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등장하는 변수들 (1)
퍼걱!
강기를 먹은 검이 라이프 포스 베슬을 관통한 뒤, 반대편에 가서 박혔다.
박살난 유리 파편 사이로 붉은 여기가 꿀렁꿀렁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높은 쇳소리의 비명과 함께 베이로둠이 고통에 찬 몸부림을 쳤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것답게 삶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막상 죽을 때가 다가오자 구질구질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 살려 다오. 이렇게 죽긴 싫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긴 싫단 말이다!”
애걸하며, 손을 뻗는다.
베이로둠이 진혁의 발밑에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리치의 영혼을 구속하는 매개체가 사라진 이상,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으으…….”
한 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린 자리엔 검은색 로브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14층의 보스 몬스터 ‘베이로둠’이 소멸합니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차등 분배됩니다.] [90%의 피해를 입힌 플레이어: 강진혁]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 자: 백설린]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특수 아이템 ‘대마도사의 로브’를 획득하셨습니다.] [놀라운 업적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그리고.
무수히 나열되는 상태창 너머…….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백설린이었다.
“이, 이게 아닌데…….”
백설린이 말을 더듬었다.
측면에서 가한 암습.
체력과 마력이 모두 바닥을 드러낸 상대였기에, 이 공격이 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설마 동료를 방패로…… 아니, 라이프 포스 베슬을 방패로 삼아 버릴 줄이야.
정파의 일원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당황스럽기는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백설린이 여기 왔다는 건 곧 천유성과 월영을 통과했다는 뜻.
다시 말해.
‘막지 못한 건가…….’
두 사람이 실패했다.
지옥에 던져 놔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놈들이라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은 걱정이 되는 게 본심이었다.
‘가능하면 다음 기회에 복사 조건을 달성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무리를 해서라도 싸우는 수밖에 없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송곳니’를 꺼냈다.
그런데.
“…….”
무언가를 고민하던 백설린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싸우지 않을 생각이냐?”
“안타깝지만, 이 이상은 도박을 하는 거라서요. 당신이나 저나 생사결을 할 수 있을 몸 상태도 아니고요.”
그러고 보니, 백설린의 몸도 정상이 아니다.
찢어진 옷가지와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 피.
백설린 또한 천유성과 월영의 포위망을 뚫고 이곳까지 오는 데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한 게 틀림없었다.
하긴, 그러니 다른 무림인들은 오지 못하고 혼자만 온 거겠지.
“게다가 당신과는 조만간 중층에서 뵙게 되겠죠. 당신은 제국의 후원을 받는 몸이니까요. 그때 오늘 일의 방점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백설린이 부드럽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풀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때마침.
저벅.
반대편에서는 잔뜩 볼을 부풀린 테레사가 나타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 역시 속 시원한 결말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놓친 거야?”
“아오. 시체 주제에 리치가 죽었으니 더 이상 싸울 명분이 없다느니, 무의미한 싸움에 명예는 없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그대로 도망쳤어. 진짜 하아……. 내가 이 무거운 갑옷만 안 입고 있었어도 따라가서 목을 따 버리는 건데.”
콰앙!
테레사가 자기 키만 한 대검을 지면에 내리 꽂았다.
……앞으로는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긋나긋하고 상냥했던 테레사가 얼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제 슬슬 갈 시간이네. 순딩이한테는 내가 잘 말해 둘게. 그럼, 다음에 또 봐.”
테레사가 조금 전과는 다르게 간드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진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전신에 소름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하지만, 진혁이 뭐라 대꾸하려고 했을 땐. 이미 그 농밀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뒤였다.
“아으…… 아?”
얼굴이 빨갛게 물든 테레사가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원래의 인격이 돌아온 것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흑화한 테레사 때의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이것대로 골치 아프겠네.’
해야 할 말이 많았고, 이번 아웃브레이크의 뒷수습 역시 꽤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테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모든 싸움이 끝을 고했다.
***
아웃브레이크 이후 일주일이란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번 일로 인해 몇몇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건 천유성과 함께 무림인들을 맡았던 월영이 사라진 일이었다.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녀석이 증발해 버렸다.
그것도 아무런 언질도 없이.
일주일 동안 백방으로 녀석을 수소문해 봤지만, 양호명을 비롯한 흑풍회와도 연락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상태였기에 녀석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두 번째로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언데드 몬스터들은 베이로둠의 소멸 이후, 대부분 그 힘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중형급 몬스터들을 중심으로 한 몇몇 중소세력들은 끈질기게 남아 플레이어들을 괴롭혔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로 인해 ‘명예의 전당’은 그야말로 폭주에 가까운 지경이 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힌 대재해를 막아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진혁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전 세계의 모든 관심이 한국으로 집중됐다.
-David cROWn: 대체 한국은 뭔데 저렇게 대단한 랭커가 있는 거냐?
-poker J: 대형 길드가 공격대 전부 데리고 가도 노르망디 해안가도 못 뚫고 있었는데, 저걸 한 번에 심장부까지 파고들어 보스를 처리하다니.
-Live Trend: 편집본만 봤지만, 진짜 말도 안 된다. 고인물들이 많은 게임 강국이라 그런가? 한국은 인재들이 진짜 많긴 많은 것 같아.
-Brown May: 한국인들이 강한 건 맞지만, 그 중에서도 저 강진혁이라는 플레이어가 규격 외로 뛰어난 거다. 7대 길드 중 하나인 단군 길드의 랭커들도 유럽 중심부는 구경도 못했어.
