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66)
267화. 결계학개론 (1)
시선이 교차한다.
진혁이 어금니를 집어넣었다.
복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선 오롯이 ‘저주’와 ‘결계’만을 사용해야 할 터.
지금부터는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통곡의 마녀의 시선이 유적 끝 쪽으로 향했다.
“네놈이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가 했더니. 떨거지들을 잔뜩 데리고 온 걸 믿고 있던 거였나?”
“떨거지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시치미 떼지 마라. 방 입구에 스무 명 남짓한 인간들이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곳에 올 만한 스무 명이라면…… 설마?
진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 레이드에 참여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던 세력.
‘단군 길드.’
간다라랑 마인 쪽에 붙은 줄 알았더니 그 제안을 걷어찼던 모양이다.
대형 길드라면 사리사욕에 눈에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만 있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들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기왕 기습하는 거 들키지만 않았으면 정말로 딱 마음에 들었을 텐데 말이지.
젠장.
통곡의 마녀 주위로 검은 액체들이 모이는 게 보인다.
녀석이 보유한 최악의 스킬 ‘검은 눈물’을 발동하려는 것이다.
이건 위험하다.
“그쪽 들켰어! 피해!”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콰콰콰콰콰콰!
검은 파도가 입구를 향해 범람했다.
“어어…… 어어?”
“바, 박 형. 뭔가 오고 있어!”
“젠장. 마력 캔슬링 스킬이 간파당했다는 건가.”
“진형 갖춰! 생존기 전부 킨다!”
몬스터들의 석상 뒤에 숨어 있던 단군 길드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장 앞쪽에 있던 박정진이 눈부신 광휘가 뿜어지는 방패를 앞으로 뻗었다.
[박정진이 고유 능력 ‘신성 결속’을 발동합니다!]금빛 실드가 방패를 중심으로 공격대 전체를 완전히 커버했다.
콰아아앙!
검은 파도와 신성 계열의 실드가 충돌하자 형형색색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슬아슬했군.”
박정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패 버려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방패를 버리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장 버리라고요!”
검은 눈물은 막아도 막은 게 아니다.
대상과 접촉을 함으로써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츠츠츠츠!
닿는 것을 변질시켜 버리는 특수한 힘.
검은 눈물은 저주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축에 속했다.
[‘검은 눈물’이 방패에 스며들었습니다.] [방패가 오염됩니다!]생명체에 닿을 경우, 광란, 착시, 변이를 일으켰고.
무생물에 닿을 경우에도 예측하기 힘든 온갖 변수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예측 불허.
그렇기에, 이 능력이 가진 파급력은 여느 능력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능력을 관장하는 통곡의 마녀 역시 이 능력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케에에에!”
방패에서 입이 벌어지더니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과 꿀렁이는 검은 액체를 토해내는 게 완전히 몬스터가 따로 없다.
“이, 이럴 수가.”
박정진이 깜짝 놀라 방패를 내팽개쳤다.
아이템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능력이라니.
지금까지 별의별 능력을 경험했다고 생각한 박정진이었으나, 이런 식의 기괴한 능력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심지어 눈물 한 방울이 살갗에 닿은 여성 플레이어 한 명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고 있지 않은가?
“끄으으…… 꺄아아악!”
“소, 송이야 정신 차려. 박 형! 그거 몸에 닿으면 안 돼. 좀비 바이러스마냥 사람이 변하는 것 같다고!”
“제, 젠장……. 막는 것도 안 되고 피해야 한다는 말이냐.”
터무니없는 능력이다.
신성 계열로도 막을 수 없다는 건, 다른 어떤 능력으로도 상쇄시킬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기습의 이점도 사라진 데다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넓지 않은 탓에 숫자의 이점이 오히려 약점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패닉에 빠져 있는 동안.
“트리스탄.”
통곡의 마녀가 옆에 있던 마인을 바라봤다.
“말씀하세요.”
“방해꾼들은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아까 전에 상대했던 인간 셋도 회복한 것 같으니, 잊지 말고 숨통을 끊어버려야 한다.”
마리아와 유연화 그리고 이태민이 어느새 다시 싸울 채비를 끝냈다.
진혁이 추가로 나누어줬던 마력 회복제를 마시고 숨을 골라 왔던 덕분이었다.
“흐음. 설마 저 혼자서 저들을 전부 상대하라는 건 아니겠죠?”
“끌끌. 아무렴 내가 그대 혼자 보내겠나? 든든한 지원을 붙여 주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지,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으니 그대가 적절하게 마무리만 해 줬으면 좋겠군.”
