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42)
243화. ‘라인하르트’란 이름의 무게 (2)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무덤 전체가 뒤흔들렸다.
보물을 노린 도굴꾼에게 천벌을 내리겠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천장에서 뿌연 먼지가 쏟아졌다.
“으, 으아아아! 함정이다!”
“모두 피해라! 뒤로, 뒤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베인슈텔른의 측근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퍼퍼퍽!
퍼억!
벽과 벽 사이에서 쇠뇌가 발사되었고.
전신이 꿰뚫린 마법사들이 핏물을 뿜어내다 숨을 거뒀다.
“커억!”
“쿨럭…….”
실드를 전문적으로 파훼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나마 신체 능력이 뛰어난 기사들조차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게 고작이었다.
덜컹!
“어어어?”
“사, 살려 줘.”
이번엔 바닥이 꺼지며, 그 아래에 창이 빼곡히 돋아난 함정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이어지는 함정.
“과연, 적들을 함정에 빠트리다니 역시 너답군. 잘했다. 덕분에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어.”
천유성이 든든하다는 얼굴로 진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혼란을 틈타 ‘하늘의 지명석’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면 될 거다.
음.
칭찬해 준 거는 고마운데…….
“이거 발동 범위가 무덤 전체야.”
“뭐……라고?”
“우리도 열심히 피해야 된다고. 아, 정확히는 무덤 끝에 밖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으니 황제를 모시고 밖으로 나가면 되겠네.”
“이런 미친! 대체 무슨 계획을 이따위로 세우는 거냐?”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말고. 함정 그까짓 거 잘 피하면 되지. 잘 봐.”
진혁이 고개를 슬쩍 움직여 날아오는 쇠뇌를 피했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다시 한 발.
몸을 스치고 지나간 쇠뇌가 반대편에 있는 벽에 박혔다.
발밑과 천장에서도 엇박자로 독침과 창들이 날아왔지만, 이미 진혁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뒤였다.
“탄성이 심해서 쳐내려고 하거나 궤도를 비틀면 오히려 위험해. 이렇게 피하는 게 가장 좋은데,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그리고 나머지 함정들은 발동 전에 0.13초 정도 공백이 있거든. 그 틈을 이용해 재빨리 움직이면 돼.”
그 외에도 17가지 정도 함정이 더 있었지만, 패턴만 파악하면 어렵지 않게 탈출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야.
솔직히 이 정도면 거의 관을 목구멍에 꽂고 밥을 밀어 넣어 준 거나 다름없다.
나름 피똥 싸면서 외운 것들인데 이걸 거저 알려 줬으니, 감격의 반응이 쏟아지겠지.
“빌어먹을. 그게 말이 쉽지. 저 속도로 날아오는 걸 전부 피하란 말이냐?”
“……그건 진혁 씨니까 가능한 거죠.”
천유성은 어금니를 부러져라 갈았고 테레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너 저 나이든 황제가 그런 움직임이 가능할 거라는 건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
엘리스마저 혀를 차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편을 잘못 고른 것 같군. 지금이라도 공작께 죄송하다고 말해야겠어.”
심지어 에브라함은 자신이 한 선택에 절망했다.
‘음……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조금만 익숙해지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수준인 것 같은데…….
도무지 어렵다라는 기준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황제한테는 어렵다는 말은 공감한다.
그렇다면.
“내가 결계로 틈을 만들어 줄 테니, 그 사이에 너희들이 진형을 짜서 밖으로 나가 봐. 페시스 씨가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가는 데까지 크게 어렵진 않을 거야.”
방어 결계로 쇠뇌의 위력을 약화시킨 뒤, 전후좌우에서 황제를 보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때마침 활로를 찾는 데 최적화된 페시스가 있으니, 위험 부담은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는 남아야지. 이번 일을 외부에 알릴 때까지 시간을 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황궁에 있는 귀족들은 몰라도 나머지 왕국의 국왕들은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일을 그들에게까지 알릴 수만 있다면…….
베인슈텔른의 음모를 송두리째 박살낼 수 있는 비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확실히 그 방법대로라면, 명분을 세울 수 있는 건 우리가 될 테니.”
에브라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너랑 함께 있으면 언제나 폭풍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천유성은 툴툴댔지만, 딱히 반론하진 않았다.
스스로도 이 방법이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몸조심하세요. 진혁 씨.”
