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두 계층의 연합 (1)
“키릭?”
“키이이…….”
무언가에 홀린 듯 고블린들이 다가왔다.
반쯤 풀린 눈동자와 벌름 거리는 코. 그리고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은 어딘지 모르게 중독되어 있는 듯싶었다.
저벅.
걸음걸이가 한층 더 비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퍼퍼퍽!
퍼퍽!
흑의를 뒤집어쓴 남자들이 단숨에 고블린을 제압했다.
뒤에서 손날로 목의 연수 부분을 가격한 터라 고블린들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도합 일곱 마리.
이걸로 포획한 몬스터의 수만 해도 세 자리 수가 넘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곁에서 지켜보던 멜레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살다 살다가 몬스터들을 냄새로 유혹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쯤 되면 어이가 없다 못해 기도 차지 않는다.
“아까 코인 거래소에서 산 아이템들을 조합해 만든 거 맞지? 저 녀석들 정신 줄 놓게 만드는 비약 같은 거?”
멜레나가 통로 중앙에 놓인 항아리를 가리켰다.
정체불명의 보라색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색이 아닌 냄새다.
달짝지근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아마 몬스터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거겠지.
“정확히는 저 문양을 가진 몬스터들만 영향을 받는 거야. 저게 효율이 좋기는 한데 약점도 확실하거든.”
‘붉은 문양’은 본래 개별 몬스터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주술이라고 보면 된다.
전투력은 물론, 공포심마저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었기에, 고위급 주술사들이 종종 사용하긴 했지만, 세상에 장점만 있는 기술은 없는 법.
‘마야비 땅벌의 꿀 527mg’과 ‘세 개의 눈을 가진 스컹크의 페로몬’, ‘작약꽃 15뿌리’를 넣고 약불로 천천히 조리한다면 꽤나 재밌는 걸 만들 수 있다.
문양의 힘을 약화시키고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비약을 말이지.
거기에 결계를 통한 ‘환영 감옥’을 구현해 디테일까지 살렸으니…….
이곳에 오는 몬스터들은 식충 식물에 날아드는 파리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놈들의 본거지에선 이러한 방법도 통하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 덴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이 정도면 제 역할을 톡톡히 다 하는 셈이다.
진혁의 태연한 설명을 듣던 멜레나가 또 한 번 기함했다.
“당신 진짜 대체 정체가 뭐야? 아니, 다 떠나서 저런 방법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어떻게 알긴. 예전에 열심히 탑에 관해 연구하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됐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도 예전에 [시련의 탑]을 많이 플레이해 봤지만 이런 게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고!”
“그거야 네가 뉴비들하고만 놀아서 그런가보지.”
팬티만 입고 당근으로 대형 몬스터의 목을 썰어 버리는 고인물하고 어울려 봐야 감이 슬슬 올 수 있는 영역이다.
“누, 누가 뉴비야! 나도 마인 협회에서 나름대로…….”
“아이고, 위대하신 마인 분을 제가 몰라 뵈었습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이 목줄을, 잡은 몬스터들 목에 채우시죠.”
진혁이 멜레나에게 여러 개의 목줄을 던졌다.
한 눈에 봐도 투박하게 생긴 사슬로 만든 목줄이었다.
“목줄? 이걸로 또 뭘 하려고?”
“함정을 돌파할 거야.”
기껏 지원자들을 받았는데 놀려서야 쓰나?
무언가를 손에 넣었으면 그걸 바로바로 활용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아직까지 무슨 뜻인지 파악을 못한 멜레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주군. 말씀하신 걸 전부 완성했습니다.”
월영이 다가와 공손하게 보고를 올렸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월영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크흠. 그래. 어디 제대로 했는지 한 번 보마.”
진혁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월영의 안내를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엔 화려하고도 끔찍한 무언가가 완성되어 있었다.
약 2m에 이르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황금 마차.
놋쇠로 만든 검은색 바퀴와 천마신교라고 음각된 문양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과연, 본교의 위엄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 정도면 암황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주군께서 흡족하시니 속하는 그저 황공할 따름입니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진혁이 마차에 올라탔다.
