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35)
236화. 플레이어들의 세계 (1)
카가가각!
날카로운 앞다리가 안트라드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안트라드의 주먹이 땅굴거미의 몸통에 작렬했다.
콰아앙!
상상을 초월하는 두 거체의 싸움.
모든 공격과 방어가 상식을 아득히 넘어섰다.
“키에에에!”
거친 포효와 함께 땅굴거미의 입에서 걸쭉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땅굴거미가 Lv19 ‘소화액’을 분출합니다!]스프레이 형식으로 범위를 넓게 하는 형식이 아닌, 극한까지 범위를 축소한 형태.
하지만, 허를 찌르는 변칙조차도 안트라드의 예상 범위 내에 있던 일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안트라드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종이 한끝 차이로 소화액을 피하더니.
“멍청하긴!”
그대로 쥐고 있던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염열의 검이 땅굴거미의 목을 일격에 잘라 버렸다.
쿠웅!
거대한 몸이 세로로 쓰러졌다.
귀찮은 놈을 처리하자, 이제야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지금쯤이면 그 인간 녀석도 제법 멀리 도망쳤겠군.’
시간을 꽤나 낭비했다.
10분이면, 성채를 벗어나 한참이나 밖으로 도망가고 있을 테니까.
허나, 아무리 멀리 도망가고 있다고 해도 놓아 줄 생각은 없었다.
‘다른 놈은 몰라도 그 인간만큼은 위험하다.’
더 성장하기 전에, 여기서 숨통을 끊어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거대한 칼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른다.’
안트라드의 본능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당하게 되는 건 자신들일지도 모른다며.
쿠웅!
몸체가 서서히 성채 밖으로 향했다.
이제 추격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설마, 이 마력은.”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말이 되질 않는다.
인간들이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맞선다는 건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두 명의 플레이어들을 보며, 언제까지나 현실을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훨씬 더 성장을 한 먼 미래였으면 몰라도…….
설마 지금 이 상황에서 칼을 들이댈 줄이야.
“내가…… 내가! 그토록 우습게 보였단 말이냐!”
[안트라드가 특수 전장 Lv19 ‘마계의 경계선’을 발동합니다!]콰콰콰콰콰콰!
안트라드의 몸에서 인지를 초월하는 겁화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주위에 보이는 모든 땅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계의 경계선’.
지반을 잠식해 오직 마족만을 위한 영역을 구축하는 광역 스킬이다.
***
진혁과 천유성이 각자의 검을 뽑은 채 열기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엄청난 열기다.
숨을 쉬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을 만큼.
치이익!
그 겁화를 견디지 못해, 천유성의 옷이 타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는 기존에 입었던 디팬시브 코트가 자리 잡았다.
‘이런.’
진혁의 얼굴에 아쉽다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저거 비싼 건데…….
하지만, 안트라드의 화염에 견디기 위해선, 저항력 옵션이 붙어 있는 아티팩트가 필수다.
“이곳에 오래 있다간 위험하다.”
“그래. 서둘러야겠지.”
진혁이 송곳니를 역수로 쥐었다.
“근데, 따라올 수 있겠어? 지금부터 빠르게 움직일 건데?”
“너야말로 뒤처지지 마라. 걸리적거리면 가차 없이 버릴 테니까.”
“하여간 말 한 번 예쁘게도 하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주고받은 시답잖은 대화.
목숨이 걸린 상황에 나누기엔 너무나 긴장감 없는 잡소리다.
그 정도로.
믿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이 탑을 올랐던 고인물 둘이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파츠츠!
‘빙하조형’으로 만든 서리운무가 천유성의 몸을 감쌌다.
[화염에 대한 내성이 +20%만큼 증가합니다!]콰앙!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천유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타난 곳은 안트라드의 오른쪽 어깨 위였다.
“날벌레들 주제에 감히 나에게 먼저 공격을 해?”
