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만상공유(萬祥共有) (2)
탑의 열 손가락에 드는 절대자 중 하나.
위대한 여섯 가문 중에서도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아타락시아 가문의 전대 가주.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그 고고한 진조의 고유 능력이 펼쳐졌다.
“컥!”
“허억?”
여기저기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심해와 같이 무겁다.
격이…… 다르다.
쿠쿠쿠쿠쿠쿠!
전신을 짓누르는 마력에 무도회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
“이건…….”
그나마 관리자인 하스팅이나 릭 그리고 각 세력의 대표로 온 거주자들이나 버틸 수 있는 게 고작.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거나 실신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유아시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혼자의 몸으로 세력을 말했을 때만 해도 상대할 가치도 없는 허풍이라 여겼건만.
기껏해야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서 하는 발악이라고 여겼건만.
대체 무어란 말이냐.
이 터무니없는 수준의 마력은!
그녀 역시 탑에서 살아 오며, 수도 없이 많은 강자들을 만나 왔지만…….
단언컨대 이토록 전신이 얼어 버린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펜하이머 역시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고작 30초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 동안 느낀 감정은 틀림없는 공포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이 반쯤 뽑힌 걸 봤지만…….
수치심보단 당연하다는 감정이 앞섰다.
이렇게 지독한 기운을 내뿜어 대는데, 본능적으로라도 검을 뽑으려 할 수밖에.
‘……그저 그런 유망주가 아니었군.’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사냥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판단하고 당근과 채찍으로 조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어.’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맹수가 아니다.
그런 맹수를 포식하는 괴물이지.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한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위압감.
자신 역시 제국이 자랑하는 100인의 소드마스터 중 하나였지만…….
펜하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100명 중에서도.
아니,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목전에 둔 상위 10명 중에서도.
저 정도로 강한 기운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중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건 엘리스였다.
양호명과의 거래를 이제 막 끝내려던 찰나, 진혁이 너무도 익숙한 기운을 사용한 것이다.
콰득!
샴페인 잔이 깨져 안에 든 샴페인이 식탁보를 적셨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이 능력은 설마…….’
엘리스의 송곳니가 혀를 깊숙이 찔렀다.
블러드 로드(Blood Lord).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의 피를 관장하는.
자신의 고유 능력을.
순식간에 수백 개의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어선 안 된다.
자신의 임무는 언노운의 가면을 쓰고 그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계약자와 한 약속이었으니까.
대신, 옆에 앉아 있던 양호명이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그 역시 진혁이 보여 준 마력의 해방으로 인해 낯빛이 완전히 변해 있는 상태였다.
“무식한……! 정말로 저런 놈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거냐?”
“그래, 걱정하지 마. 추혼검의 마지막 귀결이 담긴 비급만 있으면 충분히 꺾을 수 있어.”
“영약만…… 넘겨준다면 된다. 이거지?”
“맞아. 내가 직접 갈 순 없으니 적당한 심부름꾼 하나를 보낼게.”
“……알겠다. 그렇게 하마.”
양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둘 사이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끝났다.
***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숨 막힐 듯한 적막을 깬 건 이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제 능력을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만.”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30초란 시간 내에 확실하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살짝 사기를 친 기분도 들긴 했지만, 어차피 ‘만상공유’ 또한 이쪽이 보유한 능력 중 하나 아닌가?
그걸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뿐이었으니 사실 사기라고 부를 건덕지도 없긴 하다.
“큭.”
유아시스가 주먹을 꼭 쥐었다.
이렇게까지 실력 행세를 했는데 마냥 모른 척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그건 무리다.
“확실히…… 그 정도면 누구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자격을 의심할 수는 없겠죠.”
관리자들도 개입하지 않는 걸 보니, 사실상 신흥 세력의 설립은 승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아시스가 인정하자 나머지 세력의 대표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중소 세력 ‘제3 세력’이 새로운 세력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거대 세력 ‘정령계’가 새로운 세력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거대 세력 ‘제국’이 새로운…….] […… 존재를 인정합니다.] [상급 관리자 하스팅이 ‘새로운 세력’의 설립을 인가합니다.] [새로운 세력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진혁의 앞에 상태창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세력의 이름이라…….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간판이 될 이름인 만큼, 신중하게 정하는 편이 좋다.
과거에는 귀찮다는 이유로 ‘zㅣ존 법사’라고 지었다가 정상에 오를 때까지 후회했었지.
그걸 생각하면 지금 내세우고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은 매우 훌륭한 축에 속했다.
암 그러고 말고.
“고인물 코퍼레이션.”
진혁이 곧바로 대답했다.
[한 번 정한 이름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으로 하시겠습니까?]저 멀리서 천유성과 테레사를 비롯해 수많은 주주들이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착각이겠지.
아마도 말이다.
“응.”
진혁이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신규 세력 ‘고인물 코페레이션’이 탄생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세력을 만든 업적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 [세력에 속한 구성원들은 세력을 상징하는 휘장을 사용할 수 있으며, 층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게 됩니다.]세력의 목표는 한 층계를 지배하며,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각종 이득을 독식하는 거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걸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진정한 목적은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그렇게 덩치를 부풀려 이미 한 번 실패해 버린 탑의 정상에 재도전하는 것.
