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불멸의 대마도사 (3)
파츠츠…….
정확하게 10분을 계산해 뒀기에, 진혁과 일행이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게이트가 닫혔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거친 바다와 먹구름이 낀 하늘이 아닌,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궁전이 나타났다.
검게 물든 꽃들로 가득한 정원.
이곳엔 이번 아웃브레이크의 원흉인 리치를 비롯해 제법 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전부 다 넘어온 게 아니었네.’
데스나이트가 아직 다섯 기 정도 남아 있다.
본 드래곤을 타고 있던 놈들보다는 두 단계 정도 수준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데스나이트는 데스나이트다.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와 리치의 조합이라면 아직까지 방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색 정도는 갖춰 뒀다는 뜻.
거기에 저 안에 있는 ‘놈들’까지 합세한다면 아직 승리를 확신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테레사 씨를 구출하는 게 우선이니까.’
진혁의 시선이 또 다른 한편으로 향했다.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정원 저 너머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선과 악의 혼재.
가까스로 정신을 지키려는 의지와 그 정신을 굴복시키고 타락하려는 욕망이 뒤섞여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력을 다해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기껏해야 30분 정도가 한계겠어.’
성녀의 타락은 이쪽도 의도한 바이긴 했으나, 타이밍과 상황을 완벽하게 조율하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핵폭탄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진혁이 여러 가지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분노한 리치가 기함했다.
“정면 승부를 하는 것처럼 하더니 쥐새끼처럼 내가 연 게이트로 빠져나오다니! 네놈에겐 일말의 자존심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냐?”
잔뜩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혼란을 틈타 게이트로 넘어와 버릴 줄이야.
뒤통수를 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마족들조차도 저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 마족들조차도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게 바로 고인물이라는 사실을.
진혁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쏘아붙였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본 드래곤이나 데스나이트들이랑 싸워 줘야 할 이유라도 있나?”
정의로운 기사면 명예니 뭐니 하면서 일기토에 어울려 주고 있을진 몰라도.
지금은 전쟁 중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의 효율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건, 상대의 전력을 빼돌려 약화시킨 뒤 적의 우두머리를 직접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진혁이 재빠르게 ‘탐식의 눈’을 발동했다.
[베이로둠]종족: 언데드
나이: 3005
레벨: 91
힘 55 민첩 60 체력 45 마력 213
고유 능력: 대마법
스킬: Lv19 ‘원소 마법’, Lv18 ‘흑마법’, Lv18 ‘강령술’, Lv18 ‘언데드 제조’, Lv17 ‘저주’
내용: 베이로둠은 한때 탑을 등반했던 제국의 위대한 마법사였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한 나머지 마왕과의 계약을 통해 리치가 되었습니다. 5대 원소의 마법은 물론, 흑마법에도 능통하며 자신의 지적 탐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위험이나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자입니다.
[복사 조건: 리치가 된 이후 항상 모든 존재를 멸시하며 살아온 리치. 그에게 인생의 쓴맛이 뭔지 절실하게 경험하게 해 준다면 그가 갖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상위 마족의 직속이자, 동시에 14층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
그것이 바로 리치 ‘베이로둠’이다.
복사 조건을 확인한 진혁의 입꼬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갔다.
이후 탑을 오르는 데 있어 꽤나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인생의 쓴맛을 보여 주는 거라면 내 특기지.’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대략적인 구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설계를 하려면 우선…….
진혁이 가볍게 고구마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
멸시(蔑視)는 상대에 대한 깔봄이 포함되어 있다.
허나, 무시(無視)는 아예 그 대상에 대한 존재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뿌드득…….
그런 뜻에서 베이로둠은 지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감히…… 나를 눈앞에 두고 딴청을 부려?’
인간 치곤 쓸 만한 마법 실력을 보유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허를 찔러 이곳까지 온 것 또한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어디까지나 하찮은 인간들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에 한에서다.
“이런 꼼수를 쓰는 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베이로둠이 재차 손을 뻗었다.
게이트가 닫혔다면 다시 열면 그뿐.
우우우웅!
공간이 흔들리며, 조금 전 닫혔던 게이트가 다시 열리려고 했다.
하지만.
성인 주먹만 한 크기로 벌어졌던 구멍이 이내 사라졌다.
마법에 실수가 있던 게 아니다.
일생을 마법을 다뤄 왔던 대마도사가 실수 따위를 할 리가 있겠는가?
이건……. 아예 마법의 발동 그 자체가 파훼된 것이다.
“내 술식……을 읽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외부의 간섭을 막기 위해 몇 겹의 우회 회로를 겹친 술식이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설계도를 읽고 회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그 대상이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멀리 있을 때야 모르겠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방해 정도는 할 수 있어. 마법 수준도 높지 않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웃기지 마라. 고작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 주제에…… 감히 누구 앞에서 마법을 논한단 말이냐! 내가 불사의 마도사란 말이다!”
리치가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공기가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성유물 ……이 개방됩니다!]베이로둠 앞에 검은색 정육면체 주사위가 나타났다.
숫자를 표시하는 점 대신, 각각의 면에는 붉은색 룬어와 그림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흑각(黑角) 주사위인가.”
“……!?”
진혁의 중얼거림에, 베이로둠의 안광이 크게 흔들렸다.