“이쪽은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무사히 이끌어 보겠습니다.”
테레사와 페시스도 한 마디씩 덧붙였다.
“그대 덕분에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위에서 만날 수 있길 기원하지.”
마지막으로 라인하르트가 감사와 경의를 담아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우우웅!
진혁이 결계를 펼쳤다.
동시에,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딱 하나.
“넌 왜 안 가?”
엘리스는 움직이지 않은 채 진혁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너 혼자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하려면 힘들 것 같아서. 계약자를 이런 데서 허무하게 잃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야.”
“기특한 말이긴 한데, 너 아직 마력도 다 회복되지 않았잖아. 오히려 짐만 될 것 같지 않아?”
“힘을 쓸 필요는 없어. 그게 아니어도 제국 쪽 병력들은 내 선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적어도 발목을 붙잡을 일은 없을 거야.”
어느새 엘리스의 손엔 ‘라인하르트’를 상징하는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그건, 초대 황제의 검 아니야……?”
전투용이 아닌, 의전용.
그렇기에 무덤을 장식하는 장식품에 불과한 검이었다.
“응. 맞아. 바로 그 녀석의 검이지.”
엘리스가 과거를 추억하듯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수많은 함정들로 인해, 베인슈텔른과 귀족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크윽…….”
베인슈텔른이 손등으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훔쳤다.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 함정이 있을 거라는 걸 파악하지 못한 게 오산이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상대 역시도 이 함정을 피하느라 진땀을 뺐을 터.
지금이라도 추격대를 꾸려 숨통을 끊어 버리면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베인슈텔른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 인간 놈의 곁에 계속 붙어 있던 백발의 소녀였다.
“도망간 줄 알았더니. 아직 이곳에 있었구나.”
“나도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게 죽기보다 싫어. 마음 같아선 푹신한 침대 속에서 와인이나 홀짝이고 싶은 게 본심이야.”
“말과 행동이 모순되는군. 허면, 어째서 빠져나가지 않은 거지?”
“내 계약자가 원하거든.”
“죽음의 이유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이유 아닌가? 뭐, 그것이 네 선택이라면, 부디 후회는 하지 않길 빌어 주마.”
베인슈텔른이 옆에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시작하기에 앞서, 나도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흐음. 최후의 질문인가? 좋다. 그 정도는 허락해 주지.”
“너희 인간들은 그토록 충성과 명예를 강조하면서, 어째서 황제를 배신하려고 하는 거지?”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로군. 충성이란 무릇 그럴 가치가 있는 상대에게 해야 하는 법. 하지만, 황제에게 그럴 만한 자격은 없다.”
“이상하네.”
베인슈텔른의 말에, 엘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너희 가문은 대대로 ‘라인하르트’란 이름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거 아니었어? 초대 라인하르트는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푸하하! 어이가 없군. 허언도 정도가 있지. 이런 말을 막 지어낼 줄이야. 초대 황제가 벽을 넘고 환골탈태를 한 덕에 오랜 세월을 살았다곤 하지만, 너 같이 어린 꼬맹이와 대면할 정도로 오래 산 것은 아니다.”
베인슈텔른이 폭소를 터뜨렸지만, 엘리스는 웃지 않았다.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엘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꼬맹이는 이 검을 휘두르던 그 녀석이고.”
나는.
“그 검의 첫 걸음마를 본 장본인이야.”
‘테르센시오. 테 아르펨.’
엘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언령(言令)에…….
……검에 새겨진 룬어가 반응했다.
이어진 것은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그 빛이 형성한 한 젊은 남성의 모습이었다.
실체가 아닌, 허상일 뿐이었으나 그 허상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실체보다 더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귀족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 이럴 수가.”
“저분은 설마…….”
틀림없다.
제국을 일통한 위대한 황제.
정확히는 젊은 시절의 라인하르트 1세의 모습이었다.
“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검이…… 황제의 모습을 담은 성유물이었다니.”
노신들 중에서 라인하르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마탑의 현자거나 벽을 뛰어넘은 소드마스터들이었다.
바로 그때.
빛무리에 감싸 있던 남자가 엘리스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 친우의 모습이로구나. 하하. 이게 내 생전이었다면 정말 좋았을거늘. 과거의 기억으로 투영된 이 모습으로 마주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라인하르트의 입에서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현실이 아닌, 조각난 자아의 편린만이 그 미소를 자아낼 뿐이었지만.
