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만상공유(萬祥共有) (1)
인간들과 인외종들로 구성된 각종 세력들의 대표들이 진혁의 주위로 몰렸다.
“또 다시 저 놈이군.”
“그러게 말이에요. 아주 혼자서 맛있는 건 전부 다 찾아 먹는다니까요.”
“역시, 강진혁에게 가는 건가. 저렇다가 배가 터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일곱이라니. 진짜 엄청나긴 엄청나네.”
주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의 시기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자신들한테는 중소 세력들이 기웃거리고 있는데.
가장 큰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제국’과 ‘정령계’가 모두 진혁에게 관심을 보이니 그럴 수밖에.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무림’ 측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모든 이들이 진혁을 섭외하기 위해 움직인 상태였다.
“저분이 아니었으면 저희 모두 미궁에서 뼈를 묻었어야 했을 거예요. 그러니 다들 그 입들 좀 간수 잘하세요.”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마리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진혁이 제국을 통해 관리자와 추가 협정을 맺지 않았다면…….
25층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거다.
실제로 미궁에 있는 각종 함정들에 쩔쩔매다 무도회장으로 역소환된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흐응. 지금 저 사람들 오빠를 잔뜩 질투하는 것 같은데?”
“맞아. 맞아. 나도 들었어.”
케이시와 주드로가 키득거렸다.
카가각…….
그극.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헬버드가 지면을 긁었다.
얼마나 날뛰었는지 아직까지도 날에 정체모를 핏물을 잔뜩 머금은 상태였다.
“보이지 않으면 질투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그치?”
“응! 듣지도 못하면 더 얌전해질걸?”
뭔지 모를 살벌한 대화가 이어졌다.
하필이면 저 미치광이 남매까지 나서다니.
이성적인 판단 따윈 없는 전투광들이었기에, 두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얼마나 골치 아픈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그건…….”
“그렇긴 한데…….”
“진정하라고. 우리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정곡을 찔렸는지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진혁이 모두를 구해 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진혁의 앞으로 펜하이머가 다가왔다.
“드디어 다시 보게 되는군요.”
살짝 상기된 얼굴.
펜하이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원하는 인재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궁에선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하하. 별 말씀을. 당연히 해 드려야죠. 저희와 함께하실 플레이어에게 그 정도도 못 해 드리겠습니까?”
펜하이머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
진혁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훈훈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건 언제 해도 익숙하지 않다.
적어도 표정 관리 정도는 해 주는 게 예의겠지.
“아. 그것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예?”
“죄송하지만, 제국을 선택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작스러운 통보에, 펜하이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지금 자신들이 투자한 게 얼마인데.
하지만.
“제국 측에서 저에게 많은 걸 베풀어 주신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제 목표를 이루는 데는 살짝 부족한 것 같아서요.”
진혁은 여전히 미안해 죽을 것 같다는 얼굴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제국이 목표를 이루는데 부족하다니.
아직, 중층부의 생태계에 대해 명확히 모르는 플레이어들이야, 이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몰랐으나.
나머지 거주자들은 아니었다.
7개 왕국으로 구성된 광활한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수백만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력과 찬란한 문화까지 뒷받침된 게 바로 ‘제국’이었으니까.
설령, 관리자라 할지라도 명분 없이 함부로 거대 세력을 건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게 부족하다고?’
‘대체 목표가 뭐길래……?’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펜하이머 저 양반 얼굴 벌게진 거 봐. 당장이라도 고함을 지를 분위기야.’
거주자들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펜하이머 역시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뿐이지.
손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플레이어 하나쯤이야 가차 없이 베어 버릴 것이다.
어디까지나 필요한 건 말을 잘 듣는 장기말이라는 뜻이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다들 거절당한 펜하이머의 다음 행보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움직인 건 진혁도 펜하이머도 아니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치고 나온 것이다.
“저는 정령계를 대표하여 온 물의 정령 ‘메이레나’라고 해요.”
고고한 여인의 모습을 한 물의 정령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저희 또한 중층부를 주름잡는 세력으로 진혁 님이 탑을 오르시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실지는 모르지만, 서포팅 계열에서 저희만큼 도움이 되는 존재들은 찾아볼 수 없어요. 또한 30층까지 가는 가장 빠른 루트도 제공해 드릴 수 있답니다.”
제국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터.
메이레나는 재빨리 자신들의 장점을 어필하려 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정령들이라면 이미 충분하거든요.”
진혁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웅성웅성.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연이어 가장 유망한 세력들을 모두 거절한다는 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마찰을 빚고 있는 무림을 선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노릇.
‘거대 세력이 아니라면…… 중소세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거대 세력들도 성에 차지 않는데, 중소 세력들을 선택한다면, 더욱더 탑을 오르는 게 힘들어질 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저 인간 놈은.’
