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타락한 회랑의 주인 (1)
“웃기는군. 진조가 직접 이곳에 왔다면 몰라도. 휘하의 혈족 한 놈이 우리 전부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송천화가 벨루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피해가 제법 크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레이드를 포기하고 가디언을 뚫으면 된다.
굳이 진조와 싸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멍청하게 적의 본진으로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송천화의 입장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흐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당연하지. 기껏해야 50레벨짜리 몬스터 정도는, 이미 몇 번이나 사냥해 봤다.”
진조의 통상 레벨은 500 이상.
하지만, 녀석을 따르는 혈족들은 그보다 훨씬 레벨이 낮았다.
50에서, 높아야 60대 정도랄까?
강한 건 맞지만, 포지션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격대라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 시련의 탑 운영진 게시판에서 공식으로 푼 정보이니 이건 틀림없어.’
송천화가 자신만만하게 자세를 잡았다.
“하하. 역시나! 인간들은 왜 이렇게 레벨이란 틀에 얽매여 있는지 모르겠네요.”
벨루스가 유쾌한 듯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파츠츠츠!
붉은색 스파크가 일어났다.
공기가 급변했다.
동시에 벨루스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주제도 모르는 열등한 인간들 따위가 감히…… 나를 우습게 봤다 이거지?”
[벨루스가 Lv11 ‘블러드 바인드’를 발동합니다!]혈액이 비산한 건 바로 그때였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수천 개의 핏방울이 순식간에 탱커들을 집어삼켰다.
“컥?”
“어어어? 이거 뭐야?”
“디스펠, 디스펠 좀 빨리!”
당황한 탱커들이 고함을 질렀다.
마법 저항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착용했음에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디스펠이 사용되기 바로 직전.
벨루스가 펴고 있던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퍼퍼퍼퍼퍽!
콰득!
콰드득!
“끄아아악!”
“으아악!”
엄청난 압력이 갑주를 우그러뜨렸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됐을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 속.
“이런 병신들아! 멀뚱히 서서 뒈질 때까지 기다릴 거야? 당장 움직여!”
송천화가 공격을 명령했다.
“젠장! 달려들어!”
“다음 마법이 발동되기 전에 죽여야 돼!”
근접 딜러들이 자리를 박찼다.
포위망을 구축한 채 일제히 사각에서 덮쳤다.
대부분은 혈액으로 만든 방패에 막혔지만…….
푹! 푸욱!
극소수의 검과 창은 벨루스의 몸을 꿰뚫는 데 성공했다.
칼날을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벨루스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실망이네요. 적어도 무기에 신성력 정도는 두르고 공격을 했어야죠.”
그걸로 끝.
퍼버버벅!
벨루스를 둘러싸고 있던 딜러들의 몸이 한 줌의 핏물로 화해 버렸다.
으깨진 육편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공격이 통하질 않는다.
반면, 상대의 공격은 위력적이다 못해 공격대 전체를 압도했다.
“어, 어떻게 혈족이 이렇게 강할 수가…….”
송천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고작 혈족 하나가 지닌 힘이 이 정도면.
이를 이끄는 진조는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3층의 보스를 공략하고 있는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이끌고 와도.
감히 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
송천화가 방패를 늘어뜨렸다.
당장은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이 소식을 밖에 전해 줄 수 있었으니까.
“항복하시는 겁니까?”
“그전에 한 가지만 묻겠다.”
“질문이라…… 좋습니다. 어디, 말씀해 보시죠.”
“왜 우리를 끌고 가려는 거지?”
벨루스에게 있어, 공격대를 전멸시키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걸까?
“당신들을 미끼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미끼라고?”
“저희 주인께서 흥미를 느낀 인간이 있는데, 하필 한 명이 신성력을 다룰 줄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간편한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건……. 테레사에 관한 이야기다.
노리는 건 역시 그녀였나.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송천화의 머릿속은 빠르게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만약 성기사인 테레사가 합류해 준다면…….’
아주 어쩌면 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닌,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게 만들어 줄 빈틈을.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따라가지.”
송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엄지손톱으로 스스로의 손바닥을 찔렀다.
[긴급 호출 스크롤이 발동되었습니다.] [지정 대상은 ‘테레사 드 로렌시아’입니다.]푸른색 상태창이 점멸했다.
이제 믿을 건 이것뿐이다.
송천화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이 모든 상황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
진조(真祖),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그녀는 시련의 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다.
아니, 강자였다.
일족의 금기를 어겼기에, 타락했고.
그 결과 탑의 가장 아래층에 유배되었으니까.
그래서 붙은 유적의 이름이 ‘타락한 자들의 회랑’이다.
엘리스와 그녀를 따르는 소수의 혈족이 거주하는, 심연에 위치한 왕궁이라는 뜻에서.
‘세상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
진혁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눈앞에 상태창 하나가 보였다.
조금 전, 개인 퀘스트의 형식으로 온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회랑의 주인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공격대에 소속되어 있는 플레이어들과 짐꾼들을 살리고 싶으면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오십시오.] [난이도: 없음보상: 회랑의 주인과의 만남
내용: 퀘스트를 수락할 경우 마지막 방까지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과 함정들이 멈춥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테레사가 힐끗 진혁을 바라봤다.
자신이야 계약에 묶여 있으니 당연히 도우러 가야 하지만.
비전투계열인 짐꾼으로 온 진혁은 아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기다리다가.