“그래.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곳에 온 걸 보면, 그대를 구속하던 회랑에선 벗어난 것 같구나.”
“좋은 사람을 만났거든. 조금은 네 모습이랑도 겹치는.”
“그것참 다행이로군. 정말로 다행이야.”
라인하르트와 엘리스가 담담하게 대화를 나눴다.
너무나 일상적인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 사소한 대화 하나하나 충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저 소녀가 정말로…… 초대 황제 폐하와 알고 있다는 건가?”
“미, 믿을 수가 없어.”
세월이 지나도 제국의 모든 가신들은 정복왕 라인하르트 1세의 위업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삶을 허락받은 소드마스터들과 대마도사들은 황제를 직접 만났었고.
심지어 그를 직접 만나지 못했던 이들도 수많은 역사서와 교본을 통해 위대한 정복왕에 대해 배우고 들어왔다.
-초대 황제는 곧 제국 그 자체. 그의 뜻과 의지는 모든 법과 규율에 우선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오던 제국민들에게 안정된 삶을 허락한 절대자.
현재의 평화와 광대한 영토는 모두 초대 황제가 이룩한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황제의 분신이 엘리스로부터 진실을 전해 들었다.
라인하르트의 시선이 귀족들에게 향했다.
“육망성이 그려진 탑은 백탑(白塔)의 상징. 허면, 그대는 테르헤르가 이끌었던 마도 가문에 소속된 자라는 뜻이겠구나.”
“그, 그러하옵니다. 테르헤르는 저의 아버지셨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폐하를 알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라인하르트의 질문에, 로브를 입은 노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다면 그대 또한 기억하겠구나. 백탑은 맹세했다. 제국과 짐의 핏줄을 수호하겠노라고.”
음성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 질문엔 질책과 책망보단 짙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아마…… 제국을 세웠던 그 시절.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 충신들을 그리워하는 거겠지.
“…….”
백탑주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의 시선이 또 다른 남자에게 향했다.
“적색 기병은 트라이언 가문의 상징이다. 제국에 적이 침공했다는 봉화가 피어오르면, 황도로 오는 평원엔 그대들의 깃발이 가장 먼저 보이게 되어 있지. 짐의 말이 틀렸는가?”
가장 먼저 적과 싸우고 가장 마지막에 퇴각한다.
그것이 제국의 창이라 불리는 트라이언 가문의 신념이었다.
“……맞사옵니다.”
“그 창끝이 향하는 게 적이 아닌 황실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구나. 트라이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와 함께 슬퍼했을 것이다.”
“…….”
황제의 음성이 이어졌다.
지목을 받은 귀족들이 무거운 침음성을 내뱉으며, 침묵했다.
“나의 자손이 무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그대들이 속한 가문의 앞날이 어두워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대들의 가문과 그대들의 선조는 맹세했다. 제국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먼지로 돌아갈 때조차 짐과 짐의 후손들의 곁에서 최후를 맞이하겠노라고.”
그 운명이 자신들의 말로라면.
그것마저도 웃으면서 받아들이겠다고.
초대 가주들은 맹세했다.
그것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맹세를 기억해라.”
라인하르트가 마지막으로 명령했다.
무덤 안에 깊은 침묵이 맴돌았다.
귀족과 귀족들이 이끄는 기사들은 검과 방패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마법사들도 영창을 하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이, 이건……. 뭣들 하느냐? 이미 죽어 버린 망령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검을 들어라. 마법을 발사해 저 녀석들을 쓸어 버리란 말이다!”
그러나 베인슈텔른의 기함 소리에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려 한다.
베인슈텔른의 얼굴에 초조함을 넘어 절망감이 배어 나왔다.
“니라샤!”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된다.
이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상황을 엎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죄로 죽게 되는 건 자신일 테니까.
그러자.
“이번 일은 여러 가지로 변수가 많이 나오네요. 뭐,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죠.”
[‘파괴의 여신’이 미소 짓습니다.]무시무시한 폭풍이 몰아쳤다.
신격의 힘이 깃든 마력이 니라샤의 몸을 통해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미안하지만, 신격에게 닿을 수 있는 건 너만이 아니야.”
진혁 역시 보라색 보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하늘의 지명석’이 반응합니다.]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탑의 상층부.
그 먼 곳에서.
누군가 진혁의 부름에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