도무지 진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무도회장은 유례없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
“푸하하! 자네 말이 맞군. 정말로 재밌는 인간이야. 그토록 콧대 높은 거주자들이 모조리 똥 씹은 얼굴을 하는 날을 보게 될 줄은 나도 미처 몰랐네.”
2층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하스팅이 폭소를 터뜨렸다.
진혁의 돌발 행동이 꽤나 흥미로웠는지, 입꼬리가 연신 씰룩였다.
“이집트의 신격분들도 꽤나 당황해 하셨으니까요.”
릭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진혁이 이런 식으로 나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신격들의 제안마저 거절한 플레이어가 중층부의 세력들에게 만족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오. 이집트의 신격들과도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게다가 그들의 간택을 거절했다고?”
“예. 가차 없이 거절해 버렸습니다.”
릭이 지난날을 떠올렸다.
최상위 신격들을 등에 둘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진혁은 고민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조차도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스팅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40층대로도 만족을 못 한다는 건…….”
믿기 힘들었지만, 그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정상……을 노린다는 뜻이군.”
아직까지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이 세상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위치한 불가침의 성역에 도전하겠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런 뜻이겠죠.”
“탑이 도래한 것이 인간들의 본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긴 했으나, 저 정도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야. 솔직히 말해 저 친구의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랄까?”
대부분은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 것도.
사람들의 목숨을 함부로 뺏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탑의 나타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진혁처럼 아예 겁을 상실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스팅이 턱을 쓰다듬었다.
“좋게 말하면 배짱이 좋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잃을 게 없는 거겠지. 보는 입장에서야 흥미롭지만, 너무 무모해. 마치, 일부러 외줄을 타려는 것 같으니까.”
“아마…….”
릭이 조심스럽게 하스팅의 말을 받았다.
“즐기고 있는 거겠죠.”
“즐기고 있다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저 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애초에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이토록 압도적인 행보를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시련의 탑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을.
강해지고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그리고 탑의 끝으로 가는 여정을.
전부 즐겼기에, 신격들과 거주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거겠지.
“어쩌면……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하스팅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얼굴로 진혁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렸다.
‘보여 다오.’
이렇게 벌인 판을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보다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할 건지…….
***
“허면 강진혁 플레이님께서 원하는 건 뭐죠? 대체 어느 세력과 연을 맺고 싶으신 겁니까?”
이번에 입을 연 건 또 다른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창백한 피부에 사슴을 연상케 하는 긴 뿔.
허리까지 늘어뜨린 초록빛깔 머리카락과 네 개의 다리가 꽤나 인상 깊었다.
‘호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또 진귀한 녀석이 나타났다.
드라이어드들을 이끄는 인외종, ‘유아시스’.
중층부의 패권을 노리는 제3 세력의 대표다.
‘푸른 뿔 일족이 직접 올 줄이야.’
언젠간 유아시스와도 그 유적에 함께 가야 하긴 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어느 세력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굳이 중층부의 세력들 밑으로 들어가서 빌빌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서로 지지고 볶든 몇 개의 층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든.
그거야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의 사정 아닌가?
“설마, 세력도 없이 탑을 오르겠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소속된 세력이 없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을 테니까요.”
대신.
“이번 기회에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제가 이끄는, 저만의 세력을요.”
“세력을…… 새로 만든다고요?”
진혁의 말에, 유아시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당황스러운 건 제국에서 온 펜하이머나 엘리스와 있던 무림의 영호명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어이가 없군.”
진혁이 미친 짓을 많이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아예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버리는 행동이었다.
“지금 하신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요? 수천 년을 이어 온 탑의 균형에…… 아직 이곳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당신이 새로운 세력을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느냐는 겁니다.”
마치 큰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유아시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창백했던 얼굴이 붉게 변한 건 착각이 아니리라.
하긴, 녀석들 입장에선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탑의 생태계도 잘 알지 못하는 초보자로 보일 수밖에 없겠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 아이가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꼴이었으니,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귀엽네.’
탑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뉴비들이 삐약삐약 거려 대는 건 내 입장에서도 똑같았다.
물론, 여기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해 봤자 심력만 낭비하는 꼴이다.
그보다는 확실히 알려 주는 편이 좋겠지.
“신규 세력을 만들려면 기존 세력들의 인정을 받아야 된다…… 이게 탑의 규율 아니었습니까?”
“……타, 탑의 규율은 또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당신. 대체…….”
“제가 지식이 좀 해박한 편이거든요.”
“그걸 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당신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세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강자 정도까진 아니에요.”
유아시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면.
“그럼, 모두가 인정할 정도의 자격이 있는지 보여 드리면 되겠네요.”
진혁은 생긋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고유 능력 ‘만상공유(萬祥共有)’를 사용합니다.]제한 시간은 단, 30초뿐.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고유 능력을 선택하셨습니다.]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능력 발동의 요구 조건을 상회합니다.]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가 발현됩니다!]짧은 메시지와 함께…….
……시계가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쿠쿠쿠쿠쿠쿠!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무도회장을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