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
2화 서막
욱씬!
지독한 두통과 함께 숙취가 몰려왔다.
“어우야…….”
진혁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타는 듯한 갈증에, 냉장고에 넣어 둔 얼음물 1L를 들이켰다.
목구멍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꿀꺽꿀꺽 넘어가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하아.
이제 좀 살겠네.
해장용 라면이 몹시 당겼지만, 그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누구한테 뺏기기 전에 어제 최초 클리어 한 영상부터 편집하고 올려야겠어.’
20층 부근부턴 다른 플레이어의 그림자도 못 봤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법이었으니까.
우우웅!
진혁이 재빨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뷰튜브에서 작업할 때 어울리는 음악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어?”
자주 보는 채널의 뷰튜버가 생방송 중이었다.
‘시련의 탑이 진짜로 나타남. ㅇㄱㄹㅇ임.’이라는 제목을 단 채.
이 업계에서 제목 어그로야 흔한 일이었지만, 생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가 30만을 넘을 때는 예외다.
뭔가 있다.
진혁이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고동쳤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이걸 클릭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뀔 것만 같았다.
딸칵!
방송에 입장했다.
-와! 형님들. 저거! 저거! 보이세요? 다들 보고 계시는 거 맞죠?
화면에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는 뷰튜버와…….
거대한 탑이 보였다.
정말이다.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탑이 나타나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메론맛수박 형님이 제보해 주셔서 알았는데, 이거 11년 전에 출시한 [시련의 탑]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거랍니다. 믿어져요? 어? 잠깐만요.
뷰튜버는 뭔가 느꼈는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로 그 때.
영상 속 화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은 아니었다.
오전 10시에 해가 지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이럴 수가…….’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뭔지는 알고 있다.
[시련의 탑]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나타났던 전조. [‘시련의 탑’ 리부트 버전 1차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졌다.
화면 속 뷰튜버의 눈앞에도.
그리고 현실 속 자신의 눈앞에도 푸른색 상태창이 점멸했다.
시작되었다.
[모든 플레이어는 90일 안에 탑의 다음 층계를 정복해 주십시오.]모두가 알았던 세상이 무너지고…….
[실패할 경우 인류는 멸망합니다.]그렇게.
게임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
로딩이 덜 된 컴퓨터마냥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진혁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후우. 후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리를 차갑게 식혀야 한다.
정말로 [시련의 탑]이 현실이 된 거라면, 지금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야 해.’
진혁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덜컹이다 넘어졌다.
하지만 다시 일으켜 세울 여유 따윈 없었다.
가야 한다.
밖으로.
정확히는 ‘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진혁은 곧장 도로를 따라 전력질주를 했다.
도로를 가로지르고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왜 왜일까.
흥분과 기대감으로 인해 조금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하루만 바라보며 견디던 삶.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몇 분을 달렸을까?
도착한 센트럴 시티는 이미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부, 부산 가는 제일 빠른 거 몇 시야?”
“젠장. 부산이고 나발이고 한국에 있으면 안 돼. 외국. 그래. 외국으로 가야 살 수 있어.”
“지금 외국에도 전부 저 빌어먹을 탑이 나타났는데 뭔 놈의 외국?”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야?”
“뭐가 됐든, 서울만 아니면 돼. 영화 보면 몰라? 괜히 멍청하게 남아 있다간 죽는다고!”
대부분은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었다.
‘불안하겠지.’
원래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게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었으니까.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법.
지금은 도망가야 할 때가 아니라 나아가야 할 때다.
‘한국 서버에선 여기가 [탑 외 지역] 중 하나로 선정되었지.’
전국을 다 합치면 서른 개 정도.
그중에서 이곳을 고른 이유는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
지하를 내려다보던 진혁이 이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벤트 지역에 입장합니다.]지하상가는 조용했다.
갑자기 탑이 나타나고 하늘이 붉게 물들며 인류의 멸망이니 뭐니 하는데, 속 편하게 장사나 하고 있을 사람은 없었다.
햄버거를 사 먹고 있을 손님은 더더욱 없었고.
물론.
“…….”
“…….”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역시…….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몇십 명의 사람들이 분수대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시련의 탑] 초반부를 플레이해 봤던 이들이다.
