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24)
225화. 몽환의 실낙원 (2)
서걱!
절삭음과 함께 메뚜기 한 마리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진혁이 양손에 검을 쥔 채 거침없이 앞으로 질주했다.
“케에에엑!”
“키이에에!”
벌써 몇 마리나 되는지 모를 벌레들을 베어 버렸지만, 끊임없이 몰려오는 군집체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정면에서 무지막지한 크기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곤충 중에 가장 큰 종류로 알려진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다.
콰아앙!
‘빙하조형’으로 만든 실드를 펼쳤음에도 진혁의 몸이 몇 미터나 옆으로 튕겨나갔다.
마치, 20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만 같은 충격이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취리리릿!
이번엔 땅을 기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래!’
흙 속에서 날카로운 다리들이 튀어나왔다.
‘검은 모래 지네’.
몸길이만 10m가 훌쩍 넘는, 지네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다고 알려진 개체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진혁이 재빨리 옆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녀석이 조금 더 빨랐다.
수백 개의 다리들이 순식간에 진혁의 주위를 감쌌다.
“키이이…….”
샛노란 두 눈이 진혁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치이이익!
이빨 사이로 떨어지는 침이 땅에 닿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건 분명, 산성과 독이 섞인 체액이겠지.
“나무를 지키려는 게 본능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상대는 봐 가면서 덤벼야지.”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밀다가 죽은 동료들의 시체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키에에엑!”
지네의 아가리가 쩍하고 벌어졌다.
지독한 독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녹아내리는 황금 장미와 풀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 따위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던 독이 일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고유 능력 ‘천독(千毒)’이 발동됩니다!]검은 모래 지네가 뿜어낸 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짙은 운무가 흘러나왔다.
엘프의 숲에서 복사하게 된 ‘당문의 무공’.
천독(千毒).
독공으로 이름을 떨친 명문가의 절기가 진혁의 손을 통해 재현되었다.
“키이……크에에엑!”
검은 모래 지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무리 독에 내성을 크게 갖고 있다고 한들, 사람 하나를 1분이면 핏물로 화해 버릴 수 있는 학정홍(鶴頂紅)에 견딜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녀석이 겪어 온 독과 무림의 독은 그 근본부터가 너무도 달랐다.
“워낙 지독한 능력이라 사람을 상대로는 쓰기 꺼렸는데, 너희들이라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겠어.”
진혁이 검은색 운무를 갈무리했다.
연기가 이내 꼬챙이 모양을 갖췄다.
엘리스의 고유 능력인 블러드 로드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
독을 잔뜩 머금은 꼬챙이에 ‘불의 원소’를 곁들인다면…….
벌레 사냥에 있어 이보다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화르르륵!
독기와 불이 한 자리에 어우러졌다.
이어진 건 아포칼립스에서나 회자될 법한 불의 비였다.
***
콰콰쾅!
콰아앙!
꼬챙이에 직격당한 곳에 보기 흉한 크레이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력 소모가 극심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광역기가 아니면 저 안에 파고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으니까.
다시 한번 ‘검마제왕보’를 사용한 진혁이 그 자리에서 크게 도약했다.
목표는 꼬챙이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진혁이 부드럽게 나비의 등 위에 착지했다.
나비는 불비로 인해 혼이 다 빠져 있는 상태라, 아직까지 진혁이 등에 올라탄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 정도 높이는 돼야 약점이 보이는군.’
오직 하늘에서만 보이는 백옥.
그게 백색 나무를 지탱하는 근원이다.
부우웅!
뒤늦게, 이질감을 느낀 나비가 진혁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뜩이나 감각이 왜곡된 상태라, 균형을 잡는 게 쉽진 않았지만 진혁은 곡예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좌우의 균형을 유지했다.
‘아직…… 아직 아니야.’
꼬챙이 하나를 손에 움켜쥔 채 마력을 긁어모았다.
정확한 각도가 나오기 위해선 조금 더 나비를 우측으로 옮겨야 한다.
독기로 나비의 시각과 후각을 마비시킨 진혁이 교묘하게 투창을 할 수 있는 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색 나무와 나비의 더듬이가 일직선을 이룬 순간.
파츠츠…….
끌어모았던 마력과 독기가 2m에 이르는 창으로 변했다.
진혁이 쥐고 있던 창을 던졌다.
한줄기 바람이 대기를 갈랐다.
검붉은 색을 띤 5개의 원이 그려졌다.
파앙!
음속을 돌파한 창이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닉붐을 만들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창이 백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터무니없는 위력의 투창에, 성 전체가 뒤흔들렸다.
충격파 탓에 황금 장미와 풀들은 모조리 옆으로 꺾였다.
하지만.
“쳇!”
완벽한 각도와 위력을 유지했음에도, 백옥은 파괴되지 않았다.
약간 금이 갔을 뿐 여전히 그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오오오오!”
나무로부터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정도 날뛰었으면, 나무도 깨달았을 것이다.
양산형 벌레들로는 아무리 쏟아 부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이 땅을 지배하는 자. 탄그라실이다.”
처음으로 백색 나무의 몸에서 깊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탄그라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세계수, 위그드라실에 비할 바는 아니었느나.
시간이 지난다면 또 다른 신화를 이룰 수 있는 거목이었다.
이 녀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조금 전 공격이 통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감히, 이 실낙원에 침입한 것으로도 모자라 나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이냐?”
