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50)
251화. 아타락시아, 순혈의 여제 (1)
전신을 짓누른다는 게 이런 말일까?
쿠쿠쿠쿠쿠!
무겁다.
감히, 고개를 들어올리기조차 힘들 만큼.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가 발동됩니다!]넓게 퍼져나가는 붉은색 파장은 마치, 시작과 끝을 동시에 고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뒤, 마력의 과부하로 인해 주위에 있는 시설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혈 결계가 완성되었다.
이거라면 마음껏 날뛰어도 제국에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변절자의 팔찌에…… 저런 효과가 있었다니.”
아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수없이 많은 세월을 탑에 영위하면서 탑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당연한 말이다.
세월과 지위에서 쌓인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보였으니까.
탑에 들어온 지 1년 남짓한 플레이어들과는 아예 그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걸 알고 있다고?’
그게 말이 되는 것인가?
정보전에서 밀린다는 게?
하지만, 부정을 해 보려고 해도 코앞에 나타난 아타락시아의 혈족들을 못 본 체할 수는 없었다.
이건 빌어먹을 현실이다.
“너…… 대체 뭐냐? 누구길래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지?”
“글쎄. 어떻게 알았으려나?”
“선문답을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란 말이다!”
“궁금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런 것보단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먼저지 않겠어?”
진혁이 슬쩍 뒤를 바라봤다.
그곳엔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여왕님이 있었다.
그동안 쌓인 원한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터.
쿠쿠쿠쿠쿠!
엘리스의 어깨 너머로 붉은 꼬챙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작살을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흉기들이 데카서스의 사냥개들을 향해 당장이라도 발사되려고 했다.
“진심으로 나와 싸울 생각인가?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전력 차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
아타락시아의 혈족들이 합류했다곤 하나, 오랜 세월 회랑에 갇혀 있던 터라 전력으로 쓰기에는 부족했다.
기껏해야 벨루스 하나만이 흑익 중 하나와 동수를 이룰 수 있을 정도랄까?
게다가 플레이어와의 계약으로 인해 마력에 제한을 받는 엘리스로선 전성기의 힘을 오롯이 발휘할 순 없었다.
“혓바닥이 길어졌구나, 아뮬람. 벌써 잊은 것이냐? 너희 다섯 가주들이 전부 나에게 칼을 겨눴을 때도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전력의 열세도.
제약의 존재 여부도 상관없다.
아타락시아의 가주에게 그런 것쯤은 핑계거리도 되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이 정도 페널티마저 없다면, 감히 너 따위가 나에게 이빨을 드러낼 수나 있었겠느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똑같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세월이 흘렀고 나는 강해졌다. 과거에 내가 아니란 말이다.”
“강해졌다라……. 재밌구나. 그 말이 그토록 가볍게 들릴 수 있다는 게.”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과과콰콰콰콰!
선혈의 파도를 시작으로…….
“이미 과거에도 한 번 패배했던 놈들에게 겁먹을 필요 없다. 로드에게 덤비려 한 버러지들을 모조리 쳐 죽여라!”
“데카서스 놈들에게 우리가 겪은 지옥을 그대로 맛보여 주겠다. 놈들이 엘리스 님의 전투에 끼어들 수 없게 철저하게 각개 격파해라!”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교차했다.
***
전투가 한 단계 더 급박하게 변했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발뭉을 손에 넣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가문의 존속을 위한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퍼퍼퍽!
카각!
콰아아앙!
여기저기서 굉음과 함께 잘린 팔다리가 튀어 올랐다.
전원이 각 가문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인 만큼 전투의 수준도. 그 치열함도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피로 만든 각종 마법과 술식들이 허공을 가득 메웠고 그 위를 처절한 비명과 고함소리가 뒤덮어 갔다.
바로 그때.
“네놈이 일을 이렇게 골치 아프게 만든 인간 놈이더냐!”
뱀파이어 하나가 진혁의 앞으로 나타났다.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 못한 틈을 노린 기습이었다.
하지만.
손톱을 휘두르려던 뱀파이어의 몸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끄으으으……?”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려 하는 것이냐? 그 더러운 팔로…… 내 계약자를 해하려 해?”
엘리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분노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바로 그 순간.
콰득!
뱀파이어의 팔이 통째로 바스라졌고.
“크아아악!”
콰득! 우두둑!
이어서 몸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졌다.
“프, 프레이리어드가 한 방에 당했다고?”
“흑익에 소속된 혈족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덤비려던 나머지 뱀파이어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술식을 읊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일 줄이야.
아예 격이 다르다.
일반 혈족으로는 수백, 아니, 수천이 덤벼도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밖에 되질 못한다.
‘앞으로 잘해 줘야겠네.’
진혁 역시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엘리스의 입술이 달싹였다.
“……워.”
“뭐?”
“……고마워.”
엘리스가 다시 한 번 그 말을 곱씹었다.
일족을 해방시켜 줘서.
잃어버린 명예와 긍지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엘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여간, 제약이 풀렸어도 감정을 전하는 건 여전히 서투르다.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엘리스가 가주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강한 건 알고 있지만, 아뮬람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적은 아니었다.
한 가문을 이끈다는 게 거저 얻을 수 있는 칭호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아뮬람의 혈폭이 엘리스의 주위를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쾅!
순식간에 수십 개의 핏방울들이 폭발했다.
조금 전에 사용했던 혈폭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폭발이었다.
상대가 엘리스였기에, 아뮬람 역시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상처 하나 없다.
