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피어오르는 전화(戰火) (2)
“진혁…… 씨.”
테레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핏기가 사라진 표정에선 오직 절망만이 맴돌고 있었다.
……이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테레사의 뒤로 펼쳐진 광경.
연기와 피로 얼룩진 도시는 더 이상 찬란했던 문화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웃브레이크.’
중국 베이징에서 3대 절망이 현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규모 몬스터들의 공습으로 인한 여파였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금…….”
테레사는 전력을 다해 싸웠는지 완전히 탈진에 가까운 기색이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지원 요청조차 못 한 것도 그 시간마저 아끼며 사람들을 구한 탓이겠지.
‘생각 이상으로 피해가 크다.’
괜찮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그 순간 화면에 잔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Lv?? ‘회색 안개’로 인해 화상 채팅이 강제로 종료됩니다.]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동시에 테레사의 모습 또한 사라졌다.
초점 없는 동공과 떨리는 입술만이 잔상처럼 남은 채.
“…….”
진혁이 굳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최악의 상황들이 연이어 떠올랐지만, 의외로 머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당황해선 안 된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지금 중요한 건 주어진 정보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거다.
“어떻게 할 거야?”
잠자코 지켜보던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안드리아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엘리스. 네가 대신 안드리아의 교육을 맡아 줘. 이건 이거대로 중요하니까 절대 미뤄선 안 돼.”
“너는 어쩌려고?”
“나는…… 우선 각성자 협회로 가 봐야지.”
이런 상황이면 각국의 협회에서도 비상이 걸려 있을 터. 보다 즉각적인 정보를 얻으려면 협회로 가야 한다.
“흐응. 역시, 구하러 갈 생각인가 보네. 근데, 정말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유럽 쪽에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나든 말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모든 인간을 구한다는 이상주의적 사고는 겉보기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하면 희생자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
엘리스는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들의 성장에 집중하는 게 이득일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다른 건 몰라도 내 회사 사람이 멋대로 퇴직하는 건 참을 수가 없거든.”
주주의 권익 증진은 회사가 크기 위한 주춧돌이다.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퇴사할 수 있는 건 오직 사장이 해고를 했을 때뿐이다.
“너다운 말이네. 뭐, 그런 점 때문에 더 좋아하는 거지만.”
엘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재빨리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지금 내려온 놈……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야.”
“나도 대충은 예상하고 있어.”
화면에 잡힌 단서들을 종합해 봤을 때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난 층은 14층이다.
하지만, 본래 14층에선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그 층을 지배하는 녀석은 자신이 다스리는 층 외에는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누군가 개입했다는 뜻.
그리고 현 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의 손과 발을 묶어 둬야 할 놈들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무림 측에서 움직인 거다.
아마 성기사로서 제국에 힘이 될 수 있는 테레사와 그녀를 따르는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 또한 놈들의 계획에 포함된 게 틀림없으리라.
‘가뜩이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없는 놈들이었는데, 이런 일까지 벌였다…… 이 말이지.’
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시련의 탑이 나타나고 세상이 변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탑의 위험성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탑을 등반하는 건 각성을 한 플레이어들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외부에서 방관하며, 그들이 무사히 탑을 오르기를 기원해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 믿었다.
바로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는.
“키에에에!”
“크르르…….”
구울과 좀비를 비롯한 하급 몬스터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외형의 중, 대형급 몬스터들까지.
엄청난 수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도로 위를 활보하며, 살아있는 인간들을 찾아 헤맸다.
쿠웅!
화르르륵‧…… 퍼어엉!
무너지는 벽돌과 불타는 거리.
어설프게 대응하려던 군대는 아웃브레이크 직후 궤멸했고 인근에 있는 플레이어들 또한 그 여파에 휩쓸려 모조리 쓸려나갔다.
첫 번째 아웃브레이크로 인한 인적 피해만 약 5만 여명.
12시간이란 시간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빌어먹을…….”
“후우.후우.후우.”
“제발……! 제발.”
교차로 건너편에 있는 상가 안에선 대여섯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7대 길드의 하나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올림포스’ 길드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나 대마도사의 반열에 오른 마리아였다.
6서클의 마법을 동시에 2개 이상 만들 수 있는 경지.
마리아는 살아남은 소수의 플레이어들을 모아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타이밍을 재는 중이었다.
‘틈을 찾아야 돼.’
어디든 포위망이 느슨한 곳을 찾아 그곳으로 탈출해야 한다.
우우우웅!
마리아가 광역 탐지 마법을 사용한 채 마력을 끌어 모았다.
이미 어디에 몇 명이나 살아남았는지 모를 정도로 상황이 좋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움찔하고.
마리아의 감각이 무언가 걸렸다.
