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추혼사영(追魂斜影)
사락…….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 피부를 간질였다.
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천유성은 단번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추혼검(追魂劍)을 창시한 당사자.
오래 전 죽어서 백골이 됐으리라 생각했던 기인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흐음. 네가 천유성이란 아이로구나.”
20대를 갓 넘은 듯한 외모.
백설린 역시 아름답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했으나, 그런 그녀마저도 추혼사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설화에 기록된 선녀처럼, 칠흑 같은 단발머리와 맑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죽은…… 게 아니었군요.”
“환골탈태와 반로환등 덕에 오랜 삶을 누릴 수 있었단다. 물론, 탑으로 인해 몇 가지 제약을 받긴 했다만…….”
그런 거였나.
탑의 시스템과 벽을 허물면서 얻게 된 기연.
이제야 추혼사영이 이곳에 있을 수 있던 이유가 이해가 간다.
“그런 은거기인께서…… 절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너에게서 나와 같은 걸 느꼈다. 범인과는 다른 재능.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열망을.”
추혼사영이 천천히 검을 고쳐 잡았다.
“추혼검을 익혔더구나. 다른 이의 검을 통해 이 아이를 보게 된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였다. 허나, 아직은 미숙한 맛이 있느리라.”
스윽.
천유성이 조금 전에 펼쳤던 초식…….
아니,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유려한 검이 시연되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검무다.
시간이 흐르는 것마저 잊어 버릴 만큼, 천유성은 추혼사영의 검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추혼검이란 말인가.’
이 구결을 전부 익힐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틀림없이 진혁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소절의 검무가 끝났다.
추혼사영이 맑은 눈으로 천유성을 바라봤다.
“거짓이라 해도 상관없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해도 이해하겠다. 단지, 그 끝에 도달하기 위해 네 검을 나를 위해 쓰겠다고 맹세하거라.”
그것이 비록 가식으로 점철된 것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추혼사영은 천유성에게 스승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이미…… 이것밖에 길은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던져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천유성의 머릿속에 진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 가증스럽고 능글맞은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녀석이 실망하는 표정을 볼 생각을 하자니 마음 한켠이 시큰거렸다.
으득!
‘배신이라고 생각하진 마라. 처음부터 너와 나는 적이었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스승님을 뵙겠습니다.”
천유성이 예를 올렸다.
***
해가 뜰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진혁은 펜하이머를 따라 수도 외곽에 위치한 ‘황실 보물 창고’로 향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재보들이 황궁 내부에 있는 반면, 이곳은 황실에서 아끼고 아끼는 진짜 보물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
“이제 다 왔습니다. 문을 열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커다란 절벽을 앞에 두고 펜하이머가 바위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쿠쿠쿠쿵!
갑자기 암석이 좌우로 움직이며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호오. 인간들 치고 제법 공을 들였네. 허락받은 대상이 정확한 양의 마력을 공급해야만 문이 열리는 방식이라니. 이거라면 보안은 확실하겠어.”
엘리스가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물 창고 내부로 들어선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보물들이 모두를 맞이했다.
‘역시, 거대 세력답게 꿍쳐 놓은 것도 무지막지하군.’
진혁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각종 마법 무구부터 코인 거래소에서 무지막지한 가격이 책정되어 있던 희귀 아티팩트까지.
이걸 눈앞에 두면 그 누구라도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으리라.
여기서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는 게 뼈아팠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걸 고른다면 어느 정도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오오! 나도 하나만 고르면 안 돼? 이 반짝거리는 보석이 굉장히 탐나는데.”
엘리스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주먹만 한 파란색 다이아몬드를 움켜잡았다.
홍대 거리를 가다가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 하나 사달라는 수준이 아니다.
한 눈에 봐도 홍대 건물들을 전부 사 버릴 수 있을 만한 보석을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값비싼 와인들까지 모조리 탐을 내고 있으니…….
펜하이머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계, 계약을 맺은 건 진혁 님 한 분이라 그건 좀…….”
