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68)
269화. 강마 의식
탑의 상층부에 있는 존재들이 현현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의지로 탑의 아래에 내려올 경우다.
엄청난 양의 코인이나 성유물 등을 제물로 삼아야 했기에, 양날의 검 같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아래층에 있는 존재들이 특정 장소나 제물들을 이용해 위에 있는 자들을 불러내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쿠쿠쿠쿠쿠!
유적 전체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키에에에…….”
“캬아아악!”
몬스터 석상들이 마구 비틀대다 쓰러졌다.
거대한 용광로에 들어간 것처럼. 신체가 녹아서 마법진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 박 형. 나 어지러운데? 이거 기분이…… 뭔가 이상해.”
“저도 몸이 말을 잘 안 들어요…….”
단군 길드의 공격대도 들고 있던 무기와 방패를 떨어뜨렸다.
“다들 정신 차려! 잠들면 안 돼. 잠들면 다 죽는다고!”
박정진이 신성 계열 마법을 사용하며 동료들을 지키려 했지만, 강력한 마기 앞에선 소용없었다.
시야가 뿌옇게 가려진다.
손발의 감각이 사라지고 사고가 무뎌진다.
쿠웅!
쿵!
하나 둘.
모두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유연화와 이태민은 아직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누, 누나. 이거,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어.”
“빌어먹을! 오빠! 사람들 데리고 먼저 빠져 나갈게. 뒤는 맡겨도 되는 거겠지?”
이대로라면 당한다.
더 늦기 전에 빠져 나가야 한다.
“이 정도 숫자는 제 중력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리아 역시 눈대중으로 사람들의 수와 남아 있는 마력을 가늠했다.
다행이다.
세 사람이 있어서.
덕분에 무의미한 희생자가 나오는 건 막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그걸’ 보여 주지 않아도 될 테고.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내 준다고 했던가요? 소중한 영양분이 되실 분들을?”
트리스탄이 검을 뽑았다.
스릉!
눈부신 검광과 함께, 칼날을 타고 마인 특유의 마기가 응집되었다.
하지만. 마기가 방출되기 직전.
퍼어어엉!
트리스탄의 몸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큭!”
모였던 마기가 그대로 흩어졌다.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있으신가? 강마 의식이나 집중하는 편이 좋을 텐데?”
“당신……이야말로 쓸데없는 마력 낭비 마시죠. 발악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적 안에 있는 한, 아무리 도망쳐도 독 안에 든 쥐다.
작위가 있는 마족이 현현하는 순간, 플레이어 따위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 대업의 가장 큰 역할을 해 줄 제물은…….
트리스탄이 잘려 있는 마녀의 팔을 집어 들었다.
“놔, 놔라! 분명, 네놈은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제물로 바쳐 의식을 치르자고 하질 않았느냐! 그런데 어째서……!”
잘려나간 팔이 마구 버둥거렸다.
“원래는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당신이 저 인간과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모두 처리해 주지 못 했으니 계약 조건도 달라져야 하는 법이겠죠.”
여기 있는 제물들만으로는 강한 마족을 불러오기에 부족하다.
적어도 이 유적을 지배하는 마녀의 목숨 정도는 있어야 이야기가 되겠지.
“내가 고작 제물 따위로…… 죽는다고? 내가?”
“어울리는 죽음 아닌가요? 위대한 마법을 위한 소모품이 되는 것이야말로 마녀의 이상적인 최후일 텐데요.”
트리스탄이 마법진의 중심부에 팔을 갖다 댔다.
그러자.
쿠쿠쿠쿠쿠!
보라색 불꽃이 서서히 살점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비명 소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살덩이는 곧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유적의 보스 ‘통곡의 마녀’가 소멸했습니다!] [보스 몬스터의 처치 기여분 94%를 인정받았습니다!] [고유 능력 ‘검은 눈물’을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검은 눈물]입수 난이도: SSS
내용: 검은 눈물은 15층에 위치한 유적 ‘적그리스도의 무덤’의 주인인 통곡의 마녀가 사용하는 고유 능력입니다. 닿는 대상을 오염시키고 변질시킬 수 있는 정신 계열의 능력과 적을 통째로 포식하는 물리 계열의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검은 눈물은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진화’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녀의 비술서’를 획득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과’를 획득했습니다.] [……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다수의 아이템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몇 레벨이 올랐는지 무슨 아이템이 드랍됐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드디어 오는 건가.’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우우우웅!
형언할 수 없는 빛무리에 이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흉흉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저릿저릿!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작위를 가진 네임드 마족이 이곳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오오오!”
트리스탄이 감격에 겨운 탄성을 터뜨렸다.
그동안의 고통과 고생을 모두 보상받은 듯, 떨리는 눈동자에선 한 줄기 눈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젠장, 누가 보면 돌아가신 조상님이라도 살아 돌아오는 줄 알겠네.
완전히 뻑 가 버린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바로 그때였다.
운무 사이로 경쾌한 남성의 음성이 들렸다.
“캬아! 아래 쪽 공기는 진짜 오랜만이네. 하하하. 그래. 이거지. 아주 신선해. 정말 그리웠던 맛이야.”
검은색 뿔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
검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를 지닌 이국적인 외모의 젊은 남성이 걸어 나왔다.
진혁이 반사적으로 ‘탐식의 눈’을 발동했다.
