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25)
226화. 몽환의 실낙원 (3)
쿠쿠쿠쿠쿠!
티본의 몸을 따라 검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형을 갖춘 마력.
최상급 데스나이트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아예 그 격이 달랐다.
곤충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이집트 놈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완전하게 발동시킨 ‘아누비스의 심판’은 사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마력만으로도 현재 티본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명령을 해 주십시오. 마스터.”
“백옥을 부숴 버려.”
“알겠습니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티본의 신형이 사라졌다.
“큭!”
위기감을 느낀 탄그라실이 마력을 잔뜩 끌어 모았다.
백색 나무의 상단에 있는 백옥으로부터 초록색 운무가 뿜어져 나왔다.
신경계를 마비시켜, 오롯이 눈앞의 적들을 죽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할 수 있는 신경 물질이었다.
“키에에!”
“케에엑!”
곧바로 나무줄기와 벌레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티본이 고유 능력 ‘그릇된 맹세’를 발동합니다!]데스나이트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발현할 수 있는 고유 능력, ‘그릇된 맹세’.
검과 방패가 전부 검게 물들었다.
이어진 것은 폭풍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은 돌파였다.
콰콰콰콰콰콰!
티본이 검을 휘두르자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가 일격에 반으로 쪼개졌다.
“키에에엑!”
검은 모래 지네도 그 외에 거대한 투구벌레도.
“케에엑!”
닿은 것이 무엇이든 티본의 검은 오러블레이드에 견딜 순 없었다.
조각조각 잘린 벌레들의 사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길.
탄그라실의 나뭇가지가 파르르 떨렸다.
“오, 오그라쿤……! 오그라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와라. 지금 당장 이곳에 와서 나를 지키란 말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탄그라실이 길고 긴 굉음을 토했다.
성채에 있는 거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자.
결계의 일부분이 벌어지며, 실낙원과 외부와의 연결점이 드러났다.
[12성급 결계가 해체됩니다!]드디어 철통같던 성벽에 구멍이 생겼다.
‘앞으로는 시간 싸움이겠군.’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까지는 실낙원 내에서 탄그라실과의 전투가 주요 무대였다면.
이제부턴 거인들의 공격까지 계산에 넣어 둬야 한다.
‘도움을 요청했으니,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10분은 필요하겠지.’
10분. 10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티본!”
진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부름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는지, 티본이 곧바로 새로운 스킬을 발동했다.
[티본이 ‘유령 군마’를 소환합니다!]전신을 반투명한 갑주로 감싼 말이 나타났다.
“히이이잉!”
녹색 유령 군마에 올라탄 티본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애초에도 막기가 힘들었는데, 유령 군마로 인해 가속력과 충격량까지 더해지자 아예 앞에 설 엄두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코앞이다.
검이 백옥을 박살내기까지 채 몇 걸음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오싹하고.
서늘한 감각이 진혁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뭔가 있다.
탄그라실이 아닌, 측면에서 누군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천독으로 만든 꼬챙이 하나가 시선이 향한 곳으로 날아갔다.
콰앙!
하지만, 가시는 목표물을 꿰뚫지 못했다.
대신 무언가에 상쇄되어 그대로 바스러졌다.
저 녀석은 설마.
“대체 어떻게…….”
“성질머리가 굉장히 급한 이로구나.”
틀림없다.
실낙원의 가장자리엔 거인들의 왕 오그라쿤이 서 있었다.
***
“마스터!”
티본 쪽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탄그라실과 티본의 사이로 거인 다섯이 끼어든 것이다.
“한 눈 팔지 마라. 언데드.”
“네놈의 상대는 우리들이다!”
검은색 도끼와 몽둥이들이 티본의 검을 받아냈다.
제국의 수도에서 봤던 것과 마찬지로 오러에 견딜 수 있게 제작된 무기들이었다.
숫자는 총 열둘.
나오는 타이밍이나 위치를 봤을 때 놈들이 여기서 개입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함정을 파 둔 거였나.’
진혁이 재빨리 ‘탐식의 눈’을 발동했다.
[오그라쿤]종족: 거인족
나이: 133
레벨: 80
힘 114 민첩 48 체력 75 마력 7
고유 능력: 버서커
스킬: Lv15 ‘군주의 통솔’, Lv14 ‘무기 경량화’, Lv14 ‘웨폰 마스터’, Lv14 ‘끈질긴 인내’, Lv13 ‘전략’
특징: 오그라쿤은 거인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지능이 높은 편이며, 수많은 전투 경험으로 인해 잔뼈가 굵은 군주입니다. 이해 득실을 완벽하게 따질 줄 아는 이성적인 성격이기에, 그 점을 잘 파악한다면 의외로 싸움을 피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복사 조건: 거인족은 힘과 육체미를 숭상합니다. 가능한 한 탈의를 많이 한 상태에서 오직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십시오.(옷의 면적과 힘의 상승이 반비례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 오그라쿤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거인들의 왕 오그라쿤.
약 4m에 이르는 이 거인은 크기를 숭상하는 거인족에게 있어 너무나 초라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진혁이 이 성채에 들어오기 위해 유인했던 거인도 7m급에 이르렀으니까.
그럼에도 오그라쿤이 수많은 거인들을 굴복시키고 왕위에 군림하는 건…….
그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윽…….
오그라쿤이 어깨에 기대고 있던 대검을 가볍게 들었다.
자기 키에 육박하는 검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어째서 내가 벌써 여기에 온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얼굴이로군.”
“탄그라실이 도움을 요청한 건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래. 정상적이라면 백옥은 부서지고 탄그라실 또한 소멸했을 거다. 싸움은 네 승리로 끝났겠지.”