며칠 뒤, 구조대가 가디언을 뚫고 올 때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네?”
“저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진 않지만, 그쪽이 간절히 부탁한다면 함께 가 줄 수도 있죠.”
“부탁이라면…… 어떤?”
“그거야 뭐. 적당히 성의 표시만 해 주시면 됩니다. 보아하니 구독자 층이 꽤 탄탄하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진혁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다 알면서.
선수끼리 왜 이래?
돈 말고 코인으로다가.
5자리 숫자 딱 채워서 주면 다 죽어 가던 의욕도 솟아오를 거다.
“악취미로군. 어차피 너도 보스한테 볼 일이 있던 것 아니었나?”
지켜보던 천유성이 혀를 찼다.
“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강매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테레사 씨한테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잖아? 게다가 넌 유적 밖으로 나갈 거 아니야?”
“그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이미 실패했으니까.”
“그럼, 조용히 갈 길 가라. 괜히 훈훈한 거래에 고춧가루 뿌리지 말고.”
진혁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천유성이 더욱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너처럼 악랄하게 굴어야 강해질 수 있는 건지 하는.”
이 자식이?
“후우. 됐다. 말을 말자.”
말해 봤자 나만 손해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고.
한숨을 내쉰 진혁이 테레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코인을 드리면…… 저와 함께 공격대를 구출해 주실 건가요?”
“많은 걸 약속할 순 없지만, 적어도 1만 코인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1만 코인.
누가 들으면 욕부터 하고 볼 정도로 터무니없는 요구다.
현 시점에서 1만 코인을 모은 사람은 손에 꼽았을 테니까.
하지만 공격대 전부를 구해 낼 수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액수였다.
다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진혁 씨는 두렵지 않으세요?”
일반적인 레이드도 아니고 한 종(種)의 정점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죽으면 코인도.
성유물도 모두 소용없다.
그럼에도.
“글쎄요. 두려워해야 하나요?”
진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태연한.
마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다.
“…….”
테레사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감이라기 보단 오만에 가까운 발언.
그런데도 왜일까.
두근! 두근! 두근!
묘한 기대감으로 인해 테레사의 심장이 희미하게 뛰었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확률론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직감을 믿어야 할지.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가디언을 돌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말이지.”
천유성이 철기 검을 뽑아든 채 몸을 돌렸다.
“아. 한 가지.”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잠시 자리에 멈췄다.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면 참고삼아 들어라.”
다소 불쾌하고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힐끗 진혁을 노려봤다.
“나는 저 녀석이 진조를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방관하는 제3자였기에,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없이 검을 나눴던 당사자였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상대를 잘 알고 있기에.
한 가지만은 장담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 넘어서지 못한다면, 현존하는 그 어떤 플레이어도 진조를 쓰러뜨릴 순 없다.”
과거의 검성이자.
미래의 검성이 될 플레이어가 인정했다.
현재 시련의 탑에 있는 플레이어 중 가장 뛰어난 자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1만 코인으로 그 플레이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 또한.
“시답잖은 혼잣말이었다. 물론,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지만.”
중얼거린 천유성이 멈춰 섰던 발걸음을 재차 옮겼다.
“……조언, 고마워요.”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한 듯 진혁을 향해 살짝 무릎을 숙였다.
“계약을 맺겠습니다. 부디, 저와 함께 싸워 주세요.”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2/2인)] [몬스터들이 숙면에 들어갑니다.] [함정이 가동을 멈춥니다.]쿠쿠쿠쿠쿵!
유적 전체를 철통같이 보호하던 각종 함정과 몬스터들이 침묵했다.
덕분에 가는 길은 꽤나 순조로웠다.
최소한 몇 주는 걸려야 할 여정을 몇 시간 단위로 압축해 줬으니까.
[마력이 +12만큼 상승합니다.]진혁은 테레사가 해동해 준 ‘얼어붙은 눈물’을 조금씩 흡수했다.
[얼어붙은 눈물]입수 난이도: SS
흡수 가능한 마력: 100
내용: 시련의 탑 7층 ‘세상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정수입니다. 흡수 시 마력을 대폭 증가시켜 주지만, 특정한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사용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힙니다.]
‘……진짜 쏠쏠하긴 하네.’
무려 12스탯.
레벨로 치면 4레벨을 올린 셈이다.
진혁은 확연하게 달라진 마력을 온몸으로 느꼈다.
‘검의 무덤’을 활성화했을 땐 혈관 전체가 찢겨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통증이 한결 덜해졌다.
이래서 다들 마나통, 마나통 하는 건가 보다.
‘총량이 100이니 이걸 전부 흡수할 수만 있다면…….’
천유성의 ‘검의 무덤’이나 테레사의 ‘별의 가호’는 물론, 다른 랭커들의 고유 능력과 스킬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거다.
‘테레사가 해 주는 해동으로는 12스탯이 한계니 당분간은 이걸로 만족해야겠군.’
12, 18, 30, 40.
이렇게 총 4단계.
냉기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스킬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양도 달라진다.
다음 단계로 가려면 상위 스킬을 갖고 있는 인물이나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 하다는 뜻이다.
‘뭐, 이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당장은 코앞에 닥친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진혁은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을 답습했다.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 끝에서 찾아낸 유일한 활로.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결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었지만.
어떻게든 뚫어 낼 수밖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통로가 점점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