[이름: 하르간 / 작위: 백작 / 중급에 해당하는 마족입니다.] [탐식의 눈의 레벨이 너무 낮아 고유 능력과 스킬, 복사 조건 등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탐식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기껏해야 놈의 이름과 직위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천한 종이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트리스탄이 재빨리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그래. 아주 고생 많았어. 안 그래도 좀이 쑤셨는데, 덕분에 몸 좀 제대로 풀 것 같구나.”
“그런 말씀을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근데, 저 녀석은 또 뭐냐? 인간 주제에 왜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거지?”
하르간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저자가 바로 저희들을 방해하고 위대한 분들의 계획을 망치려고 하는 자입니다. 이미 많은 동료들이 저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흐음. 저놈이?”
“예. 당장 죽여야 합니다. 매우 위험한 자예요.”
트리스탄이 적대감 가득 실린 눈으로 진혁을 노려봤다.
“이야. 든든한 마족 하나 나타났다고 아주 기가 제대로 살았네. 하긴, 백작급 마족이면 그럴 만도 하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돋는 괴물.
분명, 플레이어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절대자이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냐?
“마족을 소환할 수 있는 건 너한테만 가능한 게 아니야.”
적그리스도의 무덤이 마족을 현현시킬 수 있는 장소인 건 맞지만, 그 대상이 반드시 하나라고 정해져 있지 않았다.
“사실, 나한테도 관심을 보이는 거머리 같은 놈이 하나 있거든.”
아마 지금도 지켜보고 있긴 할 텐데…….
역시나,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신격 ‘썩어 가는 심장’이 하품을 합니다.]야야!
너가 여기서 심드렁하면 안 되지.
진혁이 다급히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보고 있지? 보고 있는 거 아니까 아는 척 좀 해라.
그러나 아무리 진혁이 아는 척을 해도 녀석은 귀찮음 가득한 간접 메시지만 보낼 뿐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엉덩이는 더럽게 무거워선.
“호오. 네놈이 마족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인간이었다는 거냐?”
하르간이 흥미롭다는 듯 키득거렸다.
“총애라고 하긴 거창하고 러브콜을 살짝 받고 있긴 하지.”
“어디서 썩은 동아줄이라도 하나 잡았나 보구나. 뭐, 아직 햇병아리인 인간에게 관심을 보일 정도의 마족이면 별 볼 일 없는 놈이겠지. 기껏해야 남작이나 자작급이려나? 뭐가 됐든 이런 쓰레기를 후원하는 놈의 수준도 마찬가지로 쓰레기에 불과할 게 틀림 없…….”
말을 하던 하르간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
방금.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전신이 통째로 찢겨 나가는 듯한 강한 마력.
그동안 모른 척하고 있던 누군가가 ‘쓰레기’라는 말에 반응했다.
“뭐, 뭐야 이 터무니없는 마기는?”
하르간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신격 ‘썩어 가는 심장’이 하르간을 향해 고개를 까딱입니다.] [마계 사관학교 몇 기 출신이냐고 묻습니다.]그저 미약한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
허나, 그것만으로도 공기를 완전히 바꿔 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네놈! 대체 누구길래 그런 걸 묻는 것이냐. 당장 정체를 보여라!”
[신격 ‘썩어 가는 심장’이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고 명령합니다.]또다시 하르간의 몸이 위축됐다.
언령이 이토록 강한 권위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깨달은 하르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나는 3537기다. 백작의 지위 역시 그곳에서 얻었지.”
흐음. 3537기라.
마계 사정을 자세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이게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높은 쪽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베리엘. 넌 몇 기 출신인데?”
진혁이 허공을 향해 물었다.
[신격 ‘썩어 가는 심장’이 손가락 세 개를 폅니다.]이야.
이건 완전히 팝콘 각이다.
***
마족들은 워낙 호전적인 탓에 서열이 자주 바뀐다.
유입과 퇴출이 이 정도로 활발한 족속들은 없다고 해야 할까?
그중에서도 베리엘은 워낙 폐쇄적인 성향으로 인해 마족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놈들이 많았다.
물론.
그 격을 일부나마 드러낸 이상, 아무리 둔감한 마족이라고 하더라도 베리엘의 수준이 규격 외라는 걸 느낄 수밖에 없겠지.
이곳이 성마소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계획했었는데.
다행이 모든 일들이 원하는 대로 풀렸다.
‘하르간이 베리엘에게 쓰레기라는 말만 안 했어도 살짝 위험했겠어.’
운이 적절하게 따라 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변덕쟁이인 베리엘이 혹시나 도와주지 않았다면, 하르간과 일대일로 붙어야 했을 테니까.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진혁이 멍하니 굳어 있는 트리스탄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서열 정리 당한 하르간은 꼬리를 만 채 마계로 돌아가 버린 상황.
트리스탄은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영혼이 나가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안타깝긴 하지만, 불행은 끝난 게 아니다.
“벌써 그렇게 좌절하면 곤란한데, 잊은 건 아니겠지? 네 헛짓거리에 놀아난 하르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걸?”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
“당연하지. 개쪽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이,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저도 예측할 수가 없었는데…….”
“미안하지만, 녀석 입장에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저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지.”
이래서 마족과의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제 기분에 따라 언제든지 판이 뒤집어질 수 있었으니까.
목숨을 100개 정도 준비해 둔 게 아니라면…… 글쎄.
절대 오래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럴…… 수가.”
트리스탄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변했다.
“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어떻게 하긴.
“일단 무릎부터 꿇어 봐.”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도록 하자.
진혁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