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두 계층의 연합 (2)
1m의 아담한 체구.
여리여리해 보이는 몸을 지닌 소인족.
바로 ‘가면무도회’에서 만났던 하급 관리자 ‘카만’이었다.
괜히 중화 쪽 편을 들다가 상급 관리자 하스팅에게 박살이 난 뒤 좌천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녀석이 여기 나타날 줄이야.
‘재밌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관리자로서의 출셋길이 막히게 됐으니, 차라리 이 기회에 8층과 9층의 몬스터들과 손을 잡고 한 몫을 쥐어 보겠다…… 뭐, 이런 뜻이리라.
“처음 뵙겠습니다. 플레이어 언노운 님.”
카만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적대심은 느껴지지 않는 말투다.
‘하긴, 녀석은 무도회장에서 가면을 쓰지 않은 내 모습을 봤었지.’
가면 아래 맨 얼굴을 봤다면 대화가 아닌 마법이 날아왔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잘 아는 건가요?”
“후후후. 아무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고 있는 랭커를 몰라보겠습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조사하고 왔죠.”
“그렇게 말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쪽이 9층의 몬스터를 대리하는 겁니까? 저와 만나라고?”
“맞습니다. 흐음.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대충 이번 일이 너무 난잡해지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자는 취지에서 온 거라고 생각해 주십쇼.”
최선의 결과 같은 소리 하네.
은근한 협박을 하는 게 무도회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놈은 알고 있을까?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설픈 수작질을 부리다가 박살나는 건 언제나 자신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잡담은 이쯤하고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말해 주시죠. 대리인 자격으로 왔다면 뭔가 제안할 게 있다는 게 있다는 뜻 아닙니까?”
“사설을 좋아하지 않으시군요. 좋습니다. 제가 제안 드리는 건 단 하나입니다. 더 이상 곡괭이로 난동을 부리지 마시고 얌전히 저를 따라오십시오.”
“얌전히 따라간다라…… 별로 구미가 당기진 않는 제안이네요.”
“당신의 목적도 층계를 담당하는 보스를 죽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가는 곳엔 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이건 권유나 부탁이 아닙니다.”
카만이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그러자 눈앞에 거대한 스크린이 나타났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 줘!”
“제발 도와 주세요…… 제발, 누구라도!”
몬스터들이 인간들을 상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처형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금껏 미로에 들어와서 실종된 플레이어들과, 그중에서는 조금 전 미로에서 빠져 나가려 했던 프리드먼과 록히드 길드의 플레이어들도 보였다.
맨몸인 남자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리자드맨.
기둥에 묶은 여자를 상대로 단검을 던져 가며, 놀이를 즐기는 고블린도 보였다.
원형 경기장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몬스터들을 한데 풀어 놓고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를 맞추기도 했다.
피와 비명 소리…… 그리고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렇다.
저곳은 지옥이었다.
“너…….”
진혁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후후후. 너무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마시죠. 감히 인간 따위가 협박할 정도로 제 위치가 낮지 않으니까요.”
“감히, 주군께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다니! 그 혓바닥을 통째로 뽑아 버리겠다!”
월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며 앞으로 나섰다.
진혁에 대한 모욕은 곧 암황에 대한 모욕.
카만의 정체가 뭔진 몰랐지만, 그게 무엇이든 단칼에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기다려.”
“하, 하지만 주군!”
“기다리라고. 네가 나서지 않아도 저 녀석의 혓바닥은 내가 직접 뽑아 버릴 거니까.”
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흉한 기운에, 월영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멜레나 역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진혁과는 제법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지만, 이토록 분노한 모습을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릿! 저릿! 저릿!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마력.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구역질이 솟구치는 기분이다.
“크하하하! 이거 살벌하군요. 과연, 인간들 중에 가장 뛰어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답습니다. 솔직히 말해 살짝 무섭네요.”
“그래. 계속 이죽여 봐.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게.”
파츠츠츠……!
‘달을 가리는 손톱’이 발현되자 진혁의 손에 강기로 이뤄진 검은색 손톱이 나타났다.
“잘 생각하시죠. 만약 저를 공격한다면, 당신 또한 저곳까지 가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당연히 동족을 구할 기회 또한 사라지게 되겠죠.”
카만의 말에, 진혁의 손이 멈칫했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쪽은 정해져 있다.
여기서 객기를 부렸다간, 보스에게까지 가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간, 이미지에 씻지 못할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진퇴양난.
어느 하나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진혁이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결국.
“알겠다. 따라가도록 하지.”
“현명한 결정입니다.”
카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라고 할 줄 알았냐?”
진혁이 순식간에 손을 뻗어 카만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득!
엄청난 아귀힘으로 인해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만 역시 반사적으로 실드를 펼쳤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케, 케헥! 지, 지금 무슨…….”
“말로 해서는 못 알아먹나? 그 입, 다물라고 했을 텐데?”
부우우웅……!
……콰아앙!
진혁이 카만을 움켜쥔 채로 손을 높게 들었다가 그대로 지면에 내리 꽂았다.
일격에 바닥이 박살났다.
“크아아악!”
카만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생소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통증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통증에. 카만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 누가 감히, 관리자의 몸에 손을 댄단 말인가?
