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릭노스의 전당포
익숙한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건…….
저벅.
중간 관리자 중 하나인 ‘릭 헤네시’였다.
드디어 왔구나.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 같으니라고.
“허허. 이런, 이런……. 보아하니 많이 화가 나셨나 봅니다.”
릭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여유로운 모습이 더더욱 진혁의 신경을 건드렸다.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분명, 상위 세력이 현현하는 건 막아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족의 현현과 프리드먼의 생방송 편집. 이 두 가지가 제가 요구한 조건이었습니다.”
“물론, 거래 조건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워낙 준비를 잘해 둔 터라 결계에 그만 구멍이 나 버렸지 뭡니까? 덕분에 저도 그만 깜빡 놓치고 말았습니다.”
“천하의 중간관리자 릭께서 만든 결계에 구멍이 났다?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사우론이 라식 수술하는 소리하고 앉아 있네.
맵핵 켜고 탑의 구석구석을 다 보고 있는 주제에 천진난만한 얼굴로 어디서 저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분위기가 싸늘해지려고 하자, 릭이 황급히 한 마디 덧붙였다.
“크흠! 큼! 고의로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 저희 측에서도 곤란한 일이 있었거든요.”
“어이구. 아무렴 그러시겠죠. 당연히 그게 뭔지는 비밀이겠고요?”
“아닙니다. 저희 실수로 일이 이렇게 된 건데, 당연히 말씀해 드려야죠. 몇 시간 전…… 무림 측에서 제국에 선제공격을 가했습니다. 선발대를 보낸 수준에 불과하지만, 24층 일부가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렸죠.”
릭의 말에, 이번엔 진혁이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오.’
이것 봐라?
세력의 규모가 줄어든 무림에서 제국에 먼저 기습을 가했다고?
그것도 지금까지 잔뜩 웅크려 있다가?
‘정파니 사파니…… 화합도 잘 안 되는 데다 천마신교라는 거대한 골칫덩어리까지 안고 있는 놈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이야.’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그 꿍꿍이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이후 탑의 판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릭 씨가 저와 한 계약을 어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죠.”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죄의 의미에서 진혁 님께 보너스 개념으로 제가 갖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를 ‘사실 수’ 있는 권리를 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괜찮으신지요?”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살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라…….
과연, 릭다운 말이다.
보상과 동시에 어떤 걸 고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협상을 하는지조차도 관전 포인트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겠지.
“진혁 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가진 아이템들은 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대상단의 주인인 릭은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구하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보물들을 잔뜩 갖고 있었으니까.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법이 아니다.
게다가 마케드로스로 인해 ‘균열의 열쇠’를 비롯해 다양한 이득을 얻었으니, 릭의 만행에 대해서 잠깐의 유예 정도는 줄 수 있었다.
아주…… 잠깐 정도는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현명한 결정입니다. 허면, 어떤 걸 원하십니까?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성유물이나 각종 비약 등도 있으니 잔고가 허락되는 한에서 편하게 말씀해 주십쇼.”
“글쎄요. 제가 조금 전에 코인을 전부 다 써서 코인으로 뭘 사거나 할 순 없을 것 같고. 대신 물물교환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진혁 님께서 제가 흥미가 있을 만한 걸 갖고 계실 리…… 허억!”
우우웅!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활성화하자 릭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팽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아장아장 걸어 나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고구마였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이리 와.”
“모기!”
고구마가 진혁의 품 안에 쏙 들어와 안겼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손길을 즐기는 게 영락없는 드래곤냥이다.
“고, 고대종을 교환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릭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반면.
“모, 모기이이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고구마가 진혁의 품 안에서 마구 발버둥을 쳤다.
얌전히 좀 있어라.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너는 안 버릴 거니까.
“아!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고구마랑 교환하는 건 아닙니다.”
“그, 그럼……?”
“고구마의 비늘 하나를 드리죠.”
무려 고대종의 비늘!
릭의 눈동자에 탐욕이 스쳐 지나갔다.
“……그 대가로 원하시는 건 무엇입니까?”
“균열이 나타나는 곳을 표시해 주는 ‘나침반’. 분명…… 그것도 릭 씨가 갖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마케드로스에게서 열쇠를 얻었으니 이제 균열이 나오는 장소만 알아내면 될 터.
진혁은 릭을 통해 그것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이제부터가 협상의 본 게임이다.
[릭 헤네시가 Lv25 ‘깊은 한숨’ 스킬을 발동합니다.]“후우…….”
릭이 미간을 구기며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깊은 침음성은 언제 들어도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고대종의 비늘이 좋긴 하지만, 성체도 아닐뿐더러 진명(眞名)까지 모르기 때문에 제 값을 받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특수 용액에 보관해야 하는데 그게 또 유지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서요. 물론, 찾으시는 손님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모든 위험 부담을 오롯이 저 혼자서 져야 한다는 건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죠.”
장황한 설명은 개소리에 가깝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유지비와 재고 문제, 희귀성 탓에 낮은 수요 등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럭저럭 구색은 갖춰 둔 셈이다.