폭발 속에서 나타난 엘리스의 손엔 약 3m 길이의 가느다란 창이 꽈배기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내 차례인가.”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를 발동합니다!]무려 7번의 회전을 가미한 창.
관통력이 극대화된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퍼퍼퍽!
아뮬람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뮬람의 몸이 수십 개의 박쥐가 되어 흩어졌다.
……위다!
진혁과 엘리스의 시선이 동시에 허공으로 향했다.
천장에 닿을 듯 높게 솟구친 아뮬람이 거대한 마법진을 막 완성시킨 상태였다.
‘애스트렉시카’.
공기와 피를 매개로 한 고대 마법이다.
엘리스가 블링크 스킬로 재빨리 자리를 이탈하려고 할 때였다.
콰콱!
여섯 마리 뱀들이 엘리스의 발목을 단단히 봉인해 버렸다.
도주 경로까지 완벽하게 계산한 안배였다.
“도망은 안 된다.”
피를 머금은 낙뢰가 엘리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츠츠츠…….
콰콰콰콰콰!
몇 겹이나 되는 실드가 엘리스를 보호하려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번개가 엘리스의 몸을 수십 차례에 걸쳐 태워 버렸다.
바위와 대리석이 그대로 증발해 버릴 정도의 겁화는 이내 잔불이 되어 공기를 갉아먹었다.
씨익.
아뮬람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타이밍과 위력이 완벽했다는 걸 확신했기에.
그러나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엘리스가 몸에 붙은 잔불을 털어내며, 걸어 나왔다.
……타격이 없다.
약간 그을린 게 고작이다.
“더럽게 단단한 몸뚱어리로군. 상층부에 서식하는 대형종 몬스터도 즉사시킬 수 있는 걸 맞고도 정신을 잃지 않다니.”
“그러니 효과가 없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 그러니 효과가 없다니.”
“상층부에 서식하는 대형종하고 나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는 것부터. 전제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말이다.”
엘리스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지면에서 붉은색 가시넝쿨들이 튀어나왔다.
평범한 넝쿨들이 아니다.
무려, 신격을 구속할 수 있는 정령목이었다.
잡힌다면 영영 빠져나갈 수 없다.
“망령의 나무인가. 설마, 내가 그런 느려터진 넝쿨 따위에게 잡힐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 지금부터 시험해 보면 될 일이지.”
수십 개의 넝쿨들이 아뮬람을 잡기 위해 쏜살같이 움직였다.
탓! 타앗!
아뮬람이 공중에 녹아 있는 피를 밟으며, 고속으로 이동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엘리스와의 거리를 조절했다.
요리조리 피하면서 간을 보는 게 아니다.
시간을 끄는 건 더더욱 아니었고.
자잘한 공격으로는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일격에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다.
쿠쿠쿠쿠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진혁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 주변에 있는 모든 마력의 입자가 엘리스와 아뮬람에게 응집되고 있다는 걸.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미세하게 조정된 걸음이 서로의 간격과 겹쳐진 순간.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겠다!”
[아뮬람이 고유 성창(固有聖唱) 차원 압축 ‘적색 혈관(赤色血棺)’을 발동합니다!]아뮬람의 고유 성창이 개방되었다.
엘리스의 몸 주위로 붉은색 관이 나타났다.
적색 혈관.
공간이 아닌 차원 자체를 압축해 그 안에 든 생명체를 압살해 버리는 능력이다.
정확한 좌표와 미세한 마력을 컨트롤해야 하는 탓에 발동하기가 극히 까다로웠지만, 한 번 발동되면 그 효과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쿠쿠쿠쿠!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압축에 압축을 거듭하며, 점점 그 크기를 줄여 나갔다.
붉은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3층짜리만 하던 관은 어느새 방 하나 크기까지 줄었고. 잠시 뒤엔 냉장고만 한 크기로 축소되었다.
이제 몇 초만 지난다면 안에 든 것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고깃덩이가 되어 사라질 게 틀림없었다.
“크하하하! 압도적이지 않느냐? 이게 바로 이몸의 고유 성창이다!”
아뮬람이 광소를 터뜨렸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벅차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살려 달라고 애걸해도 마찬가지다. 이 능력은 이미 나조차도 멈출 수 없으니까.”
블링크도 텔레포트도 통하지 않는 죽음의 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발버둥 치다 벌레처럼 으깨져 버리는 것뿐이다.
“과거의 망상에 빠져 현재를 간과한 것. 그게 바로 네년이 죽는 이유다.”
그렇게 마지막 압축이 진행되려 할 때였다.
붉게 물든 관 속에서 엘리스의 고유 성창이 개방되었다.
“서, 설마!”
아뮬람이 입이 벌어졌다.
공기가 달라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미친 듯이 사방으로 피어오르던 스파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바로 그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드득!
적색 혈관에 일부가 무너지며, 엘리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엘리스가 고유 성창(固有聖唱) ‘개벽의 계시록(啓示錄)’을 발동합니다!]“잊고 있었나 본데, 고유 성창을 가진 건 네놈만이 아니다.”
검은 깃털로 뒤덮인 한 쌍의 날개.
악마와 천사가 뒤섞인 듯한 묘한 외형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율이 일어났다.
화르륵!
불로 만든 거대한 고리가 엘리스의 등 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테두리를 따라 고대 룬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혹적이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아름다우면서 불길한 모습.
이것이 바로 엘리스의 완전무장이다.
그리고 과거 이 고유 성창이 탑에 발현되었을 때…….
……5대 가주들과 그 혈족들은 전력의 절반을 잃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