대화라곤 없는 침묵 속,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야 그럴 수밖에.
곧 이곳에 나타날 아이템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운이 좋아야 5개 정도일 터.
반면, 사람들의 수는 20명이 넘었다.
공급은 적은데 수요는 많다.
누군가는 아이템을 얻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너…… 강진혁 맞지?”
진혁의 뒤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린데……?’
진혁이 고개를 돌리자 180cm의 건장한 체구에, 머리칼을 노랗게 염색한 남자가 보였다.
이종수.
이 자식을 여기서 보다니.
“하하, 맞네. 강진혁! 이야. 너도 여기 왔구나. 하긴,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있었으니까.”
이종수가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파프리카TV 파트너 BJ.
뷰튜브에서 5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스타 팔로워도 상당수를 거느린.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인기인이다.
‘동시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했고.’
“지금 한창 방송하고 있을 때 아니었습니까?”
진혁이 입을 열었다.
“에이. 지금 상황이 이 모양인데, 뭔 방송이야?”
이종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상황이 뭔데요?”
“모른 척하지 마. 네가 이 게임 꽤 열심히 했다는 거 알고 있어. 그보다 말해 봐. 대체 몇 층까지 갔던 거야? 같은 업계 동료끼리 숨기지 말고 같이 꿀 좀 빨자고.”
동료?
동료……라고?
진혁은 순간,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아직까지 이 쓰레기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놈이 세운 컴퍼니에서 불공정 계약으로 BJ들을 속였었지.’
편집자 월급과 각종 콘텐츠 비용을 제공해 준다고 했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전체 수익의 60%를 뜯어갔기에, 방송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항의를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법무법인을 등에 업고 있었으니까.
억울하면 법대로 해라.
계약서는 서로의 동의하에 작성된 거니.
결국, 노예처럼 활동하던 BJ들은 울면서 방송을 접었다.
친했던 동료들이.
밑바닥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이 업계를 떠났다.
“너 게임도 잘하고. 먹방도 맛깔나게 하는 거 알고 있어. 내가 특별히 계약 조건 조금 더 좋게 해 줄 테니까. 응?”
이종수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역겹다. 이 녀석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조차도.
“……이종수.”
“야. 야. 사석이라도 대표님이라고 불러. 쯧.”
아. 맞다. 대표님…… 이었지.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나쁜 놈은 계속해서 잘 나가고 잘 산다는 것.
또.
그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더 악랄하고 잔혹해져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다.
“대표면 대표답게 행동해. 그래야 대표라고 불러 주지.”
“뭐?”
이종수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진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기억 안 나? 너 여자 BJ한테 명함 건네면서 집적대다가 차이고 울고불고 난리쳤었잖아?”
본 사람이 나밖에 없어 아쉬울 뿐이다.
영상이라도 남겨 뒀어야 했는데.
“그것뿐이냐? 절대 포기 못 한다고, 그 여자 BJ 집 주소 알아내서 스토킹하고. 그러다 신고당해서 경찰서도 가고. 하, 진짜 남자새끼가. 나였으면 혀 깨물고 죽었다. 죽었어.”
“너, 너! 미, 미쳤어? 앞으로 영영 방송 못 하게 아예 묻어 버리는 수가 있어!”
이종수가 진혁의 멱살을 붙잡았다.
“미안하지만, 어제부로 방송 때려쳤다.”
그리고.
“말 함부로 놓지 마, 새꺄. 내가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콰앙!
진혁의 머리가 이종수의 안면으로 파고들었다.
“끄아악!”
이종수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부러진 치아와 피가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속이 다 시원하네.’
10년 동안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크으으…….”
진혁은 얼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는 이종수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쿠쿠!
분수대 쪽에서 격한 물방울이 일어났다.
잔잔했던 수면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퍼어어엉!
4m 높이의 나무가 솟구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오오오!”
“맹그로브다!”
“역시, 내 기억이 맞았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탄성을 질렀다.
[‘탐욕의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납니다.] [1인당 섭취할 수 있는 열매는 1개입니다.]시련의 탑에 들어가기 전에 얻을 수 있는 기연 중 하나.