펜하이머가 곤란한 듯 식은땀을 흘렸지만, 엘리스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고마워.”
주섬주섬.
와인들이 하나둘 아공간 인벤토리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드린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응. 나도 열심히 도와줄게.”
“자, 잠시만요.”
펜하이머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허나, 이미 보석은 엘리스의 아공간 인벤토리로 사라진 뒤였다.
거의 강탈에 가까운 만행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진혁은 수많은 보물들 사이를 매의 눈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거라…….’
검, 창, 활, 방패, 갑옷, 장신구.
하나같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없다.
그중에서도 날렵하게 잘 빠진 한 쌍의 단검과 묵빛이 도는 창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뻗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드워프가 만든 무구들인가.’
진혁이 ‘탐식의 눈’을 발동해 두 개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장인 ‘막뭄’이 만든 단검]공격력: 2100
내구도: 1000/1000
-상세 설명: 신의 금속이라 알려진 오리하르콘을 제련해 만든 단검으로서 암속성 몬스터들에게 100%만큼의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다만, 전투용보다는 고위 신분을 위한 장식용으로 제작된 탓에 기본 공격력이 다소 떨어집니다.
[장인 ‘몬트리혼’이 만든 창]공격력: 5500
내구도: 3300/3300
-상세 설명: 탑, 25층에 위치한 흑철(黑鐵) 광산에서 나온 철을 제련해 만든 창입니다. 장인이 만든 솜씨답게 매우 뛰어난 공격력과 내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흑철의 특성상 장기간 사용 시 사용자의 정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몇몇 단점이 보였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그걸 감내하고도 남았다.
다른 아이템들 역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욱 컸고.
‘하루 종일 여기에 있을 수도 없으니 두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겠군.’
그런데 선택을 하려고 하던 바로 그때.
진혁의 시선에 반투명한 유리병이 모였다.
유리병 안에 담긴 검붉은 빛 액체는 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설마…….
틀림없다.
“펜하이머 님. 저도 정했습니다.”
진혁이 무기를 내려둔 채 진열장에 있던 유리병을 꺼냈다.
“흠. 정말로 그걸 고르실 생각입니까?”
“여기 있는 것 중에선 가장 나아 보여서요.”
“선택은 진혁 님에게 달려 있긴 하지만, 가능하면 그건 말리고 싶군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알고 있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피죠.”
“……!”
진혁의 대답에, 펜하이머가 움찔했다.
“알고도 고르신다는 말씀입니까?”
통상 드래곤의 피는 최상급 마법 재료로 사용된다.
마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드래곤의 몸속에 흐르던 것이니, 당연히 엄청난 효능을 지닐 수밖에.
문제는 그 피를 다루는 게 극악의 난이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제국의 수석 마법사도 이 피를 이용해 병장기를 강화하는 데 실패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제국에 있는 그 누구도 이 피를 다룰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사실 제국에 이걸 다룰 수 있는 자가 딱 하나 있다.
마법을 초월하여 만물을 다룰 수 있는 희대의 장인이.
“예. 이걸로 하겠습니다.”
진혁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만약 다른 사람이 고집을 피웠다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겠지만…… 진혁 님이 그러시니 뭔가 기대가 되는군요. 저는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되기 때문에 이만 가겠습니다만, 모쪼록 진혁 님은 원하시는 바를 이루셨으면 합니다.”
귀족들의 상황을 살펴야 하는 펜하이머는 여기서 작별을 고했다.
***
점심시간이 지나자, 수도의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덕분에 철통같던 경비에도 틈이 생겼고. 진혁과 엘리스 역시 그 틈에 섞여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이렇게 꼭꼭 숨어 다녀서야 마음껏 구경도 못 하겠네.”
엘리스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불만을 토로했다.
반지 밖에서 현현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엘리스는 밖으로 나왔을 때 가능하면 많은 걸 보고 즐기고 싶어 했다.
물론.
그런 말을 듣는 진혁의 입장에선 한숨만 나올 뿐이었지만.