검은 눈물에 감염된 건 방패와 플레이어들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각종 몬스터들의 석상을 가져다 둔 이유.
그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잠들었던 몬스터 석상들이 깨어납니다!]우두둑! 우둑! ……쿠쿵!
“크오오오!”
“그와아아!”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켰다.
오우거와 트롤, 리자드맨과 멘티코어 등.
하나같이 중형급 이상의 강력한 네임드들로 통곡의 마녀가 각별히 선별해서 모아 둔 놈들이었다.
“크윽…….”
박정진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진혁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건만, 변변찮은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뒤에서 발이 묶이게 생겼다.
“바, 박 형.”
“최소한 우리가 시간을 끌어야 한다. 적어도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몬스터들을 상대한다면 그만큼 진혁이 보스와의 1:1 대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순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
‘어떻게든 저쪽에 있는 세 사람과 합류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오래 버틸 수 있겠지.’
이태민의 드론들과 유연화의 탱킹 마리아의 화력까지 더해진다면 중형급 몬스터들이라도 쉽게 밀리지 않을 거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곳까지 길을 뚫는다. 내가 앞장설 터니 너희들은 측면을 엄호해.”
“젠장. 꽃길만 걷게 해 주겠다더니.”
“죽으면 총각 귀신이 돼서 형 따라다닐 거야. 명심해. 나 아직 장가도 못 갔다고.”
***
“다른 인간들이 신경 쓰이는 게냐?”
통곡의 마녀가 입을 열었다.
“그다지. 다들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거든.”
“후후. 그런 것치곤 꽤나 초조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너무 안달해 하지 말거라. 어차피 이곳에 온 놈들은 사이좋게 저승에서 만나게 될 테니.”
“미안하지만, 내가 근본 있는 유교 출신이라 말이야. 장유유서답게 연장자 먼저 보내 주도록 할게.”
“정말이지. 너나 네놈의 시청자나 성질을 긁는 덴 일가견이 있구나. 사도를 쓰러뜨렸다고 해서 나까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진심으로?”
“너 하나 내 마음대로 요리하지 못할 거였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어디 내 첫 수를 받아낼 수 있는지 보도록 하지. 부디 기대치의 반의반만큼이라도 부응해 줬으면 좋겠다. 너무 따분하진 않도록 말이다.”
스윽.
낡아빠진 팔이 좌로 움직였다.
[저주 ‘블러드 멜팅’이 발동됩니다!]진혁의 발밑으로 오망성이 그러졌다.
혈액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을 모조리 녹여 버리는 저주로, 4성급 ‘증폭’ 결계까지 중첩시켜 그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오염 스탯’으로 인해 저주와 결계의 효과가 30%만큼 상승합니다!]고유 스탯의 효과까지 추가된 건 덤이다.
“이젠 늦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마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우우웅!
붉은빛이 점멸했다.
그런데.
“흐음?”
통곡의 마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술식은 제대로 발현되었건만, 눈과 입에서 피를 토해야할 상대가 너무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뭐지?
짙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설마…….
“내 술식을…… 파훼했다고? 문양을 보자마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수천, 수만 가지 조합이 가능한 술식을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파악하고 분석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닳고 닳은 마녀들조차도 방어 결계를 통해 미리 대비를 하지. 상대의 공격을 허용한 뒤에 파훼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너무도 위험부담이 큰 행위였기 때문이다.
“뭐, 대단한 건 아니야. 요즘 들어 결계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거든. 저주야 원래 자신 있는 분야였고.”
“웃기지 마라! 책이나 몇 장 뒤적였다고 해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내 술식이 허술하다는 게냐!”
“억울하면 좀 더 조합을 잘 짜지 그랬어? 4성급 결계를 쓰니까 쉽게 읽히는 거 아니야.”
진혁의 어깨에서 은은한 빛이 피어올랐다.
고대 룬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개화했다.
“각인……의 한 종류인가. 네놈 결계사였구나. 그래. 그래서 이렇게 기고만장했던 거였어.”
“호오. 그래도 눈이 옹이구멍은 아닌가 보네.”
비록 달의 각인이라는 것까진 모르는 듯싶었지만.
이게 결계사의 증표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완전히 애송이는 아니었나 보군. 오냐. 네놈 말대로 결계에 대한 얕은 지식을 가졌다면 조금 더 난이도를 올려 주도록 하겠다.”
