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피어오르는 전화(戰火) (1)
시련의 탑 24층.
무림의 공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한 성의 내부에는 시체가 산더미만큼 쌓여 있었다.
매캐하게 솟구치는 연기와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는 전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망루에서 그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진호와.
중국의 중화 길드를 이끌었던 남궁천이었다.
“이번 일은 고생이 많았다. 네 활약 덕분에 손쉽게 적의 거점 하나를 빼앗았구나.”
“별 말씀을……. 저는 그저 가주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껄껄껄! 제국이 자랑하는 기사단 중 하나를 홀로 궤멸시켰으면서 겸손이라니…… 과연, 너를 우리 남궁세가의 일원으로 맞이한 건 옳은 결정이었다.”
남궁진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남궁천을 바라봤다.
본래 중화 길드는 무림의 세력 확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3대 절망에 의해 반파된 뒤에는 거의 쓰임새가 사라졌고.
그러나.
단 한 명.
남궁천만큼은 그대로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탑의 외인이며 무림의 핏줄을 이어받진 않았으나, 타고난 재능과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났던 탓이다.
그렇기에 남궁진호는 남궁천에게 진짜 ‘남궁(南宮)’의 이름을 하사했고 그에게 검을 가르쳤으며, 그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제 현이를 비롯해 나머지 후기지수들도 천이의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이 아이를 우리가 품었어야 했어.’
무림…… 그 중에서도 5대 세가와 9파의 검으로서.
언젠간 제국을 불바다로 만들고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은 사파와 마교 놈들도 모조리 도륙해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되자 남궁진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머지않았다.
그 원대한 꿈을 이룰 그 날이.
“오늘 내로 놈들의 거점 하나를 더 박살내야 한다. 무림맹에서 ‘신영대(新永隊)’를 비롯해 절정급 고수 일곱을 지원해 주겠다 약조했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예.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남궁천 또한 두 눈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치솟았다.
어렵게 잡은 줄이다.
완전히 변해 버린 세상 속.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황금 동아줄을, 반드시 잡고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주먹을 부러져라 쥐고 있던 남궁천의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한데, 가주님.”
“왜 그러느냐?”
“그 녀석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남궁천이 또 하나의 인물을 거론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대상이 누군지에 대해선 남궁진호 또한 알고 있었다.
강진혁.
최강이자 최악의 랭커.
중화 길드가 무너진 것도 모두 그 녀석 탓이었고 무림과도 몇 번이나 충돌이 일어난 전적이 있었다.
위험한 요주의 인물이다.
가만히 내버려뒀다간 이번 전쟁에 있어서도 큰 변수로 작용될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말거라. 플레이어들은 이번 일에 관여할 정신이 없을 터이니.”
“……계획이 있으신 거군요.”
“그래. 그러니 너는 네가 맡은 일만 잘 수행하면 된다.”
계획이 어그러질 일은 없다.
이미 이 날을 위해 무림 전체가 완벽한 사냥 준비를 끝마쳤으니까.
***
시련의 탑 5층에 위치한 ‘정신병동’에선 진혁과 엘리스 그리고 안드리아가 한창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주제는 단 하나.
‘훌륭한 보스 몬스터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관한 내용이다.
서리칼날 부족의 카라칼과 나머지 트롤들도 8, 9층을 돌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만큼 진혁은 히든카드 중 하나인 안드리아 또한 확실하게 키워 둘 생각이었다.
그래서 대선배격인 엘리스를 함께 불러 둔 상태였고.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안드리아는 환한 얼굴로 진혁과 엘리스를 맞이해 주었다.
이야.
한때는 광신도들 사이에 있던 잔뜩 겁먹은 소녀였는데.
이제는 그래도 제법 보스로서의 기품이 느껴진다.
월계수로 만든 잎과 하얀 천으로 만든 옷을 보니…… 뭐랄까.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 같달까?
엘리스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둘이 자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쪽은 고분고분하고 한 쪽은 틱틱대는 게 차이점이긴 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오니 친근한 느낌도 들고 좋긴 하네.’
진혁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음침하고 어두운 내부는 예전에 이곳을 왔을 때와 별 달리 달라진 게 없었다.
광신도들의 광기가 좀 줄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가 정신병동이라는 게 확 와 닿긴 했다.
“요즘 좀 어때? 위 층계가 개방되긴 했지만, 그래도 귀찮게 구는 플레이어들이 남아 있을 텐데?”
“11개의 방을 담당하는 보스들 중 8명은 플레이어들한테 목숨을 잃었어요. 남은 건 저를 포함해 셋인데,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죠.”
호오. 벌써 그렇게나 많이 줄었나?
역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플레이어들의 수준도 올라가는 모양이다.
“살아남은 건 감옥과 무인도의 주인인가? 녀석들도 지금 똥줄이 제대로 타고 있네.”
“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모든 지역이 점령당할 테니. 그전에 남은 세력을 하나로 모으자는 게 중론이에요. 물론, 서로 흡수당하고 싶지 않아 견제만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요.”
그러니까.
점점 강해지는 플레이어들 때문에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그렇다고 연합을 해서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뭐 이런 뜻이리라.
확실히 시간이 갈수록 5계층에서 성장하는 플레이어들을 막아내긴 어려울 터.
