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46)
247화. 용살검(龍殺劍) ‘발뭉’ (1)
현존하는 아이템들 중 최상위로 분류된 성유물에도 급은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다.
역사에 몇 줄 기록되어 있지 않는 무명 장군이 쓰던 칼과 북유럽 신화 속 대영웅인 토르의 망치가 같은 급으로 취급될 순 없었으니까.
때문에 시련의 탑에선 빨, 주, 노, 초, 파, 남, 보. 7개의 색깔을 나누어 성유물의 등급을 측정했다.
그리고.
제국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용살검(龍殺劍), ‘발뭉’.
이 대검은 무려 ‘남색’의 판정을 받은 최상급 성유물이었다.
‘용족(龍族)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놈들과 맞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물론, 그걸 위해선 몇 가지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출발은 30분 뒤에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진혁이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30분이라……. 그 정도면 저도 탐험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때 무덤 앞에서 뵙도록 하죠.”
당연히 무덤으로 가는 길에는 경비병과 근위병들이 있을 테지만.
일반 병사를 따돌리는 것쯤은 두 사람에게 있어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페시스의 방에서 나온 진혁은 황도의 호수와 야경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로 향했다.
인적이 없을 뿐더러, 겸사겸사 경치를 구경하기에도 그만인 장소다.
적막에 잠긴 새벽.
별과 달을 머금은 호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것만 같았다.
“…….”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시련의 탑에는 명소가 많다.
혼자서 사색에 잠기기도 좋았고.
누군가 엿들을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누기에도 최적화되어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 이제 슬슬 나오지 그래?”
진혁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오. 플레이어들은 장벽 너머를 엿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내 존재를 눈치챈 거지?]베리엘이 말을 걸어 왔다.
“네 성격상 도움만 주고 그대로 사라질 리는 없을 테니까. 보나마나 음흉하게 저 위에서 스토킹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역시나 예상이 맞았네.”
[날 상대로 이렇게 태연한 인간은 처음이로구나. 이것 참…… 맹랑한 게 딱 우리 쪽인데 말이지. 어떤가? 내 검은 사도가 되는 게? 너라면 내 모든 걸 쏟아부어 완벽한 사도가 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바라는 게 있다면 뭐든지 이뤄 줄 수도 있고.]“그건 이미 한 번 거절한 걸로 알고 있는데, 기억 안 나? 호랑이 새끼가 치와와 밑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던 거?”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을 팔아 버릴 생각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쳐내 버릴 생각도 없었다.
상위 신격이랑 알고 지내는 건 여러 의미에서 도움이 많이 됐으니까.
[흐음. 여전히 까칠한 답변인가.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아닌 다른 마왕들은 너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 오히려 빨리 제거해야 할 위협 요소라고 느끼고 있지.]그야 그렇겠지.
마왕들과 마족들이 이를 갈고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그러니…….
“너와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나머지 마왕들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사도가 된다면 몰라도. 이득만 얻고 바로 모른 척하는 너를…… 내가 왜 앞으로도 도와야 하는 거냐?]“그거야 나는 마계에 있는 ‘왕관’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으니까.”
진혁이 태연스럽게 말을 늘어놨다.
그리고 그 발언에.
베리엘의 이죽거리는 음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침묵이 이어졌다.
실제 시간으로는 몇 초도 안 되는 찰나였지만, 그 시간은 마치 영원과 같았다.
[너…… 대체 뭐냐? 어떻게 플레이어가 탑의 가장 깊숙한 비밀 중 하나인 왕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위치까지 알고 있다고?]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은 틀림없는 당혹감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왕관은 탑의 정상에 도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성유물이며, 동시에 최상층부의 지배를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신격들은 물론, 마왕과 진조들까지 이 왕관을 손에 넣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
그런데 그걸 플레이어 하나가 알고 있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질이 낮았다.
술자리에서도 써먹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만약.
