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6)
26화 검성(劍成) 천유성 (2)
욱씬! 욱씬! 욱씬!
전신에 느껴지는 묵직한 압력.
과부하가 걸린 혈관들이 비명을 지른다.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이게 전투계열의 SS랭크 고유 능력을 사용한 여파인가.’
지금까지는 불의 원소를 제외하곤 전투계열의 능력을 사용한 적 없어서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알겠다.
마력의 절대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중에 테레사의 고유 능력까지 쓰려면…….
마력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리라.
얼어붙은 눈물을 완전히 흡수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질질 끌었다간 몸이 버티질 못한다.
진혁은 남아 있는 마력을 모조리 끌어 모았다.
화르르륵!
검 끝에 검은색 기운이 일렁였다.
검마(劍魔)가 사용하던 검강(劍罡).
구현한 건 본래 위력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충분하고말고.
***
으득!
천유성의 어금니가 입술 깊숙이 파고들었다.
핏물이 배어나왔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을 만큼 노력했다.
게임 속에서도.
게임 밖에서도.
하지만, 아무리 단련하고 노력해도 눈앞에 있는 놈을 이길 순 없었다.
결과는 언제나 흑백 화면.
[You Die]라 쓰인 붉은 글자만이 그동안의 노력이 어땠는지를 말해 주었다.그렇게 1년, 2년…….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읽은 게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모든 걸 포기한 채 잊고 지내던 세월.
바로 그때.
[시련의 탑]이 현실로 도래했다.바로 이거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결코 녀석에게 밀릴 이유가 없다.
지금의 격차는 단지 먼저 게임을 시작해 좋은 기연들을 독식해 왔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최선이라고 확신하는 준비를 끝마쳤음에도…….
대체 어째서!
네놈은 또다시 나에게 절망만을 안겨 주느냔 말이다!
천유성이 거칠게 포효했다.
‘추혼검무(追魂劍舞)’.
수십 줄기로 나뉜 검기.
‘제1식(第一式)’.
유형화된 푸른 마력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추혼수라검(追魂獸玀劍)’.
절대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고함을 지른 천유성이 검을 휘둘렀다.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수십 개의 검기가 진혁을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콰!
지면이 종잇장마냥 잘려 나갔다.
압도적인 위력.
단순히 검풍만으로도 터무니없는 물리력이 강제되었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자욱한 먼지만이 피어올랐다.
“하아……. 하아. 하아.”
천유성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격하게 들썩였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절기를 구사했다.
이거라면 틀림없이 통했을 거다.
그러나.
“뭔 스킬이 이렇게 먼지가 많이 나냐?”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저벅.
상처 하나 없는 진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은 게 아니다.
받아친 것도 아니다.
그저 피했을 뿐.
“거, 검로……를 모조리 읽었다고?”
수십 개가 넘는 걸?
그런, 말도 안 되는!
검을 휘두른 자신조차도 모든 검로를 알진 못했다.
“추혼검이 나쁜 건 아닌데, 이것보다 빠르고 강한 걸 쓰는 놈과 싸워 봤거든.”
지금 있는 1층이 아닌, 훨씬 더 위에서.
탑을 지배하는 절대자 중 하나와 맞붙어 봤었지.
“웃기는군. 추혼검 위에 있는 상승무공은 천마가 쓰는 것 외엔 없다.”
“어떻게 알았어? 그놈이랑 싸웠는데?”
“끝까지!”
천유성이 검을 횡으로 그었다.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진혁이 단검을 내리꽂았다.
콰앙!
서로 다른 궤적의 검이 하나의 점에서 맞부딪쳤다.
카가가각!
기(氣)와 강(罡)의 격돌.
푸른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균형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완전히 발현된 검은 달이 천유성의 강기를 순식간에 갉아먹었다.
“크으으읍!”