-부먹찍먹 ㄴㄴ 쳐먹 ㅇㅇ: 아아. 이거시 ‘김치 파워’라는 거시다.
-주모국뽕한사발: 두유 노우 강남스타일? 뜨끈한 국밥 한 그릇 하쉴?
-새영언환: 우리 진혁이가 좀 남다르긴 하지. 애가 태생부터 좀 달라.
-수리부엉이: ㅇㅈ. 나는 예전 하꼬 때부터 보긴 했는데, BJ진혁이 이렇게 뜰 줄 알았음. 물론,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할 테지만.
진혁이 커피를 홀짝이며, 댓글들을 쭉 내려다봤다.
익숙한 닉네임도 보이고. 살짝 마음에 걸리는 닉네임도 보였다.
“그래도 일주일 사이에 많이들 복구했어. 인간들은 보면 볼수록 놀랍니까?”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와 모자로 깔맞춤을 한 엘리스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건축계열 플레이어들이 재건하는 도심은 복구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평상시처럼 거리를 거닐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활기가 도는 거리는 아웃브레이크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한 듯 보였다.
“와아. 이게 플레이어들이 사는 세계군요. 진짜 모든 게 크고 아름답네요.”
그 옆에는 최대한 일반인처럼 보이려고 잔뜩 공을 들인 안드리아까지 있었다.
둘이서 꺄악꺄악 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너흰 안에서 수련하라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나온 거냐?”
“우, 우리도 열심히 수련했어. 하지만, 고무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지면 끊어지는 거 몰라? 적당한 휴식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언니 말이 맞아요. 저 진짜로 많이 강해졌어요!”
얼씨구.
그동안 좀 같이 붙어 있더니 아주 둘이서 죽이 척척 맞는다.
이 정도면 친자매라고 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호랑이 새끼들을 키웠지. 그래.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진혁이 혀를 차는 동안 둘의 시선은 온통 테이블 위에 각종 음식들에 꽂혀 있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수제 맥주와 두툼하게 썰어낸 소시지. 거기에 감자튀김과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학센까지.
치열하게 싸우면서 쌓인 피로를 풀기에 모자람이 없는 식탁이 완성되었다.
꼬르륵!
엘리스 역시 잔뜩 허기가 동했는지 두 눈을 반짝였다.
“빨리 먹으면 안 돼? 이거 고기에다가 맥주 한 잔 마시면 체증이 싹 내려 갈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 아직 오기로 한 사람이 있어.”
유연화와 이태민은 한국에서의 일 때문에 빨리 귀국했지만, 테레사와 천유성이 곧 이곳에 오기로 했다.
오후 5시 30분.
약속 시간이 살짝 지났으니.
이제 슬슬 올 때가 되긴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혁 씨! 저희 왔어요!”
“…….”
골목에서 테레사와 천유성이 나타났다.
둘 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제법 신선하게 보였다.
테레사야 워낙 TV 출연이 많아서 그러려니 해도 천유성 저 녀석은 항상 전투에 적합한 옷만 입더니.
캐주얼한 후드티와 청바지 차람이 꽤나 낯설다.
잘 어울리긴 하는데, 뭔가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아직까지도 완전히 토라져 있네.’
천유성은 백설린에게 패배한 뒤로 어떤 걸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 그곳에 어떤 일이 있어났고. 전투 직후 월영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이번만큼은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한다.
***
본격적인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다들 웃고 즐기는 동안 천유성은 안주도 없이 묵묵히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하여간 세상 모든 무게를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는 놈답다.
“야! 야! 내가 지금은 이런 취급을 받고 있지만, 왕년에는 말이야. 손가락만 까딱하면 탑 전체가 벌벌 떨었어.”
잔뜩 취기가 오른 엘리스가 라떼를 시전했다.
나머지가 그런 엘리스의 일장연설에 정신이 팔리자 진혁이 넌지시 운을 띄웠다.
“시간도 꽤 지났는데, 이제 슬슬 말해도 되지 않아? 무림 쪽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월영이 없어졌어. 연화나 태민이는 무림 녀석들이랑 싸우다가 도중에 의식을 잃어서 대답을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고. 백설린한테 져서 자존심 상한 건 알겠는데. 그것 때문에 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내가 말을 아낀 건 내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천유성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럼, 뭐 때문에 이러는 건데?”
“무림의 떨거지들을 베어 버리고 백설린과 상대하던 도중. 무림인 한 명이 개입했다.”
한 문장의 말.
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누가 개입했다고?”
“무지막지한 노인이다. 나도 외모 이상의 자세한 건 모르지만…… 녀석이 이렇게 물었었다.”
천유성이 그때의 씁쓸했던 기억을 곱씹었다.
“내 제자를 사칭하는 게 바로 너냐고?”
“……!”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월영이 사라진 게 이제야 이해가 된다.
천유성이 좌절감에 빠져있던 것도 이해가 되고.
천마신교.
놈들이 마침내 폐관을 끝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문제는 그 시기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른데 이건…….’
새로운 변수가 등장에, 진혁이 바싹 타들어간 입술을 혀로 적셨다.
어쩌면…… 이번에는 꽤나 골치 아픈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웅!
품안에 넣어 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한상진.
한국 각성자 협회를 이끄는 협회장이었다.
통상적이라면 바쁘다는 이유로 받지 않고 넘겼을 테지만…….
플레이어 전용 ‘1급 보안 코드’가 설정되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