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37)
238화. 플레이어들의 세계 (3)
성채에서의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중층부 전체의 전화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신성 왕국 세데스와 무림의 접경 지역.
이곳은 현재 두 마리의 고위 마족으로 인해 전시 상황이 선포된 상태였다.
뎅! 뎅! 뎅! 뎅!
종소리와 함께 성문이 활짝 열렸다.
“민간인들은 전부 성 내부로 피난해라! 잡다한 것들을 챙길 시간 따윈 없으니,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오란 말이다!”
경비대장이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렀다.
이미, 레인저와 기사단을 비롯한 별동대가 모조리 전멸한 상황.
남은 거라곤 신성력으로 강화시킨 성벽과 성기사단을 믿는 수밖엔 없다.
“마지막 피난민이 들어오면 즉시 성문을 걸어 잠가라!”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제국에서 지원을 보내 줄 터.
그때까지는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성벽을 사수해야만 한다.
바로 그때.
“크오오오오!”
“킥킥킥.”
저 멀리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까워지고 있는 재앙들.
바로 마그드라와 셸케림이었다.
약 7m 크기의 거대한 체구에 헬버드를 든 기사의 모습을 한 마그드라.
대조적으로 셸케림은 성인 여성의 외형과 비슷했다.
물론, 얇고 긴 낫과 혼이 담겨 있는 유리구슬을 각각 들고 있으니, 평범한 여성과는 거리가 꽤나 멀긴 했지만 말이다.
안트라드가 당한 이후, 만에 하나를 대비해 힘을 합친 두 마족들은 이후 거침없이 제국과 무림 양 진형을 유린하는 중이었다.
몇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었지만, 모두 싸늘한 시체로 변했고.
이제 더 이상 앞을 가로막는 겁 없는 인간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목표인 신성 왕국 세데스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였다.
풀잎을 밟는 소리와 함께.
사박.
두 마족의 앞으로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여기까지입니다.”
“또 다시 주제를 모르는 놈이 나타났군.”
“킥킥. 누가 아니래? 인간들은 도무지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니까. 기사단과 수천의 병력들도 우리를 막지 못했어. 그런데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진심으로?”
두 마족이 같잖다는 듯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쿠쿠쿠쿠!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감히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순간.
눈부신 백색 갑주 위로 실타래 같은 금발이 흘러내렸다.
“가능해요. 저라면,”
청록색 눈동자가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 ‘우리’라면 말이죠.”
암스테르담의 성녀 테레사였다.
[테레사가 고유 능력 ‘별의 가호’를 발현합니다!]하늘에서 낙하하는 눈부신 광휘.
테레사의 검신이 하얗게 물들었다.
마족에게 있어 극상성의 힘을 자랑하는 신성력에,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이 분야의 정점에 서 있는 플레이어의 능력이 합쳐졌다.
콰콰콰콰콰콰!
‘별의 가호’로 인해 강화된 빛이 단숨에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풍이 두 마족을 집어삼켰다.
***
치이이익!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
숲을 따라 생긴 기다란 상흔은 방금 전 공격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성한 빛으로도 마족들의 숨통을 끊기엔 역부족이었다.
약간의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마그드라와 셸케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기사인가? 꽤나 매섭군.”
“킥킥! 그러게. 지금까지 만났던 성기사 놈들 중에선 그래도 제일 쓸 만하네.”
마그드라와 셸케림이 각각 중얼거렸다.
꽤나 강한 성기사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수준에서 이야기.
결코 자신들의 적수가 될 순 없었다.
단숨에 치고 들어가 숨통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저 뒤에 있는 성으로 쳐들어가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모조리 학살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숲의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인기척이 나타났다.
저벅.
이번엔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는 지긋한 나이의 노인이었다.
천마를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
암황이었다.
“허허. 한창 하고 있는 중이었나? 이거 내가 살짝 애매하게 끼어들었군.”
암황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벼운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무거움.
그저 말을 하고 있을 뿐인데도, 공기가 달라졌다.
“……!”
“…….”
마그드라와 셸케림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마기를 끌어올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신성력을 쓰는 성기사보다, 오히려 이 노인 쪽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암황의 시선이 테레사에게 향했다.