하지만.
“정찰병이 실종된 이상, 침입자가 실낙원을 노릴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침입자가 결계를 약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거야 원…… 한 방 제대로 먹었네. 근데 괜찮겠어? 네 녀석이 본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오면. 남은 놈들로는 제국과 무림의 합동 공격을 막아낼 순 없을 텐데?”
핵심 전력의 이탈은 곧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 터.
더 늦기 전에 다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성채를 모조리 잃고 싶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그라쿤의 얼굴엔 여전히 별다른 동요의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볼을 긁적였다.
“성벽은 이미 포기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제국과 무림, 양측에서 보낸 병력 중 일부가 이곳까지 도달하겠지.”
“제……정신이냐? 일부러 성벽을 포기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지휘관이 유일한 이점을 버린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될 건 또 뭐가 있나? 우리가 스스로 성벽의 경계를 약화시키면, 제국과 무림 측에서 드디어 성채의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바다.”
……앙숙이던 두 세력이 목적 달성을 기정사실화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진혁의 머릿속에도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게 하겠다는 건가.”
최우선 순위는 성채의 공략.
그리고 제2 순위는 어느 쪽이 성채를 갖느냐는 점이다.
당연히 둘 다 거점을 양보할 이유가 없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칼끝을 돌릴 거라는 건 정해진 사실이리라.
오그라쿤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이곳으로 온 본대의 병력이 생각보다 적은 걸로 보면, 별동대도 따로 마련해 둔 것 같네. 제국이나 무림에게 불만을 가진 다른 종족들을 주축으로 보급 쪽을 노릴 생각인 거겠지.”
“호오? 그런 것까지 눈치챘다고?”
오그라쿤의 눈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별동대가 많다고 해도 적의 본대를 섬멸시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니까. 완벽하게 승리를 하려면, 적의 후방…… 기왕이면 보급을 노리는 게 확실하겠지.”
“흐음. 차라리 네가 두 세력 중 하나를 이끌었다면, 훨씬 더 재밌는 싸움이 됐을 것 같구나.”
“글쎄. 내가 총사령관이었으면 이곳은 이미 불바다로 변했을걸?”
“그럴 수도 있었겠지. 허나, 이번엔 내 수에 당한 꼴이 되었구나.”
그래.
얼핏 보기엔 아주 깔끔한 전략이다.
실낙원을 지키면서 동시에 두 세력을 방심하게 만들어 보급로를 끊어 버린다는 계획.
성채 안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네 계획은 한 가지 대전제가 뒷받침되었을 때 실현 가능한 이야긴 건 아나?”
“어떤 대전제를 말하는 거지?”
“너와 여기 있는 병력만으로 탄그라실을 수호해야 한다는 대전제. 그게 어긋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거다.”
“하하. 그러니까. 너 하나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오그라쿤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어이가 없는 게 당연한 이야기다.
조금 전까지 날뛰던 데스나이트와 유령 군마가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게 지속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제한시간이 모두 지난 티본은 이미 데스나이트로서의 위용을 잃어버린 상황.
남은 건 진혁 하나뿐이었다.
군단을 이끌고 와도 쉽지 않을진대, 고작 한 명이서 대체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하지만.
오그라쿤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한 세력의 전력을 끌어 모은 것보다.
“승산은 충분히 있어. 결계가 해체된 이상, 나도 더 이상 마력을 빼앗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한 명이 더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Lv5 ‘달을 가리는 손톱’이 발현됩니다!]진혁의 왼손에 짐승의 발톱을 연상케 하는 강기가 솟구쳤다.
[고유 능력 ‘거신의 일격’이 발동됩니다!]오른손엔 거인족의 혼이 담긴 기운이 깃들었다.
거기에.
서리 칼날 부족의 ‘카라칼’로부터 얻은 ‘하얀 맹수’가 덧씌워지자 형언할 수 없는 열기가 일렁였다.
꿈틀하고.
오그라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 힘은…….”
상대는 인간.
거인에 비한다면 비교할 가치조차 없이 작은 생명체다.
일격에 척수까지 뽑아 버릴 수 있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란 말이다.
그런데도…… 대체 뭘까. 이 위압감은.
마치, 태산이라도 마주하는 것처럼.
오그라쿤의 본능이 최고조의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전력을 다해 상대하지 않으면…….
……오히려 당하는 건 이쪽이 될 수도 있다.
‘만만치 않겠군.’
오그라쿤이 양손으로 대검을 움켜잡았다.
그래도, 이 정도 힘이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자신에게도 광전사의 의지를 발현시킬 수 있는 고유 능력 ‘버서커’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을 보는 순간.
“헉……!”
오그라쿤은 승부를 점치는 모든 가정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
융합(融合).
복사한 상대의 스킬들을 모아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고유 능력이다.
진혁이 양손이 기운을 하나로 합쳤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고유 능력 ‘거신의 일격’과 스킬 ‘달을 가리는 손톱’, 고유 능력 ‘하얀 맹수’가 융합합니다!]순순하게 힘으로만 찍어 누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렇게 해 주지.
몬스터로부터 얻은 3개의 능력을 융합해야 하며, 동시에 적합한 ‘복사 조건’이 나왔을 때만 융합이 가능하다는 조건.
극악의 난이도를 요구하는 만큼 그에 따른 결과물도 보장되어 있었다.
[거신족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을 얻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복사된 고유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눈부신 광휘가 점멸하며, 실낙원이 거대한 빛에 삼켜졌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잠시 뒤.
시야가 돌아왔을 땐…….
진혁의 팔이 변해 있었다.
아니, 변한 건 외형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