그것이 과거 탑을 오르다가 실패한 모든 거주자들의 염원이다.
‘쉽지는 않겠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건 바로 그놈들이었으니까.
언젠간 그 절대자들과 다시 한번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진혁의 입꼬리가 연신 씰룩였다.
‘부디. 현실이 된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강해졌으면 좋겠네.’
그래야 다시 한번 탑을 오르는 보람이 있을 테니.
그때였다.
“아무래도 이번엔 우리가 당한 것 같군요.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혹시 제국과 함께하고 싶은 플레이분이 계시다면 여기, 알프레도 재상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펜하이머가 복잡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혁을 회유하지 못한 이상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 본 것을 당장 제국의 수뇌부에 가서 전달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는 세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지도 몰랐으니까.
“나도 이만 가지. 뒷일은 남궁세가 쪽에 맡기마.”
양호명도 마지막으로 엘리스와 묘한 시선을 나눈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미 더 큰 목적을 달성했다.
뭐, 이런 뜻이겠지.
엘리스가 뿌린 미끼가 워낙 먹음직스럽긴 했으니. 이제 차분하게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진혁이 멀어져 가는 양호명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이렇게 씨알 굵은 먹잇감들이 모여 있을 때 복사 조건을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나도 슬슬 가 볼까.’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천유성이나 테레사가 어느 세력과 함께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지만, 그거야 탑 밖에서 천천히 들어도 되겠지.
그렇지 않아도 큰 이벤트가 하나 끝난 이상 조촐한 뒤풀이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앞으로의 일도 이야기할 겸해서.
그렇게 진혁도 갈 준비를 하려고 할 때였다.
“가시기 전에 저도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도 될까요?”
정령계를 대표해 온 물의 정령, 메이레나가 진혁을 붙잡았다.
“짚고 넘어간다고요?”
“예.”
“어떤 걸 짚고 넘어간다는 거죠? 제가 그쪽에게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미궁에서 저희 정령수들을 강제로 복속시키셨던데, 그들을 다시 되돌려 주셨으면 합니다.”
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설마, 제가 협박을 했다 이런 뜻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다섯이나 되는 정령수들이 모두 당신을 선택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정령수들이 계약자를 고르는 기준은 꽤나 까다롭다.
특히, 서로 간에 상성이 안 맞는 원소 계열 정령수들은 자신의 계약자가 다른 정령들과도 계약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할 터.
메이레나의 상식으론 도저히 다섯 정령수들이 진혁을 선택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저는 강압적인 걸 싫어해서요. 모두들 아주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저희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바로 그걸 못 믿겠다는 거예요. 정령수들이 아닌,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하는 말씀이니까요.”
“정 못미더우시면,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죠 뭐.”
“예?
메이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진혁은 이미 아공간 인벤토리 속에 있던 정령수들을 모조리 끄집어내 버린 뒤였다.
“응?”
“뭐야? 왜 우리를 부른 거지?”
“또 싸우는 건가?”
불의 정령인 살라맨더와 흙의 정령인 골렘. 도도한 소녀의 모습을 한 실피드까지.
5대 정령수들이 두리번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물론, 그 앞을 가로막은 건 진혁이었다.
“푹 쉬고 있는데 불러내서 미안해. 다름이 아니라 저기 보이는 물의 정령께서 내가 너희들을 협박해서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말이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너희 입으로 말해 줬으면 하거든.”
“걱정 말고 편하게 말해 보세요. 만약 계약에 부정이 개입했을 경우. 즉시 그 계약을 파기한 뒤,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을 정령계로 되돌려 보내겠습니다.”
메이레나가 자애로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진혁의 눈에선 짙은 살기가 번들거렸다.
설마하니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고 나서는 놈은 없으리라 믿는다. 목숨이 두 개가 아니라면 말이지.
흠칫하고.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였으나, 어느 걸 선택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
“우,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계약을 맺은 거야. 그치?”
“응. 응. 인간이랑 노는 게 정.말. 재.밌.거.든. 하하하.”
“진짜야. 절대 협박을 당했…… 아니, 당하지 않았어.”
“입 조심해, 멍청아. 얘가 아직 말이 어눌해서. 죄송합니다. 헤헤.”
“알았으니까. 다들 조용히 좀 해. 시끄러우니까 머리아파.”
정령수들이 앞 다퉈 나섰다.
하지만, 왜일까.
봇물이 터진 듯이 쏟아지는 말투에 짙은 공포심이 배어 있는 건.
“정말인가요?”
“맞아. 진짜로 괜찮아.”
“우리가 원해서 한 거야.”
죽어도 아니라고 하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단 말인가?
메이레나는 결국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제가 착각한 거겠죠.”
그런데.
이번엔 진혁이 역으로 떠나려는 메이레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허. 어딜 그냥 가시려고?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애먼 사람 의심하는 겁니다.”
칼로 찔러 놓고 ‘어? 아니네?’ 하면 끝인가?
누군가를 의심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질 줄 알아야지.
동시에.
하얀 손바닥이 메이레나의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