[릭 헤네시가 Lv22 ‘후려치기’ 스킬을 발동합니다.]“해서 말인데…… 비늘 10개와 고대종을 일주일 간 대여해 주시는 조건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후우우. 진짜 이게 한계입니다. 그 이상은 힘들어요. 비늘이야 어차피 다시 나는 데다 양도가 아닌 대여는 솔직히 대단한 요구도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제가 손해 보는 거지만, 진혁 님이라서 특별히 이런 조건으로 해 드리는 겁니다.”
또다시 언변에 묘한 마력이 실렸다.
하여간,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 하나는 기똥차다.
괜히 모든 걸 반으로 후려친다고 해서 릭노스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라니까.
“흠…….”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했다는 이유가 아니다.
적당한 조건을 내세웠으면 모른 척 봐주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뼛속까지 장사치 모드로 나오는 이상 제대로 놀아줘야지.
“그냥 하스팅 씨랑 대화하는 게 속 편하겠네요. 릭 씨랑은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니. 상급자를 불러 주세요.”
“예……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릭이 크게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저는 릭 씨와의 관계를 생각해 큰 실수 하나를 넘겨 드리려고 했습니다. 근데, 오히려 저를 후려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잊고 계신가 본데, 관리자의 계약 위반은 중죄입니다. 더군다나…… 관리자 측에서 실수한 게 또 있을 텐데요?”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잊지 않는 게 고인물의 습성인지라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급 관리자 ‘카만’이 했던 짓거리를.
꿀꺽…….
릭이 목구멍을 따라 마른침이 넘어갔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지만, 아쉽게 됐네요. 개인적으로 릭 씨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죠.”
“자,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릭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혁의 소매를 붙잡았다.
여기서 하스팅이 왔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나침반을 순순히 넘겨주시겠습니까?”
“비늘…… 1개로 드리겠습니다.”
결국, 릭이 백기를 올렸다.
하지만.
진혁은 그 백기를 받아 주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으니까.
“음. 저도 정말 너무너무 드리고 싶은데, 이제 보니 우리 고구마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요.”
“모기……. 모기모기.”
생 비늘을 뜯길 생각에, 고구마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건 인간으로서 차마 못 할 짓이다. 저 끔뻑이는 눈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공짜로 주세요.”
단골이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서로 인심 좀 쓰는 거지.
아니, 예전에 릭에게 온갖 사기를 당했던 걸 생각하면, 이건 당하는 축에도 들지 못한다.
“아, 아무리 그래도 공짜는 좀…….”
“저는 못 하겠으니 그럼, 어디 한번 직접 뜯어가 보시든가요?”
진혁이 고구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으르릉!
“모기!”
고구마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손끝이라도 댔다간 그대로 오물오물 씹어 먹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중간 관리자라도 글쎄.
고대종의 비늘에 손을 댈 수 있을 만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오진 못할 거다.
“크윽…….”
역시나.
릭이 뻗었던 손을 도로 회수했다.
“나침반은 제 아공간 인벤토리로 보내 주세요. 찾으시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삼 일 정도는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부디, 하스팅 님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대신, 릭 씨도 그 망할 놈의 하급 관리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신경 좀 써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그 녀석의 면상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뜬금없이 뒤통수를 맞는 건 더더욱 원하지 않았고.
물론.
“다시는 탑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테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보물 하나를 생으로 날리게 된 릭의 분노가 그대로 카만에게 향할 것이 뻔했으니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때마침.
[8계층과 9계층이 공략되었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번 일은 내일 하루 동안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5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한 개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자세한 칭호의 내용은 세부 정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이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다.
이걸로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미로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
고풍스러운 방 안에는 익숙한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는 의자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고 있는 상급 관리자 하스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덜덜 떨고 있는 하급 관리자 카만이었다.
감히, 탑의 규율을 어긴 채 보스들로부터 잇속을 챙기려 한 죄는 평생을 무간 감옥에 갇혀야 할 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지금 카만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하, 하스팅 님……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스팅이 홍차 잔을 내려놓았다.
달칵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제가 실패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원을 해 드렸는데, 보란 듯이 판을 엎어 버렸네요. 이건 정말 짜증이 나는군요. 진심으로 화가 나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칼날처럼 갈무리된 기운은…….
이전의 온화하던 하스팅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히…… 히이익.”
카만이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완전히 질려 버린 얼굴에선 오직 ‘살고 싶다’라는 욕망만이 가득했다.
“특히 이번엔 상위 마족까지 줄을 대 주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당신이 머저리라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게 말이죠.”
하급 관리자가 두 계층을 연결하고 심지어 마계에서 마케드로스까지 불러올 수 있던 이유.
그것은 모두 하스팅이 뒤를 봐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하급 관리자를 고른 거였는데, 아무래도 제가 실수한 것 같네요. 그동안 일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카만 씨.”
그것으로.
하스팅의 대화는 끝을 고했다.
“제, 제발……!”
처절한 절규 소리와 함께.
콰직!
공간이 통째로 카만의 몸뚱어리를 집어삼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꿈틀하고.
방 안에 정체불명의 촉수를 담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문자와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이 방 안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하스팅조차 움찔하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태고의 주인들이시여. 그 누구도 지고하신 여러분의 성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 하스팅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