통곡의 마녀가 이번엔 양손을 움직였다.
파츠츠츠!
오망성 위로 룬어가 덧씌워졌고 그 옆으로 3개의 결계가 늘어졌다.
두 손을 사용했기에, 연산 속도와 술식의 완성도가 이전보다 몇 곱절은 올라갔다.
“제아무리 결계를 업으로 삼은 놈이라고 하더라도 이 안에서 살아서 빠져나갈 순 없을 것이다.”
쿠쿠쿠쿠쿠쿠!
유적 전체가 격동했다.
찐득찐득한 마력과 저주의 혼재로 인해 피부가 타들어갈 것만 같이 따가웠다.
과연…….
다중 연산을 통해 고등 술식을 발동시키는 걸 보니, 세삼 마녀는 마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숙련되어야 저런 게 가능할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물론.
그런 경지가 내려다보이는 입장에선……. 그저 기특한 수준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순간.
오망성의 근본이 되는 중앙에 쩍 하고 금이 생겼다.
“뭐, 뭣이?”
승리를 확신하던 통곡의 마녀가 두 눈을 부릅떴다.
[‘달의 각인’이 개화합니다.]콰드득!
콰득!
3개의 결계가 유리창처럼 박살났다.
“말하지 않았나? 조금 더 강한 결계로 승부하라고.”
진혁의 어깨 너머로 육망성의 형태를 띤 결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셋…… 넷 그리고 다섯.
결계의 숫자가 열 개에 이르렀을 땐, 통곡의 마녀의 입이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내가 말한 건 전력을 발휘하라는 뜻이었어.”
진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
우우우웅!
이번엔 통곡의 마녀의 발밑으로 처음 보는 룬어가 그려졌다.
조금 전 사용했던 오망성과 유사한 종류다.
“이, 이까짓 거……!”
결계를 구축하는 성(成)이 높은 건 아니다.
저주 따위야 비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미약했고.
파훼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대마녀회의 일원인 자신이라면……! 이런 수준 낮은 것쯤은 단번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어?”
콰아아앙!
술식의 구조를 뜯어보기도 전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커억. 쿨럭! 케엑!”
통곡의 마녀가 연기를 뚫고 비틀거리며, 반대쪽으로 뛰쳐나왔다.
당혹감으로 물든 얼굴에선 오직 의문만이 가득해 보였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가장 기본적으로 구성된 술식의 연결고리를 파악하지 못했단 거지?
바로 그때.
뒤에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몇 성급 결계인지, 얼마나 강력한 저주를 섞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조합이 중요한 거지.
아무리 하찮고 낮은 등급의 결계라도 상황에 맞는 결계 혹은 저주와 조합한다면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와 제대로 싸우고 싶다면 검은 눈물을 꺼내라.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돼.”
“이이익! 감히 네놈 따위가 나에게 강의를 해? 검은 눈물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너 하나쯤은 순수한 내 실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찢어버릴 수 있느니라!”
[저주 ‘거열형(車裂刑)’이 발동됩니다!] [7성급 결계 ‘증식’이 발동됩니다!]허공을 수놓은 수많은 룬어들.
붉은색 오망성들이 어지럽게 흐드러졌다.
아까 전 진혁이 펼쳤던 열 개의 결계도 일개 결계사가 다루기엔 과한 수였지만, 이건 족히 그 30배가 넘었다.
아예 하늘의 색이 바뀔 정도였으니까.
“……장관이네.”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많은 수의 소형 결계들을 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허억. 허억…… 크크. 깔깔깔! 봤느냐! 이것이 나다! 대마녀회로부터 ‘통곡’이란 칭호를 받은 게 바로 나란 말이다!”
통곡의 마녀가 찢어질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라. 어린 결계사야. 이게 대마녀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와의 격차니라.”
손이 위로 향한다.
술식들이 일제히 밝은 빛을 내며 발동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9성급 결계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전갈자리의 결계’가 발동됩니다.] [4성급 결계 ‘고속치환(高速置換)이 발동됩니다.]갑자기 붉은색 오망성의 색 하나가 푸른색으로 변했다.
새로운 마력이 개입했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술식의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곧이어 전염이라도 된 듯 붉게 물든 하늘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이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이런 게…… 이런 일이…….”
연산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저주든 결계든 두 개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낸 술식이든.
발동하는 족족 모조리 파훼당하고 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붉은색 오망성들이 무수히 많은 푸른색 육망성으로 치환되는 장면은…….
감히, 장관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