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타락한 성녀 (1)
로젠베르크 가문의 일원은 언제나 명예를 알고, 약자를 보호하며, 강자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테레사는 가문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선량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내주더라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단지 그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불태웠음에도 모든 사람들을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나약한 손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걸까?’
과거, 3대 절망이 베이징에 현현했을 때도.
현재, 유럽에 발생한 아웃브레이크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티끌 같은 힘으로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성녀라는 이명을 가진다는 게 가당키는 한 일일까?
테레사가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욱씬! 욱씬! 욱씬!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고통이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피폐해져 버린 정신.
하지만,
이미 닳고 닳아 말라 비틀어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심장은…….
……또 다시 고통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
어딘가로 떠나 있던 베이로둠이 돌아왔을 때 앙상한 해골의 손엔 익숙한 여성의 머리채가 쥐어져 있었다.
올림포스 길드의 마리아였다.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100인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으나, 베이로둠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아직도 버틸 생각인가? 좋아. 어디 이래도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겠다.”
베이로둠이 마리아를 테레사의 얼굴 바로 앞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흑마법을 사용했다.
검붉은 선들이 마리아의 정신을 옭아맸다.
키기기기긱!
“꺄아아아악!”
상상할 수 없을 격통에, 마리아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육체적인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격통.
그게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지를 알았기에, 테레사는 입술이 피가 날 때까지 깨물었다.
“그……만해. 제발…… 그만 좀 하란 말이야!”
“어디서 멈출지 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저항을 그만두고 운명을 받아들여라. 그렇게 한다면 이 모든 고통을 멈추게 해 주겠다.”
포기. 그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테레사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본 베이로둠이 결정타를 날렸다.
“널 구하러 온 인간이 있다. 이름이 아마 강진혁이라고 했던가?”
움찔하고.
테레사의 표정이 한 차례 더 변했다.
“진혁…… 씨가 이곳으로 왔다…… 고? 나를 구하기 위……해서?”
“그래. 아주 거하게 난동을 부리고 있는 중이지. 하지만, 희망을 갖진 마라. 널 포획했던 것처럼. 놈에게도 흑각 주사위의 숨겨진 기능을 전부 사용할 생각이니까.”
“……!”
또 다시다.
이번에도 그 아픈 기억이 반복될 것이다.
진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전력을 다한 베이로둠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주사위를 완전히 개방할 경우…….
그 강함은 아예 차원이 다른 종류였으니까.
“죽일…… 생각인가요?”
“물론이다. 산 채로 포획한 다음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주지.”
“아…….”
절망이 이어졌다.
저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어설픈 협박도 아니고.
베이로둠에게는 그걸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었다.
“그 다음 네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죽이겠다.”
악몽이 이어졌다.
이 모든 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포기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아, 안…… 돼.”
“마지막으로 네가 지키려 한 이 나라와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
베이로둠의 말을 끝으로.
테레사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실낱 같이 이어 오던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끊어졌다.
주륵……!
테레사의 양쪽 눈을 타고 검은색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구국(救國)의 성녀가 타락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마기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탑 상층부의 존재들이 이변을 감지합니다.] [다수의 거대 세력들이 이 이벤트를 주목합니다.]나열되는 붉은색 상태창들과 함께.
콰콰콰콰콰콰콰!
하늘에 한 줄기 검은색 빛이 낙하했다.
***
콰앙!
마침내 진혁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벌써 타락이 완료된 건가.’
허나, 모든 게 너무 늦어버렸다.
“푸하하하! 드디어 완성됐구나! 언데드가 지배하는 이곳이야 말로 마기를 힘으로 삼는 타락 성녀에겐 낙원일 터! 이제 성녀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서 검은색 눈물을 흘리는 테레사와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베이로둠의 모습이 보였다.
성녀의 타락(墮落).
순백의 갑주는 검게 물들었고, 순수했던 기운은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베이로둠보다 더 어둡고 불길하다는 평이 맞으리라.
“흐응…….”
테레사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몸을 구속하고 있던 마법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순딩이 녀석이 끙끙대는 꼴을 보는 게 암 걸려서 죽을 것 같았는데, 드디어 밖에 나오게 됐네. 진짜 갑갑해서 토가 나올 뻔했어.”
타락을 할 경우 인격이 바뀌어 버린 특성 때문에, 기존의 성격은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내면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본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참 다행이로구나. 다시 소개하지. 나는 베이로둠. 14층을 맡고 있는 보스이며, 동시에 마계 제2 마법병단을 이끄는 군단장이다.”
“복잡한 칭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높은 분이긴 한가 봐?”
“그렇다. 동시에 네가 앞으로 모셔야할 주인이기도 하지.”
타락한 성녀는 강한 마기에 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걸 위해서 리치의 생명의 근원이기도 한 라이프 포스 베슬을 곁에 두었던 거였고.
“확실히. 매력적인 마기야. 그럭저럭 취향에 맞는다고 해야 하나?”
테레사가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이.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느껴졌다.
베이로둠이 만족한 듯 검지를 치켜들어 진혁을 가리켰다.
“옛 동료는 빨리 처리해 버리는 게 좋겠지.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된 기념으로 저 남자의 목부터 베어 버려라.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하도록 하겠다.”
“옛 동료라…… 그거 재밌겠네.”
테레사가 검을 쥐었다.
그리고 단숨에 진혁과의 거리를 좁혔다.
온다.
툭!
이전에도 상당한 실력을 보유한 강자이긴 했으나, 타락한 지금은 회랑에서 싸웠을 때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마력에서도.
속도에서도.
역시 마기로 들끓는 장소에서라면, 규격 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타락 성녀다.
“큭!”