“흐음. 소저는 누구신가? 제국과 무림 쪽은 전부 후퇴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둘에 소속된 사람은 아닌 것 같네만.”
“저는 유럽에서 온 플레이어예요.”
“플레이어라……. 이 층계와는 관계가 없는 자란 이야기군.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에 목숨을 거는 건가?”
암황의 질문에, 테레사가 잠시 멈칫했다.
이곳으로 온 이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굳이 나서는 이유.
죄 없는 일반 시민들이 말려드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거든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달라고요.”
진혁이 믿고 부탁했다.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런가, 백사가 말했던 또 하나의 인물이 바로 소저였나 보군.”
“백사라면…… 설마, 할아버지도 진혁 씨의 부탁을 받은 건가요?”
테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허, 말년에 제자라고 하나 잘못 들였다가 단단히 코를 꿰게 됐지. 거 참, 그놈의 재능이 뭔지…….”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은 암황이 이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그 녀석 한 마디에 사지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마냥 헛걸음을 한 건 아닌 것 같구나.”
따뜻한 미소가 얼굴을 따라 번졌다.
이건 아마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겠지.
암황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쿠웅!
지면에 균열이 일어났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는 땅.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이 무엇이든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일보(一步)의 무게는 무거웠다.
[독문무공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이 개화합니다.]심해와 같은 마력이 일렁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허면, 어느 놈이 먼저 덤비겠느냐? 본좌는 두 놈이 한꺼번에 덤벼도 상관없느니라.”
암황이 두 마족을 향해 손을 뻗었다.
***
“킥! 기고만장하네.”
셸케림이 긴 낫을 어깨에 걸쳤다.
“이 노친네는 내가 맡을게. 너는 그 여자를 처리해.”
“알겠다. 방심하지 마라. 여자는 몰라도 그 노인은 만만치 않으니까.”
“너야말로 놀다가 당하지나 마.”
“그것 참 재미없는 농담이군.”
마그드라가 조소를 머금었다.
조금 전 테레사가 보여 준 수준으론 만에 하나 있을 변수마저 없었다.
빠르게 정리하고 셸케림에게 합류해서 저 노인까지 처리하면 그뿐이다.
콰아아앙!
콰아앙!
곧이어, 암황과 셸케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중급 마족답게 셸케림은 각종 저주와 마법들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까다롭고 치명적인 종류들로만 말이다.
쿠쿠쿠쿠쿠!
그리고 그에 맞서는 암황의 무공 또한 인간이란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뀌는 지형.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정도로 두 괴물이 보여 주는 무력은 격이 달랐다.
“미안하지만, 나도 저쪽에 합류해야 한다. 그러니 너와의 싸움은 빠르게 끝내도록 하지.”
마그드라가 거대한 헬버드를 높게 치켜들었다.
일격에 승부가 정해질 거라 확신하면서.
그러나, 이어지는 광경에…….
“헉?”
마그드라는 헛바람을 들이마셔야만 했다.
“알겠어요. 빠르게 끝내 드릴게요.”
[테레사가 ‘타락(墮落)’을 발동합니다.]검은색 눈물이 하얀 볼을 따라 흘러 내렸다.
불길한 색으로 변하는 동공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보다 놀라운 건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력의 질과 종류였다.
신성한 빛 따위는 어느새 사라졌고. 검에 피어오른 흑염은 흉흉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우우우웅!
테레사의 검을 따라 검붉은 빛이 점멸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얇고 가는 선이 마그드라의 몸을 꿰뚫었다.
푹!
마그드라의 등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커억?”
마기로 둘러싼 방벽이 뚫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마그드라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테레사를 바라봤다.
“순딩이 녀석이 말했잖아. ‘우리’라면 이길 수 있다고.”
고혹적인 자태에서 나오는 달콤한 목소리.
테레사가 신성력이 깃든 방패와 타락한 마력이 깃든 검을 한 호흡에 휘둘렀다.
***
마인들에 의해 4마리의 마족들이 현현한 대사건.
종말급 재앙이 발생한 지 정확히 이틀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장 먼저 나타난 안트라드는 진혁과 천유성의 손에 의해 소멸됐고. 마그드라와 셸케림은 신성왕국 세데스 초원에서 테레사와 의문의 노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밸마리옐만 누가 처치한지 모른다 이거지?”