천유성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폭주에 가까울 정도로 마력을 쏟아 부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마력의 문제가 아니다. 스킬이나 고유 능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둘 사이에는 얼마나 이 세계를 즐기고 좋아했는지에 대한 차이가 존재할 뿐.
결국.
쿠웅!
천유성이 한쪽 무릎을 꿇었고.
“커억!”
콰아앙!
이어지는 일격에 잡고 있던 철기검을 놓쳤다.
공중에서 빙그르 회전한 검이 지면에 꽂혔다.
마침내 승부가 가려진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이긴 것 같네. 정확히 몇 승인지는 모르겠지만.”
횟수는 오래 전에 까먹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 자릿수는 넘은 것 같긴 한데.
“13…8이다.”
138이라.
벌써 그렇게 됐나?
“다음엔 139겠군. 물론, 만약에 또 승산이 있다고 착각한다면 말이야.”
진혁의 말에, 천유성이 눈을 치켜떴다.
“다음이라고?
“그래, 다음에. 아! 기왕이면 지금보다는 더 강해져서 와 줬으면 좋겠어.”
복사 능력을 동일 대상에게 사용하려면 90일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혁이 아는 천유성이라면 다음에 만났을 때 지금보다 더욱 쓸 만한 능력을 가지고 올 것이다.
‘사실상 출장뷔페가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셈이지.’
뭐 하러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고생스럽게 복사를 하나?
눈앞에 강해지기 위해서 안달이 난 놈이 있는데?
이런 녀석은 서서히 키워서 잡아먹는 게 제 맛이다.
‘나중에 15층에선 [그 스킬]까지 구해 놓을 테니까.’
수련광만이 얻을 수 있는 기연을 복사할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진혁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죽여라.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천유성의 입장에선 이 말을 값싼 동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이것 참.
살려 준다고 해도 싫어하는 놈은 아마 세상에 이놈밖에 없을 거다.
하는 수 없지.
작게 한숨을 쉰 진혁이 단검을 회수했다.
“너도 알다시피 시련의 탑은 만만치 않은 곳이야. 랭커들도 방심하는 순간 죽어나가는 게 여기잖아?”
탑의 난이도에 대해선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특히나 ‘사람’이라는 변수가 추가된 지금은 과거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올라갔을 터.
“때문에 강한 플레이어는 최대한 많이 필요해. 특히나 너같이 특별히 강한 플레이어라면 더욱더.”
“특별히 강……한 플레이어?”
천유성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묘한 눈빛이다.
평생을 무시 받던 백작가의 망나니 아들이 마침내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그런 느낌이랄까?
이건 넘어왔다.
……지금이다.
진혁이 천유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또 하나의 스킬을 발동했다.
[Lv2 ‘교감’이 발동됩니다.] [당신에 대한 대상의 적개심이 누그러집니다.] [호감도가 미미하게 상승했습니다.]진혁의 손을 잡고 일어난 천유성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명심해라. 다음번에는 지금과는 아예 결과가 다를 거라는 걸.”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결계를 해제하려던 천유성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네놈의 이름을 모르는군.”
“자주 볼 사이도 아닌데, 굳이 통성명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
야. 너. 거기. 이봐 등등.
인칭대명사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잖아?
“그래. 알겠다. 그렇다면 원래 부르던 대로 부르도록 하지.”
응?
뭔가 느낌이 쎄한데?
설마…….
“잠깐! 그걸로 부르지 마.”
진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름 알려 줄 테니까. 제발.
멈추라고 이 새끼야!
“티모 대령.”
아. 부르지 말라니까…….
진혁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동시에 재미삼아 지은 닉네임이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몰고 올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뼈저리게.
***
진혁이 천유성과의 전투를 끝내고 한창 아이템을 습득하고 있을 때.
유적에선 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차례 전투를 끝내고 쉬고 있는 공격대.
“천화 형. 저 앞쪽에 있던 몬스터들 다 정리한 거 아니었어?”
탐지 마법을 사용하던 마법계열 플레이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1시간 전에 광일이가 애들 데리고 가서 다 쓸어버렸지.”