안트라드가 곧바로 반응했다.
염열의 검이 천유성의 몸을 통째로 잘라 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검이 천유성에게 닿기 바로 직전.
퍼퍽! 퍼억!
빙하조형과 불의 원소로 만든 창이 안트라드의 손목뼈를 강타했다.
타격을 입힐 정도는 아니지만, 궤도를 살짝 틀어 버리기엔 충분한 공격이었다.
“나도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진혁이 생긋 웃었다.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추혼검’의 초식이 안트라드의 오른쪽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콰콱!
콰드득!
작은 파편들이 흩뿌려졌다.
검강 앞에서는 아무리 화염으로 둘러싼 갑옷이라고 하더라도 방패가 되어 주지 못했다.
“크아아아!”
안트라드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다.
이번엔 극한까지 응축된 ‘데이라이트’가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거기에 ‘별의 가호’까지 가세하자 신성력을 극대화한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콰아아앙!
빛과 화염의 충돌로 인해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헤츨링의 소형 브레스에 육박할 정도의 위력.
덕분에, 안트라드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천유성이 Lv11 ‘일점돌파(一點突破)’를 발동합니다!]하나의 점으로 이어진 푸른 빛.
말을 탄 중갑 기사가 적진에 파고드는 듯 천유성 역시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목표를 향해 쇄도했다.
퍼걱!
안트라드의 갈비뼈를 꿰뚫은 검이 그 안에 있는 붉은색 화염 덩어리에까지 이르렀다.
우득! 콰드득!
안트라드의 심장.
화염과 마기로 이루어진 생명의 결정체였다.
“크윽!”
천유성의 이마에 심줄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모든 힘을 쥐어짜내 심장을 박살내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기까지가 허용된 한계라고 말하는 것처럼.
“공격이 먹힌다고 생각해 즐거웠느냐?”
안트라드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천유성이 공격을 단념한 채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화르르륵!
곧바로, 천유성이 있던 자리에 흑염이 솟구쳤다.
“너희들이 있는 곳이 대체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마계의 경계선으로 이루어진 심상 세계.
이곳에선 모든 것이 안트라드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지금껏 아등바등 발버둥친 것도 모두 안트라드가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계에 잠식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당하는 척 연기하며 시간을 끌어 줬는데, 이렇게까지 쉽게 속아 줄 줄은 몰랐다.”
부러진 파편이 다시 재생되었고.
흔들리던 안광 역시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렇게 안트라드의 몸이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복원되었다.
아니, 단순히 복원된 수준에서 끝난 게 아니다.
[안트라드가 히든 스킬 ‘소형화’를 사용합니다.]“그래도 한 가지는 인정하마. 인간을 초월한 너희들의 힘은 솔직히 말해 놀랄 정도였다. 아마, 어지간한 마족들은 방금 전 공격으로 소멸했겠지.”
칭찬도 과장도 아닌 진실.
안트라드는 담담하게 현실을 고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너희의 숨을 거두는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겠다.”
거대했던 안트라드의 몸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10m…… 5m…… 2m.
거의 성인 남성의 신장 정도까지 줄어들고 나서야 소형화가 멈췄다.
크기가 작아졌다고 결코 우습게봐선 안 된다.
커다란 몸체를 유지하기 위해 낭비하던 마력을 최소화하고 대신 그 모은 마력을 작은 몸에 담아내는 능력.
이게 안트라드가 전력을 다해 적을 죽일 때에만 보이는 본모습이다.
“부디, 너무 쉽게 죽진 말거라. 이 모습으로 싸우는 건 정말로 오래간만이니까.”
툭!
스치는 소리보다 안트라드의 몸이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카아아앙!
진혁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상쇄시켰다.
보고 대응했다기 보다는 수없이 다져진 본능에 의한 무의식에 가까웠다.
검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붉은색 선이 남았다.
공기 위에 열이 고착화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호오? 그걸 반응했다?”
