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21)
222화. 거인들의 성채 (1)
거인들의 성채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백색 나무.
[몽환의 실낙원]절대 판정 효과가 있는 12성급 결계로, 30층 아래에선 가장 강력한 결계 중 하나다.
저 안에 들어갈 경우 상하좌우가 역전되어 보이는 건 물론, 혈관을 따라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마저 왜곡받게 되는데.
미세한 컨트롤이 생명인 기사와 무림인에게 있어 결계 속에서 거인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감각과 능력에 혼란을 주는 수많은 저주들이 몇 종류나 되는지는 정확히 그 수조차 추정하지 못하고 있지.’
큰 것들만 나열해도 이 정도일 뿐.
백색나무가 심어져 있는 몽환의 실낙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저주를 합성하고 있을 것이다.
괜히 성채 내에서 거인들은 무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위험을 감수할 만해.’
성채를 공략하면, 한 층계를 공략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다시 말해 인류는 90일이란 시간을 더 벌 수 있고.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경우 그에 따른 막대한 보상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성채 주위부터 천천히 파악해야겠어.’
풀숲에 숨어 있던 진혁이 ‘천라지망’을 통해 주위를 훑었다.
그런데.
‘이것 봐라?’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넓은 범위로 사용한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다수의 마력 반응이 잡혔다.
거인들뿐만이 아니다.
제국과 무림 역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특히, 제국 쪽은 최대한 먼 곳에서 은밀하게 병력을 배치하는 중이었다.
‘나한테 맡기느니 뭐하니 하면서도 뒷구녕으로는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냐.’
갑자기 말이 바뀐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찜찜한 꿍꿍이속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반면, 무림 쪽에서도 아주 익숙한 인물들이 보였다.
남궁천.
중화 길드를 이끌었던 중국 최고의 랭커가 선두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화잎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백설린과…….
‘천유성.’
징글맞은 웬수 녀석도 천라지망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만 분의 일이라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는데, 이걸로 천유성이 무림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흐응. 저 검성 녀석도 다른 쪽에 붙은 거야?”
엘리스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사정은 무슨……. 딱 봐도 사장이 워낙에 악덕이니 도망간 거잖아. 그러게 평소에 부하 직원들한테 잘 좀 해 주지 그랬어? 맨날 부려먹기만 하니까 다들 도망을…… 읍! 으읍!”
열심히 말을 하던 엘리스가 갑자기 온몸을 마구 바둥거렸다.
무언가 입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심상치 않는 향과 맛을 지닌 덩어리가.
당장 뱉어내려 했으나, 이미 진혁이 단단히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 버린 뒤였다.
“헛소리하는 애한테는 개똥이 약인데…….”
“또…… 으읍!?”
“걱정 마. 진짜 개똥은 아니니까. 대신 이번에 회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조미료를 듬뿍 좀 넣어봤어.”
제국의 물고기가 워낙 싱싱하고 식감이 좋아 초밥이나 만들어 먹을까 해서 챙겨온 와사비.
거기에 후식으로 먹을 민트초코까지 더하자 제법 완벽한 디저트가 탄생했다.
이거라면 유언비어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될 것이다.
“읍…… 으으읍!”
엘리스의 목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
몇 십 초가 흐르자 격하게 팔다리를 휘적이던 엘리스가 조용해졌다.
“다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기탄없이 의견을 제시해 줘.”
진혁이 생긋 웃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이끄는 대표로서 직원들의 불만은 언제나 오픈 마인드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 마스터. 나는 마스터에게 불만 따윈 없다. 충실한 부하로서 뼈가 닳도록 열심히 싸우겠다.”
위기감을 느낀 티본이 다급히 하관을 달그락거렸다.
고구마와 정령수들에게 들은 게 있었는지 그래도 제법 눈치가 빠르다.
“……저, 저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군은 정말로 암황님의 수제자가 되셨으니까요.”
월영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더 이상 불만은 없는 것 같네. 그럼, 지금부터 각자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
진혁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
쿠웅! 쿠웅! 쿠웅!
