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철혈의 수호자 ‘제국(帝國)’ (1)
“듣고 싶지 않은 건가요?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글쎄. 궁금해야 하나?”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태연한 모습에, 찬드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궁금하지 않다고요?”
쓸데없는 만용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로 미끼를 뿌려 놨으면 당연히 걸려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는 분명 흥미를 보였어.’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버렸다.
마치, 이쪽이 숨겨 둔 패가 무엇인지 전부 간파해 버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서 실수를 한 거지?’
찬드라의 머릿속이 온갖 경우의 수로 인해 어지럽게 뒤섞였다.
반면.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아무리 네가 전투 능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아룬은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으르렁거렸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헛걸음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런 협박이 통할 진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꽤나 많았지.”
후회할 거라니.
두고 보자느니.
다음에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느니.
협박 편지를 엮어 소설을 냈으면 삼국지 정도는 프롤로그 수준으로 보이게 할 만큼 지긋지긋하게 들어봤다.
“하지만, 결국에 후회하는 건 그런 말을 한 놈들이더라고.”
상대가 무림이든 간다라든 상관없다.
내부의 적이 어느 가문인지 파악한 이상 놈들에게 뽑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뽑아냈을 터.
남은 부분은 실력과 경험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물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여기까지 비행기로 몇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시면 될 것 같네요.”
영양가 만 점짜리 정보를 가져와 줘서 정말 고맙다.
덕분에 유럽에서 여기까지 온 보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 아니면 기왕 한국에 오셨으니 관광이라도 좀 하고 가세요. 경복궁 한 바퀴 둘러보시고 뜨끈한 순대 국밥 한 그릇 드신 다음에 입가심으로는 달달한 수정과를 추천드리죠.”
진혁이 똥 씹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방 안에 둔 채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
십만대산(十萬大山).
천마신교의 본거지가 있는 이곳은 무림에서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금역(禁域)이다.
당연히 인기척이라고는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유일한 진입로라 할 수 있는 오솔길에는 노인과 젊은 남성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흐음. 이 길도 오랜만이로구나. 과거에는 그토록 피비린내가 났거늘.”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추억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권천지룡(拳天之龍) ‘암황(暗皇)’.
천마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두 호법 중 하나이자 권법에 있어서라면 무적이라 불리는 고수였다.
그리고 암황과 조금 떨어진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바로 흑풍회의 월영이었다.
“본좌와 동행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표정이 그렇게 어두운 것이냐?”
암황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그러나 월영은 그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심란한 얼굴로 상념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
“허허. 그 녀석은 나의 수제자를 사칭한 놈이다. 그런데도 놈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게냐?”
“그건 아닙니다…….”
월영이 말꼬리를 흐렸다.
분명, 진혁은 자신을 속이고 기만한 인물이었다.
천마신교와 암황의 이름을 팔아 흑풍회 전체를 농락한 대역죄인.
당연히 찾아가서 목숨을 거둬야 하는 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분노가 들끓어야 정상인 와중에도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그래. 내가 앞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는다.”]암기로 쓰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림받는 삶.
처음으로 그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었는데…….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자이길 바랐었는데…….
월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존께서 폐관해 계시는 동안 양호명이 꽤 쓸 만한 녀석을 키웠나 싶었건만 이리 사사로운 정에 휘둘릴 줄이야.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암황이 혀를 끌끌 찼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의 혼을 쏙 뽑아낸 놈이 과연 어떤 놈인지 본좌도 한 번 봐야겠다.”
천마신교는 현재 폐관이 오래되어 바깥과의 소식이 단절된 상태.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외부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태어난 순간부터 혹독하게 키워진 흑풍회의 단원들을 홀릴 정도의 상대라면 더욱더 말이다.
“혈검(血劍).”
“부르셨습니까.”
암황의 부름에 갑자기 새로운 신형이 나타났다.
마치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던 것처럼 복면인의 움직임에 군더더기 따윈 없었다.
“강진혁이라는 자를 데리고 와라. 단, 제국 쪽과는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들어선 안 된다.”
“존명.”
혈검이라 불린 사내가 짧게 목례를 했다.
그것으로.
천마신교의 첫 번째 수가 결정되었다.
***
시련의 탑 12층은 일명 개미굴이라 불리는 장소다.
땅 속에 있는 수많은 곤충형 몬스터들을 죽이고.
여의도 면적의 50배에 달하는 지옥 같은 땅굴을 통과해야만 13층을 가는 길이 열리는 구조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여왕벌레와 그를 호위하는 수많은 병정 벌레들은 지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생명력이 끈질긴 건 물론, 군집체의 특성상 수도 어마어마하다는 말이다.