역시, 비싼 코인을 투자한 보람이 느껴졌다.
우선 승차감이 장난 아니었고 제법 높은 단상에 서 있는 덕에 시야도 탁 트였다.
화룡점정으로 손에 쥔 가죽 채찍의 손맛은…… 그래. ‘권력’의 맛이었다.
‘이래서 다들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하는구나.’
촤아악!
채찍이 바닥에 가느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러자.
끄으응.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땀을 뻘뻘 흐리며 ‘자이언트 버드’의 깃털을 들어올렸다.
“이, 이거 너무 무거워.”
“주인아. 우린 팔다리가 짧아서 이런 거 모…… 못 든단 말이야.”
“정령 살려!”
“그때 정령계로 돌아갔어야…… 했어. 이미 늦은 거겠지?”
“다들 시끄러워. 머리 아프니까 조용히 좀 해.”
햇빛 한 줌 없는 미로 안이었으나, 그래도 구색을 맞추려면 이런 디테일한 부분이 중요한 법이다.
역시 왕의 행차에는 이런 깃털들이 필수지.
쿵! 쿵! 쿵! 쿵!
마차 앞으로 목줄에 길게 연결된 몬스터들이 통로를 따라 행군을 하기 시작했다.
***
철컥!
함정이 발동되자, 거대한 화염이 솟구쳤다.
화르르륵!
“키에에에에!”
선두에 있던 고블린 한 마리가 순식간에 숯덩이로 변해 버렸다.
“이번엔 불을 이용한 진법이로군요.”
“함정이 진짜 다양하긴 하네. 그냥 갔으면 고생깨나 했겠어.”
하도 같은 광경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월영과 멜레나도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그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이야.’
진혁이 마차 위에서 느긋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적의 부하를 이용해 적이 설계한 함정을 돌파한다.
이보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공략법이 어디 있을까?
콰아앙!
굉음과 함께 또 다른 고블린이 생을 마감했다.
“안전하긴 한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슬슬 두 번째 카드를 쓰려고 그랬어.”
이미 진혁의 머릿속엔 미로에 대한 모든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주요 함정들의 위치는 물론, 대규모 몬스터들이 머물 만한 공간 등이 어디 있는지까지 전부 암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흑풍회의 대원들이 잡고 있던 쇠사슬을 놓았다.
촤르르르륵!
“크오오오!”
“그오오오!”
머리에 쐐기 모양의 투구를 쓴 오우거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방향 따윈 알 수 없다.
눈을 가리고 있는 투구의 특성상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조차도 모를 테니까.
놈들에게 허락된 건 그저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가 쐐기 모양의 투구로 벽을 들이박는 것.
그것이 하나뿐인 임무였다.
콰아아앙!
벽이 무너지며, 통로에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워낙 큰 충격에 벽을 들이박은 오우거 역시 기절하거나 죽었지만, 그래도 제 임무는 다한 셈이었다.
“짜잔! 길이 생겼네?”
진혁이 양 팔을 넓게 펼쳤다.
환호와 갈채를 기대하면서.
물론.
“…….”
“…….”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은 차게 식어 있었다.
마치, 현계로 놀러 나온 마왕을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다.
심지어 노움과 살라맨더 녀석은 자기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눈을 찌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중이었다.
으음. 조금 심하긴 했나?
“크흠. 큼! 다들 목숨 걸고 탑을 오르고 있는데, 설마 ‘몬스터에게도 권리가 있다’ 이런 걸 주장하려는 건 아니지?”
“누가 뭐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으로 욕하고 있잖아. 사원이 사장한테.”
“안 했는데요, 사장님?”
멜레나가 생긋 웃었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다.
[Lv9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대상이 하는 말은 ‘거짓’입니다.]욕하고 있는 거 맞네. 그것도 아주 찰지는 걸로다가.
‘이미지 쇄신을 좀 하긴 해야겠어.’
리더란 모름지기 앞에서 앞으로 나서야 하는 법.
진혁이 코인 거래소에서 또 다른 아이템을 구매했다.
앞서 구매했던 것들과는 달리 200코인짜리 싸구려 곡괭이 한 자루였다.