결국 안드리아를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안드리아뿐 아니라…… 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바로 그때.
“걱정하지 마. 이 몸이 특별히 속성 과외를 시켜 줄 테니까.”
바로 옆에서 엘리스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
역시, 저 녀석에게 은근히 훌륭한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있다니까?
진혁이 기대에 들뜬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하아…….”
엘리스의 모습을 본 순간, 진혁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때?”
엘리스가 검은색 뿔테 안경과 하얀색 와이셔츠 그리고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채 묘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까지 말아서 올린 게 아주 작정을 하고 준비를 한 듯 보였다.
게다가 그 옆에는 어느새 목걸이에서 소환했는지 벨루스 녀석까지 함께 있었다.
저 녀석 또한 가관인 게…….
인디애나 존스의 복장을 그대로 갖춰 입은 상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반쯤 풀어진 셔츠, 가죽 채찍까지. 완전히 영화 속에서 보던 그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어울리는 게 더 어이가 없네.
하여간 이래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놈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까…….
진혁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게 탑 외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스승의 참모습이라고 하더라고. 이렇게 하면 학습 능률이 50%는 오른다고 하던데?”
“대체 어느 정신 나간 놈이 그런 말을 했냐?”
“뷰튜브! 어젯밤에 너 노트북에 있는 거 찾아봤지.”
빌어먹을 뷰튜브 알고리즘 같으니라고.
“됐다. 내가 말을 말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나 해.”
“우리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 여기 위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거야.”
엘리스가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으득!
핏방울이 흘러나오나 싶더니, 이내 바닥에 거대한 결계가 그러졌다.
[엘리스가 Lv?? ‘선혈의 격투장’을 구현합니다!]결계 내부에서의 전투 시 그 경험과 깨달음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결계.
아타락시아 가문의 어린 혈족들이 통과의례를 치르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격투장이었다.
“저랑…… 언니랑 싸우는 거예요?”
안드리아가 조심스럽게 엘리스를 바라봤다.
평소에도 엘리스와는 종종 대련을 하긴 했으나, 워낙에 둘 사이에 실력 차가 큰 데다.
엘리스는 장거리 전을 주로 즐겼기에 근거리 전에 특화된 안드리아와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배우는 것보단 얻어맞는 시간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걸 고려한다면…….
“아니, 내가 할게.”
엘리스는 이번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송곳니’를 꺼냈다.
스윽.
초록빛을 머금은 단검이 오른손에서 부드럽게 감겼다.
“진혁…… 님이 직접 저를 알려 주신다니…….”
안드리아가 황송하다는 얼굴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녀 입장에서 진혁은 그야말로 신.
암울하기만 했던 과거를 바꿔 준 구세주다.
압도적인 무용으로 정신병동을 쓸어 버린 랭커였기에, 안드리아가 느끼는 감동은 상상 이상으로 격렬했다.
안드리아 역시 30cm 길이의 단검 두 자루를 각각 양 손에 쥐었다.
그래도 엘리스와 제법 수련을 했는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세가 탄탄해져 있었다.
보스가 된 이후 마력의 상승치야 말할 필요조차 없었고.
“봐주지 않을 테니까, 너도 전력을 다해 덤벼 봐.”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안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탓!
안드리아가 먼저 움직였다.
뱀파이어 특유의 이동술을 사용해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 단검이 진혁의 몸통을 노렸다.
카아앙!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두 개의 검이 교차했다.
이어진 것은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검무였다.
전후좌우.
대련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공격 하나하나가 매섭기 짝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퍼붓다시피 한 공격을. 진혁은 너무나도 여유롭게 받아쳤다.
카카카카캉!
‘큭!’
안드리아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금껏 더 완벽한 보스 몬스터가 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매진해 왔었다.
한 걸음이라도 진혁을 따라잡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진혁이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강해지는 데 전념했다.
그런데도.
‘좁혀지지 않아.’
처음 봤을 때의 그 거대한 벽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하면 할수록 그 절망감은 더더욱 깊어지는 듯한 착각까지 일어났다.
그만큼 둘 사이의 실력 차는 확연했고.
그만큼 둘 사이의 실력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안드리아가 모든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게 대련의 속도와 깊이를 잘 조절했다.
눈높이 교육으로선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도 기가 막혔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저 녀석은 싸우는 걸 볼 때마다 강해지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 봉인이 풀리더라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데?”
“엘리스…… 님. 그게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인간 하나를 엘리스 님과 비교하는 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말도 안 된다고?”
하긴, 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긴 하다.
탑의 절대자.
최강의 혈통.
여섯 가문조차 두려워 한 존재가 바로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라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왜일까?
엘리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화려한 수식어가 지탱해 줄 수 있는 기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시간이 흐른다면, 탑에 있는 수많은 강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서열이 도래할 것임을 말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강한 자가 바로 자신과 계약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과 한 약속을 기억해 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엘리스는 만족한 듯 길게 기지개를 켰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지켜보기나 해. 원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야.”
“알……겠습니다.”
벨루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더 길게 끌 거라고 생각되던 대련은 의외로 갑작스럽게 그 끝을 고했다.
[화상 통화 요청이 왔습니다.]진혁의 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발신인은 테레사.
장소는 유럽이다.
그런데.
그 유럽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