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내부의 적
“이럴 수가.”
송천화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고함이 난 곳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 뒤였다.
“……늦었어요.”
바닥에 쓰러진 네 사람을 살피던 힐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두부에 나 있는 깔끔한 상흔.
후방에서 기습을 당해 즉사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네 사람의 죽음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들이 지키던 것이었다.
우우우웅!
유적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떠 있는 검은색 구체.
누군가…….
……가디언을 깨웠다.
[‘유적의 가디언’이 침입자들을 바라봅니다.] [남은 시간: 09 : 59]유적의 입구를 지키는 존재 ‘가디언’.
이들은 상위 던전의 보스급에 해당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으나, 자극을 받아야만 깨어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슬리핑 밤(Sleeping Bomb)’.z
가만히만 내버려 두면 위험할 일 없는 폭탄이란 뜻이다.
“대체 어떤 병신이 이걸 건든 거야!”
“이제 와서 그걸 따져 봤자 무슨 소용이야? 이미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그래. 이미 늦었다.
남은 시간은 단 10분.
그 안에 유적에서 나가지 않으면…….
가디언이 완전히 깨어나게 된다.
“혀, 형!”
“알아. 나도 안다고!”
송천화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가디언과 싸울 수는 없다.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절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죽을지도 몰라.’
사실상 레이드는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전력의 반을 잃고 보스한테까지 가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끝낸다고?’
그것도 가디언을 깨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경질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아예 길드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내가 공대장 자리까지 올라오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꾸욱.
어금니가 입술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절대로.
송천화가 결심한 듯 명령을 내렸다.
“가디언이 깨어나도록 내버려 둬. 우린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속행한다는 결정에,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렸다.
“형. 진심이야?”
“잘 생각해야 해. 아니, 진짜로. 자칫 잘못하다간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짐꾼 한 팀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3개 팀은 밖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후발대로 합류하기로 되어 있는 길드 하나도 아직 유적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
계속하겠다는 건 전체 전력의 20% 이상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잔말 말고 따라. 책임을 져도 내가 질 테니까.”
송천화가 반론을 단칼에 일축했다.
“그리고…… 후발대가 없어도 테레사만 있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어.”
그래.
믿는 구석이 바로 이거다.
송천화의 시선이 힐끗 옆으로 향했다.
금발의 성녀.
언데드 계열 몬스터들을 상대로 하는 한, 테레사는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가능하다.
가능하고말고.
***
짐꾼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진 건 그로부터 몇십 분이 흐른 뒤였다.
“이, 이거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가디언이 깨어났는데 유적 밖으로 못 나간다니요?”
“뭔 소리여 이게! 그럼, 우리 보고 공격대랑 같이 다니라는 소리여?”
“빌어먹을.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다고!”
짐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랭했다.
“누군가 가디언을 지키던 이들을 암살했고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미 가디언이 깨어난 뒤였습니다.”
암살이라…….
잠자코 있던 진혁이 귀를 쫑긋 세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건데…….’
지금 세상에선 살인이 그리 큰 사건도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 동기이다.
무언가 이득을 취하려는 것도 아니고.
유적 안에 사람들을 가둬서 못 나가게 하다니.
재밌네.
대충 녀석이 노리는 게 뭔지 예상이 간다.
그리고 그 정체까지도.
어쩌면 가디언이 깨어난 덕분에 상황을 더 유연하게 주무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진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발 늦게.
“측면에서 몬스터입니다! 중형급…… 많아요!”
척후 조에 있던 플레이어가 고함을 질렀다.
“저, 전투 준비해!”
송천화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직 정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의 기습이었기에 대응이 느렸다.
쿵!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풀숲이 좌우로 흔들렸다.
온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탱커들 앞으로!”
“짐꾼들은 빨리 뒤로 빠져! 방해하지 말고 빠지라고!”
콰아아앙!
나무가 쓰러졌다.
풀숲이 갈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건…….
“크오오오오!”
“크아아아!”
2.5m가 넘는 듀라한들이었다.
전부 해서 열둘.
하나같이 철퇴와 도끼 따위로 무장한 상태였다.
“으으으.”
“듀, 듀라한이라니!”
유적 초입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총 13종류.
듀라한은 그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전신에 솜털이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구울이나 스켈레톤 따위와는 근본부터 다른 상위 포식자.
질긴 피부는 물론, 속도와 완력까지 겸비했기에, 듀라한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축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탱커들한테 보조 계열은 버프 몰아주고, 딜러들은 마력 최대한 모으면서 타이밍 재!”
송천화가 공격대를 통솔했다.
[송천화가 Lv3 ‘아이언 쉴드’를 발동합니다!] [고윤덕이 Lv2 ‘쐐기 대형’을 발동합니다!] [이윤미가 Lv2 ‘전사의 노래’를 발동합니다!]우우우웅!
각종 스킬과 버프가 중첩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크아아아!”
콰아아앙!
듀라한의 철퇴가 방패 위로 낙하했다.
***
진혁은 조금 떨어진 후방에서 전투를 직관했다.
‘확실히, 길드 단위로 구성된 방진이 탄탄하긴 하네.’
호흡을 많이 맞춰 본 게 티가 났다.
듀라한을 상대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솔로 플레이어들이다.
주로 혼자 다녔기에, 이런 식의 집단전은 익숙하지 않았고.
결국,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콰득!
뼈가 박살나고 살이 으깨지는 섬뜩한 파육음.