“주군. 직접 나서시려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좀…….”
월영이 당장이라도 부러지기 직전의 곡괭이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길을 뚫어야 할 일이 있으면 차라리 저희를 시키십시오.”
“굳이 직접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풍회에서도 곤란한 얼굴로 진혁을 뜯어말리려 했다.
물론, 보기에는 허접해 보일지도 모른다.
오우거가 전력을 다해 들이박아야 부서지는 벽을 이런 낡은 곡괭이로 백날 쳐봤자 흠집이라도 갈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 생각일 때의 이야기고.
‘나는 다르지.’
다양한 퍼포먼스로 9계층의 보스들에게 인상을 듬뿍 심어 줬는데.
이제 그 녀석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떼게 만들어줄 시간이다.
우우우웅!
진혁이 양손에 각기 다른 스킬을 발현했다.
‘거인의 손아귀’를 통해 곡괭이의 날을 붙잡았다.
그리고 반대 손에선 ‘불의 원소’를 통한 화염이 일어났다.
쿠쿠쿠쿠쿠!
압력과 열이 만나자 곡괭이의 표면이 검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하려니 살짝 어렵긴 하네.’
정확한 열과 압력을 컨트롤해야 하는 거니, 사실상 상급 대장장이 스킬이 없는 플레이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예이긴 하다.
썩어빠진 고인물 중에서도 이런 게 가능한 플레이어는 많아야 두 명 정도랄까?
마지막으로 3성급 ‘증폭 결계’를 통해 모든 능력의 기대치를 극대화했다.
엄청난 마력으로 인해 미로 전체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침내, 진혁이 쏟아 부었던 마력을 갈무리했다.
띠링!
[‘다이아몬드 곡괭이’를 만드셨습니다!] [정확하고도 놀라운 솜씨는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 [신격 ‘철과 불의 아버지’가 당신의 재주에 감탄합니다.] [상층부의 신격 일부가 관심을 표합니다.]철과 불의 아버지라면, 올림포스에 속한 그 녀석이다.
하루 종일 망치질이나 하는 놈의 입장에선 꽤나 흥미로운 일이긴 하겠지.
현재 중층부의 날고 기는 거주자들도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만드는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니까.
‘과학과 스킬의 오묘한 조화에 아주 눈이 휘둥그레지긴 할 거다.’
피식 웃은 진혁이 완성한 곡괭이를 확인했다.
[다이아몬드 곡괭이]입수 난이도: A
내구도: 1,000/1,100
공격력: 550
내용: 채굴하는 데 특화된 아이템으로, 미궁이나 미로에서 벽을 뚫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채굴 시 공격력이 20%만큼 상승하며, 벽을 뚫는 경우 공격력이 10%만큼 상승합니다.
곡괭이의 색깔이 바뀌었다.
에메랄드빛을 머금은 날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좋아.’
진혁이 곡괭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푸욱!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 곡괭이가 벽을 파고들었다.
마치, 찰흙을 후벼파는 것처럼 곡괭이는 순식간에 벽 하나를 무너뜨렸다.
“세상에나…….”
“저런 신병이기가 존재하다니.”
멜레나와 월영의 입에서 헛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진혁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잘못 팠네. 여기가 아닌가 봐.”
미로의 핵심 구동 장치 중 하나가 훤히 드러났다.
비밀리에 감춰 둔 방으로 그만 들어오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쪽 방이 아마 함정의 종류를 관리하는 시스템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그렇게 진혁은 눈에 보이는 함정은 족족 파훼하고 멀쩡하던 길을 박살내며, 미로가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했다.
이대로 안 나올래? 이래도? 이렇게 해도?
그러자.
쿠쿠쿠쿵!
갑자기 모든 함정들이 멈췄다.
동시에 벽들이 동시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노는 건 여기까지군.’
진혁이 벽 너머에서 걸어오는 그림자를 천천히 바라봤다.
아마…… 보스 몬스터가 보낸 대리인 중 하나가 오는 것이리라.
그런데.
“……!”
모습을 드러낸 대리인을 본 순간,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곳에는 있어서는 안 될. 완전히 예상 밖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