이 말을 한 상대가 진혁이 아니었다면, 이건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날 평범한 플레이어의 범주에 놓고 생각하지 마.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네 고유 성창을 재현한 게 바로 나라는 걸. 무엇보다 왕관의 존재 자체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내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는 충분히 있어.”
정보의 진위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
진위를 파악하는 건 이후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 매력적인 미끼를 다른 마왕들이 모른다는 점이었다.
거짓이라면 이후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면 그뿐이고.
진실이라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왕관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고민은 길지 않았다.
[푸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그래. 이래야 내가 인정한 인간답지. 좋다. 네 장단에 어울려 주도록 하마.]베리엘이 진심으로 즐거운 듯 광소를 터뜨렸다.
***
베리엘과의 담소 이후.
진혁과 페시스는 격전을 벌였던 황제의 무덤을 다시 한 번 찾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진혁이 천천히 바닥에 있는 틈을 살폈다.
양 쪽에 서 있는 동상들의 그림자로 인해 시야가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쌀알 반톨 만한 크기의 홈이 파여 있었다.
‘여기가 시작점인가.’
우선 한 개.
다음은 아마 왼쪽이었지?
진혁이 빠르게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기둥과 벽. 그리고 조각상 사이에서도 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숫자는 총 6개.
[Lv10 ‘태초의 불꽃’이 발동됩니다.]불꽃이 홈들을 직선으로 연결하자 하나의 거대한 육망성이 나타났다.
동시에.
우우우웅!
표면 위로 붉은색 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한 온도의 열을 가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황실의 고유 언어였다.
“…….”
페시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진혁을 바라봤다.
황족들도 모르는 통로의 입구를 찾아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페시스 역시 고대 문헌에서 입구에 관한 정보들을 보긴 했지만, 이토록 빠른 시간 내에 문을 열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입구를 찾아낸 것만으로는 이 아래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열쇠가 되는 게 필요한데…….”
“라인하르트를 입증할 수 있는 증표 말씀이군요.”
피나 타액 등.
오직 라인하르트의 혈족을 증명해야만 입구가 개방되게 되어 있었다.
“맞……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챙겨 왔죠.”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황금으로 만든 술잔을 꺼냈다.
몇 시간 전, 대연회에서 황제가 마시던 걸 슬쩍해 뒀다.
술이 적당히 취했을 때 천유성이 가지고 있던 잔과 바꿔 뒀으니, 혹시라도 범인이 잡히더라도 불경죄를 범한 대상은 천유성이 될 거다.
게다가 월영에게 시켜 바꿔치기를 한 터라, 알리바이 또한 완벽했다.
‘완전 범죄가 불가능한 게 아니야.’
그저 노력이 부족할 뿐이지.
한창 미드에 빠져 CSI를 열심히 챙겨봤던 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슥!
진혁이 잔의 표면을 홈과 일치시켰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쿵!
무덤에 낮고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바닥이 테트리스처럼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히든 플레이스 ‘용이 잠든 곳’이 개방됩니다.]“그럼, 가실까요?”
진혁이 멍한 표정의 페시스를 향해 생긋 웃었다.
***
쾨쾨하고 눅눅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워낙 오랜 세월 사람의 출입이 없었기에, 내부는 거미줄과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부터는 페시스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문헌에 기록된 건 어디까지나 입구를 여는 방법에 관한 것뿐.
내부의 수많은 함정들을 돌파하기 위해선 탐험가 페시스의 능력이 필요하다.
“일단 해 보겠습니다만, 저도 이 정도로 고위급에 해당하는 탐험지는 처음입니다. 정말이지. 진혁 님 덕분에 별별 경험을 다 해 보게 되네요.”
“좋다는 말씀이죠?”
“물론입니다. 아주 탐험가의 피가 끓어오르네요. 후후.”
[페시스가 Lv16, ‘다차원 지도’를 꺼냅니다.]상기된 얼굴의 페시스가 반투명한 지도를 꺼냈다.
내부의 전체적인 모습이 담긴 3D 형태의 지도엔 각종 함정들이 색깔별로 표시되었다.