“그래? 흠…….”
“왜?”
“아니, 그게 탐지 마법에 마력 반응이 잡히고 있거든. 한 마리 아니면 두 마리 같긴 한데…….”
“그럴 리가. 스펙터들이라 확실히 처리했는지 3번이나 확인한 걸로 아는데. 어디 봐 봐.”
송천화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정말이다.
홀로그램으로 표시된 반투명한 스크린에 붉은색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아. 광일이 이 자식. 귀찮아서 일처리 대충 했나 보네.”
송천화가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스펙터 같이 시야에 놓치기 쉬운 유령 몬스터들을 한두 마리 빠뜨리는 경우가.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자, 잠깐만. 이놈 움직이기 시작했어.”
“움직이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이 녀석들, 어그로 끌리지 않으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놈들인데?”
“진짜라고! 게다가 빨라. 곧장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 순간.
쿠―웅. 쿠―웅!
지척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령계열에겐 존재할 수 없는 발소리가.
송천화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만약, 어디까지나 만약에…….
스펙터를 놓친 게 아니라 기존에 없던 존재가 새로이 나타난 거라면?
그리고 외각 경계를 뚫고 지척까지 접근할 때까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거라면?
오싹하고.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당장…… 쉬고 있는 놈들 다 깨워!”
“저, 전부?”
“그래, 전부!”
송천화가 고함을 질렀다.
***
잠시 뒤, 공격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3m에 이르는 거대한 골렘이었다.
암석으로 만든 육중한 몸.
하지만, 골렘보다 더욱 신경이 쓰이는 건 녀석의 어깨에 걸터앉아 있는 백발의 남자였다.
“흐음. 안녕하십니까? 인간 여러분.”
고막을 따라 맴도는 감미로운 음성.
남자는 송천화를 향해 생긋 미소를 지었다.
“마, 말을 하잖아?”
“빌어먹을. 하필이면 지성체 몬스터라니.”
“저 골렘도 그냥 골렘이 아니라 아이언 골렘이야. 날붙이 따위로는 흠집도 안 간다고.”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지능형 몬스터.
그중에서도 인간과 유사한 개체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기피하는 종류에 속했다.
“네놈이 이 유적의 보스 몬스터인 거냐?”
송천화가 거대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물었다.
“하하, 제 이름은 벨루스. 이 유적의 주인을 모시는 혈족 중 하나일 뿐입니다.”
“혈족? 혈족이라면…….”
말을 곱씹던 송천화의 동공이 크게 팽창했다.
“서, 설마.”
아름다운 인간의 외견을 한 몬스터 중에 저 표현을 쓰는 건 단 하나밖에 없다.
“뱀파이어…….”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 남자가 모시고 있는 이 유적의 주인은…….
꿀꺽!
송천화의 목을 따라 마른침이 넘어갔다.
진조(真祖).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가장 강한 존재 중 하나.
이곳은 바로 그 녀석의 영토다.
‘승산이 없어.’
설마, 1층에 그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테레사도 있고 또 준비해 둔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한들, 진조에게만은 예외다.
‘최소한 레벨이 500대가 넘을 테니까.’
현 시점에서 그 어떤 고유 능력과 성유물로도 녀석을 사냥할 순 없었다.
송천화가 힘겹게 입을 뗐다.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냐? 아무 이유 없이 이곳에 오진 않았을 텐데?”
“호오. 제법 눈치가 있으신 분이로군요. 맞습니다. 제가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한 가지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벨루스가 골렘의 어깨 위에서 뛰어내렸다.
툭.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가벼운 착지다.
“제안이라면 무슨?”
“선택권을 드리죠. 두 개 중에서 한 개를 고르시면 됩니다. 먼저 첫 번째.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얌전히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아니면…….”
벨루스의 손바닥에 붉은빛의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본보기로 절반 정도 죽은 다음에 가축처럼 끌려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