵지 않기도 했고.”
엘리스가 귀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오만하고 도도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진 않지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쏠리게 하는 것이 언노운이 갖는 캐릭터의 본질이다.
그리고 엘리스는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 이 캐릭터를 잘 연기할 수 있었다.
자존심 세기로는 신격들마저 한 수 접어 줄 정도였으니까.
‘과연……. 가짜는 아닌 것 같군.’
양호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공을 이용해 상대를 가늠해 본 결과. 상대는 틀림없는 강자였다.
얼핏 봤을 때, 마력의 끝이 보이질 않았으니…… 어중이떠중이가 연기하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강진혁이 언노운과 동일 인물이라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는데, 역시나 헛소문이었어.’
저 옆 테이블에서 샴페인 잔을 홀짝이고 있는 가증스러운 놈이 보였다.
적어도 저 둘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기회다.
언노운은 강진혁과 비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플레이어.
만약 그런 언노운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어쩌면 무림에서도 자신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디 그것뿐이랴?
최악의 상황에서 이런 성과를 올린 자신에게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방계라는 굴레를 넘어 그 이상의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양호명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거 실례했군. 알고 있겠지만 요새 우리 일진이 영 좋지 않아서 말이야.”
“이해해.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마. 지옥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당신을 위해 내가 와 줬으니.”
엘리스가 태연하게 양호명 옆에 앉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나 본데…… 본론부터 바로 꺼내 줬으면 좋겠군. 이리저리 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거든.”
“시원시원해서 좋네. 사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딱 하나야.”
엘리스가 품에서 굉장히 낡아 보이는 고서 한 권을 꺼냈다.
“검성이 쓴 비급. 이걸 ‘선천진기보양단’과 교환하고 싶어.”
“그, 그건!”
처음 엘리스를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혼검의 마지막 귀결이 적혀 있다는 희대의 비급.
저 고서 한 권이면 무림 전체가 피바다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천진기보양단도 귀하긴 하나, 저것과 비할 바는 아니다.’
천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최고의 기연이…….
지금 양호명의 눈앞에 나타났다.
***
“네가 왜 저쪽에 있는 거냐?”
“진혁 씨가 저기 있네요?”
하얀 가면을 보던 천유성과 테레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노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두 사람으로선 양호명과 함께 있는 사람이 진혁이 아니란 걸 대번에 눈치챈 상태였다.
“아…… 저거?”
진혁이 볼을 긁적였다.
흠…….
이걸 뭐라고 설명해 줘야 되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중이야.”
그것도 굵은 깨소금으로 팍팍 뿌리고 있지.
아직 당사자는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하게 될지 모르고 있기에, 지금 당장은 천국을 거니는 기분일 거다.
아주 잠시뿐일 테지만 말이다.
“궁금하면 자세하게 알려 줄까?”
“아니, 필요 없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계획하고 있는 거겠지.”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절대 자세한 내막 따윈 알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보다 진혁 씨는 어디랑 계약을 할지 정하셨어요?”
계약이라…….
그래, 그게 있었지.
이번 가면무도회의 핵심은 바로 어느 세력과 함께할지 정하는 거다.
그에 따라서 탑 중층부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오를 수 있는지가 결정되니까.
그리고 진혁은 어디와 함께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때마침.
[지금부터 플레이어 분들과 거주자 분들은 ‘선택’을 시작해 주십시오.]2층에 있던 릭이 음성 증폭 마법을 사용했다.
서로 간에 간보기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 결정을 내리라는 뜻이다.
릭의 말과 함께, 내부의 공기가 한 차례 바뀌었다.
웃고 떠들던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는 대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이 쏠린 곳은 정해져 있었다.
저벅.
스윽.
덜컹!
기다렸다는 듯 여러 개의 발걸음이 동시에 들려왔다.
총 일곱이라…….
‘생각보다 많이들 걸렸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