진혁이 옆에서 걷던 천유성에게 물었다.
“그래. 하루에 1개만 업로드되는 ‘명예의 전당’의 구조상 마지막 마족을 죽인 놈이 공개되는 건 내일일 거다.”
테레사와 스승님이라면 충분히 마족들을 맡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밸마리옐을 처리한 게 누구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았다.
‘누가 됐든 꽤나 실력이 있다는 건데…….’
과연 누구려나.
상념에 빠진 진혁이 이내 피식 웃었다.
이래서 시련의 탑이 재밌다.
쏠쏠하게 호기심을 자극해 주는 요소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으니까.
“어린애처럼 혼자 실실 웃지 말고. 그보다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은 언제 줄 생각이냐?”
“아…… 그거? 진즉에 말하지 그랬어. 이미 이틀이나 지나서 다 팔아치우고 완전히 빈털터리 신세야.”
“뭐, 뭐라고? 아니, 같이 사냥한 걸 상의도 없이 팔았단 말이냐?”
“원래 이 바닥엔 공소시효라는 게 있는데, 당일에 해결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거든. 이 게임 하루 이틀 해 봐?”
대체 어느 게임에서 며칠 뒤에 아이템의 소유권을 주장하나?
그 당시에 찾지 못하면 그대로 끝인 것을.
“게다가 이제 좀 있으면 제국의 황도에 가서 황제한테 직접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받을 거 아니야? 그걸로 만족해.”
영웅들의 귀환인지 뭔지 하며 제국 전체가 이번 일에 열광하고 있었다.
황권 강화를 위한 목적이 더 크겠지만, 황제가 대대적인 연회를 열고 플레이어들에게 논공행상을 열겠다고 했으니…….
아마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대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네가…….”
강도나 다름없는 논리에, 천유성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진혁은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있은 지 오래였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에 있던 엘리스가 진혁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다 좋은데, 밥이나 먹고 가면 안 돼? 몇 시간째 계속 걷느라 진짜 배고파.”
“모기!”
엘리스와 고구마가 한 목소리로 식사를 주장했다.
“우리 모기 배고팠어?”
진혁이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벌레 미궁을 모두 정리한 고구마는 오늘 새벽에서야 막 진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확실히 마력의 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엄청나게 성장을 해 버린 것이다.
물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건 그대로였지만.
5대 정령수들 또한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조만간 불러서 그동안의 성장 정도를 파악해 봐야겠다.
“그래그래. 우리 고구마 고생했지? 많이 먹어. 다 먹어.”
진혁이 고구마를 꼭 끌어안은 채 마정석이 박힌 뼈 간식을 입에 물려 주었다.
“모기! 모기!”
고구마가 오물거리며 연신 입을 움직였다.
“야, 나는?”
“걱정하지 마. 널 위해서도 특식을 준비해 뒀으니까.”
“오오. 기특해라. 그래. 고급 와인이냐? 아니면 최고급 스테이크? 일전에 성게소에 꽃게살을 버무린 요리도 나쁘지 않더구나. 빨리 말하거라. 특식이 뭔지.”
엘리스가 두 눈을 반짝였다.
식욕이 잔뜩 동했는지 작고 검은 날개가 위아래로 빠르게 파닥였다.
“민트초코. 특별히 하프 갤런 사이즈에 가득 담아 둔 게 있어.”
정량보다 많이 넣어 줬다고 하니, 어우야. 하루 종일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다.
“죽을래? 숨질래?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봐.”
엘리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하여간 이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렇게 진혁과 엘리스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누가 있다.”
가장 앞에서 걷던 천유성이 걸음을 멈췄다.
“누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길이 갈라진 끝, 독특하게 생긴 나무가 있는 곳에 웬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제국과 무림의 전쟁이 발발한 데다, 마족들까지 날뛰었던 지금 이런 곳에 민간인이 있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갑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 군인일 리도 없었고.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그래, 저 녀석도 20층대에 있었지…….’
진혁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거주자들 중에서도 가장 만나고 싶었던 이 중 하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