“꼭 어중간한 놈이 분에 넘치는 힘을 갖게 되면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지더라고.”
“흐음. 그 입 하나는 명품이로구나. 그렇다면, 속도를 한 단계 더 올려도 계속 여유로울 수 있을지 한 번 볼까?”
콰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두 줄기의 붉은 선이 그어졌다.
진혁과 천유성의 몸이 2m 가까이 튕겨 나갔다.
욱씬!
“큭!”
“무슨 놈의 검이…….”
빠른 것도 빠른 건데, 위력까지 규격외다.
2:1의 상황임에도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위험한데…….’
한껏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기껏해야 몇 합을 버티는 게 한계다.
진혁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이제 됐어! 시작해도 돼.]정말이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질 뻔했다.
압도적인 격차를 메워 줄 필수 조건이 지금 막 클리어됐다.
“수고했어.”
이 말은 진심이다.
진혁이 이곳으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을 엘리스를 향해 중얼거렸다.
***
“……!?”
이변을 깨달은 건 안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한 방 먹었군. 이 모든 게 마인을 해치우려고 했던 거였나.”
“맞아. 시간을 끈 게 너만은 아니었지.”
“마인의 위치는 어떻게 찾아낸 거냐?”
“마기를 기가 막히게 맡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거든. 마력 공급을 할 수 있는 거리는 제한되어 있으니,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
“크하하! 마족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재밌구나. 생김새만 아니라면 한 마리의 마족을 상대하는 기분이야. 그거도 매우 지독한 놈으로 말이지.”
안트라드가 크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마력의 근원이 단절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현계에 있을 시간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세계가 남아 있는 이상, 너희에게 승산 따위는 없느니라.”
안트라드가 서 있는 땅 주위가 더욱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이 세계야말로 마족이 층계를 초월해 강함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말이다.
“마인이 없어진 이상 심상 결계를 만들 수 있게 된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마력 공급의 원천이 사라졌기에 사용할 수 없었던 스킬 하나가 해금되었다.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전장 선택’ 스킬이.
“가소롭구나. 심상 결계는 곧 탑에 대한 이해. 얼마나 이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가 곧 구현된 결계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한데, 고작 탑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되는 인간 주제에 감히 이 결계에 대해 논한다고?”
안트라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너야말로 잘 모르나 본데……. 이 탑이 어떤지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네 머리로는 티끌조차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고작해야 40층대에 머무는 중급 마족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 따윈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말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
[전장 선택…….]순간. 짙게 물든 세계에 눈부신 빛이 점멸했다.
[……‘고독한 탑의 정상’이 발동됩니다.]별과 달이 가득 비추는 어느 이름 없는 곳의 정상.
이것이 바로 진혁이 기억하는, 그리고 경험했던 심상 세계다.
우득!
안트라드의 영역에 균열이 일어났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마족이 만든 세계를 인간이 사용한 스킬 따위가 간섭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천유성.”
“알고 있다.”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파편 속.
이번엔 천유성의 마력이 천천히 개화했다.
파츠츠……!
또다시 안트라드의 영역 귀퉁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장 선택 ‘검들의 안식처’가 발동됩니다.]널브러진 벽곡단과 검들이 펼쳐진다.
평생에 걸쳐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흘린 땀과 피가 배어 있는 장소.
이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풍경이 지금의 검성 그 자체를 만들어낸 공간이다.
그렇게.
[특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제3차 전장 ‘플레이어들의 세계’가 발동됩니다!]두 개의 세계가 하나로 겹쳐졌다.
기존의 법칙과 굴레를 벗어 버린 제3의 개념.
진혁과 천유성이 만든 심상 세계가 안트라드가 펼쳐 둔 ‘마계의 전장’을 완전히 걷어냈다.
시야가 변했다.
변한 건…….
시야만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안트라드의 입에서 절망이 가득 배어 있는 탄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