불꽃 모양의 붉은색 모형과…… 검은색 구체도 꽤나 위험해 보인다.
푸른 얼음 결정 모양은 아무래도 빙계 속성과 관련된 함정이려나?
옆에서 봤을 땐 어떤 식으로 함정이 발동되고 피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확실히 어렵네요. 어디로 가든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페시스가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살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금지를 탐험한 페시스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확실히 이곳의 난이도는 규격 외급이긴 한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발뭉을 보관해 뒀겠지.
“그래도 가장 가능성 높은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 군데가 있긴 한데…….”
페시스가 말끝을 흐렸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몇몇 함정은 한 명이 함정을 통과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 함정에 당해 주고 있어야 합니다. 피하거나 막는 게 불가능한 구조예요.”
“희생양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군요.”
“예…….”
“일단은 한번 가 보도록 하죠. 그거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진혁의 말에, 페시스가 움찔했다.
요 며칠 진혁이 보여 준 성격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그렇게 페시스를 따라 얽히고설킨 통로를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에 맴돌던 공기가 바뀌었다.
서늘한 감촉이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지도에서 봤던 얼음 결정 모양이 있던 곳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여기까지가 함정을 피해 올 수 있는 한계였습니다. 자. 한번 보세요.”
페시스가 작은 돌멩이 하나를 들어 앞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던 돌멩이가 허공에 어느 부분을 지난 순간.
파지지직!
양쪽에서 뿜어진 가느다란 얼음줄기가 돌멩이를 통째로 얼려 버렸다.
얼어붙는 속도도 속도였지만, 더욱 충격적인 점은 얼음줄기가 돌멩이의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이야. 추적 마법에다…… 가속과 강화 마법까지 걸려 있네요. 그것도 전부 8서클 이상의 수준으로요.”
“역시 눈치 채셨군요. 거기에 고유 능력과 스킬을 사용해 막으려 할 경우 빙결 속도를 가속화하는 특수 효과까지 붙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과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 둔 게 있었으니까.
“다들 잠깐 좀 나와 봐.”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다수의 소환수들을 불러냈다.
가장 먼저 티본과 고대 병사들이 나타났다.
달그락. 달그락.
뼈들이 연신 좌우로 움직였다.
“마스터. 무슨 일입니까?”
티본이 물음표를 띄웠다.
“별건 아니고. 함정을 돌파해야 하는데, 몸빵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예?”
“너희 언데드잖아.”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죽지 않겠네.”
이보다 완벽한 희생양은 없다.
얼어붙어도 나중에 천천히 녹이면 다시 팔팔하게 부활할 테니.
“마, 마스터…… 아무리 그래도. 저길 맨몸으로 통과하라는 건…….”
“어허?”
티본의 칭얼거림에,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요즘 들어 훈육이 덜 됐나? 명령을 내리면 재깍재깍 들어야지.
이래서 싫고 저래서 무섭고, 토가 너무 많이 달린다.
완전히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이건 뭐.
“고구마야. 애들 교육 똑바로 안 시키냐?”
진혁의 시선이 뒤늦게 나온 고구마에게 향했다.
“모기?”
커다란 호박색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난데없이 혼이 나게 된 고구마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시큰거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이런 일은 가장 위를 조져야 순탄하게 흘러가는 법이었으니까.
일명 내리 갈굼.
아공간 인벤토리 내에서 잡혀 있는 서열상 고구마가 가장 위다.
“모기. 모기!”
고구마가 티본을 덥석 물었다.
오물오물.
하얀 뼈 위로 맑은 침이 흘러내렸다.
“히이익!”
티본이 발버둥 쳤지만, 고구마한테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대로 뼈 간식이 될래? 아니면 잽싸게 앞으로 달려갈래?”
“가, 가겠습니다. 마스터. 제가 또 추위는 기가 막히게 잘 견딜 수 있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티본과 고대 병사들이 앞 다퉈 앞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