“넌…… 이 상황에서 여행이라는 말이 나오긴 하냐?”
무림에 제국 내부의 귀족파에…… 천마신교와 마인 협회까지 개입되어 있다.
거기에 세력을 선택한 플레이어들과 거대길드도 이번 전쟁에 참여할 게 뻔한 상황 아닌가?
가웨인의 말에 따르면 천유성 그 망할 녀석까지 무림하고 붙어먹었을지도 모르는 데다,
중화 길드를 이끌었다가 무림 쪽으로 전향한 남궁천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굉장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음.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엘리스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여간 진조 녀석들은 이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무식하게 밀어붙이니까.
“네가 현현해서 깽판을 치면 나머지 진조 가주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테고 탑의 관리자까지 개입할 텐데. 참 편하겠다. 그치?”
“너랑 나랑 그 모기 모기 하는 녀석까지 있으면 다 덤벼도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진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마침.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룬의 대장간] [50년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제국 최고의 대장간!] [대금은 술로도 받습니다.] [친절, 봉사, 사랑. 고객 만족도 1.6%] [제국에서 지정한 불친절한 가게 1위]근처에 수십 개의 대장간이 있었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상태가 좀 많이 심각했다.
간판도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애초에 간판에 적힌 문장 중에서도 굉장히 수상쩍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여기 좋은 곳 맞아?”
“겉보기에는 그런데 여기 주인이 꽤 실력 있는 건 맞아.”
“으음. 영 믿기가 힘든데…….”
엘리스가 미심쩍은 듯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렁…… 커어억! 컥! 컥!”
코를 고는 요란한 소리가 인사 대신 반겨 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드워프가 대장간 한복판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게 보인다.
작지만 건장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 바로 드워프 ‘오룬’이었다.
“안녕하세요.”
“드르렁!”
“저기요?”
“드렁!”
“음. 모처럼 좋은 와인을 좀 가져왔는데. 주무시니 어쩔 수 없네요. 바로 옆에 있는 대장간으로 가야 하나…….”
“커어…… 뭐? 수, 술!? 술이라고 했나?”
오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나 알코올 중독이면 이렇게 작게 말하는 거에도 반응할 수 있는 걸까.
뭐, 이쪽으로서는 귀찮게 깨워야 하는 걸 덜게 됐으니 다행이다.
“커흠.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의뢰를 한 가지 맡기고 싶습니다.”
“의뢰? 거 좋지. 이게 얼마만의 호구…… 아니 손님인지. 뭘 맡기든 내가 아주 기가 막히게 뽑아줌세.”
“오룬 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혹시 테스트를 한 번 해 봐도 될까요? 물론, 이 건에 대해서는 따로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진혁이 손바닥 위에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를 꺼냈다.
엘리스가 지니고 있던 팔찌였다.
“야! 그거 내 거잖아? 대체 어느새……!”
“쉿!”
“우우읍…… 웁!”
재빨리 엘리스의 입을 막은 진혁이 재차 오룬을 바라봤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테스트라……. 허허. 이거 내 신뢰가 많이 떨어지긴 한 모양이군.”
깊게 가라앉은 음성 뒤엔, 장인의 실력을 의심받는 것에 대한 분노와 그런 처지에까지 놓이게 된 자조감이 깊게 배어 있었다.
“대가는 필요 없네. 자네에게 드워프 왕국에서 ‘꺼지지 않는 모루’라고 불리던 나. 오룬이 어떤 자인지를…… 지금부터 보여 주지.”
오룬이 육중한 망치를 꺼내들었다.
우우우웅!
고대 룬어가 장식된 망치에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이 깃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으랏차차!”
망치가 하늘에서 아래로 낙하했다.
콰아아앙!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펜드리곤 왕비의 팔찌가 파괴되었습니다!]“…….”
“…….”
“…….”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정말로 짧은 침묵이었다.
“허허. 요즘 너무 많이 마셨나? 손이 그만 미끄러졌구만.”
“꺄아아악!”
엘리스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망할 드워프 영감탱이가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