“끄아아아악!”
어깨가 아작 난 남자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놈들 말도 안 되게 빨라!”
“히, 힐러! 힐러 어디 없어?”
“우리 쪽에도 탱커를 좀 보내 줘요. 도저히 버틸 수가…….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고요!”
그야말로 아비규환.
급조된 조직력으론 듀라한을 상대할 수 없었다.
적어도 솔로 플레이어들의 현실은 그랬다.
하지만 간곡한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송천화는 도움을 구하는 이들을 외면했다.
희생자는 나온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편이 좋았다.
송천화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면 떨거지들의 희생은 필수지.’
사실, 이번 레이드에는 유적 클리어 외에도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바로 고정 구독자의 확보.
구독자 한 사람당 하루에 1회만 조회수가 카운팅된다는 규칙 때문에, 현재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구독자 쟁탈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했다.
어지간한 영상으론 10,000 조회수 올리는 것도 만만찮다는 뜻이다.
‘결국에 구독자들을 열광시키려면 말초적인 자극을 줘야지.’
잔혹성과 선정성.
거기에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면 최고의 영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적당히 희생자가 나왔으니 슬슬 움직여 볼까.’
송천화가 옆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아!”
“예, 형!”
캐스팅을 하고 있던 남자가 즉각 마법을 발동했다.
파츠츠츠!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손바닥에 만들어진 새하얀 구체.
빙계 마법 ‘아이스 오브’였다.
극한까지 응축된 얼음덩어리에서 마력이 뿜어졌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
듀라한들 사이로 한 줄기 폭풍이 몰아쳤다.
“크아아아!”
“크으으…….”
듀라한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무기를 든 팔에 성에가 달라붙었고.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도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지금이다! 다들 산개해!”
쿠웅! 쿠웅! 쿠웅!
송천화를 비롯한 탱커들이 일제히 좌우로 간격을 넓혔다.
훤히 드러난 중앙.
탓!
타악!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지면을 박찼다.
검과 창을 쓰는, 발해 길드 제1 공격대의 메인 딜러들이었다.
서걱! 콰득!
날붙이가 급소를 노렸다.
난전에 특화된 딜러에게, 느려진 듀라한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쿠웅! 쿠우웅!
듀라한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영상 잘 나왔어요, 형. 이거 최소 조회수 300만은 나올 것 같아요.
발해 길드의 영상 편집 능력자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300만……!’
송천화의 입 꼬리가 승천했다.
이 연출을 위해 피 나게 준비한 보람이 느껴졌다.
하긴, 보는 입장에서 침이 질질 흐를 거다.
뽕맛을 제대로 넣었으니까.
‘솔로로 온 놈들은 거의 다 전멸했겠군.’
8마리는 길드들에서 막아 줬지만, 나머지 4마리는 탱커를 지나쳐 뒤쪽으로 갔다.
결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뻔하다.
맞서 싸운 놈들은 이미 시체로 변했을 테고.
그나마 발 빠른 놈들만 살아남았겠지.
***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25살, 정보계열 능력자인 김소미는 다가오는 도끼를 보며 삶을 포기했다.
이젠 더는 도망갈 힘도.
손끝 하나 움직여 방어할 마력도 없었다.
‘그냥…… 내 수준에 맞게 살걸.’
일확천금을 노리고 들어온 많고 많은 이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원하는 결말은 이게 아니었지만.
두 눈을 꼭 감고 최후를 기다렸다.
최대한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그런데.
“……?”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힐끔 눈을 뜨자.
“헉!?”
그곳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그그그극!
도끼가 멈춰 있었다.
듀라한의 양팔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해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를 넘어서진 못했다.
‘……견디고 있어?’
아니, 너무나 가볍게 막고 있다.
고작 단검 한 자루로.
무장 상태를 보면 근접 딜러가 틀림없는데…….
어째서 방패를 든 탱커보다 더욱 거대해 보이는 걸까?
그저 놀라웠다.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광경에 놀라운 감정은 두려움으로 뒤바뀌었다.
화르륵!
남자의 왼손에 화염에 일어났다.
작은 불꽃 따위가 아닌, 눈이 따가울 정도의 겁화다.
“마…… 마, 마법까지 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소수만 존재하는 만능형 플레이어.
그런 그들도 능력 간에 편차는 있다.
어디 하나는 약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허나, 이처럼 모든 능력치가 강한 경우는 들어본 적 없었다.
레벨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콰콰콰콰콰콰!
화염이 듀라한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썩은 고기를 굽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크아아아아!”
쿠우웅!
숯덩이로 변한 듀라한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것으로 네 마리.
진혁이 쓰러진 듀라한을 잠시 바라봤다.
1레벨을 유지해야 했기에, 숨통을 완전히 끊진 않았지만.
사실상 거의 시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마무리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진혁이 손에 묻은 숯가루를 털어 냈다.
그리고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뭐랄까.
아직 몸도 풀지 못 했는데, 경기가 끝나 버린 기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듀라한의 수준이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
까다로운 공격보다 그저 본능에 따르는 단순한 패턴.
조금 빠르고 완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실제로 네 마리를 처리하는 데 3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어째 예전에 했을 때보다 훨씬 쉬운 것 같은데?’
그때는 듀라한 4마리를 잡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걸 7분이나 단축했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할 수밖에.
이거, 아무래도 11년간 고여도 너무 고여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당신, 대체 어떻게…….”
뒤쪽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