‘이 느낌은 설마…….’
뇌수까지 차갑게 식어 버리는 마력.
끈적끈적한 위화감이 전신을 옭아맸다.
[대상이 당신의 존재를 간파합니다!]오싹!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모를 리가 없다.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마법의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그 영혼을 마왕에게 팔아 버린 존재.
영생을 약속받은 대신, 백골이 되어버린 최악의 마법사를.
“리치…….”
마리아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는가 싶더니 이내 보라색 빛을 띤 마법진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블 캐스팅 수준이 아니다.
트리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일지도…….
“세상에나…….”
“도시…… 전체를 범위로 하는 광역 마법이라니.”
“이, 이런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기란 말이야.”
전원이 마법 계열인 플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모두들 지금 발현되는 마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준인지 절감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실력 차.
자신들의 수준으론 1000년이 지나도 이 괴물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리치가 고유 능력 ‘망령의 재림’을 발동합니다.]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쿠쿠쿠쿠쿠쿠!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유럽 전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한국 각성자 협회.
100평이 넘는 회의실 안에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단군 길드의 마스터 문규호와 같은 길드의 랭커인 차윤경.
싸울아비 길드의 공민우와 마찬가지로 부길드 마스터를 맡고 있는 유진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인 진혁까지.
한국의 최상위 플레이어 다섯이 긴급 소집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마력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 만큼 날카롭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그만큼 다들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방증이리라.
과연…….
‘사태가 사태라 이건가.’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아웃브레이크는 몇 번이고 일어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일으킨 건 처음이었다.
단순히 구멍이 난 게 아니라 아예 차원과 차원이 연결된 수준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유럽을 돕기 위한 비상 회의가 열린 거겠지.
진혁이 힐끗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멤버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꽤나 장관이긴 하네.’
다들 실물로 보는 게 톱스타 저리 가랄 정도로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유명 인사들이었다.
특히 단군 길드의 문규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탑을 오르는 것보다 히든 미궁이나 유적 등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강해지기 위해 환장을 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살짝 호기심이 생긴다.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며, 이번 회의를 소집한 당사자가 나타났다.
한국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상진이다.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바쁘신 와중에도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구구절절한 인사말은 생략하고 바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상진이 짧게 감사를 표한 뒤, 본론을 꺼냈다.
회의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 유럽의 실시간 상황이 나타났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아웃브레이크로 인해 유럽 전역에 게이트가 출현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수는 총 다섯. A급 하나와 B급 넷이며 피해 규모는 14시간 지난 시점에서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수치들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아웃브레이크에서 A급이 나왔다는 겁니까?”
싸울아비 길드의 공민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다섯 개의 아웃브레이크가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A급이라니.”
“…….”
나머지도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느꼈는지 표정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B급이야 어지간한 길드의 공격대 하나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A급부터는 아예 차원이 달라진다.
최소한 다섯 이상의 공격대가 필요했고 그마저도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보스의 종류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었기에, A급 게이트가 포함된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날 경우 그 대응책을 짜는 데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 추정치로 볼 때 각국의 협회와 정보부에서는 A급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혹시 던전 쪽 아웃브레이크인가요? 아니면…….”
이번엔 차윤경이 입을 열었다.
아웃브레이크의 종류는 총 셋.
던전이나 미궁 혹은 유적이다.
같은 A급이라도 셋 중 어느 곳에서 일어난 아웃브레이크냐에 따라서 위험도가 크게 달라진다.
던전 쪽이라면 그나마 해 볼 만했지만…….
혹여 미궁이나, 최악의 경우 유적 쪽과 연결된 아웃브레이크라면 그때는 길드들이 연합을 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다.
하지만.
“셋 다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에.
각 길드의 대표들은 그나마 품고 있던 희망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걸 느꼈다.
“저희가 제거해야할 적은 ‘리치’. 한 층계를 담당하는 보스 몬스터입니다. 그리고 놈은 이미 ‘망령의 재림’을 사용해 서유럽 부근을 완전히 자신의 영역으로 장악했습니다.”
골치 아프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보스급에 해당하는 리치는 일반적인 리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협회장님께서는 지금 본인이 하고 계시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줄곧 침묵을 지켰던 문규호가 처음으로 말문을 뗐다.
‘망령의 재림’을 펼친 리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물리 공격이 아닌 마법을 사용하는 것뿐.
허나, 현존하는 플레이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마법 실력을 갖고 있는 랭커는 현재 유럽에 있다.
그리고 그런 랭커가 있는 올림포스 길드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건…….
리치의 실력이 마리아보다 몇 단계는 위에 해당한다는 뜻이 된다.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미션이다.
……적어도.
한 명을 제외한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법전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다라…….’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