“네, 네놈…… 어떻게 이 주사위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꽤 예전에 너보다 훨씬 더 이 주사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놈이랑 사흘 밤낮으로 싸웠었거든. 그냥도 강한데 저것까지 쓰니까 꽤 골치 아팠던 기억이 나네.”
리치도 마족도 아닌…… 마왕.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버린 괴물과의 전투는 평생 동안 잊을 수가 없는 추억이었다.
그런 놈과도 싸웠었는데…… 고작 리치 정도야.
아무리 레벨과 스탯이 그때보다 떨어졌다고 해도.
마법 계열 성유물인 ‘흑각 주사위’를 다룰 줄 안다고 해도.
단지. 그뿐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이 주사위를 보고도 살아남은 인간이 존재할 리 없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물론 그랬겠지. 미안하지만, 내가 평범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서…….”
“계속해서 주둥아리만 놀려대는구나. 좋다. 그 말이 사실인지 직접 시험해 보도록 하겠다.”
리치가 주사위를 한 번 뒤집었다.
황소 문양과 주위를 감싼 룬어들이 있는 면이 나타났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진혁의 눈앞에 거대한 육망성이 나타났다.
화끈!
피부 위로 불에 지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역시 주사위는 주사위다.
순간, ‘빙하조형’을 얇게 펼쳤음에도 화기를 전부 상쇄시킬 순 없었으니까.
콰콰콰콰콰콰!
지면이 모조리 박살나며, 화염과 화산탄이 뒤섞인 겁화가 다가왔다.
빙하조형으로 만든 방어막들이 일제히 증발해버리기 시작했다.
‘좋아. 여기서 약한 척을 하면…….’
진혁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그러자.
“버겁다면 물러서라. 이번에야말로 내가 더 위라는 걸 확인시켜 줄 테니.”
“저런 사악한 미물 따위를 상대로 주군께서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두 명이 동시에 나섰다.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월영이 Lv7 ‘흑천공(黑天功)’을 발동합니다!]천유성의 검을 타고 눈부신 광휘가 솟구쳤다.
푸른빛으로 물든 검신으로부터 약 10cm 가까이 검강이 발현되었다.
거기에 ‘추혼검’의 식이 갖춰지자, 눈이 부시게 시린 검격이 그 형(形)을 갖추었다.
일검(一劍)!
불을 베기 위한 검격이 횡으로 가로질렀다.
파츠츠츠!
월영의 검신 역시 푸르고 검은 기운이 깃들었다.
흑천공 특유의 묵빛과 검강 특유의 푸른빛이 뒤섞였다.
“후우…….”
천유성의 검이 적의 공격을 빗겨내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한 이검(二劍)이다.
콰콰콰콰콰콰!
두 개의 초식이 일격에 불길을 꿰뚫고 베이로둠에게 향했다.
“큭!”
베이로둠이 재빨리 주사위를 뒤집었다.
이번엔 거북이 등껍질을 본뜬 모양의 문양과 룬어들이 나타났다.
범위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무려 ‘절대판정’을 지닌 실드다.
콰아아아앙!
검기가 투명한 실드에 막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충격까지 전부 흡수하진 못했는지 베이로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
“꽤나 골치 아픈 스킬을 갖고 있군. 저 리치라는 놈…….”
천유성이 혀를 찼다.
그러다 진혁을 향해 보란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이게 내가 최근에 완성한 추혼검이다. 보다시피 너도 쩔쩔 매는 리치조차도 이 검의 상대가 될 수는 없지.”
으음…….
잔뜩 우쭐거리는 게 학교에서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 온 초등학생 같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찍어 주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줘야 하나?
“당신…… 누군데 감히 주군께 함부로 말을 하는 거지? 이분이 대체 누군지 알고?”
이번엔 월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다.
진혁에게 막말을 하는 천유성에게 분노가 치솟았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천유성이 아니었다.
“넌 또 뭐냐?”
“난 주군을 모시는 그림자. 월영이다.”
“그림자고 나발이고 간에, 왜 저 녀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거냔 말이다.”
“검이 주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뭐가 이상하지?”
“어이가 없군. 나는 저 녀석과 몇 년간 싸워 왔다. 저 녀석에 대해 나보다 잘 알고 있는 놈은 없단 말이다.”
“주군과 절친한 사이인 것처럼 말하는군. 하지만, 나는 주군으로부터 당신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그거야 저 망할 티모대령 자식이 너보다는 날 믿기 때문이겠지.”
둘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베이로둠이 충격에서 벗어나 마력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냐? 저기 리치 아직 멀쩡한 거 안 보여? 검강으로 잠시 발을 묶을 순 있어도 결정타를 날리려면 마법 공격을 해야 된다니까?”
부탁인데, 제발 티격태격하지 좀 마라.
서로를 향해 칼부림을 하려고 하지도 말고.
“리치고 나발이고 간에, 나한테 중요한 건 이 건방진 애송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는 거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군. 말씀해 주십시오. 저 인간과 속하 중에서 누가 주군께 더 중요한 인물인 겁니까?”
이런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유럽이 멸망하게 생겼는데, 그런 것보다 자기 자존심 챙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건가?
진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나서 준 덕분에 베이로둠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게 해 준 건 고맙지만, 이런 것들을 데리고 회사를 운영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엄살에 가까운 칭얼거림과 여유는 이내 사라졌다.
사박.
풀을 밟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었다.
오싹하고.
공기가 급변했다.
“……!”
“……!!”
“…….”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 쪽으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