성채로 향하는 길목에 묵직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크르르…….”
약 7m급의 거인이 양손용 전투 도끼를 든 채 순찰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산짐승과 몬스터들은 거인의 기척을 느낀 순간, 모두 도망간 터라 주위는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거인 역시 그걸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 왔다.
바로.
지금까지는.
“크르?”
거인이 가는 길 앞에 웬 코딱지만 한 인간 한 명이 서 있었다.
뜻밖의 간식을 만난 사실이 기뻤던 걸까?
거인의 입 주위를 따라 침이 흥건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뼈째 먹어치워야 한다.
쿵! 쿵! 쿵!
거인이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히려 할 때였다.
시큰!
갑자기 묵직한 충격과 함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끔찍한 격통이 뇌수까지 파고들었다.
“크아우! 내…… 내 대리! 내 다리가!”
거인이 바람구멍이 난 다리를 양 손으로 감싸 안았다.
“흐음…….”
어느새 남자의 손에 활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적색 마탄에 혈마기를 섞으면 통증이 2배 가까이 증가되는군. 이게 내성이 높은 거인들한테까지 통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네.”
진혁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아아아아!”
분노한 거인이 절뚝거리며 재차 전투 도끼를 잡았다.
부우우웅!
천지를 쪼개 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살이 잘리고 뼈가 박살나는 손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에서 아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격통이 느껴졌다.
“크아아아아!”
바닥에 깔린 흙에서 눈부신 황금색 물결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수십 개의 밧줄이 거인의 몸을 단단히 구속해 버렸다.
‘만다라’의 신성계열 마력을 기반으로 한 군중 제어 스킬이다.
거기에 ‘빙하조형’으로 만든 서릿발이 발바닥에 들러붙자 제법 그럴듯한 임시 감옥이 만들어졌다.
‘복사한 스킬들이 많아지니,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해지네.’
아직까지 갈 길이 멀긴 했지만…….
점점 쌓여 가는 고유 능력과 스킬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더욱 굉장해지겠지.’
최상위 랭커들과 거주자들…… 그들을 넘어 신격들의 능력들까지 모조리 복사해 버린다면.
그리고 그러한 능력들을 기반으로 한 단계 상위 등급의 스킬들을 융합해낼 수 있다면!
그때는 탑의 마지막 층계에 있는 놈들과도 다시 한번 붙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고동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아아아!”
“애 쓰지 마. 네 힘으로는 절대 벗어나지 못하니까.”
“대체…… 뭐냐. 인간이 어떻게. 이런 능력을…….”
제국의 마법사들도 여러 번 만나 봤던 거인이었으나 그들 중에서도 캐스팅 시간이 이토록 짧은 놈은 없었다.
아예 접근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은 연계다.
“잡소리는 됐고. 이제부터 질문을 몇 가지 할 건데, 성실하게 잘 대답해 줬으면 해.”
“할 말 따윈 없다. 죽여……라!”
“호오. 죽어도 동족에 관한 건 팔 수 없다?”
“그렇다. 내 목숨 하나 구하려고 모두를 버릴 바엔 차라리 나 혼자 죽는 게…… 낫다.”
이런.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이런 게 동족애라는 건가?
진혁이 손끝으로 눈가를 닦는 시늉을 했다.
물론, 건조하게 메말라 있는 눈가에 수분기 따위 있을 리가 없지만.
“어디, 그 마음. 꼭 변치 않길 바랄게.”
진혁이 뒷걸음으로 조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뾰족한 화살촉 대신 뭉툭한 쇳덩이가 달려 있는 것이랄까?
관통력보다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데 더 중점을 둔 화살이었다.
거인이 결연한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그런데.
퍼억!
화살이 신체의 일부에 파고든 순간.
거인은 자신이 지켜오던 신념이 모래성마냥 무너지는 걸 느꼈다.
“어……으……아?”
통증에도 정도라는 게 있지만, 이건 그 선을 한참이나 넘어섰다.