안전거리를 비집고 들어온 이상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양손의 송곳니와 쌍룡검에 검은색 강기가 일렁였다.
‘막아야 한다.’
테레사의 대검에 맞춰 두 개의 검이 좌와 우로 움직였다.
콰아아앙!
가까스로 공격을 받아냈지만, 손에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은 테레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말해주었다.
파츠츠츠!
검은 스파크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근력 스탯이 71인데도 힘 싸움에서 밀린다. 대형 공격대의 메인 탱커에 육박하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럽게 무식한 공격이군.’
최소한 제국의 펜하이머 보다 몇 단계는 위의 오러 블레이드다.
아니, 제국에서 테레사의 적수가 될 수 있는 기사가 몇 명이나 될지 부터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콰앙! 콰아앙! 쾅! 쾅!
크기에 맞지 않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격에, 진혁이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머리를 스치고 간 대검이 공중에서 우뚝 멈추더니. 이내 방향을 수직으로 틀었다.
이런 미친……!?
저 무거운 검에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퍼퍼퍽!
지면에 깊은 상흔이 생겨났다.
찰나의 순간 송곳니로 검의 궤적을 틀지 않았다면, 머리부터 반으로 갈라질 뻔했다.
그러나 안심할 틈 따위는 없었다.
땅에 반쯤 꽂힌 검에서 이번엔 유형화된 기가 앞을 향해 폭사되었으니까.
콰콰콰콰콰콰콰!
워낙에 밀도 높은 오러 블레이드가 실려 있던 터라, 검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지형과 지물이 바뀌었다.
테레사가 혀로 입술을 적셨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야? 수동적인 남자는 매력 없는 거 몰라?”
“너야말로 성격이 너무 확 변한 거 아니냐? 나중에 진짜 테레사 씨가 돌아오면 창피해서 1년은 이불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인격이 돌아가도 그 순딩이는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 구조로 되어 있었나.
과거에는 플레이어가 타락한 적이 없어서 인격의 전환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아니면 뭐야. 설마,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 걸 주저하는 건 아니겠지? 성녀를 상하게 했다가 나중에 지옥을 갈까 봐 걱정이 된다든가?”
“잘 모르나 본데. 나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어.”
엘리스에 천유성에 월영에 고구마까지.
무지막지한 놈들을 어르고 달래다보니 지옥이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번엔 내 쪽에서 공격을 할 거다.”
시간을 끌고 있는 건 테레사가 다칠까 봐서가 아니다.
‘이쯤 되면, 슬슬 익숙해졌겠지.’
진혁이 검에 마력을 실었다.
전력을 다해 쏟아 부은 강기.
‘검의 무덤’이 최고조에 도달하자 공기가 완전히 급변했다.
“……!”
테레사도 기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는지. 단숨에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오러블레이드가 2m에 가깝게 치솟았다.
바로 그 순간.
‘마혼검무(魔魂劍舞)’
검신이 검게 물들었다.
‘제1식(第一式)’
그리고 그 주위 또한 검게 물들었다.
‘광마일소(狂魔一消)’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검게 물들었다.
서걱!
검마(劍魔)의 검이 하나의 선을 통해 현현했다.
***
완벽에 가까운 베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콰앙!
어느새 상처 하나 없는 테레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혼검무의 1식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얼마나 터무니없이 강한 거냐. 타락이라는 건?
진혁이 송곳니를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테레사의 손끝이 한 발 먼저 진혁의 뺨에 닿았다.
공격을 하겠다는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애정이 가득 배어 있는 입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당신은 참 매력적이야. 갖고 싶어 미치겠는데. 가질 수 없는 별 같다고 해야 할까?”
부드러운 손가락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젖을 타고 가슴까지.
손가락이 심장의 위치한 곳에 멈춰 섰을 때, 진혁은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대검을 복부에 갖다 대면서 이런 말을 하면 얼굴을 붉혀야 할지 발로 걷어 차야 할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살기 위해선 후자를 선택하긴 해야 할 텐데…….
“후후. 걱정하지 마. 해골의 마기도 매력적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마기가 더 좋거든. 물론, 순딩이 녀석도 당신을 죽이는 걸 원하지 않을 테고.”
“뭐, 뭐라고?”
이번엔 베이로둠이 기함했다.
당연히 복속시켰을 거라 확신했던 성녀가 갑자기 배신을 해버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몰랐어? 마기라면 이쪽이 더 강해. 짙고…… 본능에 충실하지.”
테레사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했다.
흑화하기 전의 청초하고 순수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퇴폐미가 풍기는 고혹적인 모습이 숨 막힐 듯 다가왔다.
다 좋은데. 좀 떨어져서 말해라.
아무리 예상하고 있던 성격이라고 해도 부담스럽다.
진혁이 슬슬 뒷걸음질을 치자 테레사가 더욱 묘한 미소를 지었다.
“부담스러워? 하지만 이게 어떡해? 이게 나인 걸?”
“됐고. 저 녀석 대신 날 선택한다 이 뜻이지?”
“맞아.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내 마기가 고작 인간 따위보다 못하다는 것이냐!”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베이로둠이 고함을 질렀다.
“어머나. 못 믿겠어? 마법 쪽만 죽어라 파서 잘 몰랐나 본데…… 이 남자가 지닌 마기의 근원은 마법 쪽이 아니야.”
“마법 쪽이…… 아니다?”
“그래. 오히려 무림의 것에 가깝지.”
검의 무덤.
마기의 근원은 ‘검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타락한 성녀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이 상황을 만드느라 그동안 진심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에 모든 부품들이 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결국 모든 게 내 계획 안에서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애초에 테레사를 타락시킨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