근신 중인 탓에 관리자 전용 성유물을 반납한 것도 싸움이 일방적으로 끝나 버리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가장 이유는 물론, 자만심에서 비롯한 방심 때문이었고.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지금까지 잘 살아 왔어. 그보다 네가 남을 걱정할 처지가 아닐 텐데?”
진혁이 가차 없이 조금 전 했던 동작을 반복했다.
카만의 몸이 하늘로 솟구치나 싶더니, 순식간에 지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코와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그만. 그마아안!”
콰아앙!
“그…… 쿨럭! 컥!”
쾅! 쾅! 콰앙!
“끄으으으…….”
축 늘어진 몸과 덜덜 떨리는 팔.
근엄하고 여유로웠던 관리자는 더 이상 없다.
그저 겁에 질린 생쥐 한 마리가 있을 뿐이지.
하지만 공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막 시작 단계에 들어섰을 뿐.
[고유 능력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별빛을 머금은 기운이 카만의 몸에 스며들었다.
[대상의 상처가 느린 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고유 능력의 이해도가 다소 낮아 완벽한 상처의 회복은 어렵습니다.]부러졌던 코가 제자리를 찾아갔고.
여기저기 찢어져 흘러내리던 피가 잦아들었다.
완전히 걸레짝이었던 조금 전을 생각하면, 거의 회복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건…….”
카만의 눈동자에 절망이 스며들었다.
본래라면 상처를 치유해 주는 성스러운 빛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토록 저주스럽게 느껴질 수 없었다.
“자. 다시 시작해야지.”
“자, 잠깐! 말하겠다. 말하겠다고!”
“아직이야. 기회를 줬을 때 말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최소한 한 사이클은 더 돌릴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끝나고 나서 바로 말해.”
또 다시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콰아아앙!
“크어어억!”
일말의 자비도 없는. 그야말로 처절하기까지 한 구타였다.
가면무도회장에서 안 좋은 첫인상을 준 데다.
특히 플레이어들을 유희거리로 죽이며, 그걸 빌미로 협박을 한 것이 카만의 입장에선 최악의 한 수를 둔 셈이다.
퍽! 퍼억!
그렇게 지옥 같은 1분이 흐르고 나서야 카만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는 감히 눈을 마주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진혁이 완전히 꼬리를 말아버린 카만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놈들에게 가는 게이트를 열어. 아. 참고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안 된다든가. 불가능한 일이라든가 라는 말이 나왔다간 그게 네 마지막 유언이 될 예정이거든.”
참고로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귀찮긴 해도 대규모 병력이 모여 있을 만한 장소 몇 군데쯤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어떻게든 찾아낼 순 있었다.
“그…… 그걸 말하면. 날 살려 줄…… 아니, 살려 주실 겁니까?”
“다행히 내 최대 관심사는 네 목숨이 아니야. 그러니 하는 거 봐서 살려 둘 수도 있지.”
“게, 게이트…… 열겠습니다. 지금 바로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 카만이 곧바로 게이트를 개방했다.
우우우웅!
눈부신 광휘와 함께 관리자 전용 게이트가 나타났다.
일렁이는 표면 너머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직까진 죽은 사람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은 모양이다.
‘서둘러야겠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만을 내팽개친 진혁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진형을 갖춘 채 주군을 호위해라!”
“하아. 어째 갈수록 꼬이는 기분인데…….”
그리고 그 뒤를 월영과 멜레나가 따랐다.
마지막으로.
“가, 가자.”
“응!”
“주인 말을 들어야지.”
정령수들이 마차를 버린 채 종종 걸음으로 움직였다.
***
암전되었던 시야가 밝아졌을 땐 주위에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월드컵 경기장 10개는 족히 들어갈 법한 거대한 공간.
그 안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의 수는 눈으로는 파악하기 힘들 만큼 즐비했다.
둥! 둥! 둥! 둥!
거친 북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후욱하고.
짙은 피비린내 또한 후각을 자극했다.
이곳이 미로의 심층부. 두 계층의 연합이 모여 있는 장소다.
“더, 더럽게 많네…….”
멜레나가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자아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건 월영도 마찬가지였다.
“수가 제법 많습니다. 퇴로부터 확보하지 않으면 자칫 포위됐을 때 빠져나가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월영.”
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주군.”
“내가 누구라 했지?”
“권천지룡이신 암황의 수제자이자 천마신교의 부흥을 위한 주춧돌이십니다.”
“한데, 고작 몬스터 따위가 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고작’.
아무리 20계층의 거대 세력인 무림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 수의 중형 몬스터들을 상대로 그 누가 저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여기 있는 놈들은 붉은 문양으로 강화된 데다, 보스 몬스터의 비호까지 받고 있는데?
“월영.”
진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예…… 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할게.”
이런 거 두 번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반드시 나를 믿고 따라라. 그럼 모두 다 살아서 나갈 수 있다.”
“모두라면…… 저희까지 말씀입니까?”
“그래. 내가 앞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지금껏 살겁의 길을 걸었다.
검으로 쓰다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무림의 암기가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당연히 이런 위기 상황에선 주인을 위해 이용되다 주인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까지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뜻이다.
그런데.
‘뭐지. 이분은.’
두근! 두근! 두근!
월영의 심장이 조금씩 고동쳤다.
차갑게 식어, 기계적으로 반복하기만 했던 삶에.
처음으로 잊혀졌던 격철 하나가 움직였다.
“대답은?”
“……존명.”
남은 건 따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