“흠. 요즘 활을 잘 쏘지 않아서 그런가.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네. 머리를 노리려고 했는데, 조준이 꽤 아래로 갔잖아? 어디, 다시 한번 쏘면 달라지려나…….”
진혁이 재차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우어어어억! 기, 기다려라! 잠까아안……!”
콰득!
소리 한번 찰지다. 이번엔 분명 뭔가 부러진 것 같은데.
“꾸어어어억!”
“미안 미안, 하하. 이거 손이 또 미끄러졌나 봐. 오룬 영감님을 만나서 그런가. 나도 자꾸 손이 엇나가네.”
“사, 살려 달라. 지…… 질문이 뭐든 대답하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 다오.”
이쯤 되자 거인의 눈에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 버렸으니까.
“아까는 전쟁터에 나가는 상병 3호봉의 얼굴이더니. 이제 와서 왜 꼬리를 말아?”
일을 수고롭게 만든 이상 그에 대한 대가는 있어야 될 터.
“나는 이거 다 사용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어. 할 말이 있으면 그때 가서 다시 말할 기회를 줄게.”
“나, 남아 있는 화살이라면…….”
거인의 시선이 진혁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얼핏 봐도 화살통에 남아 있는 화살의 숫자는 족히 20개가 훌쩍 넘어 보였다.
어머니…….
거인이 두 눈을 꼭 감았다.
***
해가 완전히 산등성을 넘어가자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드리웠다.
거인들의 성채 서쪽에 위치한 주둔지.
무림의 정예들이 자리잡은 이곳엔 수많은 횃불들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혹시라도 거인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제국의 별동대가 습격할 것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 병력 또한 물 샐 틈 없이 배치해 둔 상태였다.
이거라면 쥐새끼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림자에서 사람의 인형이 꿀렁이면 나타기 전까진,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경비병을 피해 천막 사이로 흑의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침입자인가.”
“이 느낌은…….”
“…….”
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셋이었다.
각자의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남궁천과 백설린 그리고 천유성이 그림자가 나타난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서 있었다.
흑풍회 제일의 살수인 월영이었다.
“당신은…… 유럽의 아웃브레이크 당시 강진혁과 함께 있던 자 아닙니까?”
백설린이 대번에 월영의 정체를 간파했다.
남궁천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강진혁이라. 씹어 먹어 버리고 싶은 그 빌어먹을 놈 말이로군. 그 녀석을 따르는 놈이 왜 이곳에 온 거지?”
“주군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기 위해 왔다.”
월영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일 밤. 거인들의 성채에 펼쳐져 있는 결계 중 일부가 사라질 거다. 공격을 하기에는 절호의 기회겠지. 주군께서는 너희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라신다.”
“어이가 없군.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믿고 안 믿고는 내일 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될 것 아닌가?”
결계가 그대로면 공격을 하지 않으면 그뿐이고.
만약 결계가 약해졌다면 그 틈을 찌르면 된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일은 없다.
딱 한 가지.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 치고. 그렇다면 강진혁이 이걸 말해 주는 이유는 뭐지?”
그 능구렁이가 이런 고급 정보를 사심 없이 말해 줄 리는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몇 번이고 데여 본 남궁천은 진혁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의심스러웠다.
“주군의 의중까진 나도 잘 모른다. 확실한 건…… 너희들이 나서지 않으면, 제국 쪽에서 움직일 거라는 것뿐이지.”
거점은 하나인데.
이곳을 노리는 세력은 두 개다.
둘 중 하나는 손가락만 빠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명심해라. 결계가 약해지는 시간은 내일 자정이다.”
할 말을 전부 전한 월영이 다시 그림자로 변하려 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천유성을 쪽을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가운 음성이 천유성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당신은 한국대학교 의예과 휴게실 앞에 거꾸로 매달아 놓겠다고 하시더군. 옛정을 생각해서 팬티 한 장은 허락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
오싹하고.
천유성의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