탄그라실이 물었다.
동시에 진혁의 몸에서 은은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보다 말하는 나무라…… 신기하네. 벌레가 잔뜩 꼬이는 것만 아니라면, 릭에게 바로 팔았을 텐데.”
“뭐, 뭐라? 날 판다고?”
“너 같이 신기한 것들을 주로 취급하는 중간 관리자가 하나 있거든. 아마 값을 쏠쏠하게 쳐 줄 것 같긴 한데……. 벌레들 때문에 그냥 태워 버릴지 말지 고민 중이야.”
진혁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 이죽임에 탄그라실의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정령들에게 신성시 여기며, 고고하게 살아 온 삶.
심지어 거인들의 왕인 오그라쿤마저 감히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체 뭐란 말이냐?
고작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 따위가 이토록 광오한 말을 내뱉는 이유는?
“……네놈이 내가 펼친 결계의 저주에 적응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저주가 고작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준비해 둔 게 더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앞에 있던 저주들이 워낙 실망스러워서 그런가? 그다지 기대는 안 되네.”
“그 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탄그라실이 ‘두 번째 저주’를 발동합니다!] [침입자 1인을 지정해 그 대상이 전투에 사용한 마력의 2배만큼을 흡수합니다.] [대상은 플레이어 강진혁입니다.]검을 쓰든 활을 쓰든, 마법을 쓰든 상관없다.
대상이 직접 전투에 관여할 경우 그 대상이 사용한 마력의 2배를 흡수해 버리는 사기적인 저주.
바로 이것이 탄그라실과 거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이 성채를 지킬 수 있던 이유였다.
“어떠냐? 제국이 자랑하던 소드마스터나 대마도사 그리고 무림의 고수들이라 하더라도 이 저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곧 있으면 네놈 또한 그 오만한 놈들과 같은 꼴이 될 테지!”
“확실히. 까다롭긴 하겠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마력의 2배를 흡수해 버리면…… 결국, 바닷물을 퍼먹는 꼴이다.
공격을 하면 할수록 손해만 본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다. 내 영역에 발을 들인 죄는 그 피와 살을 양분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갈음하마.”
탄그라실이 근엄하게 죽음을 선고했다.
물론.
“그럼 나는 네 몸뚱어리를 캠프파이어에 쓸 땔감으로 사용해 줄게. 사이즈가 큰 게 밤새도록 태워도 충분하겠어.”
그런 말에 겁을 먹을 진혁이 아니었지만.
“끝까지……!”
쿠쿠쿠쿠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무줄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진혁을 향해 쇄도해 왔다.
***
‘……걸렸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12성급 결계는 탑 상층에 있는 신격들이 엿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라면 이집트 녀석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걸 알았기에.
진혁은 탄그라실에게 세 가지 질문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또한 얻었다.
[고유 능력 ‘아누비스의 심판’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이 50%만큼 감소합니다!]상태창이 연거푸 나타났다.
“이, 이건 대체……?”
이변을 느낀 탄그라실이 전신을 꿈틀댔다.
이해가 안 되는 거겠지.
고작 중층의 터줏대감으로 있으면서 상위 신격들의 능력을 마주할 기회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정말로 당황스러운 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아누비스의 심판은 대상의 능력치를 너프해 버리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대전자를 지정할 수 있게 됩니다.]대전자를 지정하는 것 말이다.
서걱……!
굳이 말로 지목하지 않았더라도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줄기가 송두리째 잘려 나가며, 초록색 체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크아아아악!”
탄그라실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언데드 몬스터 ‘티본(T-bone)’이 대전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집트 신격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누비스의 심판’의 잠재력이 극한까지 상승합니다!] [네크로맨서 관련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Lv100까지 상승합니다.] [제한 시간: 0h:4m:59s]작디작던 스켈레톤 워리어는 더 이상 없다.
그 자리엔 2m에 이르는 체구와 전신을 흑갑으로 무장한 기사가 자리 잡고 있을 뿐.
심연과 같이 텅 비어 있는 동공으로부터 푸른색 안광이 피어올랐다.
이것이 언데드 계열 최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존재.
데스나이트다.
무수히 많은 경험과 성장의 끝, 아주 먼 미래가 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티본은 대전자의 지명을 통해 단숨에 건너뛰었다.
“멍……청한! 나를 공격하면 오히려 마력을 헌납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미안하지만, 대전자는 내가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아. 게다가 언데드이기 때문에 저주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
괜히 엘리스도 월영도 아닌 티본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게 아니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티본이 이 상황에 가장 적합했기에, 녀석을 선택한 거다.
“설마…… 그럴 리가!”
탄그라실이 황급히 나무에 있는 마력을 살폈다.
정말이다.
당연히, 줄기가 잘린 상처가 즉시 회복되어야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상처는 그대로였다.
욱씬! 욱씬! 욱씬!
끔찍한 통증 또한 마찬가지다.
“무슨 장난질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고작…… 그깟 장난감 하나 따위를 믿는 거냐? 기껏해야 소드마스터급에 불과한 데스나이트를?”
“데스나이트라고 해서 다 같은 데스나이트는 아니야.”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제국이 자랑하는 그랜드 소드마스터 에브라함이나 무림의 10대 고수라 할지라도 티본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이집트 상위 신격의 능력이 완전히 개화했으니까.
“마스터.”
티본이 검과 방패를 든 채 진혁의 앞에 섰다.
“명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