‘흐음. 여기도 간만에 오네.’
심연의 끝이 일렁이는 구덩이를 앞에 두고. 진혁과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12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수많은 통로 중 가장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주인. 매우 깊어 보인다.”
노움이 구덩이의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흙뭉치를 떨어뜨려 봤지만, 바닥에 닿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살라맨더와 실피드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근데, 주인. 주인은 제국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대체 왜 여기에 온 거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운디네가 물었다.
호오.
눈치 빠른 꼬맹이가 하나 섞여 있었군.
“나는 제국으로 가야 하는 게 맞아. 하지만, 너희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어.”
아공간 인벤토리에 숨어서 낄낄대다가 버스나 타려는 안일한 생각.
그런 생각이 시련의 탑을 좀먹는 나쁜 생각이다.
각자에겐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고 정령수들의 할 일이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개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래야 내 발목을 잡지 않을 테고 적들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설마…….”
운디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묘한 미소를 띤 진혁이 운디네의 어깨에 손을 올렸으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최소한 지금보다 두 단계씩은 더 성장해 놔. 내 스타일 알지? 난 강한 놈만 데리고 가는 거?”
그걸로 끝.
“꺄아아아악!”
“히이익?”
“아, 안 돼애애애!”
“아…… 귀찮아.”
정령수들이 하나둘씩 심연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노움이 어떻게든 버티려고 끙끙댔으나…….
“노움아. 버티면 너만 더 피곤해져. 다 너를 위해서 특별 수련을 해 주는 거니까 순순히 받아들이렴.”
진혁은 노움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손수 떼어 주었다.
“우오오옹!”
마지막으로 노움까지 떨어지자 주위가 상당히 휑해졌다.
“모기모기. 모기…….”
고구마가 불쌍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그락! 딱! 딱!”
티본도 안타까웠는지 턱뼈를 연신 달그락거렸다.
음…….
왜 저 녀석들이 안타까워하는지 모르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더더욱 모르겠고.
진혁이 티본을 붙잡아 고구마의 등에 태웠다.
그리고 재차 생긋 웃었다.
“뭐 해? 너희도 어서 따라 가야지.”
“모기?”
“달그락?”
“아무렴 딜러인 정령수들만 보내겠어? 고구마랑 티본 너희가 전방에서 두들겨 맞는 탱커 포지션을 맡아 줘야지.”
제국에서 일을 보는 동안, 소환수들이 12층 전체를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계획.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고 보상도 전부 꿀꺽하고. 그야말로 1석 2조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도 누군가 이 모든 걸 대신 떠먹여 준다는 점이다.
이 맛에 네크로맨서나 정령사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모, 모기이이…….”
고구마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 마냥 구슬픈 울음을 흘렸지만, 이미 명령을 내린 진혁은 제국으로 가는 초대장을 뜯은 뒤였다.
우우우웅!
골드 드래곤과 황금 장미로 장식된 반지로부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펜하이머에게서 받은 ‘황실의 반지’였다.
직경 2m의 게이트가 만들어지자 진혁이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워낙에 첨예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기에, 작은 구멍이 댐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나마 내부의 첩자가 누군지 파악해 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 변수를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저벅.
일렁이는 표면을 향해 발을 뻗자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음?”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국으로 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위치가 예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륵…….
이마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펜하이머 이 영감탱이가…….’
초대장을 받아서 그곳으로 간 것뿐이건만, 진혁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왜냐하면…….
지금 있는 곳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샹들리에와 대리석으로 만든 탁자가 있는 회의실이었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국의 실권을 담당하는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쯤이었으면 말도 안 한다.
탁자의 가장 상석에는 왕관을 쓰고 있는 익숙한 노인이 보였는데.
저자가 바로 제국의 지배자이자 현 황제인 라인하르트 3세였다.
“이, 이런 무엄한……!”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냐!”
“근위병!”
대신들이 일제히 기함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 공간이동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반론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그 전에 칼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 빠를 것만 같았다.
이거 잘못하다간 시작하자마자 참수형을 당하는 배드 엔딩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
진혁이 힐끗 주위를 훑었다.
“…….”
굳은 얼굴로 진혁을 바라보는 라인하르트 3세와.
회의실 한켠에서 무언가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펜하이머의 모습이 교차했다.
‘설마…… 노린 거였나.’
황제를 비롯한 실권자들이 모인 장소.
내부에 있는 첩자.
힘을 잃어가는 황권.
정보와 정보가 취합된다.
이제야 펜하이머가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그걸 통해 어떤 걸 이루고자 하는지까지도.
그리고 생각이 거기에 도달한 순간.
띠링!
진혁의 눈앞에 푸른색 상태창 하나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