진혁은 맹그로브 나무에 달려 있는 형형색색의 열매를 바라봤다.
먹임직스럽게 익어 있는 저 열매들은 각각 힘, 민첩, 체력과 마력 스탯을 올려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좋은 아이템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문제는.
그 수다.
‘전부 해서 4알이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24명이니 경쟁률은 5:1인 셈이었다.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꽤 치열하겠군.’
초반 구간에서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메리트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요소였으니까.
“내, 내꺼다!”
“웃기지 마라. 내가 먼저야!”
“꺄아아악!”
열매를 먹기 위해 모두가 몸을 날렸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남들보다 먼저 손에 넣어야 한다.
곧, 센트럴 시티 지하상가는 나무를 오르는 사람과 밀치는 사람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비, 빌어먹을! 이래서야 열매는 틀렸어. 늦었다고!”
이종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녀석의 말대로 지금 와서 분수대로 가긴 늦었다.
우적!
“돼, 됐어!”
이미 첫 번째 열매를 따서 입에 넣은 사람이 나타났고.
머지않아 나머지 열매들도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차라리 나랑 손잡고 열매를 반씩 나눴으면 서로 윈윈이었잖아!”
이종수가 계속 고함을 질렀지만, 진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이쪽이 노리는 건 저 네 종류의 열매가 아니었으니까.
‘아직.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일반인은 나무 열매가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었다.
몇 번 플레이를 해 봤던 이들은 열매를 먹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을 테고.
그리고 고인물은…….
그것보다는 더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과정을 즐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편이 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마침내 나무에 열린 열매들이 모두 사라졌다.
바로 그때.
끼이이이이!
나무가 울부짖었다.
열매를 모두 빼앗겼기에, 분노에 찬 본체가 날뛰기 시작하려는 것이다.
“마, 맞다. 이거 열매 다 처먹으면 겁나 위험해졌지.”
“빌어먹을. 하도 오래 전에 했던 거라 까먹고 있었어.”
“으, 으아아! 당장 튀어! 나 여기서 50번은 죽었었다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당장 도망가야 한다.
무기도 없는 레벨 1짜리 플레이어가 이 나무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없었다.
“으으…….”
이종수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기하려고?”
진혁이 입을 열었다.
“다, 당연하지! 이런 곳에서 개죽음 당하는 건 사양이다.”
“그래? 그거 아쉽게 됐네. 이 이벤트의 진짜 보상은 열매가 다 따먹혔을 때 얻을 수 있는 건데.”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몸을 돌리던 이종수가 멈칫했다.
“그 말, 진짜냐?”
“가짜면 내가 여기 왜 남아 있겠어?”
“…….”
이종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왜 열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나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나.
더 큰 보상이 있다고 가정하면 앞뒤가 맞았다.
‘저 게임만 하던 놈이 한 말이니 거짓말일 리는 없겠지.’
다른 건 몰라도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기는 건 확실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 치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파고들어야지.”
진혁이 손가락으로 나무의 안쪽을 가리켰다.
“한 명씩 움직이면 타겟팅 당하기도 쉬워. 그러니 반드시 양쪽에서 접근해야 해.”
“시선을 교란하자는 말이군.”
“그런 말이다.”
사람들은 전부 위로 올라갔다.
이 지하에 남은 건 진혁과 이종수 단 두 명뿐.
“명심해. 둘 중에 하나라도 머뭇거린다면 최악의 상황이 나온다는 걸.”
진혁이 자세를 낮춘 채 천천히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이 게임 하루 이틀 한 건 아니라고.”
이종수는 왼쪽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지금이다!”
진혁이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나무줄기들이 진혁을 향해 뻗어 왔다.
그런데.
이종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병신 새끼. 누가 네놈 말 따위를 듣냐? 가서 미끼나 돼라. 나는 그동안 보물이라는 걸 노릴 테니.”
타악!
그리고 나무의 중앙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교차하는 시선 속.
진혁은 생각했다.
……다행이다. 그 성격 변하지 않아서.
‘혹시라도 그동안 개과천선이라도 한 거였으면 미안해질 뻔했잖아?’
굉음과 함께.
콰아앙!
갑자기 분수대 밑에 숨어 있던 나무줄기가 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